한국성비오10세회

Home > 한국성비오10세회 > 성당회보

제목 치비타스 제116호(2016년 12월 25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1-23







축 성탄! 말구유 침대에 계시는 아기예수



치비타스 제116호 Editorial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아기 예수 성탄을 맞아 말구유 침대에서 평화하게 주무시는 어린 왕(Rex Pacificus)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나자렛에서 30년간 당신을 드러내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신 숨겨진 왕(Rex agsconditus)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묵상합시다.


Ⅰ. 세상을 창조하신 천주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천주의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범으로써 이 세상이 유한하다는 것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우리가 이 땅에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천주를 얻고 누리기 위해 이 세상을, 즉 피조물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천주이며, 모든 피조물은 천주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말씀합니다. “천주를 알아 봉사하고 사랑함으로써 영혼이 구령됨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모든 피조물은 천주께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의 생명을 사랑하고 누릴 목적으로 천주와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인간존엄과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천당이며, 이 세상은 천당으로 가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오늘,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 기도의 제1목적은 우리가 천주의 뜻을 행하고 천당까지 가기 위해서입니다. 감추어 계신 천주께서 당신을 보여 주시지도 않고, 목소리도 들려 주시지 않지만 성총으로써, 초자연적인 은혜로써 우릴 도와주십니다.


Ⅱ. 2016년 1월 12일,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1월 23일)에서 공개 상영된《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침묵 》배우 리암 니슨(Liam Neeson)이 예수회 신부 - 믿음이 곧 순교로 이어지는 

극한 시대에 신앙은 왜 지켜야 하나? 신앙의 의미는 무엇인가? - 를  해석한다.


《침묵》은  천주교 신자인 일본의 작가 엔슈사쿠가 쓴 소설을 영화화 한 것 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7세기 반천주교 시대의 일본입니다. 예수회관구장이며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던 배교사제 페레이라를 찾아 일본에 잠입한 두 명의 예수회 사제가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순교자가 될 각오로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인 세바스챤 로도리고 신부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할 수 있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지만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로고리고 신부는 천주께서 안 계신 것처럼 ‘침묵’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곧 순교로 이어지는 극한 시대에 신앙을 왜 지켜야 하나? 신앙의 의미는 무엇인가?  결국은 한 신자, 약한 기찌시로가 밀고하여 로도리고 신부는 체포되고 재판소에서 배교한 페레이라와 만납니다.
 
감옥에서 순교를 기다리고 있던 로도리고는 코고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듣지만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페레이라는 그 소리에 대해 로도리고에게 설명합니다. “고문을 받는 신자들의 신음소리이며 그들은 이미 신앙을 버렸다. 하지만 로도리고가 배교치 않으면 그들은 계속 고문을 받을 것이요, 로도리고가 배교하면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로도리고는 신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의 상본(후미에)을 밟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음날 로도리고는 관청에서 예수 상본을 밟습니다. 그림에 그려져 있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것을 로도리고가 듣습니다. “너의 다리의 아픔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아픔을 나누기 위해 내가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를 짊어졌다.”


배교한 로도리고에게 배신한 키찌지로가 용서해달라고 접근합니다. 로도리고의 그리스도는 키찌지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것을 로도리고가 듣습니다. “나는 침묵했던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함께 아팠다.” 로도리고는 상본을 밟음으로써 처음으로 천주교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야말로 일본에 남아 있는 천주교 사제라고 자각합니다.

Ⅲ. 이 영화와 소설의 바탕이 된  역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1633년 10월 18일 - 36년 전 일본의 최초의 치명자 26인의 성인들이 치명한 - 나가사키의 언덕에서 예수회 관구장, 크피스토반 페레이라(Christovao Fereira)가 5시간의 고문(거꾸로 구멍에 매달리는) 끝에  배교했습니다.


동시에 예수회 사제 복자 줄리안 나카무라 신부를 포함한 7명(예수회와 도미니코 사제들)도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치명했습니다. 그 중 도미니크회 사제 루카스 알퐁스 신부는 시성되었습니다. 줄리안 나카무라 신부는 66세, 예수회 회원으로서 42년, 박해 하의 잠복사제로 19년간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신부가 구멍에 묶여 있을 때 포르투갈의 어떤 사람이 이 신부의 마지막 말을 들었습니다. “이 큰 고통으로 천주를 사랑하기로”


페레이라의 배교를 듣고 유럽은 놀랐습니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쳤습니다. 예수회 사제들은 페레이라가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온갖 힘을 다했습니다.  페레이라가 배교를 포기하게끔 3번이나 시도했습니다.


제1시도는 예수회 사제 마르첼로 마스트릴리(Marcello Mastrilli)입니다. 그는 일본에 상륙하자마자 체포되어 1637년 10월 17일 나가사키에서 치명했습니다. 제2시도는 일본 예수회 사제 베드로 기베 신부입니다. 베드로 기베 신부는 재판소에서 신문을 받을 때, 페레이라를 만났습니다. 기베 신부는 페레이라에게 통해할 것을 구했다고 합니다. 기베 신부는 에도(동경)에서 1639년 7월에 치명했습니다.


제3시도는 안토니오 루비노 (Antonio Rnbino) 신부입니다. 인도에서 활동하고 있던 루비노 신부는 페레이라를 만나기 위하여 1638년 마카오를 거쳐 1642년 마닐라로 갔습니다. 1642년 7월 5일 루비노 신부가 인도하는 5명의 사제들이 먼저 일본으로 떠나고, 1643년 제2그룹인 베드로 마르케스 신부들이 마닐라를 떠나 일본으로 갔습니다.


루비노 신부는 1942년 8월 11일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었고 1643년 치명했습니다. 제2 루비노 그룹도 도착 직후(1643년 6월 27일)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은 8월 27일 재판소에서 통역자로 페레이라와 만납니다. 정부 기록문서에 따르면 그들은 고문을 받아 다 배교했지만 후에 2명이 배교를 취소하고 치명했습니다. 하지만 이태리 시칠리아 출신 요세페 키아라는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페레이라는 마지막, 80세에 배교를 취소하고 1650년 11월 4일 치명했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악표요, 외교인들에게는 바보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천주의 힘입니다. “천주 이 속세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내지 아니하셨는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전하느니 이는 유데아인에게는 걸려 넘어짐이 되고 외교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는도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천주의 대능과 천주의 상지로 선전하느니라. 대저 천주의 편의 어리석은 것은 사람의 것보다 지혜롭고 천주의 편의 약한 것은 사람의 것보다 굳세니라”(코린트 전서 1:20~25).


Ⅳ. 우리는 영화(소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 천주께서 침묵하시지만 초자연적으로, 성총으로 답하십니다. 로도리고는 천주께서 이 세상을 십자가가 없는 곳으로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천주께서는 반드시 볼 수 있는 방법으로만 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네가 천주의 뜻을 맛들이지 아니하고 오직 사람의 뜻을 맛들이니 너 나를 조당하는도다. 누 만일 나를 따르고자 하거든 자기를 끊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마테오 16:23~25)


2) 로도리고의 그리스도는 에와를 유혹한 뱀과 같습니다.
- 아니다. 너는 나를  밟아도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들의 목숨이고 세상의  생명이다.
-  네가 나를 부인해도 배교해도 무엇을 해도 용서한다. 나는 용서함을 위하여 자비함을 위하여 세상에 났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  로도리고의 그리스도는 약한 너희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  로드리고의 그리스도는 선과 악의 구별이 없으며 너희가 약해서 하는 것을 다 인정하는 것이 선이니 관용한다. 
 

이런 것이야 말로 선과 악,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제 2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부터 선과 악, 지식의 나무가 아니라 다른 나무, 생명의 나무 즉 십자가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람 앞에서 증거 하면 또한 저를 하늘에 계신 내 성부 대전에서 증거 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모르노라 한 자는 나 또한 저를 하늘에 계신 성부 대전에서 모르노라 하리라”(마테오 10:32-33).


3) 로드리고의 그리스도는 ‘침묵’합니다. 초자연적인 성총에 관해서 침묵하며 천당을 모릅니다. 로드리고의 그리스도는 죄에 대해 침묵하고 진리에 대해서도 침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유일한 천주에 대해서 침묵하고 지옥과 악표에 대해 침묵합니다. 이것이 “조용한 배교(Silent apostasy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파티마 성모님께 갑시다. 왜냐하면 1929년 6월 13일 투이(Tuy)의 마지막 발현 메시지에서 ‘성총과 자비’가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받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초자연적인 사업입니다.


왜냐하면 파티마의 성모님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파티마의 천신은 “당신을 믿지 않은 이, 흠숭하지 않는 이, 희망하지 않는 이, 사랑하지 않는 이를 위하여 용서를 구하나이다.”라고 기도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어린이들에게 상처받으신 천주를 보이시고 당신의 하자 없으신 성심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지옥을 보이셨습니다. “예수여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들을 돌보시되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1917년 7월 13일).”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께서 마지막에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때 성모님은 예수님의 상본이 아니라  오히려 뱀의 머리를 밟으실 것입니다.


천주의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