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비오10세회

Home > 한국성비오10세회 > 성당회보

제목 치비타스 제125호 (2017년 9월 24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30




사진출처 CNN


치비타스 제125호 Editorial


사랑하올 형제여러분!
70년 전인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후 파티마 순례성모님은 세계 순례를 시작하셨습니다. 파티마 순례성모님은 포르투갈을 떠나 처음에 스페인을 통과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백성사와 영성체, 성모행렬, 묵주기도, 성시간 등을 가졌습니다.


1948년 5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하시고 많은 시민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마드리드의 주교님은 “신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이렇게 많이 성모님 앞에 모여 울고 기도하며 성가를 부르는 것을 여태 것 본적이 없다.”고 편지에 썼습니다. 그 후 1954년, 프랑크 장군은 스페인 국민의 대표로 스페인을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봉헌했습니다.


파티마 순례성모님은 1947년 6월 18일부터 22일까지 캐나다 오타와에 계셨습니다. 파티마 순례성모님은 대환영을 받으시고 6월 22일에 캐나다 주교님들이 다 모여서 50만 명의 교우들 앞에서 캐나다를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봉헌했습니다.


1947년 12월 8일 미국 파티마 순례성모님은 버펄로에 도착하시고 주교좌성당에서 20만 명의 순례자들에게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그당시 버펄로 주교구의 교우들의 수는 5만 명이었습니다. 파티마 순례성모님이  미국을 방문하신 후  매년, 수만 명이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1949년만 해도 12만 명의 어른이 천주교로 개종(改宗)했습니다.


영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돌아왔습니다. 특히 활동적이었던 공산주의자들이 천주교로 회두했습니다. 바로 영국인 더글러스 하이드(Douglas Hyde 1911-1996)와 해밋슈  프레이저(Hamish Fraser)가 유명합니다. 프레이저는 “파티마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어쩌면 500년 전 개신교 시작 이후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은 6. 25 전쟁 중이던 1953년, 미군 해병대 군중 사제인 마테오 스트람스키(Matthiew Strumski) 신부님이 파티마 순례성모님을 한국에 모셔 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스트람스키 신부님은 한국의 주교님들을 방문하여 “기도는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파티마 성모께 기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1953년 3월 26일 한국의 주교님들은 하자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한국을 봉헌했습니다. 같은 해 4월 19일 파티마 순례성모님은 3.8선 최전방에서 출발하여 피난민이 많이 거주하는 남한의 주요도시를 순례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순례 도중 4월 30일 스트람스키 신부님은 본국의 부름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는 3개월 후 7월 26일 휴전이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게 점령당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성모께 매일 묵주기도 할 것을 약속하여 100만 명 이상 서명하였습니다. 1955년 5월 13일 소련은 갑자기 오스트리아를 떠났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총리였던 율리우스 라브(Julius Raab)는 파티마 성모님 덕분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위와 같이 파티마 성모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적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묵주기도를 잘 합시다. 파티마 성모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신, 즉 일상생활의 의무와 주님이 허락하시는 고통들을 우리가 잘 참아 받기를 위하여,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성모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바칩시다.


2000년 전에 갈바리아 십자기 밑에 서 계셨던 성모님이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수난당하는 이 시대에도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티마 성모님 곁에서 떠나지 말고  언제나 머물러 있도록 합시다.


파티마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