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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비타스 제28호 (2009년 7월 26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18
첨부파일 치비다스 제28호.hwp

 

 


치비타스 제28호 Editorial 


사랑하올 형제여러분!


천주교《요리문답》의 제1의 질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의 답은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救)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신학대전》의 윤리(도덕)부를 행복의 문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의 개인윤리, 가정윤리, 정치윤리 등 모두 향해야 할 원리(原理)는 행복입니다.


우리의 개인적 도덕생활 및 가정생활, 사회생활은 모두 행복, 즉 참된 행복을 구하는데 있습니다. 정치생활도 더욱 더 많은 시민들의 참된 행복, 즉 천주를 얻기까지 인도하고, 인내하며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Epicurean)은 ‘행복’을 쾌락이라고 착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 (Utilitarian)은 인간 밖에 있는 ‘물질(제조물)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자랑하며 사람을 물질의 밑에 두고 물질의 노예로 만듭니다.


이의 반동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Kant) 인간이 사는 이유가 쾌락도 아니고, 물질적 이익도 아니며 단지 순수한 의무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목적 없는 의무를 믿기 때문에 급기야는 인간을 신격화합니다.


성 토마스는 “사람은 천주의 모습을 따라서 조성함을 받았기 때문에 지성과 자유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행동)는 ‘왜 행위를 하느냐’란 목적에 따라 선(善)과 악(惡)으로 발달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 행복(목적)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 다음, 목적으로 갈 수 있는 위한 수단(방법)을 잘 선택할 수 있으며, 참된 행복은 오직 선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생각한다면 물질(재산)은 우리의 참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재산은 사람이 잘 생활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명예도 우리의 종국적(終局的)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명예는 자기가 가지는 선(善)의 표지이며, 선의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권력도 역시 우리의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무엇을 하는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또한 악을 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건강과 아름다움도 우리 마지막의 행복이 아닙니다. 배는 어디로든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냥 아름답게 세워져만 있다면 배의 존재이유가 아닌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육체적인 쾌락도 우리의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행복이 아닐뿐더러 행복의 본질도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어떤 것도 우리의 궁극적인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한한 행복을 원하지만 피조물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참된 천주만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천주여! 당신께서 우리를 당신을 위하여 조성하시고, 우리의 마음은 당신 속에 쉬게 될 때까지 불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천주를, 예수 그리스도를 구합시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진복자도다. 하늘나라는 그들의 것이요(마테오5:2).”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