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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비타스 제63호(2012년 6월 24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05
첨부파일 치비다스 제63호.hwp

 



 

 

치비타스 제63호 Editorial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성비오10세회와 로마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A) 대략 2000년 8월 우리가 로마를 순례한 후부터 로마는 성비오10세회와 교리에 대해서 대화를 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우리는 “로마를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수차례에 걸쳐 신학에 관해서 대화를 하자고 요청을 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로마를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즉 (1)전통미사  ‘해방’
    (2) 성비오10세회 4명 주교들의  ‘파문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로마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아래서
   (1) 2007년 7월 7일 자의교서 ‘숨모름  폰티피쿰’발표
   (2) 2009년 1월 21일 성비오10세회 주교들의 ‘파문철회’


그렇게 해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성비오10세회는 로마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한 신학토론을 했습니다.


성비오10세회의 토론 대표자는 데 갈라레따 (De Galaretta) 주교님이었습니다.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과거의 교도권과 단절됨을 보이는 신교의 자유, 종교 동일주의(에큐메니즘), 새미사 등 교회의 새로운 지침(指針) 들이 가지는 문제들을 지적(指摘) 했습니다. 과거에 할 수 없었던 신학대화는 마지막에 수백페이지의 보고서가 되어 교황님과 필레 주교님에게로 갔습니다.


2011년 가을, 성비오10세회와 로마(교리성성)의 최종 결론은 2차공의회 문제에 관해서 서로 견해가 일치될 수 없다고 공의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비공식적으로 성비오10세회가 한 모든 논의는 어떠한 도그마도, 교리도 공격하지 않겠다는 답을 전해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9월 14일, 로마는 필레 주교님을 로마로 소환(召喚) 했습니다. 로마는 총장 주교님에게 교리전제(doctrinal preamble)를 주고 그 문서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모든 것이 성교회에 변화하지 않는 수 세기의 옛 성전(聖傳)의 빛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지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10월 7일 이태리 알비노에서 성비오10세회 관구장님들이 모여서 이 교리전제 문서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필레 주교님은 2011년 12월 1일 , 또 2012년 1월 12일, 성비오10세회는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특히 2012년 1월 서한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오류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2012년 3월 16일 교리성성으로부터 답이 왔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성비오10세회는 사실상, 현재 교도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성비오10세회를 열교라고, 그러므로 1개월 후 열교단체로 선언 할 것이라고, 이것이 최후통첩이라는 험한 답이 왔습니다.


이것은 2012년 1월에 보낸 편지를 로마가 잘못 이해하여 성비오10세회가 결코 하지 않았던 주장을 했다고 오해하여. 성비오10세회를 Sedevacantist (교황공석주의자, 聖座空位主義者)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필레 주교님은 2012년 4월 중순에 성비오10세회의 입장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교리 문서에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교리성성부터, 교황님으로부터, 상대방이 움직였습니다. 교황님이 성비오10세회를 공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2년 5월 매스미디어가 성비오10세회는 로마와 동의한다고 미확인 정보를 보도하고, 5월 9일 성비오10세회의 3명 주교님들이 필레 주교님에게 쓴 편지가 인터넷상에 노출 됐습니다. 5월 31일 쿠튜어 신부님은 아시아 관구 여러분들에게 4분 주교님들을 위하여, 총회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2012년 6월 13일 로마는 다시 필레 주교님을 소환하고 교황님은 성비오10세회에게 “속인구(屬人區- Praelatura personalis)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필레 주교님이 이 제안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2012년 7월 8일에서 14일까지 열리는 성비오10세회 총회에서, 결정합니다.

 

(B)성비오10세회의 입장과 여러 의견

 

성비오10세회는 (1)무엇보다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톨릭으로 머물 것이며 이것을 위하여 전통천주교 신앙을 최우선으로 고수할 것이다.


(2)교회 상황이 더욱더 악화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슬기롭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먼저 교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실천상의 해결도 없다. 교리적인 협약 없이 실천적인 협약을 할 수 없다. 그러나 (2)점은 절대원리가 아니라 가이드라인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성비오10세회야 말로 천주교 중심에 있고 성비오10세회는 천주교를 결코 떠난 적이 없다. 이 사실을 사실로써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악이 아니다. ‘성비오10세회가 천주교회에서 가지고 있는  올바른 지위에 있다.’란 것이 정의다. 지금 받고 있는 박해 현상은 부정도리이다. 로마 당국이 성비오10세회를 그대로 무조건 공식적으로 공인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성비오10세회는 천주교의 일치를 재건하고 싶어 한다.

 

필레 주교님

“베넥딕토 16세 교황께서 성비오10세회를 인정하기를 원한다. 지금 상태는 로마도, 성비오10세회도 가장 평화한 것이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교황님은 성비오10세회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어 한다.”(2012년 5월 오스트리아에서 강론)


“성비오10세회가 생존하는데 보증하는 절대적인 조건 , 즉 살아남는 보중 조건은 2가지가 있다. 제 일은 신앙과 그에 따른 것(전례, 성사, 도덕, 규율 등) 대해  타협하는 일을 성비오10세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제 이는 성비오10세회에게 현실적인 행동의 자유와 자율을 주고 보증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자유는 성비오10세회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생활하고 발전하는 것을 허락해야한다.”(Cor Unum 101호 2012년 3월)


“우리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독을 삼키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 입장을 타협시키는 일도 거부한다. 공의회 독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언동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가 필요하고 교의상의 오류를 말로서 고발할 수 있고 논쟁으로도 할 수 있다. 만약 교회법상으로 지위가 있다면 신학상의 논의로 한층 더 성전(聖傳)을 살아있는 모범으로 가르칠 수 있다.”(2012년 6월 8일 Interview)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로마 당국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 이다. 또한 지금부터 일어나는 것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함정이 아니라고 믿는다. 성비오10세회는 로마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실망을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원수가 이 제안을 함정으로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황님은 함정으로써 제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2년 6월 8일 Interview)


“실천상의 동의를 우리가 요구한 것이 아니다. 교황님의 제안을 우리가 고려하는 것이며 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를 취한 것이다. 성비오10세회의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서는 현재의 ‘중간상태’라고 하는 현상유지를 막연하게 좋아한다. 그러나 로마는 이것을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2012년 4월 14, 세분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


“1988년 로마에 성비오10세회의 ‘친구’로서 4명의 추기경이 있었다. 팔랏지니(Palazzini), 옷디(Oddi), 슈틱라(Stickler), 가뇽(Gagnon) 추기경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향력이 없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그들을 서포터(Support)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부터 로마는 외부적으로는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다. 로마에서 새로운 세대 고위 성직자들이 성비오10세회의 친구로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소수이지만 개인적으로 성비오10세회와 교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로마’를 추상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여러 성직자들이 모여 많은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성비오10세회에 대해 교의적으로 찬동하는 친구 성직자들이 있다. 그들은 성비오10세회가 올바르다는 것을 성실하게 인정하고 있다. 교회의 선을 더욱더 보다 좋게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이 우리가 공식 입장을 가질 것을 바라고 있다.”


“로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면적으로 수락함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공식교회의 태도가 바뀐 것이요, 우리가 바뀐 것이 아니다. 우리가 동의를 요구한 것이 아니고 교황님 스스로 우리를 승인하기를 원한다. 에큐메니즘, 아씨지, 신교의 자유 등 중대한 문제가 아직도  있지만 기류나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2012년 6월 8일)


“천주교 상황은 외부적으로는 악화되고 있다. 2007년 10월 21일 나폴리에서 제 종교 모임, 2008년 4월 뉴욕 유대교 회당에 교황님 방문, 2008년 호주 시드니 세계청소년 날, 2009년 5월 예루살렘 이슬람 사원에서의 기도, 2009년 5월 유대교 통곡의 벽에서의 의식, 2010년 1월 로마 유대교 회당 방문, 2010년 3월 루터파 교회의 종교행사 참석, 2011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 2011년 10월 아씨지 3차 행사 등,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좋은 조짐이 있다.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영성체 금지, 이단 주교들 배제,  사제의 해 2010~2011, 사제 양심규명 발표, 2007년7월7일 전통미사 해방, ‘Pro multis'번역을 정정함 등.”


“2006년의 시점에서는 교회 당국이 이단설을 넓게 계속하고 공의회 오류를 모두에게 강제하고 있었으므로 실천적 동의를 묶었다면 우리는 계속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 이후 교회 내부적으로 극히 미소하지만 흥미로운 발전이 있었다. 게다가 공의회를 실시한 주교나 신학자들이 성전에 적대시 했지만 대부분 타계했다. 지금은 새로운 세대의 주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성전에 대한 반감이 없다. 동시에 교회 현상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른다. 바티칸 안에 있는 극히 우호적인 고위성직자들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다.”


“천주교회를 초자연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교회는 적들에 의해 보기 싫을 정도로 여겨지지만 그래도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 로마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간원함을 받듯이 우리가 공적인 지위를 얻으면 성전의 중대성이 재확인되어 전 교회에게 큰 이익이 될 것이다.”

 

 • 반대의견 

“물론 천주교의 일치를 재건함은 정의로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교회 당국이 2차 공의회 이후 ‘정신의 전체적인 타락‘’ 즉 ‘현대철학 주관론에 입각된 전체적으로 다 새로운 철학’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교리적인 협약 없이 실천적인 협약을 결행하면 우리 성비오10세회가 점차적으로 공의회에 대한 비판과 새미사에 대한 비판을 필수적으로 침묵해야 될 것이다.《우리 자신을 공의회의 주교나 현대의 로마 손에 놓은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실질적으로(Substantially) 교회당국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2006년 총회에서 결정된 ‘로마가 교리적으로 전통으로 변화함’의 조건을 실현하지 않았다.”


“천주교 성전을 지켜온 과거 40년의 싸움의 역사로 본다면 로마는 우리에게 한 약속을 이행해 오지 않았다. 우리가 로마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교황청에 있는 소수 성직자들과 교황님이 전통에 대한 호의적인 제스처(Gesture)를 보고 신뢰할 수 있는지, 신뢰할 수 있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성비오10세회는 천주교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결코 천주교를 떠난 적이 없다. 우리는 반대를 받은 표지로(Sign of Contradiction)로 천주교회의 정점에 있다. 우리에게 정상화(正常化))가 필요 없다. 옛날에 성비오10세회와 같이 전통을 지키고자 싸웠던 분들의 일부가 로마에게 인정받았다. 이것은 합동화였다."

 
“1977년 에콘 신학생들 일부가 로마로 갔다. 로마는 그들에게 전통미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3~4개월 후에 로마는 너희들은 마음을 더 열어야 한다고 해서 에큐메니컬한 행사를 했다. 그중에 불상을 제대위에 놓는 것을 보고 다니엘 세기(Daniel Séguy) 신학생이 불상을 파괴했다. 그리고 로마 신학교의 마지막이었다."


“베네딕토회 수도원장 아우구스틴 신부( Dom Augustin)는 1985년 로마와 합동했다. 그러나 로마는 나중에 공동체 미사를 전통미사 대신에 새미사로 바꾸라고 했다.”


“1985년 로마에서 마텔 에클레지에(Mater Ecclesiae)신학교가 설립됐다. 에콘 신학생 9명이 로마로 도망갔다. 그러나 이 신학교는 폐교가 됐다.”


“1988년 바루에 있는 베네딕토회가 로마와 합동했다. 수도원장 제라르 신부(Dom Gérard)는 요한 바오로 2세와 새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1988년 성 베드로회, 퐁공보(Fontgombault)의 베네딕토 수도회, 그리스도왕회 등이 로마와 합동했다. 그들이 성비오10세회 전통미사에 참여하는 대신에 새미사로 가라고 강요받았다. 그들은 공의회의 오류가 포함된 새로운 교리책(1992, 2005년)을 인정할 것을 요구받았다.”


“2002년 브라질 캄보스(Campos )교구가 합동했다. 그들은 공의회와 새미사를 비판 못하게 됐다.”


“2006년 9월 착한 목자회가 설립됐다. 로마대표로 2012년 3월 포조( Pozzo) 추기경이 착한  목자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지금까지 전통미사가 당회의 미사였지만 이제부터 고유(固有 Proper)한 미사라고 하고 새미사를 배제하지 말라. 당회 신학교는 공의회를 잘 가르치라》.”


“2007년 레뎀토르회가 로마와 합동했다. 이 회는 아직까지 교구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르페브르 대주교님  

“장상은 아랫사람에 의해 썩지 않지만 아랫사람은 자기 장상의 영향을 받아 부패되는 법입니다.”(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124P)


“우리는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파문당하지도 않았으며 교황에게 대항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가톨릭교회에 대항하지 않으며 새 교회를 세우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게들 말한다면 완전히 난센스 입니다. 우리는 항상 해 왔던 그대로 일, 가톨릭을 계속 할 뿐입니다.” (교회에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p128)


“랏칭거 추기경만이 무류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교황마저도 자신의 철학적 배경으로 인하여 무류성을 반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해두죠, 우리는 베드로의 주교좌인  교황좌의 변화지 않는 가치 때문에 교황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의회의 교회(Conciliar Church)에는 결단코 반대 합니다.”


(C) 결론

 

2012년 7월 8일부터 14일까지 성비오10세회 총회가 열립니다. 총장님, 주교님 관구장님, 신학교 교장 등 40여명이 모여서 성비오10세회가 가야 할 길을 결단 할 것입니다. 우리는 총회가 잘되고 성공하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특히 우리 4명의 주교님들이 합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기도합시다. 
                                   
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허락하기 바랍니다. 저는 25년 전 1987년, 성비오10세회의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천주님으로부터 지금까지 받은 모든 성총으로 공로도 없는 저이지만 계속 천주님을 위하여 생활해 올 수 있었습니다. 천주께 감사드립니다. 사제서품을 받은 후 필리핀 마닐라로 임명을 받아 그곳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과 많은 좋은 동료와 같이 일 해왔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만리동 환일고등학교 시대, 이태원 성당시대, 화곡동 성당시대, 그리고 지금 동대문의 충신동 성당, 이 모든 것이 천주께서 주신 성총입니다. 천주께서 우리를 도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부터 매달 제가 다시 한국에 오겠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즉 천주교 성전신앙, 성전전통미사, 성전성사를 천주님의 도우심과 천주께서 우리를 긍련히 여기심으로 계속할 것입니다.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노다 토마스 신부(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