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비오10세회

Home > 한국성비오10세회 > 성당회보

제목 치비타스 제8호(2006년 9월 17일 발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01
첨부파일 치비타스 제8호.hwp

 


치비타스 제8호  Editorial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9월 3일은 우리 성비오10세회의 주보성인이신 성 비오10세 교황님의 첨례날입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님이 안 계셨더라면 르페브르 대주교님도 안 계셨을 것이요, 그랬다면 성비오 10세회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도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

1911년 12월 25일, 어린 마르셀 르페브르는 첫 영성체를 받았습니다. 티시에 드 말르레 주교께서 쓰신 르페브르 대주교님의 전기를 인용합니다.

 

준비 피정 및 고해를 한 다음에(첫 고해, 만일 첫 고해가 아니라면, 고해성사를 받았던 시기) 마르셀은 1911년 12월 25일 무염시잉모태 수녀원에서 첫 영성체를 하였다.


이미 여섯 살이었음으로 영성체를 하기 위한 특별 허가가 필요치 않았으며, 바라스(Varasse) 신부는 친절하게도 이전 해에 반포된 성 비오 10세의 교령을 기꺼이 적용하였다. 교황의 결정은 여기저기서 다소의 저항을 받았으니, 성 비오 10세는 한번은 발랑스(Valence)의 세스늘롱(Chesnelong) 주교에게 이렇게 불평했다.


“프랑스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는 교령을 심하게 비판하고 있소. 이에 짐은 그 아이들 가운데서 성인이 있을 것이고, 그대는 그것을 목격할 것이라고 말하는 바요.”


과연 우리는 목격하였다! 바라스 신부가 오전 7시에 봉헌한 자정미사 동안, 마르셀은 처음으로 성체성사의 주님과 직접 대화 하였다. 그는 15명의 영성체자 중에서 가장 어렸으며 나중에 집에 와서 가느다란 펜으로 여섯 살의 나이에 영성체를 할 수 있게 해 준 교령에 대해 교황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이제부터 계속 매일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었다. 여동생 크리스티안느가 다음과 같이 관찰했듯이, 사리가 밝아진 그의 영혼은 더할 나위 없이 순직하게 천주께로 곧장 나아갔다. ‘부지불식간에’라며 그녀는 말했다. “그에게서는 천주와 평화와 사명감이 뿜어져 나왔다.”


성체 성사에서 성 비오 10세와 마르셀 르페브르는 의견을 같이합니다. 이들은 같은 신앙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1097년 성 비오 10세 교황님은 근대주의를 단죄하여 회칙을 쓰셨습니다. 이것이 팟센디 (Pascendi)입니다.

80년이 지난 후에 르페브르 대주교님은 혼란스러워 하는 카톨릭인에게 보내는《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에서 현대교회를 잠식하는 신(新) 근대주의에 대해 성 비오10세 교황님의 말씀을 따라서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교회 어휘집 완전 개정판을 보면 몇 가지 용어를 살려 놓은 것이 눈에 띄는데, 그중 하나가 신앙이다.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신앙의 정의(定義)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사항인데도 아주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용어를 제멋대로 뜯어 고쳐놔서 진짜 뜻은 온데 간 데 없이 빠진 채로 다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면 가톨릭인이여, 그런 내막을 참조할진저.


신앙이란 ‘천주의 말씀으로써 계시된 진리에 지성(知性)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인간 정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온 진리를 믿는 것이다. 진리를 계시해 주신 천주의 권위로 말미암아 진리를 믿는 것이며, 그 밖의 곳에서는 진리를 구하려고 아무리 애써 봤자 헛수고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그 신앙을 빼앗거나 그 외의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 할 권한이 없다.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신앙의 정의는 근대주의자들이 재활시킨 것으로, 80년 전에 벌써 비오 10세께서 단죄하신 바 있다.

 

근대주의자의 기준에 따르면 신앙이란 내적인 기분으로, 종교의 해법을 인간 안에서 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종교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인간의 내부이며 종교는 생활의 한 형태이므로 바로 인간의 생활 속에서 발견되며” 우리의 지력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분이신 천주께 영혼이 결합하는 것으로 순전히 주관적인 것이란다. 누구든지 각자의 양심 안에서, 자신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근대주의는 최근에 고안된 것도 또 저 유명한 칙서를 발표했던 1907년에 고안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끊이지 않는 대혁명의 정신으로, 우리를 그저 인간이기만 한 것 안에 가둠으로써 천주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려 하는 것이다. 신앙에 대한 근대주의식 그릇된 정의를 따르다 보면 천주의 권위는 물론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십상이다.


신앙이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믿는 자는 구원되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될 것이다.”우리 주께서 직접 단언하지 않으셨던가. 그들이 어떤 종교로든지 구원될 수 있다고 믿을 태세가 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저들 말대로 신앙이 각자의 양심에 준하는 것이라면(신앙이 생기게 하는 것이 양심이라면) 이치적으로 따져서 양심이 천주께로 향해 있기만 하면, 어떤 신앙으로든지 구원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리라.


프랑스 주교회의 교리문답 위원회(French Bishops' Catechetical Commission)에서 작성한 문서를 보면 그런 류의 해설을 읽을 수 있다. “진리란 받아들여진 것, 즉 기존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것이다.”두 견해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이제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만들어 낸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어내는 것도 아님을 알고 그렇다는 것을 지성으로써 확증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새 것을 조달하는 자’가 교회 중심부에 있기에 더 더욱 참된 종교를 무너뜨리는, 그렇듯 사악한 이론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세기 초에 그들을 쉽사리 식별해 낼 수 있는 수단을 허락해 주셔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천주께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또 그것을 교회 사학자들만이 관심을 쏟는 옛날의 현상이라고 생각해서는 못쓴다. Pascendi는 비교적 현대에 쓰였다고 할 수 있는 문헌으로, 매우 총괄적이며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내부의 원수’를 묘사하고 있다. 저들의 이론을 볼진대, 현대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인정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다음 몇 가지 사항을 기반으로 한다.


근대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스스로를 하느님께로 들어 올릴 수도 없거니와 알 수도 없는데, 이는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따르되 당신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계시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인간은 자신 안에서 잠재의식 속에 심어진 욕구랄 수 있는, 신성을 동경하는 욕구를 만족시키려 한다고 한다. 그런 욕구가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과 인간을 결합케 하는’ 특별한 느낌을 영혼 안에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근대주의자들에게 신앙이란 그와 같다. 그러므로 천주란 영혼 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것이 계시라고들 한다.


근대주의에 따르면 기본 신덕도리를 상술하는 가운데 종교적 느낌의 영역에서부터 지성의 영역까지 발전시켜 보자. 인간은 지능을 부여받았으므로 자기 신앙을 지어낼 욕구가 있다면서 절대 진리가 아닌 진리의 이미지 혹은 상징만이 들어있는 신앙 고백문을 만들어 낸다. 결과적으로 그런 신덕도리가 들어있는 신앙 고백문은 변하기 쉽고, 실제로도 변화한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신덕도리가 바뀔 수 있는 창구가 열려 있는 셈이다.”


근대주의에 따르면 신앙 고백문은 단지 신학상의 이론이 아니요, 참말로 종교적이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종교에 대한 감정, 종교적인 정서가 신앙 고백문을 ‘정말로’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대로 사는 것’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구절이다. 성 비오 10세의 근대주의 해설을 계속 읽어보자.


살아있는 신앙 고백문이어야 한다면 그 신앙 고백문들은 언제나 신자 및 신자의 신앙과 맥락이 같아야 하나니, 그렇지 못한 날에는 자동적으로 본래의 취지를 잃고 말며 그렇게 되고 나면 신앙 고백문들을 바꾸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음이로다.  신덕도리 상의 신앙 고백문은 근대주의자들이 표현하는 바에 따르면 그 성격이 너무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까닭에 공공연하게 경멸하지는 않더라도 신앙 고백문에 대한 저들의 의견이 그토록 얕보는 분위기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노라. 종교적 기분, 종교적 생활은 언제나 저들 입에 달고 있는 표현이라. 그리고 저들의 강론, 강의 및 교리문답을 보면 ‘기존의 신앙 고백문’에 대해서는 질색할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근대주의에 따르면 신자가 사적인 체험을 신앙으로 삼고 나면 그것을 다른 이에게 구두로 전달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종교적 체험이 스스로 알아서 퍼져 나간단다. 신앙이 공동의 것이 되면  흔히들 말하듯이 집단화되면 공동의 보배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조직이라는 형태로 결집할 필요를 느끼고 이상이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공동 양심의 열매, 달리 말하면 개인의 양심이 모인 결실로 근원이 되는 신자 한 사람에게서 유래하는데 그 한 사람이 카톨릭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다.”


‘공의회에 의한 교회’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언어에 놀라는 가톨릭인들은 그것이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될 터인즉, 19세기에 라므네(Lammenais), 푹스(Fuchs) 및 롸지(Loisy)들이 이미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여러 시대에 걸쳐 유행하던 오류들을 저들이 몽땅 취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변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앞으로도 그런 일이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결단코 속지 말진저.                                   

 

 〈공개서한 ⅩⅥ : 신 근대주의 내지는 신앙의 훼손〉

 
그리스도교적 사상과 미래의 사제양성에 대한 것을 살펴보면, 성 비오 10세 시대의 개혁가(근대주의자)들은 ‘시대에 뒤졌다고들 하는 체제 중에서도 특히 스콜라 철학을 버리는 것’을 지향하였다. 저들(근대주의자들)은 “젊은이들은 오직 하나 뿐인 참된 철학, 즉 현재 시대에 맞는 유일한 철학인 현대 철학을 배워야 하며 그리하여 소위 합리 신학은 현대 철학에, 실증 신학은 신덕도리의 변천사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근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 아니 더 많은 것을 이루었다. 신학교에서 통용되는 것을 볼진대, 저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대신에 인류학, 정신분석학 및 마르크스를 가르친다. 토마스 철학의 원리는 세계 구조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호한 체제로 떠밀리기까지 하는 통에 부조리한 철학으로 치부되고 있다.

 

현대의 혁명가랄 수 있는 지식인들은 얼빠진 사제를 기준으로 삼는데, 그 얼빠진 사제는 모든 것의 중심에 성(性)적인 의미를 부여하는데다가 대담하게도 그런 것을 공식석상에서 발표한다. 


그렇다면 성전(聖傳)이란 무엇인가? 내 보기에 이 단어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경제 활동, 가정 및 시민 생활에서 통용되는 ‘전통’, 이를테면 마지막 타일이 붙여진 연후에 완공했다는 뜻으로 집 지붕에 ‘꽃다발’을 얹어 놓는다든지, 기념관을 개관할 때 리본 테이프를 자르는 것, 기타 등등과 대등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내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성전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관습, 그것도 뚜렷한 근거도 없는 과거에 대한 충실성에서 비롯되어 보존된 관습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성전은 교정권에 의거하여 대대로 전래된 신앙의 보고(寶庫)로 묘사된다. 이 보고(寶庫)는 계시로써 주어진 것인즉, 말하자면 종도들에게 위임된 것을 그 후계자들이 충성스러이 전달하는 천주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지금, 신경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듯, 혹은 우리 주께서 진리를 온전하게 주시지 않았다는 듯 아무라도 붙잡고 미심쩍은 눈길로 탐구 조사하게 하려 든다. 그렇듯이 갖은 조사를 다 하고 나서는 무엇을 발견했다고 외치는가? ‘확신을 버리게’ 된 후에는 ‘의혹을 품음’에 빠지도록 꾀임을 당하는 가톨릭인들이여, 다음을 잊지 말진저. 계시라는 보고(寶庫)는 마지막 종도께서 죽으심에 즈음하여 끝났음을. 그것은 이미 완성된 상태인즉, 세상 종말까지 손을 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점을 재차 명시했으니 “요컨대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신앙에 관한 교리는 인간이 철학적으로 공안 해 내듯 창의적으로 제안하여 만든 것이 아니요, 충실하게 보전하고 또 그르침이 없이 선언하도록 그리스도의 정배(교회)에 신성한 보고(寶庫)로서 받은 것인 연고라.” … 신덕도리에 관한 공의회는 모두 성전, 즉 종도들이 가르친 바를 정확하게 이해시켜 주었다. 성전은 개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2차 바티칸은 거기에 관련된 교황들이 무류성의 보호에 맡기려 하지 않았음으로 해서 그 선언문들이 무류하지 않은데, 그런 2차 바티칸과는 달리 트리덴틴 공의회의 교령들은 그르칠 수 없음은 물론 교회의 공식 법령에 의해 써지고 발행되었으므로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대들은 과거에 얽매여 트리덴틴 공의회를 고집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못할진저. 트린덴틴 공의회는 지나간 과거가 아닌 까닭이다. 성전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나니.                                          

                                                      〈공개서한ⅩⅦ : 성전(聖傳)이란 무엇인가〉


우리도 시대를 초월하는 성전(聖傳)신앙을 지킬 수 있는 성총을 구합시다.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비추소서!

성 비오 10세 우리를 위하여 비추소서!
                                             

오노다 토마스 신부(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