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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견진성사 교재- 제5과 미사성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1

 

 

견진성사 교재

 

 제5과 미사성제  

 
1. 교회가 구속공로를 나누어주는 기본적인 방법은?

교회는 우선 1) 미사 2) 성사로써 구속공로를 나누어준다.


2. 성체성사는 성사이기만 한가?

성체성사는 성사일 뿐만 아니라 희생제사이기도 하다.


3. 제사는 무엇인가?

제사란 천주께서 만물의 대 주재자이시라는 증거로, 사제가 제물을 드리되 오로지 천주께만 드리는 것을 말한다.


4. 신약의 제사는 무엇인가?

신약의 제사는 미사성제이다. 미사가 단지 '주님의 식사를 기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구약의 제사를 대신하도록 의도된 참된 제사라는 증거는 성경(말라키아 1,10-11·고린도전 10,16-21)과 종도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되 항구하고 깨뜨리지 못할 성전이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5. 미사성제는 무엇인가?

미사성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제물이 제대의 면병(빵)과 포도주라는 형상 속에 참으로 실재하셔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해 갈바리아의 희생제물이 천주께 드려지는 것을 재현한 것이다.


6. 미사성제가 십자가의 제사와 하나이면서 동시에 똑같은 제사인가?

미사성제는 십자가상에서 피 흐름이 있는 제물이신 자신을 하늘에 계신 성부께 직접 드리신 그리스도께서 제대에서는 사제의 집전을 통하여 피 흐름이 없는 방식으로 당신 자신을 드리기를 계속하시므로, 십자가의 제사와 하나이면서 동시에 똑같은 제사이다.

갈바리아 및 미사에는 똑같은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헌됨과 동시에 똑같은 참된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을 드리신다. 사람인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물을 봉헌함에 있어서 참된 사제(예수 그리스도)와 한가지로 협력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7. 미사가 십자가의 제사와 하나이면서 동시에 똑같은 제사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미사가 새로운 제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즉, 우리 주께서는 다시 죽지 않으신다! 미사와 갈바리아는 참으로 하나이면서 동시에 똑같은 제사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1) 갈바리아의 제사와 미사의 제헌이 비록 시간상으로는 떨어져있을지라도, 천주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는 까닭에 시간이란 천주께 대하여는 도무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제1과에서 배워서 이미 알고 있다.  

 

2) 최후의 만찬이 최초의 미사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당신께서 죽으신 날 이후에 미사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바치시듯, 당신께서 죽으시기 전날 당신의 몸과 피를 드리셨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최후의 만찬이 갈바리아 전날에 있었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천주께 대하여는 시간이란 도무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고로 천주께는 그렇지 않다.  

 

 

 

이전에                                                                                                이후에
신비적으로 행해짐 <-------------      갈바리아의      ---------------> 신비적으로 재현됨
= 최후의 만찬                                         제사                                       = 미사성제

천주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므로 오직 하나이요 똑같은 제사임
 

8. 제사가 오직 하나 뿐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미사가 신비로운 방법으로 제대에서 매일 재현되도록 하신 것이 천주의 뜻이었다.

1) 장차 계속하여 천주께 영광을 드리게 하기 위하여

2)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이 제사의 공로와 은총을 나누어주시기 위하여

3) 잘 잊어버리는 인간에게, 인간에 대한 천주의 사랑이 그토록 크다는 것과 우리에게 천국을 얻어주시고자 우리 주께서 치르신 대가를 상기시키기 위하여


9. 미사성제를 드리는 목적은?

미사성제는 네 가지 목적 때문에, 즉 1) 최고의 영예와 영광을 천주께 드리기 위하여 2) 천주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 드리기 위하여 3) 우리의 죄에 대한 천주의 의노를 풀어드리기 위하여 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모든 은총과 강복을 얻기 위하여 드려진다.

미사는 속죄의 제사이다. 네 가지 목적 중에서 3)과 같이 미사는 우리의 죄를 기워 갚는다. 미사는 또 (그 자체로서) 천주를 충족시켜 드리고 죄를 없앨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제사이다. 한편 우리가 행하는 매일의 희생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오직 하나뿐인 십자가의 완전한 제사와 결합되어야 가치가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10. 미사에 잘 참례하는 법

1) 십자가의 제사를 상기하고 참례자의 아주 작은 희생과 더불어 제대 위에 참으로 현존하시는 신성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결합시킨다.

2) 이미 언급한 네 가지 목적을 위해 천주께 이 제사를 드리는 일에 사제와 한가지로 참여한다.


미사야말로 지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미사를 궐하는 것마다 갈바리아를 놓치는 것이며 갈바리아를 놓치는 것은 회복될 수 없는 무한한 손실이다. 우리가 이러한 최고의 진리를 깨달을 신덕을 주시도록 천주께 청해야 한다.


11. 이를 개신교와 새 미사에 적용해 보자.

 

1) 개신교  

개신교는 제사, 곧 미사 없이 또 일상 생활에서 희생을 바치지 않은 채 그리스도인이기를 원한다. 개신교의 성직자들은 미사성제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로 성경을 해석한다. 저들이 보통 행하는 논쟁 중 하나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를 위하여 한 번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배웠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에서 다시 죽으시는 것이 아니다. 견진성사를 받을 천주교 신자라면 모름지기 이와 같은 논쟁에 대하여 5, 6, 7, 8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하여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2) 새 미사

(1)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새 미사를 교회에 도입하자는 제안이 있었던 당시에 신앙교리성성의 장관이었다. 그런 자격으로서 그는 신앙의 유산을 보호하도록 위임받았고, 그에 따라서 Novus Ordo는 보급되기 전에 그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자신의 신학자 팀과 함께 작업하여, 새 미사의 위험성을 자세히 설명한 '새 미사에 대한 비판적 연구(A Critical Study of the Novus Ordo Missae)'를 만들었다. 그는 새 미사가 '미사에 관한 천주교 신앙으로부터 두드러지게 이탈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결론지었다. 이 보고서의 결과로 교황 바오로 6세는 새 미사를 도입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2년 후 오타비아니 추기경이 더 이상 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되자 새 미사가 도입되었다.

(2) 성 비오 10세회의 공식 입장은 새 미사가 신앙에 위험하므로 새 미사에 참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타비아니 추기경이 교황 바오로 6세에게 보내는 서한

로마, 9/25/69

경애하옵는 교황 성하,


Consinlium ad exequdam Constitutionem de Sacra Liturgia의 전문가들이 마련한 Novus Ordo 미사를 다른 이들이 정밀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주의 깊게 검토하여 제출하는 바, 오랫동안 기도하고 숙고를 거듭한 끝에 천주의 견지에서 그리고 교황 성하를 위해 성하께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여기는 바입니다.


1. 한 무리의 신학자들, 전례학자들과 영혼을 맡은 목자들이 만들어낸 작품인 Novus Ordo 미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연구를 행한 결과,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지만, 당연시하는 변혁을 숙고하건대 Novus Ordo가 그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나 세부적으로 트리덴티노공의회 중 제22회기에 공식화된 미사의 천주교다운 신학으로부터 현격하게 이탈해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명문화되어 고정된 예식 중 '전문(까논)'은 흠 없는 신비에 반하는 그 어떤 이단에 대해서도 넘보지 못할 방호벽을 마련했었습니다.


2. 전통에서 그다지도 심각하게 동떨어져 있는 것을 합리화할 뜻에서 인용된 사목상의 이유들을 보면, 백 번 양보하여 그런 이유들이 교리상의 의견에 비추어 선(善)을 굳건히 지키기 위한 것이라손 치더라도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Novus Ordo에서 일어난 변혁, 영원히 중요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쳐도 그 영원히 중요한 것에는 별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맙소사, 이미 여러 갈래로 널리 퍼져있는 확실한 의혹, 즉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믿어온 진리가 바뀔 수도 있다거나 천주교 신앙을 영원히 보증해주는 교리의 유산에 충실치 않아도 됨은 물론 무시할 수 있다는 식이 되기 십상입니다. 최근의 변혁으로 말미암아 벌써 항명의 조짐이 보이고 있고 신자들의 신앙이 현격하게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전례상의 새로운 변화가 완전한 혼란으로만 이끌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위 성직자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적인 결과를 보건대, 수없이 들려오는 사실로 미루어, 양심상의 위기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이러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목소리, 살아있는 목자와 양떼 모두의 아우성이 교황 성하께 도달되면, 언제나 교회의 자녀들을 위해 한없이 간절하게 기구하시되 영신적으로 필요한 것을 청하시는 성하의 아버지다운 마음에 틀림없이 메아리치리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통상적인 경우로 보건대, 시민에게는 시민의 선(善)을 위해 의도된 법이 오히려 해로운 것임이 입증될 때에는, 법을 폐지시키기 위해 자식다운 신뢰를 품고 그 지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성하께서 한탄하시듯, 흠 없는 신앙 및 일치된 교회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분열 및 위험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시기에, 성하께서 그토록 칭송하시고 전 세계의 천주교계가 그토록 깊이 사랑하고 공경해 마지않는 성 비오 5세께서 정하신 본래의 Missal Romanum에 계속 의지할 가능성을 우리에게서 빼앗지 않으시기를 성하께 열렬히 청하는 바입니다.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무엇인가?

성체성사는 면주의 형상 속에 당신의 영혼과 천주성이 함께 생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어떻게 해서 면병(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것이 없으신 천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면병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면병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때는 언제인가?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해주신 축성경을 사제가 발음할 때, 면병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이 교리 공부를 하는 동안, 우리로 하여금 천주의 본성에 참여케 하는 것으로, 성세성사 때 받은 초자연적 생명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였다. 성세성사 때 영혼 안에 생겨나서 견진성사 때 강해지는 이 생명이 일상적으로 양육되도록 성체성사를 받는 것이다.


성 요한복음 중 제6장

곧바로 복음을 고찰해 보자. 성 요한은 우리 주께서 극적인 기적 두 가지를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말한다. 주께서는 오천 명의 남자들이 포함된 군중을 먹이시고 갈릴레아 바닷물 위를 걸으셨으며 폭풍을 잠잠케 하셨다. 가파르나움에로 돌아가신 당신을 유대인들이 발견하였고 그들이 즉시 예수께 이르되, "스승이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6,25) 그들의 간교함을 알아채신 우리 주께서 대답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음은 영적을 본 연고가 아니요 오직 떡을 먹고 배부른 연고로다." 하시고는 계속하여 그들의 신덕을 요구하셨다. "천주 보내신 자를 너희가 믿으면 이것이 곧 천주의 일이니라." 그들이 표시를 청하며 대답했다. 모세는 광야에서 만나를 주었으되 당신이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비길 만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모이세가 천상에로조차 떡을 너희게 주지 아니하였으되 오직 내 성부는 참떡을 천상에로조차 너희게 주시나니...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로 오는 자는 주리지 아닐 것이요 나를 믿는자는 영영히 목마르지 아니리라"라고 하셨다. 이 후에 그들이 물러갔으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도시에서 쟁론하는 사람이 많았음에 틀림없다.

주의 말씀을 더 듣고자 하여, 그들은 주께서 당신의 가르치심을 설명해 주시도록 회당으로 초대하였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그 뜻에 관하여 하나도 의심이 없게 가르치심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나니 나는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조차 내려온 떡이매 하여금 누구든지 만일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아니케 하나니 나는 하늘로조차 내려온 생활한 떡이로라... 또 세인을 살리기 위하여 내가 줄 바 떡은 곧 내 살이니라. 즉시 소요가 일었다. 유대인들은 이것이 온전한 논리로는 풀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질문했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살을 우리에게 주어서 먹게 하리요."

예수께서 분명하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하시기를,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그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게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날에 저를 부활케 하리니. 대저 내 살은 진짓 먹을 것이요 내 피는 진짓 마실 것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게 거하고 나도 저에게 거하며 마치 생활하시는 성부 나를 보내시매 내가 성부를 말미암아 삶같이 나를 먹는 자도 나를 말미암아 살리라. 이는 하늘로조차 내려온 떡이라. 너희 조상들이 먹은 만나와 같지 아니하니 이는 먹고도 죽었으되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셨다.

 

그리스도의 약속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상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충분한 것 이상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시기 위해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게 하는 방식으로 말씀하신 바를 풀어주심으로써 그들의 도전에 응하셨던 것이다. 주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시작하셨다.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는 바 이것을 믿을지니라." 여섯 번이나 당신께서는 여러 문장의 형태로, 그 참뜻을 펼쳐 보이기 위한 단어, '확실히' 그리고 '절대로'라는 단호한 의미를 담은 단어들을 매번 덧붙이시면서 해설을 반복하신다. "대저 내 살은 진짓 먹을 것이요 내 피는 진짓 마실 것이니." 주께서는 당신의 몸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는 것 사이를 구별하도록 주의하고 계시니, 이는 주께서 오직 비유로만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면 그 구별이 효과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문맥상으로 어울릴 만한 비유의 뜻이 결코 없다. 당시 유대인의 풍습에서 다른 이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의 뜻은 다른 이를 박해 모함하고 고약한 악담을 하는 것을 의미하였으니, 니고데모와 대화하신 경우처럼 또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실 때면 당신께서는 그 참뜻을 곧바로 설명해주셨으나, 이 경우에는 달리 풀어 설명할 또 다른 비유가 없었으니 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말하되, 모질다 이 말이여 누 참아 들으리요?... 이 후부터 그 문제중에 물러가는 자 많아 곧 예수와 한가지로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는 그들이 가게 내버려 두셨다. 진리를 위해 당신의 가르치심을 완화하는 일이 가능했다면, 주께서는 틀림없이 저들을 다시 불러들여서 오류를 설명해 주셨을 것이다. 이러므로 예수 십이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도 물러가고저 하나냐?" "시몬 베드루 이에 예수께 대답하되 주 영생의 말씀을 가지셨으니 우리등이 뉘게로 가겠나이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천주 성자심을 우리등이 이미 믿고 알았나이다."(요한 6,1-72)


최후의 만찬

그 날 가파르나움에 있는 한 회당에서 하신 약속은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날 저녁에 채워졌다. 네 가지의 특별한 담화가 있은 것은 최후의 만찬에서였다. 그 중 한 가지가 여기 있으니, 성 바오로는 "대저 나 너희에게 전한 바는 주께 받았나니 주 예수 붙이움을 받으시든 날 밤에 면병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이를 떼시며 가라사대 '너희는 받아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야 바칠바 내 몸이니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를 행하라.' 하셨나이다. 저녁을 잡수신 후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가지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에 있어서의 새로운 언약이니 너희는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기로 이를 행하라.' 하시니라."(고린도전 11,23-25)


다른 복음사가들이 주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받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 너희는 다 이것을 마시라. 이는 새로 언약하는 내 피니 많은이를 위하야 죄사하기로 흘릴 바니라."(마두 26,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