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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상의 예수와 위기의 성 교회에 직면한 신앙(2012-11-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01

 

 

 

십자가상의 예수와 위기의 성 교회에 직면한 신앙


성비오10세회 총장 펠레 주교 미사강론 
(2012년 11월 11일 성 니콜라스 차드론 성당에서)


친애하는 지역 장상 여러분, 사제 여러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는 방금 복음 안에서 가라지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가라지의 이 상황은 신비의 현실입니다. 우리 주께서 이 가라지 비유로 천주님의 왕국을 가르쳐주시는 분인데 그 분께서 천주님의 왕국에 관해 말씀하실 때, 이는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은 성 교회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밭의 주인이 천주님이라는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밭에서 오직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오직 좋은 씨만 뿌렸죠. 이것이 천주님의 선하심으로, 성총으로 말미암아 행하신 것입니다.


성교회가 보다 더 멀리 시야를 넓혀 온 세상에 이 신비를 확장해볼 수가 있습니다. 천주께선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은혜롭고 자애로운 행위 가운데로 이것을 적용해봅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좋은 씨를 그 밭에 심음과 같으니 사람들이 이미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덮쳐 심고 간지라. 밀싹이 이미 자라고 또한 필 때에 가라지도 또한 나타나는지라. 집의 종들이 나아와 주인에게 아뢰되, 주인이 좋은 씨를 당신 밭에 심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로서 났나이까? 저들에게 가로되 원수 사람이 이것을 하였도다. 종들이 주인에게 또 아뢰되 우리가 가서 가라지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되……”.(마테오 13:24-30) 


천사들 가운데서도, 밭에서 일하는 일꾼 속에서도 놀라움이 있습니다. “주인이 좋은 씨를 당신 밭에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인이 대답하시길 “원수 사람이 이것을 하였도다.”

 

이 성서 구절처럼 이 대답은 우리로 하여금 좋으신 주께서 나쁜 씨를 뿌리지 않았다는 걸 추측하게 해줍니다.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올바르게 이해합니다. 예, 그 분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 신비는 심지어 위대하기까지 합니다. 천주께서 이를 허락하십니다. 천주께선 나쁜 씨앗을 막을 수 있습니다만, 이 악, 마귀가 나쁜 가라지를 심도록 허용하십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하셨기에, 우리가 악에 빠져 죄를 저지르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그 분은 가라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한 씨앗만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성 교회 역사를 보듯이 온 세상에 악과 고통과 가라지가 퍼지는 것을 보며, 너무나 많고 많은 사람들이 스캔들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그 추문은 지금도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천주님의 일을 대행하는 강력한 이 천사들, 천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를 원하는 천사들은 이 사악한 잡초를 자발적으로 뿌리까지 뽑으려고, 악을 근절시키려고!.... 하지만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라지(잡초)를 추수할 때까지둘 다 자라기를 버려 두라.” 


이것은 성교회 안에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미스터리의 총합인데, 지금부터는 이 악의 씨앗을 호전적인 존재로 불러야만 하겠습니다. 싸움이 필요합니다. 밖에서도 전쟁이 있는 것이요, 내부에서 조차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 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정말로 여러분이 서간경에서 들었듯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 사랑이며 사랑은 일치를 이룬다고 하신 분이시니, 이것은 성교회의 진실됨을 보여주는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 끔찍한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가라지에 관한 이 비유선상에서 말씀하십니다. “대저 너희 중에 누가 시련된 자인지 드러나기 위하여는 마땅이 분열이 생길 것임이라. Oportet haereses esse.”(코린토 전 11:19).

 

거기엔 분열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모순된 것처럼 보입니다. 주께선 천사들에게 가라지(잡초)를 제거하는 것이 좋은 것보다 더 해로운 것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냥 놔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천주께서 갑작스레 ‘절대적인 만물의 주인이 더 이상 아니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추수와 더불어 구별하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선언하시길, 가라지는 알곡과 분리되는 순간 불에 태워질 것이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 저들은 자기들이 당장 벌어지는 처벌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일 없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깨닫게 해야 합니다. 천주께서는 천주님으로서 계십니다. 그 분께서 최고의 통치권을 규명해 보이실 그날이 옵니다. 천주께선 조롱당하시지 않아요. 성서는 그 점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러나 주목하세요. 이 아래  죄 때문에, 죄악의 결과 때문에 악을 허용하시는 선하신 주님의 신비가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는 최근 몇 달간 약간 좀 더 확실히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 성비오10세회 내부에 어느 정도의 혼란, 잡초, 가라지의 고통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천주께선 성 교회에 악을 허용하셨듯이, 이 악을 모든 사회에 허용하듯이 우리 회에도 허용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하시는 천주님의 위대한 신비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종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네게 있어 실과를 맺지 아니하는 것은 다 베어버리실 것이요.”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무릇 실과를 맺는 가지는  또한 .... 더 많이 맺게 하시리라.”(요한 15:1-2) 이 얼마나 큰 신비인가요?
 

우리가 선을 행하는 매 순간, 우리가 선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나 선의 결실을 맺을 때, 자동적으로 우리가 좋으신 주님으로부터 은혜로운 눈길과 축복, 유익한 어떤 것을 기대하게 될 때, 천주님의 계획 안에 고통스런 이와 같은 선언이 필요하며, 이런 점은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주께서 호통으로 반응하실 때,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벌이 아닙니다. 잘되라는 호통입니다. 전지를 하는 것은 보다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를 자르는 겁니다. 커다란 신비입니다! 


우리 내부의 고통과 로마와의 관계에서 목격된 모순에서 비롯된 교훈은 무엇입니까? 최근 몇 달간의 일,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준 일을 간략히 매우 간략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그곳에서 몇 가지 교훈을 도출해야하고, 또한 필요하다면 우리의 길을 다시 찾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때였다는 것을 여러분도 압니다. 로마와 우리와의 관계에 관하여, 그리고 무엇이 우리 성비오10세회에 응답했는지, 그리고 그 고통스런 결과 중 하나인 우리 주교 중 한 분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중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로마와의 관계의  문제가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서 설명하고 확언하고자 합니다.  


로마와의 관계는 무척 오랫동안 많이 있었던 문제의 결과로 생긴 경우입니다. 문제는 성비오10세회 내부의 규율의 문제입니다. 이는 로마와의 관계라는 거짓 핑계 속에서 권위에 반항하는 공개된 반란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그 자체 최종적으로 명백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겠습니다. 좀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지난 몇 달간 무엇이 일어났는가요? 이와 같은 고통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요? 많은 원인이 있지만, 그 근본은 로마의 모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2009년부터 있었던 우리가 관찰하고 설명해왔던 모순입니다. 특히 우리와 관련하여 권위 자체 즉 교황청 결정과 선언에서 분명해진 모순, 교황청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출된 모순입니다. 그 사람들은 반대되면서 모순된 말을 한 다른 사람들입니다. 다른 지위를 갖고, 심지어 위기에 관련되고 우리와 관련된 로마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와 반대로 로마 내부에서 권위를 행사함에 있어 파열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지난 몇 달, 지난 수년간 이미 존재했던, 머리, 즉 교황청이라고 불리우는 기관에서 최고의 수위권을 갖는 교황성하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아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티칸은 그의 손입니다. 성청과 교황 사이에 구별을 두지 않아요. 우리가 로마라고 말할 때에는 이 전체적인 일,  교회 내에서 교황의 권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현실은 말하자면, 권위에 태업(怠業)이 있다 하는 것,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관찰했습니다.  

 

특히 전통에 대해 우호적인 결정을 내릴 때 훼방을 받았습니다. 그 중 가장 명백한 것 중 하나는 미사 문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번 이 반대는 로마에서 뿐만 아니라 교구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태업은 모든 시대의 미사, 전통미사에 접근하려는 사제나 신자들을 막으려는 주교들로부터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맥 빠지는 몇 가지 교리적 토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토론 이후, 우리에겐 경악하고도 놀란 만한 원인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은 교리적 해결책을 제안했습니다. 그때 그 반대로 신앙교리 성성과 교회 사무국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서명이나 토론할 자료를 받았고  한편으로는 에클레시아 데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혹은 추기경으로부터 공식적인 라인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 받았습니다. 


대략 이런 것입니다. “교황께서 성비오10세회로 부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파문을 해제했던 경우처럼 우리 회를 그대로 인정해주고자 한다.”

 

이 같은 상황은 주요한 문제를 가져다 주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받았던 문서처럼 이 메시지가 같은 내용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 똑같은 사람들은 이 점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대에게 전달된 문서들은 교황께서 원하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 몇 달간 서로 다른 말들이 오고갔습니다. 공식적인 메시지, 우리가 협약에서 받아드리지 않았던 것을 저들은 받아드리길 원하기에 이에 대한 우리의 해답은 ‘노’ 입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반응을 접함에 따라 호의적인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왔습니다. 그들의 청원에 의문을 두기가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 청원이란 최고 높은 수준의 것들이었습니다. 이들 몇 문장을 인용해보죠. “성비오10세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내(교황) 관심사 가운데 가장 큰 핵심이라는 것을 성비오10세회가 알았으면 좋겠소….” 또는 심지어 ‘교황으로서 최우선 과제’이런 표현을 썼는데 이 표현들은 문제를 해결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달하는 이들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진술을 들었습니다. “전통에 우호적인 교황의 모든 계획에 태업을 일으키는 로마의 적들이 있다”  또 다른 것은  “펠레이 주교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인정받은 이후에도 그 전처럼 주교는 모든 쟁점에 대해 공격을 계속할 수 있다.” 또 훨씬 강하게  “교황은 신앙교리성성보다 우위에 있다. 만약 신앙교리 성성이 비오10세회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면, 교황께서 그 결정을 폐기하도록 간섭해나갈 것이다.”
 

이 같은 두 번째 전갈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있을까요? 성비오10세회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발표하는 것은 엄밀하게 불가능해요, 이것을 말한다는 것은 사태를 더 복잡한 국면으로 빠져들게 했을 겁니다. 마침내 5월 이후, 사태가 보다 명료해져갔습니다. 6월 들어 최종적으로 명쾌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채널을 조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황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얼마동안, 공의회에 대해 우리의 반대를 성하께서 알고 계시고 우리를 인정해 주시려함에도 불구하고 공의회에 관한 문제를 성하께서 제쳐놓거나 뒤로 미룬다는 결론을 제가 내렸습니다. 다른 문제 가운데, 공의회문제는 공의회를 강등시킬 수밖에 없는 토론으로 가게 되는데, 대화가 가능하거나 법적토론이 가능한 문제도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성하께서 그런 호의적 모습을 보여주셨기에, 이는 성하께서 어떤 경우일지라도 공의회를 지지하기보다는 우리 성비오10세회 인정을 선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교황 성하께서 공의회를 받아드리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기에 제가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되는군요. 그러면, 제발, 성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저희에게 알려주십시오.”  


그 후, 6월30일자 소인이 찍힌 응답편지를 받았습니다. 6월 30일자 이 편지는 교황께서 우리가 반드시 공의회를 받아드려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라는 것이며, 내가 삭제한 모든 것을 문서화하여 재도입하고 이에 대해 우리가 서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게 원점으로 뒤돌려졌어요. 이어서 교황께서 계속 말씀하시길 법정 인정을 받기위해서는 우리 성비오10세회가 반드시 받아드려야 하는 세 가지 조건, 세 가지 일이 있다는 겁니다.
 ‘

치교권은 종도적 전통의 판단’이라는 것을 받아드리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진정 치교권이란 전통에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에 관한 것이에요 명백히 이 문맥에서는 교황님은 우리가 혁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끔 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공의회란 이 전통의 통합부분’라는 것을 받아드리라고 요구 받았을 때, 공의회가 결국 전통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그와는 반대로 외쳐왔습니다. 재미로 그냥 한 것이 아니라 존경하옵는 우리 설립자의 입에서 너무나 많이, 수십 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중한 표현을 유지하면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에게 증명된 사실들을, 이 바티칸 공의회는 새로운 것과 관련된 협정된 결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공의회는 단지 어느 혁신, 표면적인 개혁에 관한 사항이 아니고 오히려 성 교회가 그동안 가르쳐왔던 것과는 반대되고 모순이 되는 심오한 개혁인데, 실제 성 교회는 이것을 견책해왔다.” 우리가 오랫동안, 수십 년간 이와 같은 개혁, 성교회를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공의회 개혁에 저항하여 싸워온 것은 재미삼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있으니 그 조건이란 ‘공의회는 전통의 통합부분’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조건이 하나 있는데, 미사에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새미사의 유효성뿐만 아니라 합법성을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묻을 때 유효성에 관해 말하는 것인데 미사란 우리 주께서 미사 안에 유효하게 실재 현존하시고 있다는 의미로 봉헌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 새미사가 언급하는 주변 환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검은 미사도 유효하겠군요. 이는 끔찍한 일입니다. 지독한 신성모독입니다. 슬프게도 검은 미사를 바치는 사제들도 있습니다. 이 미사는 유효해요. 충격적인 사례를 인용함으로써, 합법적이지 않고 나쁜 것이기에 허용되지 않는 검은 미사의 과정을 이해하겠죠. ‘합법’이란 뜻은 좋은 것이기에 허용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미사에 의해 유발되는 참혹성을 목격해왔습니다. 새미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목적, 즉 에큐메니즘 목적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신앙의 상실, 교회가 텅 비는 결과를 목격합니다. 그래서 새미사는 나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로마에 대답한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적법성에 대해 말 안합니다. 단순히 새미사가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해요. 우리는 막힌 도로에 도달했지만 싸움을 지속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우리가 서품식 때 발표했던 6월 이후 교섭이 난관에 봉착했던 명백한 이유입니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정확히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1975년에 결렬되어 1974년으로 되돌아왔던 그 지점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합니다. 언젠가는 성교회를 전통으로 극복하여 전통으로 돌아온다는 승리의 생각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전통은 성교회의 보물입니다. 행복한 시절이 도래하길 기다리는 동안 계속 싸워야죠. 그러면 그때가 언제죠?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을 보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건 천주님의 비밀사항이니까요. 잡초, 성교회에 해악을 끼치는 가라지가 뿌리 뽑힐 날이 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위기는 성 교회가 견디어온 것 중 아마 가장 끔찍한 위기입니다. 주교, 추기경들도 이 위기에 연루되었는데 그들은 더 이상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지옥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이 땅에서 목격하는 위험을 더 이상 영혼들에게 경고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존재의 목적, 그 목표는 천주님이요, 천국에 가는 것인데 이것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곳에 가는 것이 ‘36계 도망이 아니다.’ 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회개의 길이요, 자아 포기의 생활입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게 아닙니다. 천주님의 계명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지옥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교의 입에서 나오는 이 계명을 말씀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주교들이 천주님의 계명을 선언하지도 않았나요? 신학교 끝날 때쯤에 현대 신학생들이 우리에게 말하길 “우린 결코 신학교에서 그런 말을 들은 적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보여주는 죄의 직접적인 결과물입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시련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했고,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 세속적인 사랑을 포기하고 주님을 더 좋아한다는 모습을, 선하신 주님께 우리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잡초나 가라지로 인해 우리가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모든 곳에, 모든 것에 점점 더 침투하고 있는 악과 마주칠 때 보이는 반응입니다. 오늘날 전체적으로 볼 때, 성교회는 전쟁을 통하여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오직 성총만을 기대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의 힘에만 의존하는 것은 쉽게 절망으로 빠집니다.  

 

우리의 힘은 우리가 날마다 외치는  “Adjutorium nostrum in nomine Domini.” 우리의 도움, 즉 우리의 힘은 주님의 이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좋으신 주님만이 우리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비록 시련을 허락하신다 해도 우리에게 승리할 충분한 성총을 주시지 아니하고 시련만을 겪게 하는, 그런 일은 결코 안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아주 잘 압니다. 이 같은 말씀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되어야 합니다. 진실입니다. “성신의 첫 은혜를 차지한 우리도 심중에 탄식하며 천주의 자녀가 되기를 곧 우리의 육신이 구속되기를 앙망 하는도다.”(로마서 8:23)  모든 곳에서 물론 특히 시련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시련이 있다면, 낙담하지 맙시다. 우리의 기도를 배가시킵시다. 좋으신 주께로 눈을 돌립시다. 우리가 노력도 바치고, 희생도 하며, 주님의 성총에 의지합시다. 성 교회는 항상 가르치길, 한번 바라보고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생활상태가 어찌되었던 간에 한번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성교회가 가르치는 의미란 십자가상의 예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실패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어요. 그 분은 천주이시고요. 그 분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행하는 피조물에게도 특히나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분께서는 무엇을 하실까요? 그대로 일을 놔둔 채, 못된 자들을 고치려고 오십니다. 그 분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수난 가운데 그 분은 우리의 죄를 몸소 감당하셨습니다. 수난을 겪으시고 우리 대신 기도합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시련을  그 분께서 직접 감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돕기 원하시는 사실을 어찌 우리가 의문하리요? 우리의 생각을 모으고 우리의 신앙을 재 확신 합시다. 그 분이 감추시고 시련을 강화시키다하더라도 차이점은 없습니다. 그 분은 만물의 절대적 주인이십니다. 가장 좋은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 성 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러한 신비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왔고 이러한 권능, 존엄성과 신성함은 우리가 지상에서 보는 이 성교회 안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신앙이 있다면 이 신앙은 성교회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고 마지막 종부성사까지 받는다면 이것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 성 교회는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요, 우리 앞에 있는 것이며 우리가 로마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교회, 교황이 함께하는 교회, 주교들과 함께 하는 교회, 저들이 약해질 수 있는 그런 때가, 제가 ‘약해지다’ 라고 말한 것은 천주께서 성교회를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는 뜻과 같은 그러한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달려있고 ‘좋으신 천주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모든 게 잘 돼.’라고도 말해선 안 됩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보다시피, 이것이 로마와의 협의과정에서 있었던 문제점입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말합니다. 문제가 있으니, 이 문제는 공의회 및 그 여파로부터 오는 것이 분명하다. 저들은 답변하길 “그건 불가하오. 아니오. 아무런 문제점이 없소. 문제될 리가 없소. 왜냐하면 성 교회는 성신의 조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오. 그럼으로 성교회가 잘못할 리가 없소. 그건 불가능하오. 그래서 공의회는 필요에 의해 반드시 선하오. 당신들이 말하는 것은 무효하오. 이 곳 저 곳 몇 가지 남용된 곳은 있으나 중요한 것이 아니오. 새미사는 성교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오. 성교회가 도움 받고 있소. 필요에 따라 유익한 것이니 당신들이 새미사는 나쁘다고 말할 권리가 없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사항입니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아주 적은 양까지 받아드리고 성 교회 특권 내에서 신앙도 받아드리고 성신의 조력 안에서도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드리는 이것 역시 꽤 옳은 것이거니와 현실을 전혀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사안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설명해야 되겠죠.”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계실 때 신앙은 ‘그 분이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멸의 천주이시다.’라는 고백을 강요합니다. 그 분은 결코 죽음이 없고 고통을 겪지도 않으며 무한히 완벽하신 천주이십니다. 천주께서 고통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십자가에 계신 예수께서 천주이십니다. 신앙은 이점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것을 어떠한 축소도 없이 전적으로 받아드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같은 예수께서 고통 받으시고 심지어 죽으셨다는 인간의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설령 모순되어 보인다하더라도, 진리 속에서 서 있는 오직 그들만이 양쪽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교회 역사를 통하여 이 똑같은 문제를 보게 됩니다. 인간의 지식에 매달린 대다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신이 아니야, 그는 실제로 죽었거든. 죽어서 땅에 묻혔어 그걸로 끝이야.’ 이것은 성교회의 원수, 무신론자들, 이단자들, 성 교회 내부에 숨어있는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도출된 말입니다.  

 

저들은 진실로 예수를 천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신앙을 갖고 있음을 여러분이 숙고해야합니다. 저들은 역사속의 그리스도, 즉 참된 그리스도와 죽었지만 부활하지 않은, 교회가 믿으라고 강요해 놓은, 부활이 조작된 소위 신앙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교활하게 구별합니다. 이는 완전 거짓입니다. 옳지 않아요. 그 분은 진실로 부활하셨어요. 반대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다른 이단을 생각해 봅시다. “예 맞아요. 그는 신이예요 그러므로 죽음과 받은 고통은 오직 겉으로만 보인 것이죠, 예수는 진짜로 죽은 것은 아니니까요” 이러한 오류도 널리 퍼지진 안했지만 역시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성교회에 관련하여 똑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주어진 사실에 관한 두 가지 설정, 신앙에 대한 사실과 이성에 의해 비추어진 사실을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상과 영합하려고 했습니다. 세상을 성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더니, 지금 재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공의회의 근본을 조성한 이 모든 개혁들은 세속화 목적으로 교회 당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저들은 우리에게 지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그것이 어디에 있나요? 코란에 키스하는 그 안에서? 가톨릭 국가가 억압받는 곳에서? 어디에 저 지속성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아주 단순히, 어떠한 변화추구도 없이 매우 소박하게 일을 계속해나갑시다. 좋으신 주님, 그 분이 하시고자 하는 그 순간 때까지.
  

이것은 그냥 활동도 안하고 가만히 있자는 뜻이 아닙니다. 매일 우리는 영혼을 얻기 위해 이 의무를 해야 합니다. 그 해결책은 우리 주님께서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심지어 성모님을 통하여 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시대에 아주 명백한 어떤 것, 아름답고 훌륭한 발현, 이 고통스럽고 끔찍한 시대를 전달한 라 살렛트 성모와 파티마의 성모에 의해 제시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로마는 반 그리스도의 자리가 될 것이고, 로마는 신앙을 잃을 것이다….” 라 살렛트에서 말씀하신 것이죠. “성 교회는 어둠에 휩싸일 것이다.” 이것들은 그냥 해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실로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끔찍한 일이지만, 그러므로 우리는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으로 다가가 성모님 안에서 피난처를 얻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파티마의 메시지입니다. 천주께서는 이 봉헌을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바치라고 세상에 주었습니다. 이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슨 비용을 치루더라도 모든 일이 엇나가지 않도록 이 믿음의 성총으로 매 미사 때 마다 모든 기구를 청합시다, 그러면 좋으신 주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천상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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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론의 특징을 보존하기위하여 구어체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Source: Transcription LPL revue – DICI dated November 14,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