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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펠레 주교 인터뷰 -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가신 요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25





펠레 주교 인터뷰 -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가신 요소

2018. 06. 30 -  By fsspx.news


2018년 6월 30일, 베르나르 펠레 주교가 성 비오 10세회의 아직 총장상일 때 Die Tagespost(디 타게스포스트)와 가졌던 인터뷰다.


편집자의 말  : 베르나르 펠레 주교와의 이 인터뷰는 독일 출판사 디 타게스포스트(Die Tagespost)에 실렸다. 이 번역은 허가받은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 인터뷰는 2018년 6월 30일 성 비오 10세회의 총회 전에 이루어지고 발행되었다. 인터뷰 당시에는 아직 펠레 주교가 성 비오 10세회의 총장상이었다.


1988년 베르나르 펠레 주교는 (교황의) 허가가 결여된 상황에서 주교로 성성되었다. 오늘날 그는 화해를 희망한다. 인터뷰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레기나 아이니흐(Regina Einig)와 진행되었다.


레기나 아이니흐: 주교 전하, 30년 전 어떻게 주교 성성을 받으셨습니까? 주교님께 그것은 로마와의 결정적 분리였습니까 아니면 갈등의 중간 단계였습니까? 거기서 화해가 보였습니까?


펠레 주교: 만일 그것이 로마와의 분리였다면, 나는 오늘 이곳에 없을 것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님께서는 그런 목적으로 나를 성성하신 것이 아니며 나 역시 거부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교회와의 분리에 관한 것이 아니었으며 우리의 입장을 현대 정신, 공의회의 열매들과 구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뭔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거슬러 싸워왔고 싸우고 있는 많은 생각과 측면은 다른 사람들 역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면적으로 이단적인 진술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의회는 오류와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방어벽을 치워버렸습니다. 신자들은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신전지회(Church Militant: 지상의 교회)의 지속적인 전투는 신앙을 수호하는 데 있습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하지만 “대중 매체의 공의회”를 비판하는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하여- 모든 이가 기꺼이 파문에 이르는 갈등을 감수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 교계 안에서 로마와 일치하여 전통을 지키고 진리를 위해 싸우는 대열을 강화하지 않으십니까?


펠레 주교: 그것은 부분적으로 프랑스 역사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래로 프랑스의 몇몇 가톨릭 신자들은 자유주의에 맞서 싸웠습니다. 따라서 독일보다는 공의회의 전후에 일어난 일들을 훨씬 더 민감하고 주의 깊게 인식했습니다. 이는 노골적인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들과 창문들을 활짝 열어버리는 일종의 추세였습니다. 공의회 자체보다도 이후 이어진 개혁들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게다가 문제는 새미사로 견고해졌습니다. 로마에서 그들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그저 새미사를 거행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6세의 미사는 개신교 신학자들과의 협력 속에 제정되었습니다. 만약 이 미사를 거행하라는 압력을 받는다면,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주교님의 새미사에 대한 거부가 주교님과 르페브르 대주교를 로마로부터의 분리가 천주의 뜻이었다고 강화시켰습니까?


펠레 주교: 제가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교회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하지만 파문 자체가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파문을 취소해야만 했을까요?


펠레 주교: 1917년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의 명령이 없는 주교성성은 이교(열교)가 아니라 파문 없이도 일어날 수 있는 권위의 남용으로 간주됩니다. 교회 역사의 순간들은 교황의 위임에 의한 명령없이 시행된 주교 성성에 대한 문제를 다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왜 그것이 중요한가요? 1988년에는 새 교회법이 시행되었고 1917 교회법에서도 주교들은 성청에 충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펠레 주교: 우리는 부득이한 상황(state of necessity)에 놓여있습니다. 로마는 우리에게 주교를 지명했습니다. 1988년 5월, 라칭거 추기경과 르페브르 대주교의 논의는 주교성성 날짜에 관한 논의였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와 라칭거 추기경은 합의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추천안을 제시했습니다. 만일 라칭거 추기경이 후보자를 변경하지 않은 채 8월 15일로 확정했다고 가정했을 때, 르페브르 대주교가 그것을 받아들였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추기경에게 “연말은 왜 안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들이 주교님을 두고 장난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분명 그 사실은 불신의 지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불신은 우리 이야기의 열쇠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언가가 다시 우리 사이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디 타게스포스트>편집장의 말: 명예 교황님(교황 베네딕토 16세)은 우리에게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 확신하건대 인사 문제(주교 후보자)는 단지 부차적이었다고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분명히 주교성성을 약속했다. 날짜를 정하는 문제는 라칭거 추기경의 관할이 아니었다. 대화의 말미에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가 고수했다면 아마도 일치를 의미했을 합의에 서명했다. 앞서 정리했듯이, 신앙교리성의 협력자는 다음날 문서를 가져오기 위해 알바노로 르페브르 대주교를 방문했다. 모두 실망하게도, 르페브르 대주교는 밤새 잠을 잘 수 없었고 실제로 그들이 단지 그의 사역을 파괴하기 위해 일치를 이용하려 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선언했다.


레기나 아이니흐: 라칭거 추기경은 가톨릭 전통의 전문가이고 숙련된 옹호자였으며 전통미사의 친구였습니다. 왜 그가 르페브르 대주교를 다시 안심시키지 못했을까요?


펠레 주교: 그는 대주교의 동기가 얼마나 깊었는지 신자들과 사제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공의회 이후 골칫거리와 추문, 그리고 새 미사가 거행되는 방식에 신물이 났을 뿐이었습니다. 만일 라칭거 추기경이 우리를 이해했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는 그 부분을 후회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가 교황님이 되시고 자의교서로 피해를 복구하려 시도하고 파문을 철회했던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화해를 위한 시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하지만 신앙교리성의 수장으로서 라칭거 추기경은 나머지 신자들의 어려움과 분노를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들이 미사의 유효성에 관한 질문과 같은 본질적인 지점에서 교회와 대립되는 것은 분노할 일입니다. 주교님을 따르는 많은 이들은 주일의무가 새 미사에 참예함으로서 충족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새 미사는 “이단적”입니다.


펠레 주교: 저는 그것에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우리는 많은 미사들이 무효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무효한 미사들이 성 비오 10세회와 같은 노선에 있지 않다는 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로마와의 논의에서 우리는 전례서를 따르고, 교회가 항상 행하라고 가르치던 그대로의 지향으로 거행되는 새 미사의 유효성을 인정한다는 점을 항상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유효한가와 좋은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그렇다면 주교님 보시기에 그 구분이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펠레 주교: 새 미사 안에는 결점과 위험이 숨어있습니다. 물론 모든 새 미사가 즉시 추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반복적으로 거행되다보면 약화된 신앙 또는 심지어는 신앙의 상실까지도 야기합니다. 우리는 매일 소수의 사제들만이 여전히 실제적 현존을 믿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전통 미사에서 전례는 신앙을 기릅니다. 거기서 당신은 반석 위에 오르게 되며 이 신앙안에서 강해집니다. 특정한 전례적 동작들은 신앙안에서 우리를 나아가게 합니다. 예를 들어, 무릎을 꿇는 것에서 실제적 현존과 희생에 대한 신앙으로, 침묵에서 사제의 태도로 말입니다. 새 미사에서는 스스로 신앙을 끌어내야 합니다. 예식 자체에서 즉시 무언가를 얻기는 대단히 힘듭니다. 예식이 단조롭습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하지만 공의회 이전에도 신앙이 약하거나 현대주의자거나 이단자인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비판하시는 자유주의적 공의회 교부들은 전통 미사에서 자랐고 전통 예식으로 서품받았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촉진되는 새 미사에 의한 회심을 -밤의 열기(Nightfever)를 생각[사람들을 신앙으로 되돌리기 위한 기도의 밤을 형성한 세계 청년 대회의 파급효과]-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펠레 주교: 아닙니다, 저는 그런 말씀을 드리는게 아닙니다. 단지 제가 말씀드리는 바는 이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지방관을 환영하면서 은 트럼펫과 주석 트럼펫 사이에서 선택한다면 주석 소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건 모욕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을겁니다. 최고의 새 미사라도 전통미사와 비하면 주석 트럼펫과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올 주님께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주교님께서는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감히 그런 비참하고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미사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는 천주를 공경할 수 없다.” 하지만 새 미사는 오늘도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교회에서는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왜 강론에서 차별화하지 않으십니까?


펠레 주교: 신학적 논의에서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강론에서는 모든 것을 신학적으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수사학적 요소는 한 부분이며 영혼을 조금 뒤흔들고 사람들이 눈을 뜰 수 있도록 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 비오 10세회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자 합니다. 일치는 진행중입니까 아니면 호의적인 순간은 지나갔습니까?


펠레 주교: 저는 낙관적입니다. 하지만 천주님의 때를 내가 앞당길 수는 없지요. 성신께서 현 교황님을 움직이실 수 있으시면, 후임 교황님때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도 그렇고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출되셨을 때, 나는 이제 파문되겠구나 생각했지만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뮬러 추기경은 우리를 파문시키고자 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거절했습니다. 교황님은 개인적으로 내게 “나는 단죄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해는 옵니다. 어머니인 교회는 오늘날 믿기지 않을 만큼 갈라졌습니다. 보수적인 신자들, 심지어 신앙교리성의 일부에서는 우리를 원합니다. 독일 주교들은 전혀 우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로마는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점을 이해합니다. 우리가 단순하게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교회 안에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저널리스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확실히 말해두는데, 그것은 당신에게 승리가 아니오.”


레기나 아이니흐: 성 비오 10세회 안에도 긴장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몇몇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바티칸과의 협상들 자체가 불신을 일으킨다며 성 비오 10세회에서 분리되었습니다. 회원들은 어떻게 로마와의 화해를 받아들일까요?


펠레 주교: 그 문제는 로마가 무엇을 명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던 대로 계속 하도록 해 주고 충분하게 보증해준다면 아무도 떠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불신은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데 대한 두려움에 기반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따르도록 명한다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왜 모두 함께 갈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신앙교리성과  성 비오 10세회의 논의에 대한 발표조차 이미 큰 불안과 체념을 촉발시켰습니다. 어떤 결과가 주교님의 지지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까요? 불신은 일치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펠레 주교: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선(goodness)이 있습니다. 선한 뜻이요. 수년간 우리는 로마와 신뢰를 쌓기 위해 일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대응들 가운데서 큰 진보를 이뤘습니다. 만일 우리가 통상적 조건하에 합리적 일치를 이루면 극히 소수만 머무를 것입니다. 로마와 맞는 조건을 찾게 된다면 저는 전통계열 내의 새로운 분열은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의회의 특정 사안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대화하는 로마 쪽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요 요점들 -종교자유, 에큐메니즘, 새 미사- 는 열린 질문들입니다. 이는 엄청난 발전입니다. 그동안은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 “그대들은 반드시 순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쿠리아(Curia) 내의 우리 협력자들은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 성 비오 10세회는 전통을 지키기 위한 대학교, 로마에서 신학교를 개설해야합니다. 더 이상 모든 것이 흑백논리가 아닙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합리적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펠레 주교: 성직 자치단(personal prelature)입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로마와 교회법적 형식이 이미 잘 해결되었다면 최종 단계에서의 좌절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펠레 주교: 작년에 포조 대주교님은 신앙교리성이 우리가 서명하기로 했던 문서에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직 자치단을 받아들이기로 되어있었습니다. 1달 반 뒤 뮬러 추기경님이 문서를 수정하기로 결정했고 공의회의 수용과 새 미사의 정당성에 대한 수용을 명확하게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토의의 길을 열고서는 그들이 닫아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악마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전투입니다.


레기나 아이니흐: 개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신뢰하십니까?


펠레 주교: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우리는 아주 좋은 관계입니다. 우리가 로마 안에 있음을 말씀드릴 때마다 그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덜 중요한 단계에서는 교황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도와주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교황님께서는 “내가 성 비오 10세회에 좋은 일을 해주고자 할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는 개신교와 성공회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데 왜 못 도와주겠습니까?” 많은 수가 일치를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안에서 성가신 요소입니다. 교황님은 그 중간에 계십니다.


(펠레 주교는 웃으며 교황님의 친필 서한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프랑스어로 작성된 것이며, ‘친애하는 형제, 친애하는 자녀에게’(Cher frère, cher fils)라는 인사로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