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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우 및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총장서한 84호(2015-05-2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19

 



교우 및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총장서한 84호





요약 


2015년 1월 20일 개최된 회의에서 Mardiaga 추기경은 교회를 현 세상에 개방하기 위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도입된 개혁에 자비가 새로운 바람(정신)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죄에 대해 보속이 없는 자비란 이러한 목적에 쓰이는 것이니, 이는 단지 죄인에게나 그의 죄에 대해서 자기만족의 표정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성년을 바라보면서,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자비와 죄를 거부하고 완전히 회두를 원하는 진정한 자비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 한해(성년聖年)동안 우리의 기도와 보속은  슬픔과 하자 없으신 성모님의 요청에 대한 답변이 되어야 되니, 2017년은 파티마 1백주년 기념을 우리가 축하하게 되는 해가 됩니다.


 

친애하는 친우들 그리고 후원자 여러분,


우리의 모후인 교회가 담고 있는 위기에게 관해 새삼스럽게 대략적으로 짚고 넘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달간을 살펴보면 우리가 심지어 훨씬 더 강렬한 고통과 혼란의 말 속으로 말려들어가게 되는 참으로 걱정스런 표징(標徵)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앙과 도덕에 관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례와 통치관리에도 교회 내의 일치의 상실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으니, 장차 우리 앞에 어려운 시기가 오리라 생각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신자들은)보호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기적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제 영혼들은 점점 더 각자가 스스로 딛고 서야 되는, 홀로 된 상태로 남겨지게 되었고 교회제도로 부터는 더 이상 어떠한 도움도 찾질 못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두려운 것입니다.


공의회 개혁을 구하려는 새로운 자비


우리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해주는 한 사례(事例)가 있으니, 프란체스코 교황이 로마 교황청의 개혁에 대해 협의하게끔 일임(一任)한 추기경 단체 조정자인 Oscar Andres Rodriguez Maradiaga 추기경이 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회담은 캘리포니아의 산타 클라라 대학에서 2015년 1월 20일에 열렸는데, 교황의 최측근 고문이 진행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통찰력을 주기 때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요점은 그가 자신이 추구하자는 개혁을 수행하고자 한다는 점이고, 이 개혁으로 인하여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주어진 개혁의 전체 모습을 이해해야한다는 점이며, 그럼으로써 공의회 개혁들은 뒤집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코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이와 같은 의도는 덧붙여 말하자면 이 회의의 가결에서 표명된 것입니다.  
 

그러나 Honduran 추기경이 인정하듯이, 이미 진행된 개혁들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으니 왜냐 하면 이 (공의회 이후)개혁들이 교회 안에서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까닭은 모든 개혁은 영(靈)에 의해, 각자의 영혼에 의하여 살아 움직여야하기 때문입니다. 공의회의 개혁은 이러한 원리를 등한시하였습니다. 그와 반면에, 추기경이 말하였듯이, 옛 정신(전통)은 온전한 상태로 놔두면서 개혁은 수행되었고, 그 결과, 개혁의 일부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고 개혁가들이 추구하였던 영향으로 인해서 거의 수행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이는 교회 내에 정신분열증만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odriguez Maradiaga 추기경은 우리가 절대로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견해를 보면 개혁에 대한 영적인 소통에 동기를 불어넣고 활력을 주기위해서 개혁이 더 주입되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 정신은 자비입니다. 교황은 자비의 성년이 ........라고 막 선언하였습니다.


성심에 의거한 참된 자비


자비란 정확히 무엇을 말합니까? 자비 자체는 모든 가톨릭인들의 마음에 귀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비는 우리를 위한 천주님의 지극히 감동적인 영혼의 현현(顯現)을 표시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에 있었던 성심의 발현은 인류에 대한 천주님의 이러한 자비를 보다 더 강렬하게 계시(啓示)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인류에 대한 자비는 통고와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에 대한 헌신에 대해서도 일컬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과 그 불행에 대한 지극히 감동적인 천주님의 작용에서 오는 진정한 자비는 천주님으로 향한 피조물들의 회두 순간 순간에 지속 됩니다; “천주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악인이 돌이켜 그의 길을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니”(에제키엘 33:11) 그래서 복음서들은 회개와 자제 그리고 보속을 주장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까지 말씀 하십니다: “너희게 이르노니 오직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루까 13:5).


회두(回頭)하라는 이 요청은 복음의 핵심이니, 성 베드로뿐만 아니라 세례자 성 요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설교의 가르침에 의해 감동받은 죄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냐고 질문을 했을 적에 죄인들은 오직 이러한 권면만을 들었습니다; “회두하라, 보속을 행하라.” 최근 라 살렛트와 루르드 또는 파티마에 있었던 발현에서 성모님은 다른 말씀이 있었었으니, “기도하라, 보속을 행하라”였습니다.


새로운 자비에 대해 외치는 새로운 (교회)성직자들은 죄, 무지 그리고 불행함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천주께서 취하신 첫 단계만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성직자들은 자비의 두 번째 움직임, 이는 피조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보속, 회두, 죄를 거부함 등을 너무나 흔히 빼먹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새로운 자비만을 외치는 것은 죄에 대한 자기 위안에 불과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천주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라고 하면서......

 
회개가 없는 새로운 자비


불행히도 Maradiaga 추기경이 제기한 자비의 사례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추기경은 결혼생활이 파탄 나서 “뒤섞긴” 가정으로 출발하는 가톨릭인들은 더 이상의 소란이 없이 교회생활에 있어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충분한 그런 자격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추기경은 죄지은 상태에서 교회를 떠난 이들 신자들이 성인(聖人)들과 동등한 천국을 소유할 것이라 주장합니다. 명백히 말하면, 그 추기경은 이들 가엾은 신자들을 비난했었던 과거의 교회 성직자들을 꾸짖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자비이니, 이 새로운 영성은 이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수행되어 온 교회 제도와 도덕률에 영원히 초석이 되는 것으로서 새로운 교회제도와 도덕률로 고려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심각한 것입니다. 이른바 “공의회 정신”이라 부르는 것에 왜 우리가 이토록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실제로 공의회 개혁들은 새로운 정신, 분명히 전통이 아닌 어떤 새로운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정신은 공의회 모든 곳에, 심지어 가톨릭 방식에 있어서 모든 부분 곳곳을 망쳤습니다. 이 방식은 세속적인 방법을 차용한 것입니다. 이는 친절, 자비,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락과 유혹으로 끌리는 자기만족의 위안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사람들은 타 종교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이러한 지적은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 치교권이 선언해왔던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성직자들은 세속의 위험성에 대해 더 이상 가르치질 않고 심지어 지난 오십년간 악마는 교회의 단어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정신은 거룩한 모친인 교회가 겪고 있는 현재의 고통을 보여주는 바, 세상에 대한 교회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권위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교회는 더 많은 신자들과 더 많은 사제들을 잃고 있고 교회가 현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잃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따름입니다. 한때 가톨릭 국가라던 아일랜드가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 되었다는 것은 비통한 예입니다.


여러분들은 자비를 쳐낼 수 있나요? Maradiaga 추기경이 공의회 개혁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고 전통은 단절시킬 목적으로 말한 것처럼, 필요한 보속으로부터 자비를 잘라낼 수 있습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이번 회의에서 그 추기경은 교황 생각의 생각을 담은, 15년 만에 성년을 맞이하는 교황의 칙서의 대변자인가요? 몇몇 추기경들이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몇몇 바티칸을 지켜보는 목격자들이 공개적으로 시인했듯이, 2년간 로마로부터 오는 메시지는 너무나 모순되는 것이 많아서 말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자비와 참된 자비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함


그러면 우리는 성년의 은총로 부터 우리 자신을 빼앗기는 건가요? 꽤나 모순적입니다. 은총의 수문(水門)이 확 열렸을 때, 우리는 풍성히 받아야 합니다! 성년(聖年)은 교회의 모든 일원을 위한 크나큰 성총의 해입니다. 모든 복음서와 전통 전례가 가르치는 바대로 결국은 우리는 진정한 자비로서 살아갑니다. 혼란의 이 시대에서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성비오 10세회 행동지침을 세우신 “기본적인 분별”[1]을 지켜가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자비를 거부하고 모든 측면을 고려한 자비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 마주치게 되는, 우리가 입에 매달고 있는 라틴어는 분명히 미세레레(miserere; 긍련히 여겨달라는 탄원의 기도)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이 말은 우리의 비참함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리고 나서 천주님의 자비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행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통회를 발하여 죄의 용서를 빌고 두 번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불어넣는 진정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죄에 대한 배상의 필요성을 이해하도록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속죄에 대한 희생은 납득이 가는 만족스런 것이 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움직임들은 천주 자비의 용서를 얻는 회두에 필요한 것이니, 주님은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고 오직 죄인이 회개하여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자신의 죄의 습관을 끊어버리지 않으려는 죄인, 그리고 죄의 기회에서 벗어나려하지 않는 이들이나,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영원한 행복이 주어진다는 주장은 완전히 환영(幻影)에 불과합니다.
 

가엾은 죄인들에게 필요한 회두 없이 자비만을 외치는 것은 천국에 대한 공허한 의미의 메시지일 뿐이고, 그 자체 어리석음 가운데 세상을 진정시키고 점차 천주께 반란을 일으키는 악마의 올가미인 반면에, 천국은 이점에 대해 꽤나 적극적입니다: “천주께서는 당신을 조롱하는 것을 그냥 버려두지 아니 하니라”(갈라타6:7). 오늘날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생활이란 모든 방면에 있어서 천주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벌어지는 죄 없는 수백만 아기들의 대량학살, 자연스럽지 못한 결합(동성애)의 합법화, 그리고 안락사는 모든 부정(不正)은 말할 것 없고 천벌을 호소하는 죄악입니다.


통고와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에 따른 자비


니느웨(앗시리아 옛 수도) 주민들이 행한 것처럼 진실히 자비에 호소합시다.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러 나가도록 합시다. 영혼들의 회두를 위해 기도하도록 합시다. 물질적으로 돕고 특히 부족한 부분인 영적인 선업(善業)으로서 자비를 행할 수 있는, 무슨 일들을 할 수 있는 한, 가능한 한 많이 하도록 합시다.


일백년 전 훨씬 이전에 성모님께서 당신 아들에게 복수의 팔을 거두어드릴 수 있도록 호소하였다면 ..... 오늘날의 죄악의 상태에서 성모님은 그 무슨 말씀을 아들에게 하실 수 있을까요?
 
신앙 안에서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는 이 성년(聖年)을 맞이하여 천주자비를 청원할 수 있도록, 그래서 보다 더 거룩한 생활로 회두하고 천주자비의 은총과 용서를 탄원할 수 있도록 이 성년을 잘 유용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이 요청하신대로 온 힘을 다하여 이를 전파하고, 통고 및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께 헌신을 다하고, 파티마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모님의 요청, 특히 러시아의 봉헌이 마침내 적절하게 이행되도록 간청해야 합니다.


반면에, 성모님과 성년을 향한 이들 생각 사이에는 반대가 없습니다! 성모께서 파티마의 마리아 자매에게 설명하였듯이, 예수성심과 성모성심 안에서, 천주께서 보시고자 하는 그 안에서, 우리가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합시다. 성비오10세회 모든 지역은 이 성년 기간에 천주 자비가 주시는 모든 은총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에게 수행되는 모든 일들을 알려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천주님의 자비로운 의지와 함께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이들의 구령을 위해 가능한 한 우리의 협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성신강림절인 오늘, 여러분의 관대함에 대해 주께서 여러분께 신앙과 자비에 대한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주시길 빕니다.


+ 베르나르 펠레
 성신강림 주일에(2015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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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실생활에서 우리의 태도는 기본적인 분별력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교황이 전통에 충실한 것에는 우리가 교황을 따라야합니다. 만일 교황이 우리의 신앙에 반대로 가거나 신앙에 해악이 되는 일을 독려하거나 행할 때에는 우리는 교황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교회, 교황 그리고 교회위계제도가 신앙의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만드는 이들은 저들이 아닙니다. 저들은 (전통)신앙을 따라야 합니다. 신앙은 만들어지지 않으며, 신앙은 불변이며, 그대로 전승되는 것입니다.”《저들이 주님의 왕관을 벗겼도다, ’They Have Uncrowned Him》, Archbishop Marcel Lefebvre,  Angelus Press, 1988: Chapter XXXI, p. 229.(Source : FSSPX/MG – DICI no.316 dated June 0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