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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대의 바리세인(추기경, 주교)들을 거부하며-슈나이더 주교 인터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3



현대의 바리세인(추기경,주교)들을 거부하며

(최근 시노드에 대한 아나타시우스 슈나이더 주교 인터뷰)

 

 

교회와 세상은 혼인에 관한 천주님의 계명과 뜻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전체적인 진리에 대해 시급히 용맹하고도 솔직한 목격자가 될 필요가 있다. 성(性) 이데올로기와 내연관계에 대한 신(新) 이교도의 우상에 향을 피우고 있는 현대의 성직자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인 주교들과 추기경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리스도를 믿게 하던지 혹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영위하게끔 확신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의 성 메어리 대교구의 아나타시우스 보좌주교가 이자벨라 파로위츠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각하, 시노드 회의에 대한 각하의 견해는 무엇인지요? 가정에 던지는 시노드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시노드 기간에 시노드를 편집하고 구성하는 핵심위치에 있는 몇몇 성직자들의 업무에 있어서 분명한 조작이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잠정 보고서(Relatio post disceptationem)는 시노드 에 참여한 사제들의 실제 발언이 없는, 분명히 미리 조립된 문서로 된 것이었다. 성사에 대해 저들의 입장이 들어있는 동성애, 성 생활, 그리고 “이혼 후 재혼”에 대한 부분에서 그 문구는 급진적인 신 이교도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이 문구가 예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교회역사에 있어서 교황의 보호아래 가톨릭주교들의 공식적 모임의 문서로서, 이와 같은 이단의 문구가 실제적으로 발간되는 첫 번째가 될 것이다. 천주님의 덕분에 그리고 전 세계 신자들의 기도 덕분에 주교회의에 참여하는 견실한 많은 주교들이 이와 같은 의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였는데 이 의제는 우리 시대의 부패하고도 이교적인 주류 도덕관을 반영하고 있고, 정치적 압력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강요되고 있으며, 또한 세계 성 이데올로기 무리들이 주장하는 원리에 충성하는, 거의 모든 강력한 공식 매스컴을 통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단지 예비적인 성격일지라도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며, 반 그리스도 세계의 정신척도를 계측하는 것으로서의 이 같은 시노드 문서는 교회생활이 심대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악하게 침투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문서는 미래세대와 역사가들에게 교황성청의 명예를 더럽히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노드 회의에 참여한 주교들의 메시지는 문제의 깊은 뿌리, 즉 죄의 실체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가정에 대한 천주님의 진리를 요약한 참된 가톨릭 문서입니다. 이는 가톨릭 가장에 참된 용기와 위안을 주는 것이다. 몇 가지 인용은 이렇다: “심각한 빈곤에서 아기가 생기거나, 노년에 악화된 심각한 질병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의 고통이 동반한 생활의 짐을  생각하게 한다. 용기, 신앙 그리고 사랑으로 이러한 시련을 견디는 수많은 가정의 충성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닥친 이 삶의 어려움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을 보며 이 고통을 자기 자신에서 찾는다.... 부부간의 사랑이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일하며 불가해소성이 있고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면서도 보편적인 것이다. 이 사랑은 자녀들을 낳고 세대를 이어줌으로서 퍼져나가는데, 자녀를 낳는 것뿐만 아니라, 성세를 통한 천주님의 사랑의 선물, 교리, 자녀들의 교육도 포함 된다. 저들의 단정한 가정 위에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 가정 모습이 머물고 있다.”


도덕 쟁점(이혼 후 재혼한 이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거나 동성애 결혼을 허용하는 것)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변화되길 기대하는 이들 집단은 아마도 최종 문서 내용에 실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이러한 기본사항들이 이 가르침을 개정하려는 심각한 남용이나 이와 같은 유사한 시도에 대해 미래에 문이 열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 천주님의 십계명 중 제 6계명은 천주님이 혼인성사의 절대적인 불가해소성을 제정하신 것인데 대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영성체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신의 감화에 의해 성 바오로께서 서간경(코린토 전 11:27-30)에서 가르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천주이심을 확인하기 위해 투표에 붙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또한 투표에 붙일 사안이 될 수 없다. 혼인성사의 불가해소성에 걸린 사람과 다른 이와 동거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천주님의 법에 의해 성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그와 동시에 천주 제6계명을  교회가 극악하게 부인하고 이를 합법화 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너희는 간음하지 말지어다.” 어느 인간의 조직체, 교황이나 종교일치 공의회도 천주십계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혹은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무효화시킬 권한이 없는 것이다. “천주 결합하여 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지니라.”(마테오19;6)


끊임없고 변함없이 가르친 이 투명한 진리, 이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의 치교권을 통하여 가르친것이며, 오늘날까지, 예를 들어 교황 바오로2세의 “Familiaris consortio –가족협력”, 가톨릭교회의 교리, 교황 베네딕토16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혼 후 재혼’에 대한 성체성사의 허용에 관한 문제가 시노드의 투표까지 갔다. 이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비통한 것이며 천주님 말씀, 그 진리에 대한 성직자들의 오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주님의 진리와 말씀을 투표에 붙이려하는 시도는 선하고 충직한 종(마테오24:45)의 역할, 천주님의 유산을 전할 치교권의 대표자로서 저들은 무가치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한때 바리세인들과 유대 율법학자들을 견책하신 것처럼, 저들 주교들은 “이혼 후 재혼”한 이들에게 성체성사를 허용함으로써, 저들 나름의 의지를 바탕으로 새 전통을 세우고 그리하여 천주님의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다.(마테오15:3) 그리고 계속 이런 것이 악화되고 있는 바, 저 주교들이 ”사목적 필요“ ”자비“ ”성령에 대한 개방“을 핑계 삼아 논쟁의 수단으로써 그리스도의 말씀에 어긋난 저들의 불충을 합법화 하려고 하는 사실이다.


더욱이 저들은 영지주의 방식 안에서 이들 말씀을 왜곡하는데 있어서 두려움도 도덕관념도 없거니와 저들을 반대하고 천주님의 불변의 계명과 전통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혹독하고 꼼꼼한 전통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성 아나타시우스는 리베리우스 교황에게 파문을 받았고, 그 교황은 아나타시우스가 주로 이단적이거나 반(半) 이단적인 동방의 주교들과 교류하지 않는다는 트집으로 이 파문 조치를 정당화 하였다. 성 바실은 그 사실에 대해서 위대한 말씀을 하셨으니: “오직 죄 하나는 현재 심하게 처벌 받고 있다는 점이니 그 죄란 우리 교부들의 전통을 적극 준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실만으로 선한 이들이 자리에서 쫒겨났고 사막으로 내몰렸다. (Ep.243)


사실 “이혼 후 재혼한 이들”에 대한 영성체를 주자고 주장하는 주교들은 새로운 바리세인이며 유대율법학자이니, 왜냐하면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앞으로도 간음”(마테오15:19)을 지속하도록 원인을 주면서 천주님의 계명을 무시하기 때문인데, 그러면서 저들이 외견상 “깨끗한” 해결책을 원하고, 권력(사회여론)이 있는 저들의 눈으로도 “깨끗하게” 보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들이 그리스도의 법정에 결국 나서게 될 때, 저들에게 절망감을 주는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분명히 듣게 될 것이다: 네가 왜 너의 입으로 나의 법을 세우고 나의 성약을 받아드리느냐? 내 가르침을 미워하고 내 말을 저버렸도다.....네가 간음자와 파트너가 되었을 때....(잠언50;16-18)

 

시노드의 최종 선언문은 불행하게도 “이혼 후 재혼한”이들에 대한 영성체 허용 쟁점에 관한 투표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삼분의 이 이상의 찬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후 재혼한”이들에게 영성체를 주라고 찬성하는 현재의 주교들이 절대적으로 다수라는 점이 걱정스럽고 놀랄만한 사실은 우리 시대의 가톨릭 주교들의 영적상태를 반영하는 점에서 슬픈 것이다. 더 슬픈 것은, 이 구절은 성질상 다수의 찬성을 얻은 것 아니면서도 최종보고서에 남았고 토론을 더 하기 위해 모든 교구로 보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분명 결정 나지 않은 상태로서 사제와 신자들 사이에 교리적인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며 천주님의 계명과 천주이신 그리스도의 말씀 그리고 종도 성 바오로의 말씀들은 인간이 저지르는 정책결정의 그룹에 의해 폐기 처분될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예비 보고서에서 “이혼 후 재혼한”한 이들과 “동성결혼”의 부끄러운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영성체를 주자고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주장한 어느 추기경은 최종 보고서에서 빠진 것에 불만을 터뜨렸으며 신중치 못하게 “잔은 반쯤 채워졌다”고 하면서 "내년에 있을 시노드 회의에서는 다 채울 수 있도록 작업해야" 한다 라고 선언하였다.


천주님이 그 부정직(不正直), 불충(不忠), 그리고 배역(背逆)한 계획을 일소(一掃)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대한 폭풍 후 속에 처한 성 교회 배의 방향키를 틀림없이 쥐고 계신다. 진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 교회을 통치하시는 것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가정을 거슬리는 공격의 최정점을 겪고 있는데 이 공격은 인간 및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과학 분야에서 엄청난 혼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불행히도, 이러한 문제가 논의되는 와중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견해를 공공연히 표현하는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있다. 우리가 저들의 신앙을 강화하고 구원의 방향으로 가게끔 하기 위해서 이러한 혼란의 희생자가 된 저런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가?


이 같은 극도로 어려운 시기에 교회 안의 아주 적은 소수 신자들의 충성과 순수 그리고 소박한 신앙으로 인해, 그리고 배우는 교회(“ecclesia docta”)로 인하여, 우리 시대에 이러한 것들이 가르치는 교회(“ecclesia docens”) 즉 치교권을 강화시키며, 4세기 당시 신앙의 커다란 위기가 있을 때와 같은 방식처럼 그리고 존 헨리 뉴만 추기경이 “이는 매우 놀랄만한 사실이지만 그 안에 도덕률이 있다. 이 위기는 교회가 박해상태를 벗어나려는 그 시점에 위대한 복음을 주도록, 즉 현명하고 권력이 있는 자들이 아니라 미천하고 배우지 못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교회의 진정한 힘을 구성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허용된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시련을 통하여 우리 가톨릭교회가 그 본래의 맛을 읽어버린 신 이교도 세상에 대해 더 밝게 빛나고 진정 빛과 소금이 되도록 우리 가톨릭신앙을 정화시킨다.


이교주의(異敎主義)가 넘어진 것은 주로 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신성한 영토 밖으로 극악한 이단이 무너진 것은 아타나시우스와 이집트 주교들 지도하에, 그리고 저들 주교와 사제들에 의해 운영되는 몇몇 지역의 신자들에 의해서였다. 엄청난 혼란 속에서 주교로 이루어진 몸체인, 그 임무에 성실하지 못한 ‘가르치는 교회’보다는 ‘배우는 교회’에 의해서 훨씬 더 주님의 천주성에 대한 교리가 선언되고 강화되며 유지되었고 (겸손히 표현하면) 보존되었다. 평신도의 몸이 성세에 충실한 반면, 한때는 교황, 어떤 때는 총 대주교, 대교구, 다른 큰 기관, 다른 때는 일반 공의회에서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한 적이 있었고 또는 드러난 진리에 모호한 자세를 취하거나 타협을 했던 반면에, 천주섭리 안에 있었던 신자들은  아타나시우스, 힐러리, 베르셀의 유세비오 그리고 크나큰 외로운 고해자들을 도와 교회의 힘을 강화시켰으니 이 분들은 결코 신앙에 잘못 떨어지지 않았던 분들이었다..“(4세기 아리안파에 대해 pp.446, 466)


우리는 배웠던 교리문답과 복음서에 나온 그리스도의 말씀과 저들에게 면면히 이어져온 아버지와 조상들의 신앙에 충실할 수 있도록 평범한 가톨릭인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젊은이들과 부부들을 초청하여 혼인과 정결에 관한 영구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위해 학습단체를 조직하고 회의도 해야 한다. 우리는 정결 속의 아름다움,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가정의 지극한 아름다움, 십자가와 우리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위대한 희생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이교도 세상에서 똑같은 육신의 유혹, 적의와 조롱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증명한 성인들의 모범적인 생활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정결 속에서 그리스도 혼인과 그 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삶을 산 모범적인 사람들의 많은 사례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신앙, 순수, 그리고 완전한 가톨릭인 및 종도적인 신앙은 세상을 이길 것이다(요한 1서 5:4)


젊은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가족 구성원, 가톨릭 약혼자 단체들이 저들의 혼인서약에 충성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한다. 도덕적으로, 혼인으로 깨친 가정, 한 부모 가정, 기도와 조언으로 도울 수 있는 이혼한 가정,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이 진지한 대화를 통해 즉, 저들의 죄 있는 생활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천주님의 계명과 혼인성사의 존엄성을 위반한 죄를 천주님의 은총으로 청산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 줄 단체를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동성애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회두할 수 있는 길로, 행복하고도 아름다운 정화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돕고 그리하여 차별화된 심리치료를 제공하고 조심스럽게 도움을 주는 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신 이교도 세상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유롭게 하는 선한 소식인 그리스도의 가르침, 천주십계 그리고 6계명이 현명하고도 아름다운 계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설득시켜야한다. “주님의 법은 완전하거니와 영혼을 회두시키나니, 주님의 언약은 확실하고 지혜롭고 단순하도다. 주님의 법령은 마음을 기쁘게 하거니와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고 눈을 밝혀주도다.”(잠언19(18)7-8)


시노드 기간 중 폴란드의 Gądecki 대주교 및 몇몇 탁월하신 고위 성직자들은 이러한 논의 자체가 교회의 영원한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사실에 동의하며 공개적으로 거부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혼란 와중에서 극소수 성직자와 신자들만이 주님의 가르침을 무너뜨리려는 저들의 의도를 아는데 과연 교회 내부 안에 희망이 라도 있는 것인가?


성교회 바로 그 내부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무너뜨리는 자들이 분명한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는 인터넷과 그리스도의 보물인 가톨릭신앙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관심 있는, 몇몇 가톨릭 언론인 덕분으로 세상이 알게 되었다. 몇몇 가톨릭 언론과 인터넷 블로거들이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우리 주님의 영구한 가르침을 무너뜨리는 이러한 성직자의 의제에 관심을 기울어주어 참으로 기쁘다. 추기경, 주교, 사제, 가톨릭 가정 그리고 가톨릭을 믿는 젊은이들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만연된 신 이교도 정신에 단연코 반대해야 한다. 심지어 이러한 사상이 주교와 추기경들에 의해 퍼져있더라도 거부해야 한다. 나는 결코 천주자비와 신(新) 성신강림을 왜곡하려는 저들의 거짓을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내 주교들이 설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성 이데올로기 우상 앞에, 재혼의 우상 앞에, 내연관계의 우상 앞에, 나는 향 피우기를 거부할 것이다. 천주님의 은총으로 성과 혼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모든 진리를 배반하기보다는 고통 받기를 선택할 것이다.


증인들은 세상을 납득시키지만 교사들을 납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바오로 6세 교황은 “Evangelii nuntiandi”에서 말했다. 교회와 세상은 천주님의 계명과 의지에 관해, 혼인에 대한 그리스도 말씀에 대해, 그 전체적인 진리에 용기 있고 솔직한 증인이 되도록 긴급히 요구하고 있다. 성 이데올로기와 내연관계의 신 이교도 우상에 향을 피우는 현대판 바리새인 및 유대율법학자들인 주교와 추기경들은 그 누구에게도 그리스도를 믿게 하지도, 그리스도의 삶을 살으라고 납득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주님의 진리는 영원하도다. “-veritas Domini manet in aeternum” (Ps 116:2)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동일하시고 오늘도 같으시고 영원히 동일하시도다.“ (헤브레야 13;8)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 8:32)


성과 혼인에 관해 게시되고 변화되지 않고 전승된 천주님의 진리는 영혼을 교회 안으로 혹은 교회 밖으로 보낼 자유를 갖고 올 것이다. 교회 위기 및 그 당시 몇몇 주교들의 도덕적 해이와 교리이탈에 대해서 성 어거스틴은 순수한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위안을 주고 있다.”주교들이 무엇을 했다하더라도 너희는 안전하니, 너희에게는 성부로서 천주님과 모후로서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Contra litteras Petiliani III, 9, 10).


+ 아나타시우스 슈나이더 성 마리 대교구 보좌주교(아스타나, 카자흐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