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성비오10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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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봉재기간(사순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3-24



열렬한 봉재시기

A Fervent Lent - Source: District of the USA


우리는 신비로움이 풍성한 봉재기간을 가능한 한 신성하게 보내야 함을 확신합니다.  교회는 모든 축일 가운데 가장 크게 묵상과 희생을 바칠 시간으로 봉재기간을 설정해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녀들의 신앙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이를 끌어들이고, 신자들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보속이라는 영성적인 일을 하도록 격려합니다.


봉재의 신비




왜 40일인가?


천주께서 인간을 조성하시고 죄된 인간에 대해 극히 실망과 후회를 하셨을 때 오직 한 가정만을 남기고 주님의 분노 가운데 보낸 모든 인류를 멸망시킨 노아의 대홍수가 40주야(晝夜)임을 기억합시다. 히브리사람들이 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저들의 불충 속에서 벌 받은 가운데 어떻게 사막에서 40년을 방랑했는지 생각해봅시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져오는 포위의 인물로서 에츠키엘의 오른쪽에 40일을 놓으라는 천주님의 명령을 들어봅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천주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자신을 굴복시키고 40일을 택하시어 단식의 고통을 하신 그분을 생각합시다.


죄에 대해 희생을 바치는 온 교회


그래서 봉재시기를 제정한 것은 이런 숭고한 성격과 천주께 탄원하고 우리 영혼을 정화 시키는 힘을 가지며 우리 영신에 감명을 주는 모든 것과 함께 우리 앞에 온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작은 세상을 뛰어넘어 보시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에 상처받은 천주님의 위엄에 대해 보속의 희생으로서 40일간의 희생을 드리는 온 그리스도인 세상이 어떠한지 살펴보십시오. 바라건대, 니느웨 사람들의 경우처럼, 천주님은 금년에 드리는 우리 죄에 대한 우리의 보속과 용서를 자비롭게 받아드리실 것입니다.


봉재: 그리스도인의 전쟁


봉재 날의 수는 거룩한 신비입니다. 40일간 교회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빛 안에서 전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밤낮으로, 영적인 적과 싸우는 거대한 군대의 자녀들을 생각합니다. 재의 수요일 날, 어떻게 봉재기간을 그리스도인의 전쟁이라 부르는지 기억합시다. 알렐루야를 우리가 한 번 더 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기 위하여 우리는 세 가지적, 악마, 육신 그시고 세상을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세 가지 전쟁


우리는 예수와 함께, 그분을 위해 싸우는 동료 전투원이고 그분 역시 사탄에 의해 인성에 속한 주님에게 제시된 세 가지 유혹에 놓입니다. 그러므로 갑옷을 입고 무장하여 끊임없이 경계해야합니다. 우리의 영신이 영적으로 채워지고 용감해져야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반면에, 교회는 우리에게 천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와 자신감의 희망으로 겁쟁이조차 총을 쏘게 할 수 있는 천국의 군가를 줍니다. 그 군가가 성영(시편)90편입니다. 교회는 전체 성영을 봉재 후 첫 번째 주일미사에 넣고, 매일 이 성영구절 몇 개를 평일의 미사에 소개합니다.


성영 90


교회는 우리에게 방패로서 천국에 계신 성부께서 우리를 감싸는 그 보호에 의지하라고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날개 아래에 희망을 두고 주님에 대해 신뢰를 두라하니, 왜냐하면 주님은 천주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자유를 사탄이라는 사냥꾼의 올가미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거룩한 천신의 구원에 의지하려하니, 천신들은 우리의 형제들이요,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우리를 항상 보호할 책임을 주셨고, 주님을 유혹하라는 사탄을 허용했을 적에 그 전쟁을 목격하고 주님이 승리하신 후 주님께 다가가서 섬김과 경의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교회가 준 이러한 감성에 푹 빠지도록 합시다. 6주 기간 동안에 위대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는 이 계절에 그리스도의 군사가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묘사하는 이 경탄할 만한 찬미가를 반복합시다.


묵상해야할 세 가지 주제


교회는 우리 앞에 세 가지 주제를 놓는데, 이 주제들은 교회가 이것과 위대한 부활절의 숭고함 사이에서 우리에게 점차 펼쳐 보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을 자극하고 교훈적인 것에 주목하도록 합시다.


1. 주님을 거역하는 시나고그(유대인 회당)


먼저, 우리의 구원자를 거역하는 유대인의 음모가 있습니다. 초기 시작과 성 금요일 최종 완성 때까지 전 역사에서 우리 앞에 놓이게 되는데, 성 금요일은 우리가 천주성자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실 때를 보게 될 때입니다. 시나고그의 악명 높은 작업들은 너무나 규칙적으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되는데, 모든 세부 사항에서 그 음모를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천주이심을 보여주시는 그분의 온유, 지혜 그리고 고결함을 가지신 위엄 있는 희생에 대한 사랑을 불타게 됩니다.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시작된 천주님의 드라마는 갈보리에서 끝납니다. 봉재기간 동안에 교회가 우리에게 읽게 한 복음 구절에 관해 묵상함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2. 성세: 새로운 탄생


교훈을 우해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째 주제는 부활절 축일이 어떻게 우리의 교리문답에 있어서, 그리고 초대 교회 시대에서 새로운 탄생의 날이 되는지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을 요구합니다. 봉재 시기는 성세 후보자에게 주어지는 즉각적이고도 숭고한 준비입니다. 현 시즌의 거룩한 전례는 교회가 교리문답에 주었던 교훈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교회의 훌륭한 교훈을 우리가 듣듯이, 교회는 시작을 완성하고, 천주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수년을 어떻게 기다릴 필요가 없는지에 대해, 오히려 아주 어린 시절에 자비롭게 성세를 받게 된 점에 대해 우리는 고마움을 가지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교리문답에 대해 기도하게 될 것이고 바로 올해,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열정적인 사제들로부터 지시사항을 받아드리며 초창기 교회의 지망자들이 한 것처럼, 죽음을 이기신 우리 구세주의 승리의 장엄한 축일 고대하게 됩니다. 그리고서, 그들은 성세(聖洗)의 물로 깨끗해지게 되며 새로운 존재, 재탄생을 접하게 됩니다.


3. 죄에 대한 보속


셋째로, 예전에 어떻게 공개적인 (재의 수요일 날 신자들로부터 따로 분리된) 회개자들은 봉재 40일 동안에 모후 교회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만약 저들의 회개가 이 공개적인 용서에 공로가 된다면 세족식이 있는 성 목요일에 화해가 허락되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찬탄할만한 교훈 과정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본래 회개자들에게 의도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었던 것처럼 저런 전례와 신자들이 우리를 위해 있게 됩니다. 성경의 숭고한 구절을 읽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죄에 대해 생각해야하고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쉬운 용어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시대에 살았더라면, 공개적이고도 심각한 보속이라는 시련을 거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점은 우리가 열심을 내게 한다는 자극을 주니,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은, 교회의 사면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이던 간에 교회는 훈련하게 만들며 천주님의 정의는 예전과 같다는 것입니다.

봉재 기간의 실천




보속의 40일 기간 동안에, 우리의 연약한 봉성에 비추어보아 길어 보이지만, 우리는 우리 주님의 무리를 빼앗기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주님의 사례


같은 예수요, 우리의 임마누엘이지만 우리가 경배한 강보에 계신 귀여운 아기의 모습 아래에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성년(成年)으로 성장하셨고 죄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분은 우리가 상처를 준 그분 앞에서, 구속의 희생자로서 자신을 드린 최고의 위엄이신 천주성부 앞에서 떨며 겸손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형제애로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속을 행하면서 그 계절이 시작됨을 보십니다. 현존과 모범으로써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오십니다. 우리는 40일을 단식과 금육, 보속으로 보내게 되고, 본래 자체가 무결하신 예수님은  같은 보속을 행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멀리하고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우리는 다른 시기보다도 더 천주님을 열심히 섬기고 열정적으로 기도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간청하시는 분이요 우리 모두를 위해 탄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과거의 죄를 생각하고 큰 슬픔 속에서 울부짖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 고통을 받으시고 사막에서 침묵 가운데 우리를 위해 우십니다.


사막에서의 40일


세례자 요한 성인으로부터 성세를 받자마자, 성신은 주님을 사막으로 이끄셨습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 왔습니다. 엄청나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성인다운 선구자 모습이요, 주님에게 내려오신 성신을 보고 너는 천주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언하시는 성부의 소리를 들은 경탄해하는 군중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울퉁불퉁한 산은 요르단에서 그리 멀지 않고 솟아있습니다. 콰란타나(Quarantana) 이름이란 그 시대 이후 받은 것인데 여리고(Jericho), 요르단, 사해의 비옥한 평원을 바라보는 멋진 경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주성자는 거친 산에 있는 동굴로 지금 들어갑니다. 그분의 유일한 동료는 이 똑같은 동굴을 거처로 삼은 귀머거리 동물들입니다. 허기가 급히 일어남을 만족시킬 음식도 없습니다. 메마른 바위만이 물 없이 그분을 복종합니다. 그리고 오직 돌만이 그분의 침대입니다. 이곳에서 40일을 보낼 예정입니다. 40일 이후 그분은 천신의 방문을 허락하여 음식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 40일은 모든 피로와 고난을 낳고 우리가 봉재의 보속이라는 좁은 길을 밟으라는 소명을 우리가 받게 될 때, 변명과 궤변 그리고 자기 사랑과 교만이라는 혐오감을 침묵하게 만드는 그분의 사례를 가지게 됩니다. 이곳의 교훈은 너무 오해되기 십상입니다.


너희는 죽으리라!


죄에 대한 보속을 행하는 계명은 또한 분명히 보여지고 있으며, 무지를 탄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가르침을 정직하게 받아드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40일간 보낸 사막을 떠나 예수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모든 이들을 가르칩니다. “보속을 행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마테오4:17)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이 초대를 받아드려서 우리 구세주의 다른 말씀에 담겨있는 끔찍한 경고가 우리 안에서 실현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회개(보속)을 행하지 않으면, 너희는 반드시 망하리라.”(루까 13;3)


무엇이 보속인가?


보속은 영혼의 통회와 육신의 고행으로 구성되는데 이 두 가지는 보속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영혼은 죄를 짓고자 하며 육신은 이러한 일에 자주 협력하게 됩니다. 또한 인간은 영혼과 육신 두 가지로 구성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는 창조주이신 그분께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육신은 천국의 기쁨이나 지옥의 고통 가운데 하나를 영혼과 함께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함께 육신의 몫을 감당하지 않는 곳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또는 진지한 보속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점


그래도 보속에 실제를 주는 것은 영혼입니다. 복음서는 방탕한 아들의 사례, 막달레나의 사례, 쟈케오(Zaccheus)의 사례, 성 베드로의 사례로부터 끄집어내어 이를 가르칩니다. 그러면 영혼은 모든 죄를 포기하도록 굳은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영혼은 저지른 이러한 모든 죄를 진정으로 슬퍼해야합니다. 영혼은 죄를 미워해야하고 죄의 기회도 피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내부적인 경향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 세계에 의해 채택이 되었고 죄로부터 멀리 떠난 영혼의 상태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봉재 기간에 모든 자기의 봉재 실천의 필수적인 기초로서 이 영혼의 회개를 하도록 분발해야 해야 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육신의 고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고행을 실천하지 않는 곳에서는 이 영적인 보속이 단지 환영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죄에 대해서 슬퍼하시고 우신 구세주에 의해 주어진 사례를 연구합시다. 주님 또한 육신의 고통을 받음으로써 저들을 구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이신 천주님의 뜻을 무오하게 해석하는 교회는 금식과 절제가 동반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회개는 받아드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기도


금식과 절제를 봉재기간에 행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용기 있게 지키는 것은 이들 두 개의 탁월한 선행, 천주께서 성경에서 너무나 자주 우리에게 주장하신 기도와 기부행위에 의해 동반되어야만 합니다. ‘금식’이라는 용어 하에 교회는 고행이라는 모든 종류를 구성하는 것처럼, ‘기도’라는 단어에서는 교회는 경건의 모든 실천을 포함하는데, 그리하여 영혼은 천주님과 교통합니다. 이러한 실천들은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영적인 독서와 정보를 익히며, 영원한 진리와 주님의 수난에 대해 묵상하고 강론을 듣고 특히 고해성사와 성체성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비의 행위


자선 기부행위는 우리 이웃을 향한 모든 자비의 일을 구성하고 거룩한 교회 박사들에 의해 무명으로 할 것이 권장되는 것으로서 봉재기간 금식과 기도에다가 필요한 보완인 것입니다. 천주께서는 이를 계명으로 만드시고 저 자비는 우리 이웃, 동료를 향한 것이며 우리 창조주를 기쁘게 할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이 행위는 천주께 행한 것 같이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천주께서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현실과 신성함을 묶어주는 그 존재를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을 이것이 아주 생생하게 우리 앞에서 가져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너무나 큰 사항이기에 천국에 계신 성부께서는 자비를 베풀기 거부하는 그런 마음의 사랑은 받아드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면에, 참된 것으로서 그리고 동료에게 보여준 자비의 행실을 행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비를 천주께 행한 것 같이 받아드리십니다. 이 자비는 모든 사람을 천주님을 아버지로서 섬긴 한 가정이 되게끔 만드는 저 숭고한 일치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기부행위는 인간의 친절한 행위뿐만 아니라, 저들의 직접적인 행위로써 천주님과 함께 신앙 행위의 고결한 행동으로 들어 올리고 저들은 천주님의 정의를 가라앉히는 권능을 갖습니다. 


 대천신 라파엘이 토비아에게 행한 권고를 생각해 봅시다. 라파엘 대천신은 이 거룩한 가정을 떠나 천국으로 막 귀환하려는 때에,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황금을 쌓아드는 것보다 금식과 자선이 함께 될 때 훌륭하니, 왜냐하면 자선은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살려내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는 것과 같으며, 자비와 영원한 생명을 만들게 한다.”(토비아 12장8-9) 집회서에도 이러한 덕행을 권고한다. ”물은 타오르는 불길을 끄고, 자선은 죄에 저항한다.“(집회서3:3)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닫지 말라. 모든 악에 대항하여 이들에게 도움을 얻으리라.   “(집회서29장 15절) 그리스도인은 항상 이러한 위안을 주는 약속을 마음에 두고 지키도록, 특히 봉재기간에 해야 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이들에게 보여 주어야하니, 가난한 이들은 일 년 내내 금식이요, 자기 개인 재산조차 팔 때가 있습니다. 봉재 때 신자들이 지켜야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절약해서 나옵니다. 절약한 것을 나자로(거지)에게 줍시다. 일 년 중 다른 시기에 풍요롭고 맛있는 식탁을 제공하기 보다는 분명히 이 거룩한 계절의 자선 정신에 반대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때에 천주께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어울리는 수단으로 우리가 모든 위안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히 살펴보아야할 것은 보속과 자선의 이 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부자가 어려움 속에서 나누어 주는 비율에 따라서 어려움을 겪는 형제들에게 떼어준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훨씬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참으로 아름다운 형제애를 가진 가난하고 부자인 이들이 이 40일 봉재 기간이 끝난 후 예수께서 우리를 초청하여 우리의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파스카 축일 만찬에서 만나게 됩니다.

세상과의 분리


봉재의 위대한 은총이 우리 자신에게는 안전하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은퇴 정신과 세상으로부터 분리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생활은 나머지 여생동안에 그렇듯이, 보속이라는 거룩한 기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의 수요일의 거룩한 의식으로 인해 생긴 유익한 인상은 곧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봉재기간에 그가 사는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헛된 오락, 즐거움 그리고 파티를 금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