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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 명의 추기경이 제출한 두비아(Dubia:의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08




네 명의 추기경이 제출한 두비아(Dubia:의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2017. 08. 09)


네 명의 추기경이 2016년 9월 19일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사랑의 기쁨>에 대한 해명(두비아)을 요청했다. 그들의 요청은 지금까지 답변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7월이 시작될 무렵, 두비아를 접수했던 뮐러 추기경은 신앙교리성의 장관으로 재 지명되지 않았다. (7월1일) 그리고 4명 중 한 사람이었던 마이스너 추기경은 선종했다. (7월5일)


미디어는 상기시킨다. “두비아는 상반된 반응들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예수회 저널 Civiltà Cattolica의 감독이며 교황의 측근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는 2014년과 2015년 시노드 중의 답변후로는 어떤 논쟁도 없을 것이라 믿었다. Roman Rota의 학장 피오 비토 핀토 신부는 네 추기경은 공개적으로 한 것에 대해 차후에 값을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몇몇 평신도들과 성직자들과 심지어 몇몇 추기경들은 두비아를 지지하고 의문을 던지는 데 동참했다. 따라서 교황청 설립 Cor Unum 위원회의 명예 수장인 폴 요세프 코르데스 추기경은 의문들은 합당한 것이며 반응들은 ‘균형을 잃은’것 이라고 했다. 교황청설립 정의와 평화 위원회의 전 수장인 레나토 마르티노 추기경은 두비아에는 ‘나쁜 점이 없다.’고 하며 ‘교황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교의적 측면에서 합당하며 응답하는 것이 정당하다.’라고 했다.


두비아가 쓰여진 지 7달 후인 2017년 4월 25일, 4명의 추기경은 교황에게 공개적으로 알현을 요청했지만 이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2016년 11월 14일 두비아를 출판했던 Vaticanist Sandro Magister는 계속 거절당하는 알현을 요청하는 문서를 또 발행했다. 추기경들의 정당한 걱정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이 나온 지도 어느새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공적으로 주어진 시노드 후속 권고의 몇몇 모호한 부분들의 해석들은 서로 다른 형태가 아니었고 오히려 영속적인 교도권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신앙교리성성의 수장이 교의는 변하지 않았다고 반복하여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교들, 추기경들, 심지어 주교회의의 개인적인 수많은 발언들은 교회의 교도권이 결코 인정하지 않은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지 객관적이고도 공적으로 중대한 죄 중에 있으며 계속 죄 중에 있고자하는 이들의 성체성사에 대한 접근 뿐 아니라, 교회 전통에 반대되는 도덕관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 이를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 폴란드에서 죄인 것이 독일에서는 죄가 아니고, 필라델피아 대교구에서 금지된 것이 말타에서는 허용되었다. 이는 블레이즈 파스칼의 쓰라린 관찰을 상기시킨다: ‘피레네 한쪽에서의 정의가 반대쪽에서는 불의이고; 강 왼편에서의 정의는 오른편에서 불의다.’


교회를 깊이 사랑하며 사도좌에 충실한 다수의 유능한 평신도들은, 혼인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 안에서 공고하기 위하여 사목자들과 교황 성하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각지에서 온 여섯 명의 평신도들은 성황리에 ‘명확함을 끌어내다(Bringing clarity)’라는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런 중대한 상황에 직면하여 갈라진 많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가운데 우리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며 우리의 양심은 우리에게 존중하고 정중하게 알현을 청하도록 요구한다.”


이 요청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집 센 침묵은 로마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6월 20일, Nuova Bussola quotidiana에서 리카르도 카시올리는 “침묵, 이해할 수 없는 자세”라는 글을 썼다.


“교황은 심지어 추기경들에게 어떤 기색을 보이지도 않고 있으며, 알현을 요청하는 편지에도 응답이 없다: 나는 이것이 적어도 요 몇 세기의 교회역사 가운데 전무후무한 것이라 믿는다. 이 침묵은 수많은 전화들, 편지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허락하는 온갖 부류의 많은 사람들과의 알현을 생각할 때 더 무겁다.


이를 개혁 계획의 걸림돌로 간주되는 추기경들에게 모욕을 안겨 주고 굴욕감을 주려는 태도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태도에 대한 이유는 납득할 수 없다: 물론 교황은 4명의 추기경에게 반대할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사랑의 기쁨>과 여러 해석들의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그들의 주장을 소화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그들에게 열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왜 완전히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는가?


어느 추기경이라도 교황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교황과의 만남 요청에 대한 답변에 대한 권리조차도 갖고 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는 상기시킨다:

“이보다 더한 것은, 불편함을 더하기 위해, 두비아에 서명한 주교들에 대한 교황의 경멸적 태도는 그의 모든 설교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최근 성직자성과의 알현에서(6월 1일) 그는 그들의 사제들과 가까운 주교들을 격려했다: ‘얼마나 자주 내가 사제들의 불만을 들었는가. – 나는 여러 번 언급했고 아마 들었을 것이다. - 나는 주교님을 찾았고 그분은 안 계셨다. 비서는 주교님께서는 거기 안 계시다고 했고, 나는 약속을 요청했다. 그분은 3달째 약속이 꽉 차 있다... 그리고 그 사제는 주교로부터 떨어졌다.’ 그러나 주교님, 만약 비서가 남긴 전화 목록에 한 신부가 전화를 걸었고 일정이 가득 찼다면 그 당일 저녁이나 그 다음날에 전화를 하고 상황을 알려주고 긴급 여부에 상관없이 함께 사안을 평가하십시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제가 자기 가까이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가까움입니다. 교구를 가까움 없이 다스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주교의 아버지의 친밀함 없이 사제 양성과 성화를 할 수 없습니다.”


리카르도 카시올리는 질문으로 결론을 내린다: “만일 주교들이 그들의 사제들과 가까워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면, 교황도 마찬가지로 그의 추기경들, 주교들과 그래야 하지 않는가?”


같은 날, 6월 20일 로베르토 데 마테이라는 역사가는 Correspondance Européenne 에서 “침묵의 스캔들”이라 비난했다.


“교황의 협력자들이 사적 알현을 요청하고, 그들의 요청에는 발언의 자유와 동시에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교회분열에 대한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스캔들이나 반역은 없다. 스캔들은 베드로의 후계자가 그에게 요청하는 이에게 귀 기울이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Santa Marta에서의 첫 강론들에서(2013년 5월 25일) ‘도움을 요청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닫힌 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환영’이 그의 재임기의 ‘트레이드마크’이기를 원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언자로서 그들의 의무를 다하려는 추기경들의 알현이 거부되어야 하는가?”


“추기경들의 발언은 자식과 같고 존중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들의 의도가 사적 알현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계획에 더 나은 ‘식별’을 구하려고 함이며, 마침내는 성좌(聖座)에 대한 사랑 안에서 성하께서 수정하시도록 말씀드리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침묵은 그들의 관점에서 완강하고 무례하지만 그의 집요함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결정을 내리고 전진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표현한다. 납득할 수 없는 알현의 거절로 사적인 수정이 불가능함을 본다면, 추기경들이 교회의 침묵이 그들의 말보다 더 커지기를 원한다면, 추기경들은 이제 굳은 결의로 그들의 길을 가야한다.”


7월 15일에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6년 두비아에 서명했던 4명 중 하나이며 2017년 알현을 요청했고 7월 5일에 선종한 요아킴 마이스너 추기경의 장례식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미 교황좌에 오르기 직전 2005년에 사용했던 “사방에서 물이 들이치는 배”의 이미지를 반복하며 교회의 현 상황을 암시했다:


“우리는 이 열정적인 탁덕이며 사목자가 그의 후임을 남기는 것의 어려움을 이해했음을 안다. (2014년 쾰른의 대주교로서) 특별히 그 시기 교회는 시대정신의 독재에 저항하고 단호하게 신앙을 살고 생각하는 목자들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나를 움직였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이었다. 그는 배에 많은 물이 들이쳐 전복 직전까지 간다 해도 주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깊은 확신으로 살았다..”


“시대정신의 독재에 저항”, “단호하게 신앙을 살고 생각하는”, 그리고 “배에 많은 물이 들이쳐 전복 직전까지 간다 해도 주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같은 문구들은 베네딕토 16세가 간접적이며 신중하게 두비아의 저자들이 했던 일들을 지지하고 있음을 믿게 했다.


두비아 3달 전, 호주 대학교의 교수는 두비아의 오류에 강한 대응을 요구했다. 4월 22일, 로마에서 “<사랑의 기쁨>의 명확화”라는 주제로 국제회의가 있었다. 안나 M. 실바스라는 교수는 추기경들에게 행동의 기반을 인간의 현명함에 두지 말고, 초자연적인 현명함에 두라고 따뜻하게 그들을 초대했다.


“추기경들의 교황님께 대한 형제애적인 수정 권고는 여전히 가능성인가? 우리는 지난 11월 이를 들었고 그것은 확실히 우리의 포위된 기분을 높여 주었다.


그러나 4월의 끝자락인 지금,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다. 나는 그저 셰익스피어를 떠올릴 뿐이다: ‘인간사에는 때가 있다...’(줄리어스 시저, 4막), 나는 때가 오고 가는지, 우리 평신도들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버크 추기경은 최근 말했다: ‘이 질문들이 답해질 때까지, 교회 안에 매우 해로운 혼란이 계속 퍼질 것이다. 근본적인 질문들 중 하나는 진리와 관련하여 언제나 어디에서나 잘못된 어떤 행위들, 우리가 본질적으로 악한 행위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추기경들은 이런 솔직한 질문에 대한 응답을 얻도록 계속 주장 할 것이다.’ “친애하는 추기경님들! 나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현명함은 적절한 시기에, 용기 있는 증거들을 당신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증거의 또 다른 이름은 치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