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르페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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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0년 전 생존 작전: 주교성성에 얽힌 이야기(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30



30년 전 생존 작전: 주교성성에 얽힌 이야기(1)


 

주교성성 발표


전직 전교자이자, 다카르(Dakar)의 대주교로 재직한 후, 툴(Tulle)의 주교와 6년간 성신회를 맡았던 마르셀 르페브르(Marcel Lefebvre) 대주교가 1969년 성비오10세회(SSPX)를 창립했을 때, 그는 이미 은퇴의 나이에 도달하였다. 1905년 11월 20일에 태어나 이 세상을 여행한 대주교는 노년기의 연약함과 전적으로 교회에 헌신적인 삶의 피로 때문에 자주 병에 걸렸다. 그의 일에 있어서 무엇이 되어야하는지의 문제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76년에 그에게 주어진 성무정지 이후에, 이 "강철 주교"는 아주 혼자였다. 브라질의 유일한 주교인 캄포스(Campos) 교구의 안토니오 데 카스트로 메이어 주교(Antonio de Castro Mayer) 주교만이 공개적으로 대주교와 같은 편에 섰다. 1983년에 이 두 명의 주교들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법 오류가 교회 내에서 초래하고 있는, 특히 1983년 1월 25일에 행한 교회법의 새로운 법령의 공표와 더불어 점점 더 심각한 결과를 비난하는 주교선언을 함께 발표했다.


그래도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984년 7월 4일, <혼란스러워하는 가톨릭 신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결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죽고 나면 나를 대신할 주교가 없으니 내가 하는 일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들 한다. 내가 확신하지만, 그 정반대다. 그런 이유로서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겠지만, 주님은 좋으신 분이시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우리 신학생에게 신품성사를 베풀어 줄 주교가 세상에는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럴 것임을 안다.


잠시 동안은 주께서 침묵하시겠지만, 때가 되면 그런 주교 중에서 한 두 명이 분발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성신께로부터 받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천주님의 것이면 친히 인도하시어 교회를 위해 쓰시리라. 우리 주께서 약속해 주시기를, 지옥의 문도 감히 교회를 처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마 16:18)


 내가 이 책에서 말한 것과 같이 주장하는 이유, 내가 주장하는 뜻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은가?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진정한 이유다. 내가 죽게 되어 우리 주께서, “주교직에 있으면서 그대가 한 일이 무엇이며, 주교직과 사제직의 성총을 받으면서 그대가 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나를 문초하실 때, 당신 입에서 '그대는 정녕 다른 이들을 도와 교회를 파괴시키는 데 동참했음이 틀림없도다.' 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함이다.


그러나 4년 후, 대주교는 4명의 주교를 성성하여 자신의 후계자가 되게 함으로써 사제직의 회복과 전통 보존이라는 자신의 일이 살아나게끔 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극히 불가피한 상황


사실, 교회의 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인정해야했다. 1985년의 시노드(Synod)는 20년 후 "더욱더 살아있는 현실" 이라는 2차 바티칸 공의회로 만들겠다는 로마당국의 의지를 확인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와 카스트로 메이예르(Castro Mayer) 주교가 8월 31일에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에게 보낸 경고소리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들의 편지에서, 두 명의 고위 성직자는 종교 자유에 관한 공의회 선언의 독소적인 결과를 비난했다: "국가의, 심지어 가톨릭 국가의 종교적인 무관심", "교회치교권 및 특히 비오10세(Pius XI) 회칙 Mortalium Animos에 의해 견책된 에큐메니즘" 이라는 모든 개혁은 유대인, 공산주의자, 프리메이슨과 같은 교회의 이단자, 신자유주의자, 거짓 종교를 기쁘게 하고, 교회의 적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교회 내에서 20년 이상 동안 수행되었다."


성 아타나시우스의 상징, 라테란과 트렌트, 1차 바티칸공의회, 교서요목(Syllabus –교황 비오 9세, 10세가 지목한 이단) 등과 같은 교회의 교치권 중에서 가장 엄숙한 문서로 무장한 프랑스 대주교와 브라질 주교는 감히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편지를 쓴다: "성하, 성하의 책무는 교성직자와 신자들을 이단과 분파로 이끌어가는 이 새롭고 잘못된 교회 개념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하의 권위 하에 있는 ​​시노드가 이 방향으로 지속된다면, 성하께서는 더 이상 선한 목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편지의 저자들은 "교회의 거룩한 전통에 인내하고, 가톨릭교회에 성직자가 충실하도록 교회에 필요한 결정이 무엇이든 간에 취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천주섭리로 부터의 표시: 아씨시의 추문


 다음 해는 아씨시에서 최초의 종교간 회의였는데,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10월 27일 유엔이 정한 세계 평화의 해를 위해 종교간 회의조직을 주도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이 모임을 사기(詐欺)라고 비난했다.


이 일이 일어나기 2개월 전, 대주교는 8명의 추기경에게 절박한 호소문을 썼다. 그는 "지금 베드로의 성좌에 앉으신 분은 신경의 첫 번째 항목과 십계명(Decalogue)의 첫 번째 계명을 공개적으로 조롱합니다." 실제로, "구원의 유일한 방주인 교회의 신앙이 사라지면, 교회자체가 사라집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유일한 교회와 동등한 발판위에 거짓된 숭배(밀교)와 거짓 종교를 배치함으로써 가톨릭 신앙을 파괴하는 이러한 공개적인 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아씨시라는 도시는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성화된 곳이기도 하다.


이 스캔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예를 들어 4월 13일 로마에서 유대인 시나고그(회당)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주도(이니셔티브) 이후에 나온 것이다. 르페브르 대주교와 카스트로 메이예르 주교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모여 1986년 12월 2일에 선언했으니, 이 선언문은 예전의 가톨릭 치도권을 깨트리는 "이 현대주의 공의회 로마가 이끄는 현대주의자와 종교의 자유"를 비난했다.

 

천주섭리로부터 오는 또 다른 표시: 정당화된 거짓종교의 자유


1987년 3월 9일, 신앙교리성성장관이었던 조셉 라칭거(Joseph Ratzinger) 추기경(후일 베네딕토 16세)은 르페브르 대주교(Lefebvre) 대주교가 1985년 10월에 제출한 ‘종교의 자유에 관한 연구’ 접수를 인정했다. 모든 시대의 치교권과 새로운 치교권 사이의 파열이 따르고 확인된 편지의 교환이었다.


대주교는 1987년 6월 29일 에콘(Econe)의 사제서품식에서, "로마가 어둠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사제직이 이어지도록) 몇 명의 계승자(주교)를 성성할 것입니다. 현재 로마는 더 이상 진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대주교는 자신의 일이 국제적인 규모에 도달함에 따라 신학생들을 고아로 버려 둘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주교는 현대주의, 아씨시의 정신과 거짓 교리에서 모두 승리한 가톨릭 세계의 주교들로부터 어떤 반응도 없었던 것을 보았다. 그는 작년이 ​​가톨릭교회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한 해였으며, 가톨릭교회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필요한 행동으로 옮길 "천주섭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표시"가 이 안에 있음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


사실, 그는 두 가지 징후가 분명히 천주님의 뜻을 보여 주었다고 확신했다: 아씨시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거부에 대한 답변이 그것이었다.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있어서 "이차 바티칸공의회의 잘못된 종교 자유를 우리가 반대한 것에 대한 로마에서부터 답변은 아씨시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씨시는 역사적인 사실이며 행동이다. 종교 자유에 대해 우리가 반대한 것에 대한 응답은 저들의 원칙을 확인한 것이므로 매우 중대한 것이다. 그것은 엄중하고도 악한 표양을 수행하는 것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실제에 있어서 처참한 결론을 내리는 거짓되고 잘못된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라고 강조했다.


1987년 7월 8일, 라칭거 추기경은 로마당국으로부터 받은 답변을 반박하는 연구를 추기경에게 보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치교권에 관한 지극히 숭고한 문서인 the Syllabus, Quanta Cura, Libertas Praestantissimum에 언어도단으로 모순되는 Dignitatis Humanae 선언을 옹호하는 이 고집스러움에서 자신이 황당함을 표현했다. 대주교는 새로운 교도권에 의해 야기된 파열음에 대해 "천주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사 앞에서"의 책임을 주장했다. 대주교는 6월 29일 에콘(Econe)에서 선언한 내용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서한을 결론지었다. "전통을 말살시킬 (로마의) 영구적인 의지는 자살의 의지인데, 이 의지는 교회의 생존과 영혼의 구령을 위해 필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 참되고 충실한 가톨릭 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몇 년 후 르페브르 대주교는 초기 입장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스캔들(악한 표양)과 점차 증대되는 배교에 대한 아무런 반응이 없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후에는 가톨릭 사제직의 양성과 복구라는 자신의 사업이 영(zero)에 가까워지고 있을 가능성이 증대됨을 보았다. 그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되는 천주섭리로부터의 많은 신호를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86년에 아씨시(Assisi)의 추문(악한 표양)이었고, 1987년에는 종교 자유에 관한 새로운 교리가 확정되었다.


거의 82세의 나이에,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자신의 신학생들을 고아로 두지 않을 것이며, 가톨릭 사제직을 지키기 위해 후계자(주교)들을 성성하겠다고 세상에 선언했다. 이미 83 세가 넘은 카스트로 데 몌이예르(Bishop de Castro Mayer) 주교는 – 1904년 6월 20일 태어 났다 – 대주교가 행하려한 이 중요한 행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청에서 반응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예기치 못한 발전이 있었다.


Source: FSSPX.News – 6/26/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