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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0년 전 생존작전: 주교성성에 얽힌 이야기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8-21



30년 전 생존작전: 주교성성에 얽힌 이야기 (2)

(June 26, 2018/By fsspx.news)


해결의 서광


1987년 7월 28일, 라칭거 추기경은 7월 8일자 르페브르 대주교의 서신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생존과 발전을 위한 수단'을 전달하여 전통을 보호하고자 하는 대주교님의 큰 열망은 당신이 항상 영속적인 신앙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지만, 이는 오직 신앙의 유산과 교회의 체제를 위임받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와의 친교에서만 실현됩니다. 교황성하께서는 대주교님의 염려를 이해하시며, 또한 이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으로 나는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대주교님이 마음에 지고 있는 문제들의 합의에 대한 최종 가능성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 비오 10세회와 신학교들의 교회법적 지위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제안은 성 비오10세회에 성청(바티칸))이 (성성할) 보좌주교들을 허락하게끔 할 수 있는 적절한 관할 체계를 주려는 의도였다. 만족할만한 관할 형식을 찾기 위하여 방문 추기경이 즉시 지명될 것이었다. 다만 성 비오 10세회의 장상과 회원들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25항에 제시된 기준에 따라 베드로의 후계자에 대한 공경과 순명을 표명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로마는 “정당한 자치권과 1962년의 전례서에 따른 전례를 계속할 수 있는 보증, 성 비오 10세회만의 종도직에 따라 자체적으로 신학생들을 양성할 수 있는 권리와 사제 후보자들을 서품할 권한을 양보할” 준비되어 있었다.


 이는 작은 양보가 아니었다. 물론, 제안의 목적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하나 또는 다수의 보좌주교들을 교황의 허가 없이 성성하여 “결정적 단절”을 범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서한은 계속하고 있다. 라칭거 추기경은 대주교가 그의 사역의 파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중대한 불순명으로써 교회의 일치에 주게 될 헤아릴 수 없는 손해에 상응하는 것을 경고했다.


 결코 섭리를 앞지르지 않는 그(대주교)의 습관에 충실하면서 총장상 슈밋버거 신부가 이끄는 의회와 함께, 르페브르 대주교는 제안의 손길을 잡기로 결정했다. 그는 환상이 아니라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작은 희망


1987년 10월 1일, 르페브르 대주교는 추기경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여러 차례 “해결의 서광”에 대한 그의 희망을 표출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특별히 로마가 예비 선언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선언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완전히 가톨릭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 준다.” 대주교는 그의 사역과 전통의 생명력을 그의 눈으로 직접 보고자 온 추기경의 방문에 기뻐했다. 그는 1962년 전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보장되었다는 사실과, “우리 신학생들이 지금 행하는 사제양성을 계속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데 환호했다. 대주교는 방문할 추기경으로 에두아르 가뇽 추기경을 강하게 제안했다. 성청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교황청립 가정 위원회의 가뇽 추기경이 사도 방문자로 지명되었다. 11월 11일과 12월 9일 사이의 가을에 가뇽 추기경은 몇몇 신학교들, 사목구들, 지역 관구들과 학교들을 방문하고 사제들, 가정들과 신학생들, 수사들과 수녀들을 만났다. 그는 방문하는 곳마다 그곳을 감싸는 깊은 가톨릭적인 분위기에 고마워했다.


 10월 3일, 르페브르 대주교는 에콘에서 있었던 주교성성 40주년 기념 강론에서 앞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가능성에 관하여 설명했다. “과장된 낙관”에 빠지는 게 아니라 “작은 희망; (…) 만일 로마가 진정 우리에게 참된 자치를 준다면, 현재 우리가 지금 지니고 있지만, 복종으로 원할 것이며, 우리는 언제나 교황 성하의 통치를 갈망해 왔습니다. 이는 교황 성하의 권위를 무시하는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밖으로 내던져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전통주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종종 요청드렸듯이, 만일 로마가 우리에게 전통의 실험을 하게 한다면, 더 이상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역을 최고 통치자인 교황의 권위아래 계속하게끔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큰 열망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제들과 신자들이 “좋으신 주님께서 우리가 교회의 정립과 영혼 구원에 공식적이고 자유롭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려 주십사 요청했다.


 이 정신으로, 르페브르 대주교는 가뇽 추기경에게 교회법적 정리에 대한 제안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성 비오 10세회의 교회법적 인정에는 동의했지만, 공의회의 개혁과 타협하는 데는 반대했다.


 1987년 11월 21일 그의 서한에서, 대주교는 전통 계열의 커다란 가족은 “로마 교회와 일치하여,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과 일치하여, 하지만 분명하고도 강하게 수차례 성청에 의하여 단죄된 종교 자유와 에큐메니즘과 주교단체주의의 공의회정신, 그리고 아씨시의 정신, 현대주의와 자유주의의 열매들과는 떨어져서” 참된 가톨릭 분위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선언했다. “우리는 교황님께 있는 그대로 간주되며 교회 쇄신에 우리의 협력을 더하기 위해 영원한 도시에 자리를 마련한다는 데 기꺼이 동의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후계자로부터 떨어지기를 원했던 적도 없고 우리에게 닥친 시련들에도 불구하고 성좌가 비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로마와의 관계를 재통합하고 정상화하는 계획을 성하께 제출합니다.”


 제안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10)을 언급한 뒤 핵심적 조건을 표현하고 있다. 만일 성청이 공식적으로 우리가 그 권위아래 교회 쇄신의 협력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교회의 영속적인 가르침이나 성화(聖化)의 수단을 수정하도록 요구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분명히 필요하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로마 사무국이 전통을 유지하는 구상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확립될 것을 요청했다. 그 목적은 몇몇에게 주교직을 전수함으로써 전통의 사역을 정상화하고 지역 주교들과 조화로운 협력을 증진시키려는 것이었다.


 성 비오 10세회와 그에 연관된 다른 협력 수도회들의 교회법적 지위를 위하여 에콘의 설립자는 군대처럼 함께 비 관할권으로 그룹화 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처벌을 해제하고, 성 비오 10세회의 회칙을 인정하고, 그의 주교직 승계를 허락해 주십사 요청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인용했을 뿐 아니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군인 사목에 관한 교황 헌장(Spirituali Militum Curae)」에 나오는 기준을 들어 그의 의견이 전통 안에서 번성하는 다른 수도회들의 발전에 적절하리라는 법률적 협정을 제시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대주교는 성 비오 10세회 사제들, 그리고 다른 전통 단체들까지 로마로부터 총장상을 통하여 관할권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결론적으로, 르페브르 대주교는 1988년 4월 17일, 선한 목자 주일에 주교성성을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가뇽 추기경은 12월 8일, 에콘 신학교에서 여전히 대주교가 성무정지 상태임에도 공식적으로 르페브르 대주교가 집전하는 주교 대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사도 방문을 마쳤다. 그는 신학교 방명록에 그곳의 사역에 대한 찬사의 말을 남겼고 온 교회로 퍼져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몇 달 뒤, 1988년 2월 15일 추기경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긴 보고서와 제안을 주의 깊게 읽으셨다고 써 보냈다. 그는 교회법적 체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법률적이고 교리적인 과제가 “4월 막바지까지” 대주교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알렸다. 그는 “화해를 원하지 않는” 이들의 반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참을성 있고 신중해야 한다고 부탁했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기대


2월 20일, 르페브르 대주교는 우려를 담아 편지에 답했다. “해결책을 위해 선택된 절차는 분명 연장 될 것이므로 마땅히 피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성좌의 허가 없는 주교성성을 진행할 도덕적 의무를 지게 됩니다.” 그는 교황 성하께 제안했다. “차후와 연관짓지 않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된 전통의 실천에 대한 경험을 허락하는 임시적인 결정이라도 내려주시고, 교리적 문제들은 교회법적 해결 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1974년 세 추기경의 에콘 신학교 방문 이후 어둠속에 내버려진 것과 같지 않도록, 가뇽 추기경의 보고서는 읽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대주교는 가뇽 추기경에게 보내는 편지에 교황 성하께 드리는 편지를 첨부했다. 대주교는 편지에서 추기경의 방문에 깊은 만족을 표시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일어나는 희망을 꺾지 않도록 임시적인 해법을 주시도록 제안했다. “배제된 것으로 보이는 교리적 문제들을 다시 꺼내는 것은 벗어난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며 15년간 견뎌온 어려움들을 갱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협정 후 위원회가 개입한다는 생각은 진정 실제적인 해결책을 원한다면 가장 적절하다고 사료됩니다.”


확고하게, 대주교는 성 비오 10세회가 “교황의 권리로” 인정되고 추기경이 주재하는 위원회가 로마에 설립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기구는 “전통 계열의 모든 교회법적 문제들을 조정하고, 성청, 법원 그리고 주교들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할 것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가뇽 추기경에게 “불가피하며 긴급하다고 드러난” 주교성성의 후보자들을 제출하기 위해 원칙적인 동의를 구했다. 그는 주장했다. “제 나이와 피로를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미국 신학교에서 어떤 서품도 하지 않은 게 어언 2년입니다. (…) 저에게는 이제 더 이상 바다를 가로지를 건강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교황 성하께서 올해 6월 30일 이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간청드리는 바입니다.” 그는 덧붙이며, “주교들은 전통 사제들 가운데서 선택되어야만”하며 그들은 속지적(屬地的) 관할권이 아닌 속인적(屬人的) 관할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주교는 좋은 관계를 확립하는 동안 지역교구의 정규 관할권으로부터 면제해 주실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전통계열에서 사목하는 장상들은 새로운 센터를 세우기 위해 "허가를 요청할 필요"없이 지역의 직권자에게 그들의 활동을 보고합니다. 결론적으로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동안 유지해온 그의 입장을 종합했다. “우리가 우리의 노선을 바꾸지 않고 성청과 정상적 관계를 쇄신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이 노선에서 우리는 우리가 천주와 교회의 자녀로 남아있다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월 11일, 가뇽 추기경은 캐나다에서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4월 중순경 기획안이 주어질 것이라고 알렸다. 3월 18일 라칭거 추기경은 어떤 최종 결정을 만들기 전에 전문가들(신학자와 교회법학자)의 회담을 제안했다.
 

Source: FSSPX.News – 6/27/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