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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바오로 6세 교황과의 대화 (1976년) -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17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바오로 6세 교황과의 대화 (1976년) - 2
June 18, 2018/By fsspx.news


대담의 끝


바오로 6세는 자기에 대한 프랑스 주교의 비난과 격렬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설명하길, 자신의 삶의 끝이 가깝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재판에 대해 협의하기를 바랐다고 하였다. 교황은 르페브르 대주교를 크게 존경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대의 공로를 인정했고, 공의회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에 동의했소." "그건 사실입니다.“ 라고 대주교는 인정했다.


마땅히 그러하듯이,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이는 교황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대가 종교분열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요. 그대가 하는 일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해를 입히고 분열시키는 행위라고 전 세계가 이해하게끔 그대의 최근에 행한 선언과 행동을 철회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시오." 그리고 교황은 천주경(Pater Noster), 성모송(Ave Maria), 성신강림송(Veni Sancte Spiritus)을 기도하기 전에 결론 내리길, "우리는 기도와 반성에서 일치를 찾아야합니다.“ 하였다.


해명과 차이점


베넬리(Benelli) 추기경의 보고서는 주요 주제에 대한 르페브르(Lefebvre)대주교의 설명을 뒷받침하지만,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


그 중 일부는 세부 사항에 있다. 팡쥬(Fanjeaux)에 소재한 예수성명 도미니코 수녀회(Dominican Sisters of the Holy Name of Jesus) 방문했던 르페브르 대주교는 그 지역 주교에 의해 철저히 박해 받고 있는 그곳이 신앙생활에 충실한 이들은 박해를 받고, 지극히 스캔들이 되는 수녀원 이탈은 독려되는 그 차이를 언급했을 때 분명히 그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평상복을 입은 수녀들은 받아들여지지만, 제가 이틀 전에 본 수녀들은 평신도로 내려앉고 그 주교는 다섯 번이나 그들에게 수녀 관습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시대의 교리 문답과 서품 받을 당시의 미사에 충실한 사제들은 거리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사제 같지 않은 이들을 사제로 받아드립니다.


대주교에 따르면, 그가 서명하기를 거부했던 공의회의 문서 중 두 가지, Dignitatis Humanae와 Gaudium et Spes가 또한 분명하게 언급되었다: 공의회에 의해 공식화된 종교의 자유교리를 왜 대주교가 거부했는지 교황이 물었을 때, 르페브르 대주교는 몇몇 로마 교황의 발언을 인용했다: "그레고리 16세와 비오 9세가 가르친 것과 반대되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옆으로 제겨놓으시오."라고 교황은 방해했다. ”우리는 신학을 토론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중얼거렸다: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3]


마지막으로, 베넬리(Benelli) 추기경의 보고서는 에콘(Econe)의 표시로 신학생들에게 행한, 바오로 6세가 격렬히 비난한 르페브르 대주교의  "교황에 대한 맹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담이 끝난 다음날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가 준 설명이 있는데, 대회의 일부로서 그가 말했다. 


바오로 6세: "그대는 공의회를 반대할 권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교회에 대해 해악을 끼치고 있어요. 교회를 파괴합니다.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교황과 공의회에 반대하는 그리스도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대를 비난하는 그대의 양심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까?"
르페브르 대주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오로 6세: "당신은 무책임합니다.“

르페브르 대주교: "저는 교회의 일을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훌륭한 사제를 훈련시키고 잇을 뿐입니다. "
바오로 6세: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대는 사제더러 교황을 대적하게 만들어요. 교황에 대해 반대의 맹세를 서명하게 합니다."
르페브르 대주교 "제가 무엇을 한다고요?" (이 놀라운 주장을 듣고는 나는 내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나는 지금도 내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하, 어떻게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제가 사제들더러 교황을 반대하는 맹세를 하라고 했다니요? 그 '맹세'의 사본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교황은 놀랬다. 바오로 6세는 -아마도- 빌로 추기경(Cardinal Villot)이 그에게 말했던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바오로 6세: "그대는 교황을 비난합니다! 무슨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나요? 내가 사임을 하면 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나요?"
 르페브르 대주교: "아! (나는 내 ​​머리를 감쌌다.) 성하,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아니오, 아니요! 제가 계속 말씀드립니다. 성하께서는 손에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로지 주교들에게 한 가지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전통, 미사, 성사, 그리고 모든 시대의 교리를 지키는 충실한 이들 단체를 이해하는 것을 환영‘한다. 저들에게 미사드릴 장소를 제공하시오. '이 단체들은 교회가 될 것이며, 그들 가운데 성소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교회에서 최고가 될 것입니다. 주교들이 그것을 볼 것입니다. 제게 신학교를 맡겨주세요. 제가 이 전통의 실험을 수행하겠습니다."[4]


결론: 우리 시대의 교훈


"1976년의 뜨거운 여름"의 극적인 날은 매우 화제인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바오로 6세는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가 2차 바티칸 공의회에 반대하고, 공의회 이후에 휩쓸고 지나간 혁명의 숨결에 대한 심각한 비난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가톨릭 미사를 개신교의 예배로, 에큐메니즘을 좌우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실험 (가톨릭 전통은 예외), 수나 성소에 있어서 심각한 위기를 일으킨 사제직 및 수도회생활을 세속화하고, 지극히 비정통적인 교리를 자유화하며, 모든 영역에서의 남용을 혼합시키려는 전례적 개혁이었다.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은 급속도로 재앙이 되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의 반응; 교회가 항상 해왔던 일에 대해 사제양성을 충실히 하고, 미래를 준비함으로써 전통이라는 바위 위에 세우며, 오류에 대해선 격렬한 비난을 함으로써 교회를 섬기려는 그의 의도는 분명히 이해되지 못했다.


드러나고 진실로 역설적인 것은 대화를 제안하고 해결책을 추구한 이는 대주교 르페브르(Lefebvre)였고, 대화의 장인(匠人)인 바오로 6세(Paul VI)는 가장 엄격한 복종과 순종만을 요구했던 사실이란 점이다.


비록 그것이 베넬리 추기경의 기록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바오로 6세의 선서 에피소드(일화)에서는 르페브르 대주교가 자신의 신학생들에게 그 교황을 대적시하게 만들었고 자주 언급했다고 확신한 것이다. "이 맹세는 없어요.“ ”그와 유사한 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교황이 듣는 가운데 중상모략을 받았어요. 이 점이 바오로 6세가 개인적으로 모욕 받고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라고 티시에르 드 말레레(Tissier de Mallerais) 주교(역자 주:<마르셀 르페브르> 전기 작가)는 말한다. 이것은 또한 교황이 야망과 복수심에 이끌린 반역적이고 선동적인 주교, 그가 비난 받으면 제 자리로 돌아갈 주교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다. 보고된 대로 그 만남은 결국 그의 분노가 가라앉고, 신앙이 위기에 처했을 때 순명의 행동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 될 수 없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람보다 천주님께 순종해야 하지 않을까?(행 5:29)


회고록에서, 1976년 추기경회의(Consistory)에서 표현 된 대로 몬티니(Montini) 교황은 성 비오 5세의 미사를 금지하겠다고 주장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Pope Benedict XVI)는 전통전례인 로마 미사가 결코 폐기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기 까지 했다.


이 일화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측면은 바오로 6세는 그의 후계자들처럼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작품들과 그 허세에 대해서만 말한다. 마치 2천 년 동안 가르치고 전달할 지혜와 교리와 치교권의 가르침이 없었던 것처럼. 그것은 베드로의 계승자에 대한 르페브르의 대주교 성실한 제안이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비오10세회를 사용하여 전통 실험을 충실히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을 억압하거나 또는 혁명과 결혼하지 않고 교회의 위기에 대해 이것이 해결책이라는 점을 권위 –전 세계의 주교들- 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대담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교황은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가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는 공개 선언을 할 것과 에콘(Econe)의 주교(르페브르)는 교황에 대한 명백한 불순종과 신앙, 미사 및 성사에 충실히 해야 할 의무 사이에서 찢어진 가톨릭 신자에 대한 제스처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분명히 기대했다


아무런 결과가 없는 대담


긴장은 가벼워졌다. 1976년 9월 14일 프랑스 TV에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신의 희망을 표명했다.


"새로운 기후가 조성되고 얼음은 깨졌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최초의 협상인 대화였습니다. 우리는 푸른빛을 희망하고, 지금 당장 가능한 모든 실험처럼 승인되기를 바랍니다.... 교황은 저에게 이것에 관해 성청의 추기경들과 상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6세(Paul VI)는 저에게 이 대화에 있어서 더 많은 것이 있다고 믿으라 하셨지만 몇 달 동안은 아닙니다. 우리를 분리시킨 모든 시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48시간 안에 해결책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종교분열에 대한 의문이 없으며, 우리는 그저 계속 교회의 일을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황이 여전히 그분의 전임자들과 일치하고 있는 한, 우리는 완벽한 일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변혁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진정으로 전통에 부합(符合)하는지를 조사해야합니다.“


9월 16일 성비오10세회 (Pius X Society)의 총장상은 교황께 대담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우리는 공통점으로 일치해있습니다. - 교회를 손상시키는 모든 남용의 끝을 보겠다는 열망이 있습니다. 교회가 참된 모습을 회복 할 수 있도록 성하와 그분의 권위 아래 저 유익한 사업  얼마나 오랫동안 협력해야 할까요?"


10월 11일, 바오로 6세는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에게 그의 "반역"을 비난하면서 긴 편지를 썼다. 교회를 위해 일하기를 원하는 프랑스 주교의 소망에 주목하면서, 그는 변함없는 태도로 대주교를 심하게 꾸짖었다.


"그대는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그대의 스캔들이 있는 말과 행위, 결코 철회하지 않은 스캔들과 말을 잊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대는 회개를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성무정지(suspension a divinis)의 원인에 대해서도요. 귀하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성청의 권위에 대한 귀하의 수락을 명시적으로 표명하지 않으니, - 이는 귀하의 문제의 근간을 구성하며 - 그리고 합법적 인 권한기관이 귀하에게 성무정지 하도록 명시한 귀하의 개인적인 저작물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요 말들은 앞으로 수년 동안 있어왔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미사를 구하고, 신앙을 위해 싸우며,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여 교회를 구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고집한 반면에, 로마당국은 "예비나 조건 없이 순명이라는 진정한 교회적인 태도만“을 요구만을 하였다.


Fr. Christian Thouvenot


[1.]The bishop of Sion, in the Valais, on whose territory the seminary of Econe is located.
[2.]That is, the priests formed by Archbishop Lefebvre
[3.]Marcel Lefebvre, the Biography - Bp. Tissier de Mallerais, op. cit., p. 491-492
[4.]ibid: p. 492
Sources: Sapienza / Vatican Insider / Clovis / FSSPX-MG / FSSPX.News – 6/7/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