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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대주의의 교회 침입(대주교가 체험한 공의회와 미사전례 변혁과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3




현대주의의 교회 침입

(대주교의 경험으로 본 공의회와 미사 전례변혁 과정)


일러두기: 다음 글은 르페브르 대주교의 담화(1982년, 캐나다 몬트리올)로, 교회 내에 현대주의의 비극적 부패가 교황 비오 11세 때부터 있었음을 자기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새미사의 기본 틀을 짜는 데에는 아니발레 부그니니(Annibale Bugnini)의 특이한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과, 어떻게 해서 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현재의 개신교화돤 전례(典禮)(주: 실제로 공의회 당시 6명의 개신교 목사들이 미사 개정에 참여함)를 그가 감히 인가받을 수 있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아래 웹 사이트의 그 중 주요 부분만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http://sspxasia.com/Documents/Archbishop-Lefebvre/The-Infiltration-of-Modernism-in-the-Church.htm



역사의 약술(略述)


 나는 세계 어디서든지,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에 충실하고 우리 신앙의 보루堡壘)인 전통을 지키는 것을 보니, 참으로 기쁘다. 이 정도로 총체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교회내의 상황이 진실로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자기 형제의 의해서 박해를 받든지, 교회의 원수(怨讎)에 의해서 핍박을 당하든지 그것이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순교의 고통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사제들과 신자들이야말로 진짜 가톨릭 신앙의 증거자들이다.


 세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교회 역사상, 과거에는 결코 겪어본 적이 없는, (신앙이)비극과 동시에 전대미문(全代未聞)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을 발견할 뿐이다. 적어도 이 괴이(怪異)한 현상을 설명해야만 하니, 총체적으로 붕괴(崩壞)되고 있는 가톨릭계에서 전통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서 (극소수의)착한 신자들과 사제들이 싸워야 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인가? 


 교회 안에서 자멸(自滅)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한 사람은 바로 교황 바오로 6세 자신이었다. 교회가 스스로 파멸하고 있다는 뜻이니, 그 자멸이라는 어휘는 그 말 뜻대로 교회의 구성원에 의해서 스스로 파멸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교황 성 비오 10세는 이미 첫 회칙에서, “이제부터는 교회의 원수가 교회의 외부에 있지 않고 교회 내부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교회의 원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을 교황은 지적했으니, “원수는 신학교 안에 있다”고 하였다. 금세기 초에 벌써 교황 성 비오 10세께서는 신학교 안에 교회의 원수가 존재한다고 비난한 것이다.


현대주의의 첫 번째 희생자들


 비극적인 사건이 신학교 시절에 일어났다. 그 당시 신학교 교장이었던 르 플록(Le Floch) 신부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고 화강암처럼 신앙이 굳건하고 확고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교황회칙들과 성 비오10세가 비난한 현대주의의 정확한 특징, 레오13세가 비난한 현대주의의 오류와 비오9세가 견책한 자유주의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러한 자세는 자유주의자들과 프랑스 정부를 불쾌하게 만들었으니 저들이 프리메이슨이기 때문에 르 플록 신부를 제거하라는 압력이 가해졌다. 이 움직임을 책임졌던 자는 장차 M.R.P의 지도자가 될 프란치스코 게이(Francisque Gay)로서 그는 르 플록 신부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액션 프랑세에즈’ 일원이라고 죄를 씌우고 있었다. 교황 비오 11세가 슈스터 추기경(밀라노)을 파견하여 프랑스 신학교를 조사하게 하였으나 조사 결과 르 플록 신부의 온전한 지휘 하에 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3개월 후, 새로운 심사와 함께 르 플록 신부가 학교에 위험한 인물로서 권고사직과 함께 그를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1926년, 교황은 이를 정중히 요청하였다. 그 신부는 성 비오 10세 교황의 친구였다. 정확히 말해 그 이유로 자유진보주의자들의 원수가 된 것이다.


 비로(Billot)추기경도 내가 신학생일 때 공격을 받았다. 비로 추기경은 자유주의에 관한 대 연구를 수행했는데 모라스의 인용문 몇 개를 발췌하여 주기 표시의 형식을 취하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당시에 그 추기경은 유명한 1급 신학자로서 해임되었으며 ‘액션 프랑세에즈’와 접촉할지 모른다는 미명하에 금족령이 떨어지고 추기경직에서 일개 사제의 지위로 강등된 셈이다.


교황 비오 11세 이후 교황들과 공의회 개최


 교황 비오 11세는 이미 로마에 존재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전임 교황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교황 비오 11세가 훌륭한 회칙 몇 가지를 작성하였는데 그가 교리의 차원에서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유약(柔弱)하여 이리저리 쉽게 휘둘리는 교황이었다. 예를 들어, 멕시코 시민전쟁 때에 부화뇌동하는 바람에 가톨릭교를 지키고 그리스도 왕을 위해 싸우는 이들(Cristeros)이 무기를 내려놓게 만들어 이들 모두가 대량학살 당하고 말았다. 결국 수천 명의 멕시코인들이 신앙이 원인이 되어 살해되고 말았다.


 교황 비오 12세는 교회를 다스리는 면에서 그리고 저술활동에서도 탁월한 교황이었다. 비오 12세가 재위할 때에는 신앙이 확고하게 유지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당연히 그를 싫어했으니, 교황이 신앙과 진리의 기본 원칙을 주지(周知)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요한 23세가 뒤를 이었다. 그는 대체로 비오 12세와는 기질이 달라서 매우 단순하고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도처에 산재해 있는 문제를 간과했다..... (주변의 요청으로)그가 로마에서 시노드(교회회의)를 결정하면서 교회회의를 위한 준비가 급조되었다.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가 지속되다가)결국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었다.....나는 다카르의 주교이자 서 아프리카 주교단 의장으로서, 중앙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 임명되었기에 최소한 10차례 로마에 와서 중앙준비위원회에 참가하였다. (공의회 준비) 2년간 순차적인 모임이 열리면서 알게 된 것은 구성원 간에 자체적인 분열이 심각하다는 것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추기경들 사이에서 그 경향이 심각했으니 투표를 실시하면 보수적인 추기경들과 진보적인 추기경들이 서로 다르게 투표하였다. 총 득표수는 항상 비슷했다. 추기경들 사이에 틀림없이 분열이 있었던 것이다.


 『주교가 말한다(A Bishop Speaks)』라는 내 책 가운데 한 권에서 나는 다음의 사건을 묘사한 바 있고 그것을 자주 언급하는 편이니, 왜냐하면 중앙준비위원회의 끝과 공의회의 시작을 특정 짓기 때문이다. 마지막 모임을 가지면서 우리는 같은 주제에 관한 10종의 문서를 미리 받았었다. 베아(Bea)추기경은 「종교의 자유에 관하여(Concerning Religious Liberty)」라는 내용을 준비하였고 오타비아니(Ottaviani) 추기경은 또 다른 내용인 「종교의 관용에 관하여(Concerning Religious Tolerance)」를 준비하였다.
 
 같은 주제에 관하여 서로 다른 제목을 채택했다는 단순한 사실로써 두 가지의 구상(構想)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아 추기경은 모든 종교의 (동등한)자유를 말한 것이었고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오류 및 그릇된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 그리고 가톨릭을 위한 자유를 말한 것이었다. 중앙위원회라고 해서 그런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


 처음부터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손가락으로 베아 추기경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예하, 당신에게는 이 문서를 제출할 권리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베아 추기경이 “실례지만, 나는 일치를 위한 위원회 의장으로서 문서를 종합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 문서를 의도적으로 모은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전반적으로 당신의 의견에 반대합니다.”라고 응수하였다.


 결국 가장 탁월한 두 추기경, 신앙교리성성의 장관 오타비아니 추기경과. 모든 추기경들에 대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예수회원이자 동시에 성서 연구회에서 잘 알려져 있고 진보적인 성서 연구에 책임을 지던, 교황 비오 12세의 전 고해신부 베아 추기경은 교회의 기본적인 논제에 관하여 정반대 입장이었던 것이다. 모든 종교를 위한 일치는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은 것이니, 이것은 자유와 오류를 같은 수준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오류를 참아 가면서 이루어지는 가톨릭교의 자유는 아주 딴판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전반적으로 항상, 자유주의적인 베아 추기경의 의견이 아닌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의견을 고수(固守)했었다.


 그들은 투표를 요청하였고 약 절반은 베아 추기경의 의견에, 나머지 절반은 오타비아니 추기경에게 찬성하였다.....교회 안에서 진정한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 때부터 극심한 반대가 있는 상황에서 공의회가 어떤 식으로 진전될까 하고 심각하게 의문을 품었다. 누가 승리할 것인가? 스페인어 혹은 라틴어계 언어를 쓰는 추기경들과 함께 하는 오타비아니 추기경일까? 아니면 베아 추기경과 함께하는 유럽 및 북미 추기경들일까?


 교황 바오로 6세는 자유주의자를 지지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뒤를 이었다. 자유주의들에게 그가 지지를 보냈음이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교황은 공의회 제 2회기 중에 재임하였으니, 그는 시작부터 4명의 현대주의 사회자를 임명하였다. 그 사회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뮌헨의 도프너(Dopfiner) 추기경이 그 중 한 사람이었는데, 정말로 매우 진보적인 데다가 에큐메니칼(교회일치)했다. 다음으로 그가 주장한 카리스마 학문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알게 되었고 사제의 결혼을 옹호하는 회담을 개최한 수에넨(Suenens) 추기경이 또 한 사람이었다. 세 번째는 공산주의에 우호적이며, 그의 주교대리가 공산당의 일원으로 활동한다고 알려진 레카로(Lercaro) 추기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아가쟈니안(Agagia-nian) 추기경이 있었는데. 그렇게 말해도 된다면 어느 정도 전통파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으나 그는 매우 신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인지라 공의회에 대해서 영향력이 전혀 없는 추기경이었다.


 바로 그때부터 전통주의 추기경과 주교들이 제겨지고 멸시받았음이 분명하니, 막다른 곳에서 불쌍한 오타비아니 추기경이 말하자, 할당된 10분도 안되어 젊은 주교들 사이에서 야유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멈춰야 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로마 전체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성 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결코 작은 지위가 아닌 신앙교리성성 장관이었던 덕망 있는 추기경이 중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전통주의자들이 이런 식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보는 것조차 수치스러웠다.
 
교회의 변혁


 위 사건이 공의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모든 (2차 바티칸)공의회 문서와 주제들이 자유주의 추기경 및 위원회 회원들에 의해 영향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러니 교회에 그토록 많은 변화와 또한 변혁 조치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애매한 문헌이 있게 된 것도 당연하다. 주교들과 추기경들 중 전통파를 대표했던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잘못된 갱신(更新). 잘못된 에큐메니즘, 잘못된 주교단체주의 같은, 즉 이러한 교회에서의 주요 변화에 반대했던 우리는 250명으로, 전통을 지키기 위해 온 몸으로 반대하였다.....그 250명의 주교들이 결연하게 나서서 얼마 되지 않는 세력이나마 발휘하여 본문을 억지로 수정하게 만든 경우가 있었기에 악이 그 정도로만 제한된 것이었다.... 그 후 막판에는 오직 74명의 주교들만이 반대자로 남아 있었다.... 2500명 중 74명이란 정말로 적은 숫자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그리하여 공의회는 막을 내렸다. 이후에 소개되는 개혁에 우리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 후에는 온통 자유주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들은 바오로 6세에게, 로마 성청에 자기들을 배치시켜 달라고 요구하였으며 이로 성취함으로써 공의회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승리한 것이다. 사실상 중요한 지위는 진보주의 성직자에게 주어졌다. 추기경이 죽거나 기회만 되면, 교황 바오로 6세는 즉시 그 자리를 자유주의자들로 채우는 방식으로 전통주의 추기경들을 제쳐놓았다. 그런 방식으로 자유주의자들이 로마를 점령한 것이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공의회를 따르는 개혁이 에큐메니즘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고 아주 간단히 말하면, 더도 덜도 아닌 프로테스탄트(개신교)적인 개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례 개혁


 (공의회의)가장 심각한 결과는 전례상의 개혁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그것을 미리 준비한 사람은 잘 알려져 있는 부그니니(Bugnini)라는 사제였다. 부그니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직위에 있다가 나중에 라테란 대학교에서 전례학 교수가 되어있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그가 현대주의와 진보주의에 물들어 있다 하여 교수직에서 해임시켰다. 그랬던 그가 전례개혁을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다시 발탁되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역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리는 부그니니 신부에게 그의 새미사(New Mass)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으니,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의회가 끝나자 곧바로 규범미사(Normative), 새미사(New Mass), 노부스 오르도(Novus Ordo)에 대한 소식이 들렸던 것이다. 노부스 오르도라니, 그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공의회에서는 그것이 거론되지 않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래서 함께 모여 있던 84명의 우리, 총장상들에게 직접 와서 설명해 달라고 부그니니 신부에게 청했고, 따라서 나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부그니니 신부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규범미사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였다. 이것이 바뀌고 저것이 바뀔 것이며 또 다른 제헌경(Offertory)을 적절한 곳에 놓고, 영성체경(Communion Prayers)을 줄이며, 미사 시작을 위해서는 다양한 신앙 고백문 몇 가지를 채택할 뿐만 아니라 아니라, 자국어로도 미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웅성거리면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라고 서로 쳐다보았다.


 그는 자기가 말하기 전에는 교회에 미사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단호하게 연설했다. 그가 새로운 고안품인 규범미사에 대해 연설한 것이다. 본래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에도 보통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말하는 사람이지만 그때는 말을 못할 정도로 어안이 벙벙하였다. 한 마디도 전혀 할 수 없었다.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에게 가톨릭 전례의 전반적인 개혁, 미사성제의 전반적인 개혁, 성사 성무일도,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온갖 기도의 개혁을 맡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다는 말인가?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명의 총장상에게 입을 뗄 만한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이 부그니니 신부에게, “이는 육신적으로 참가하는 것인 실제적인 관여입니까? 당신은 신자들의참례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말을 했는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신자 없이는 미사를 드리는 것인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으로 들리는군요. 당신은 미사가 신자의 참가가 중심이 되도록 미사를 완전히 조작(造作)했습니다. 우리 베네딕토회(Benedictine)에서는 신자의 복사 없이도 미사를 드리는데, 우리에게는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가 없으니 사적으로 드리는 미사를 봉헌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부그니니 신부가 말했던 것을 그대로 되풀이하건대, 아직도 내 귓가에 쟁쟁하다. 그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의 답변, “솔직히 말해서,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신부님, 당신은 이것을 삭제하고 저것을 없앨 것이고, 이것은 저렇게 바꾸리라고... 그것도 짧은 기도문으로 바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새미사는 10분이나 20분이면 끝나든지 길어야 15분이면 끝나는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교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자, 그의 대답, “그렇게 되면 늘 무엇인가를 덧붙이면 됩니다.” 정말 그랬나? 내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누군가 ‘설마 그렇게 말 했을까?’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그렇게들은 것을 어찌하리오!


 그래서 나는 직접 국무대신인 치코그나니(Cicognani) 추기경을 찾아갔다. “예하, 그대로 그냥 놔두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렇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 새미사라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교회 내의 혁신, 전례의 혁신이라니요.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교황 바오로 6세의 국무대신인 치코그나니 추기경이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감싸 쥐고 말했다. “오, 몬시뇰, 잘 압니다. 내 의견은 당신과 똑같습니다. 그렇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부그니니 신부가 교황청에 마구잡이로 들어가서 자기 좋을 대로 교황이 서명하게 하는 걸 난들 어쩌란 말이요.” 국무대신이 바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결국 교회에서 교황 다음으로, 제2인자에 속한다는 국무대신이 부그니니 신부보다도 못한 지위에 놓이고 만 셈이었다.


 다음은 어떻게 해서 교황 바오로 6세가 본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자기가 안보고 서명했다고 교황이 쥬르네(Journet) 추기경에게 말했다고 한다. 쥬르네 추기경은 스위스에 소재한 프리부르 대학교에서 교수이자 거물급 신학자이면서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지시문이 첨부된 노부스 오르도에서 미사의 정의(定義)를 읽고 나서는, 쥬르네 추기경은“이 미사의 정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직접 로마에 가서 교황을 만나야겠습니다.”하고 했으니, 실제 그렇게 했다. “교황 성하, 이 정의를 허락하시면 안 됩니다. 이단적입니다. 이런 문서에 서명을 남기지 마세요.” (쥬르네 추기경이 직접 나에게 말해 준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 말을 전해준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교황의 대답.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것을 읽지 않았습니다. 읽지 않고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서는 신앙교리성성을 거치지도 않았다. 노부스 오르도가 편집될 때 자기는 부재중(不在中)이었으며 그것이 신앙교리성성을 그냥 지나쳐버렸다는 것을 세퍼 추기경이 나에게 말해주었기에 그것을 안다. 그러니 강제로 교황의 서명을 얻어낸 자가 바로 부그니니 신부라는 게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의심할 것도 없이 교황에 대한 비상한 영향력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부그니니 신부에 관한 세 번째 사실은 내가 증인인데, 이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손으로 영성체하게 해도 된다는 허가가 막 떨어지려 하자(얼마나 끔찍스런 일인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예부성성(Congregation for Worship)의 장관이었던 스위스의 구트(Guth) 추기경을 만나러 가야 했다. 그리하여 로마에 갔더니, 구트 추기경은 매우 친절한 태도로 맞이하며 곧바로 “나의 제 2담당 안토니니(Antonini) 대주교를 오게 해서 당신이 말하는 것을 그도 들을 수 있게 해야겠군요.”라고 하였다.
 
 나는 우리가 말했던 것을 그대로 말했다. “들어보세요. 예부성성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당신이,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인가(認可)하는 이 법령을 승인하시렵니까? 그로 인한 온갖 신성모독을 생각해 보세요. 교회 전체에 확산될 성체께 대한 공경심의 결여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나게 그냥 놔두시면 안 됩니다. 벌써부터 사제들이 그런 식으로 성체를 분배하고 있습니다. 즉시 중지시켜 주셔야 합니다. 또 이 새미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 그 중에서도 가장 짤막한 전문, 즉 매우 간단한 두 번째 것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구트 추기경의 말. “몬시뇰, 여기서 통솔자는 내가 아닙니다.” 맙소사! 여러분은 이제 ’그대는 (교회에) 일치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항명자다.‘라는 말을 듣는 지금의 내 태도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교회 안으로 뚫고 들어와, 교회를 파괴시키려는 자


 그렇다. 나는 항명자다! 맞다. 나는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부그니니와 같은 사람들에게 불순종한다. 왜냐하면 저들은 교회를 파괴시키려고 직접 교회에 침입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가 과연 저들이 바라는 대로 교회 파괴에 공헌해야 하겠는가? 비록, 직접 교황에게로 뚫고 들어가서 교황에게 자기들 원하는 대로 서명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원수라 해도, “예, 예, 그렇게 하지요”라고 해야 하겠는가? 교황이 어떤 압력을 받고 그렇게 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숨겨져 있다. 어떤 이들은 프리메이슨조합이라고 한다. 그럴 법도 하다.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밀이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추기경도 아니고 주교도 아니며, 당시에는 아직 매우 젊었고 라테란 대학교에서 그를 쫒아낸 교황 요한 23세의 뜻에 반대되는 자로 부각된 일개 사제가 국무대신 추기경도, 예부성성 장관 추기경도 무시하고, 그 어떻게 해서 그런 꼭대기까지 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직접 교황에게까지 가서 이룰 수 있었는가? 예전에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란 도무지 있을 수 없었다. 어떤 것이든 권위를 거쳐야 하는 것이니, 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거기서 자료들이 연구되어야 하는데도 그 사람은 천하무적이었던 것이다.


 우리 미사를 변화시키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을 데려온 자도 바로 그 사람이지, 구트 추기경이 아니었다. 잘 모르지만 아마 교황도 아니었을 게다. 바로 그자였다. 부그니니라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언젠가 전례위원회의 우두머리로서 부니니 신부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베네딕토회원, 문외(門外)의 성 바오로 성당(St. Paul Outside the walls)의 전(前) 대수도원장은 내게 말하길, “몬시뇰, 부그니니 신부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마세요.”라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도 말해 주세요. 그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할 것 아닙니까?” 그를 라테란 대학교에서 쫒아내 달라고 요한 23세에게 요청한 이는 아마 그였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성 비오10세께서 이미 예고하신대로 교회 안에 원수가 직접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그 원수는 라 사례뜨(La Salette)의 성모께서 말씀하셨듯이 또 의심할 것 없이 파타마(Fatima)의 제3비밀이 알려 주듯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자! 원수가 진정 교회 안에 있는데도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가? 나에게는 교황 바오로 6세가 비요(Villot) 추기경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역시 사사로운 증거 몇 가지가 있다. 비요 추기경이 프리메이슨이라고들 한다.


 비요 추기경에게 보내는 프리메이슨 편지들이 사진으로 찍혀온 것이다. 비요 추기경이 교황에 대해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로마의 전권을 자기 손 안에 넣어 교황보다 훨씬 큰 권력자가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이 그를 거쳐 갔다는 것을 안다.


 언제가 나는 캐나다의 가톨릭 교리문답(Camadian Catechism)때문에 라이트(Wright) 추기경을 만나러 갔었다. 그에게 말하기를, “이 가톨릭 교리문답을 좀 보십시오. ‘퍼쳐(Purture)'라는 제목이 붙은 작은 책자들을 아십니까? 어린이들이 배교(背敎)하도록 가르치다니 말도 안 됩니다. 가족, 사회, 전통···등을 깨트립니다......세계적으로 교리문답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당신은 이 교리문답과 일치합니까?


 그가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 않군요. 이 교리문답은 가톨릭답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가톨릭이 아니지요! 그러니 즉시 캐나다 주교회의에 말해 주세요. 이 교리문답을 즉각 중지하고 불 속에 던져 버릴 것이며 참된 교리 문답을 하라고 일러주세요.” 그의 대답. “내가 무슨 수로 주교회의를 반대할 수가 있겠습니까?”(주: 주교단체주의의 영향으로 인함) 그리고 나서 나의 대답. “교회에는 이제 권위라는 것 자체가 없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관계가 없지요. 주교회의가 어린이들의 신앙을 파괴시키고 있는데도, 주교회의가 어린이들의 신앙을 파괴시키고 있는데도, 로마가 주교회의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교회는 끝장이 아닌가요?”


 이상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세상에! 로마가 주교회의를 두려워하다니! 그런 회의란 언어도단이다. 프랑스에서 주교회의는 피임을 옹호하는 캠페인에 열중해 왔다. “경구용 피임약을 사용하여 낙태를 예방하라”는 슬로건과 함께 계속해서 TV 광고를 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부가 저들을 포섭했다고 본다.


 로마에는 전통을 지독하게 반대하는 일단의 추기경 집단이 있다. 그들 중에는 종교성성의 장관 추기경인 카사롤리(Casaroli) 추기경, 주교를 임명하는 데 중책을 맡은 주교성성의 장관인 바찌오(Baggio)추기경들이 있다. 또한 예부성성의 제 2담당이자 어쩌면 부그니니보다 더 악질적이면서도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비르질리오 노에(Virgilio Noe)가 있다. 그리고 루뱅(Louvain) 지방 출신인 동시에 그곳의 온갖 현대 사상에 물든 신앙교리성성의 제2담당인 벨기에의 대주교인 하머(Hamer) 추기경이 있다. 저들은 전통을 지독히도 반대한다. 그들은, 우리가 그것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저들은 나를 교살(絞殺)하려고까지 했다고 보고 있다.


 내가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 내가 사제였을 때 배웠던 것, 주교가 되어 나 자신이 나의 사제들, 내가 맡은 모든 사제들과 나의 모든 신학생들에게 말했던 것, 성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교회에 주어진 미사성제(聖祭)를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의 성사와 교회의 교리문답에 충실하고, 특히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성전(聖傳)을 지키는 것이다. 20세기 동안 계속 지속되어 온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다. 우리를 성화케 하는 것은 그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든 변해 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적어도 우리를 자유롭게 만이라도 해 달라!


 가장 중요한 추기경들, 국무대신 카사롤리 추기경과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교황은 감히 양보할 엄두도 못 냈다. 랏징거(Ratzinger) 추기경(후일 베네디토 16세)처럼 의견 일치에 보다 더 우호적인 추기경들이 몇몇 있기는 했다. 1981년 성탄절에 죽은 세퍼(Seper) 추기경의 후계자가 된 랏징거 추기경은 공의회 당시에는 매우 자유주의적이었다. 그는 라너(Rhner), 한스 큉(Hans Küng), 쉴레벡스(Schellbeecks)의 친구였다. 그러다가 뮌헨 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자 그의 눈이 어느 정도 전통에 열린 것 같았다.

 

 내가 5주 전에 로마에 갔었는데, 세퍼 추기경의 뒤를 이어 교황 바오로 2세와 나와의 관계를 위한 개인 중재자로서 교황에 의해 지명된 랏징거 추기경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를 만나서 1시간 45분 동안 이야기를 했다. 분명히 라징거 추기경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에 있어서 좀 더 긍정적인 것 같았다. 골치 아픈 것으로 남아 있는 어려움은 단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미사였다. 궁극적인 문제는 처음부터 줄곧 미사였다.


 그 이유는, 내가 공의회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공의회에 대해서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종교의 자유에 관한 계획에는 서명하지 않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내가 공의회 자체에 반대한다고는 하지 못한다. 다만 전통의 반하는 것일 경우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바오로 2세 교황은 말하길, “그대는 이 양식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내가 대답했다. “성하(聖下)께서도 서명했고 나도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 사이에 교리상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까?”
내가 대답했다. “차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물었다. “이제 남아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교황을 인정합니까?”
내가 답하길, “물론, 교황을 인정하며 우리 신학교에서는 교황을 위해 기도합니다. 세계에서 교황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곳은 아마 우리 신학교뿐일 걸요. 우리는 교황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합니다. 교황께서 오라고 할 때마다 늘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전례에 관해서는 어려운 부분이 좀 있습니다. 전례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새미사 전례는 교회와 신학교를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황은 이르길, “결코 그렇지 않소. 그냥 규율상의 문제이지... 절대 심각한 문제가 아니오. 걱정할 것 없소. 정착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황의 부름을 받은 세퍼 추기경이 곧바로 왔다. 그가 오지 않았었다면 교황이 협의안에 서명할 태세를 갖추었으리라고 믿는다. 교황이 세퍼 추기경에게 말했다. “나는 르페브르 대주교와 합의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소. 우리가 일치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오. 전례 문제로 곤란한 문제가 좀 있기는 하지만.” “단연코 르페브르 대주교에게는 하나라도 양보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추기경이 외쳤다. 그들은 트리덴틴 미사(Tridentine Mass)라는 깃발을 다루고 있습니다.” “깃발이라고요?” 내가 말했다. “하기는 미사성제는 물론 우리 신앙-‘미스테리움 피데이(mtsterium fidei)'라는 깃발인즉, 우리 신앙의 위대한 신비입니다. 그것으로써 우리 신앙이 표현되므로 깃발이라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바뀔 듯했던 교황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내 의견을 말하면, 이로써 교황이 강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만 자리를 뜨겠소.” 그는 떠나면서 나에게, “안되겠소, 몬시뇰, 그만 둡시다”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완전히 변한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회의 레피디(Lepidi) 신부가 쓴『모스크바와 바티칸(Moscow and the Vatican)』이라는 책을 읽었을 것이다. 참으로 괴상하다. 그것을 읽어보면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과 그들이 주교들을 임명하는 것 그리고 두 추기경, 즉 레카이 추기경과 토마섹 추기경까지 임명하는데 그들이 얼마나 중책을 맡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레카이 추기경은 민첸티 추기경의 후계자였고, 토마섹 추기경은 베란 추기경의 후계자였다. 민첸티 추기경과 베란 추기경 둘 다 신앙을 지킨 영웅이요. 순교자들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더 전통주의 사제들을 박해했던 사회주의 정부와 협력해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평화사제단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것이다. 전통주의 사제들은 몰래 시골을 돌며, 숨어서 성세를 주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면서 가톨릭교회의 주임으로서 맡은 임무를 계속했으나, 자기를 담당 주교에 의하여 박해를 받았다.


 나는 결단코 교황을 반대하지 않았다. 교황에 대해서 교황이 아니라고 한 적이 없다. 절대로! 나는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 편에 서 있다. 한편 나는, 내가 로마와 갈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개혁의 바람을 타고 현대주의, 진보주의,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주의가 가져오는 악질에다가 파괴적인 영향에는 결연히 맞서는 쪽이다. 우리를 망치고 신자들의 생명을 망치는, 저 모든 개혁에 항거하는 쪽이다. 그것을 보고 나더러, “그대는 교황에 항명한다.”고들 한다. 아니다. 나는 교황에 항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항을 돕는 쪽이다. 그 이유는 교황이라면 현대주의자일 수 없기 때문이며, 진보주의자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도 유대인 문제에 대해 우유부단하여 성 바오로가 그를 진지하게 비판했으니, “당신은 복음에 따라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교황인 베드로를 비판했던 것이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역시 몇몇 교황들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우리도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말한다. “교황 성하, 당신은 임무를 제대로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를 파멸시킬 현대주의자들인, 저 모든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핍박하고 있는 전통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나는 교황이 무척 걱정하고 있고, 교회를 회생시키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기도와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 교회를 사랑하고 교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힘을 빌어 우리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특히 동정 성모 마리아께 간청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당신 아들이 세우신 교회를 버리지 못하시니, 우리가 성모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시리라.


 나로 말하자면, 새미사가 전통미사보다는 못하지만 괜찮다고 종용하는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현대의 성사(聖事)들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들은 개신교(목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부그니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부그니니가 말하길, “우리는 프로테스탄트를 위해서, 갈라져 나간 우리 형제들에게 걸림돌의 그림자에 불과한 우리 가톨릭 기도서와 가톨릭 전례에서 벗어나야한다.”이는 전반적인 개혁이 있기 직전인 1965년 3월 19일에 한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마사성제에 관하여, 우리 가톨릭 교리에 대하여 개신교인에게 문의할 수 있는가?..... 이러한 변화 때문에 신자들이 더 이상 고성소(Limbo)도, 연옥도, 지옥도 믿지 않게 된 것이 아닌가. 이제는 원죄도 믿지 않게 되었고, 천신도 믿지 않는다. 성총에 대한 믿음도 없다. 사람들은 이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 신앙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을 지켜라”라고 말해야겠다. 신앙을 지켜라. 신앙을 버리기 보다는 순교자가 돼라. 성사와 미사성제를 보전해야 할 것이니, 그 이유는 새미사와 새로운 성사에 습관적으로 참례하면, 점점 나쁜 방향의 내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몇 해가 지난 후에 규칙적으로 그런 에큐메니칼한 새미사에 다니는 사람에게 질문해 보면, 그 사람은 새미사의 그러한한 정신에 동화(同化)되어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는 그가 모든 종교를 같은 기반, 같은 기준 위에서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자가 프로테스탄트, 불교, 혹은 이슬람교를 통해서라도 구원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직면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물론이다. 종교는 다 선하다”(모든 종교는 진리가 있다 등)라고 말이다. 이제 저들은 가톨릭이 아닌 것이다.


 오직 하나의 참된 종교만이 있는 것, 둘도 아니다. 우리 주께서 천주교님이시고 하나의 종교, 즉 가톨릭교회를 세우셨다면 다른 종교는 있을 수 없다. 가당치도 않다. 다른 종교들은 거짓이다. 이것이 오타비아니 추기경이 「종교에 관용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사용한 이유다. 만일 모든 거짓된 종교로도 영혼 구령이 된다면, 전교 사업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순교자들이 무엇 때문에 순교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순교자들이 전교한다는 죄목으로 대량학살을 당했으며, 자기 시간을 바친 것인가? 순교자들은 자기 피와 생명을 헛되이 버렸다는 말인가? 그런 방식으로는 인정하지 못하겠다.


 우리는 (2000년간 지속된 전통)가톨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종교일치주의(에큐메니즘)로 빠져드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이것은 더 이상 가톨릭교가 아닌 종교에 쉽게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신문에서, 교구에서, 교회에서 멸시 받고 모욕당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 우리 주님의, 가톨릭교 신앙의, 그리고 성 교회의 증거자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무엇이 문제일 수 있는가? 우리가 가톨릭교회의 증거자요, 가톨릭교회의 참된 아들이며, 동정 성모 마리아의 참된 아들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