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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담화 2 (1987. 9.27)- 성 비오10세회 설립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18

 

 

 

르페브르 대주교의 담화 2 (1987.9. 27 프랑스 안시에서) 

 (르페브르 대주교의 담화 1, 성교회의  변혁에서 이어짐)


 애석하게도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거리가 문제입니다. 남아메리카로 떠나는 주교들이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에 있는 주교들도 있습니다. 다른 주교들은 저기에, 또 다른 주교들은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이에는 어떤 운동도 남지 않았습니다. 제각기 각자가 있는 곳에서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250명 중 대부분은 사임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을 보고 비통한 나머지 로마로부터 오는 모든 것에 가슴이 조여들어 사임한 것입니다.

 

 로마로부터 온 것은 제단을 바꾸고, 저것을 바꾸며, 전례를 바꾸고, 지침을 바꾸고 신학교에서, 수도회에서 방식을 바꾸고, 수도복을 자유복으로 바꾸는 등등, 모든 것을 바꾸도록 그들을 부렸습니다. 그들은 그 모든 일에 가슴이 아파, 사표를 제출하고 어디엔가 은거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고령으로 죽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실상 2명만이 남았습니다. 지 카스트루 마예르(de Castro Mayer) 주교와 나, 두 사람이 남아 저항했습니다.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님은 자신이 맡고 있는 브라질의 캄푸스 교구에서 자신의 사제들과 함께 저항했습니다. 주교님은 옛 미사를 계속하기로 결의를 굳혔습니다.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의 사제들은 자기 교구에서는 성전에 의한 미사를 드린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사제 29명은 많은 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구민이 90만이나 되는 큰 주교구입니다. 사제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 29명의 사제들은 성전에 의한 미사를 계속했습니다.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님은 주교직을 사임하고 그 자리가 사형 집행인(Carlos Alberto Etchandy Gimeno Navarro)으로 교체됐지만, 지금도 아직 성전에 의한 미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신임 주교는 사형 집행인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의한 미사를 바치는 사제들을 모두 소교구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29명의 사제들은 한 사람, 또 한 사람씩 소교구로부터 모두 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추방되었습니다. 그 중 마지막 사제가 3개월 전에 소교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미 훌륭한 소교구, 신자들로 가득 차고, 의기가 충천하며, 열의가 충만한 소교구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그것들을 배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찰력이 저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자들은 소교구에 남아 있으려고 저항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주교들을 지지하기 때문에 주교들의 의견에 동의했고, 공권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요.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오래된 쫓겨난 교회 앞에 다른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개신교 시대에 가톨릭 신자들이 했던 것처럼, 자기들의 가톨릭교회를 지었습니다. 개신교가 우리의 교회(건물)을 빼앗아 버렸을 때, 가톨릭은 그 앞에다가 다른 가톨릭교회 건물을 지었었습니다. 지금은 캄푸스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교회를 지었고,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는 계속해서 신학생을 받아들였습니다. 후임 주교가 주교구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것이 신학교의 문을 닫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가 폐쇄된 것은 저들이 신학교에 있던 신학생들 및 신학교를 다스리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던 사제들에게 ‘지금부터 새 미사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명령을 내린 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신학생들과 사제들은 “아니오, 우리는 새 미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성전을 지킬 것입니다. 옛 미사를 지킬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신학교를 폐쇄하죠.” 그러자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는 신학생들을 모았습니다.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는 옛 신학교 안에 작은 신학교를 건설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신학생들이 그만큼 많지 않아서, 그리 큰 신학교는 아닙니다. 신학생은 8명이었습니다. 적은 수이긴 해도, 장차 사제가 될 8명입니다. 작년에는 그 중의 2명이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래서 2명의 사제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충실합니다. 대단히 확고합니다.

 

 성비오10세회 설립

 

  나는 특별한 상황에서 성 비오10세회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수도회도 없고, 교구도 없는, 자유의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에 신학생 오라니에를 비롯하여 다른 신학생들이  나에게 왔습니다. “대주교님, 우리를 위해서 뭔가 좀 해 주세요. 로마의 프랑스 신학교는 지금 모든 것을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모두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수단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습니다. 이제는 규율도 없습니다. 어디서든지 라디오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전례도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신학교가 아닙니다. 그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그래서 나는 아직 몇 명의 친구들이 있는 프리부르를 생각했습니다. 프리부르에 샤리에르 (Francois Charriere ) 주교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프리부르 대학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 대학은 아직 비교적 전통적이어서, 신학생들도 더 잘 양성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몇 명이 있는 것만으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무엇인가 조직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프리부르로 발길을 옮겨, 샤리에르 주교님의 동의를 얻어 주택을 마련했습니다.

 

 샤리에르 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디 무엇인가 해 주세요. 대주교님, 나는 전적으로 대주교님을 지지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교회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알고 계세요? 나는 두렵습니다.” 샤리에르 주교도 그런 큰 변화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샤리에르 주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쨌거나 집을 빌리세요, 마을에 뭐든 빌리세요. 대주교님께 허가를 내드릴 테니, 뭔가 좀 해 주세요.”


 그리하여 나는 프리부르의 마을에 여러 칸의 방이 있는 집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신학생들은 프리부르 대학에도 다녔습니다. 그런데 프리부르 대학마저 많은 변혁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도미니코회 사제들은 강의 중에, 혼전 성관계가 아주 좋은 것이라고 설교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프리부르의 가톨릭 대학에서 그 정도까지 왔으면 이제 끝장입니다. 더 이상 그런 대학에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다른 집을 물색했고, 아담(Francois-Nestor Adam )주교의 허가를 얻어 에콘을 찾아냈습니다.


 아담 주교는 성전에 꽤 우호적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여러 가지 사정에 부딪치자 불안해져서 버텨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담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우리에게 두 채의 집을 주었습니다. “대주교님, 여기에 집 두 채가 있으니 괜찮으시다면, 자유로이 쓰셔도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에콘의 신학교를 개교했습니다. 5년간은 순조롭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극적인 사건이 올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새 미사를 원치 않아. 변화나 전례개혁을 원치 않아. 신학교에 시행되고 있는 개혁을 원치 않아.”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새로운 개혁을 따르면 신학생들을 교수회의에 들여 신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게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의 민주화’를 해야 하게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신학생들도 자신의 요구나 주장을 채택할 수 있는 대의회를 두어야 하게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가뇽 추기경(Gabriel-Marie Cardinal Garrone )이 전 세계의 신학교에서 그런 지침을 보낸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학생 양성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전에 따라 신학생들을 양성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로마에서 양성된 것처럼, 과거 우리가 양성된 것처럼 그대로의 방식으로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내가 고발당하고 표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대로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주교들은 르페브르 대주교에 의해 에콘에서 양성된 신학생들이 어느 날 프랑스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니 오싹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성전에 따라 교육을 받은 사제가 올 거야. 우리 교구로, 이거야 원!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은 사양하겠어. 절대로 안돼, 용납할 수가 없어!” 그러자 로마에 불평이 고조됐습니다.

 

 극도로 진보주의자인 비로 추기경(Jean-Marie Cardinal Villot )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에콘은 이제 끝장내야 하오. 에콘의 이야기는 이제 끝이오. 폐교시켜야 하오.” 마르세유의 에츠가라이 추기경(Roger Marie Elie Cardinal Etchegaray)은 마르세유 이곳저곳에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있잖아요, 에콘은 이제 끝이랍니다. 6개월 만에 더 이상 얘기도 하지 않게 될 거예요. 끝장인 거죠.”

 
 그렇게 해서 로마로부터 시찰단이 파견돼 왔습니다. 오래 전부터 모든 게 준비돼 있었습니다. 각본이 미리 짜여져 있었습니다. 우선 시찰단을 보내고, 다음에 르페브르 대주교를 조사하고, 그러고 나서 “끝났소! 신학교를 닫으세요. 폐교입니다.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세요!”라면서 폐교하라는 교령을 내리는 것이죠. 게다가 그것을 학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한다는 것입니다. 1학년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5월 상순에 말입니다. 1학년은 6월에 끝납니다. 그 마저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 자, 신학교를 닫으세요. 교수진을 돌려보내세요. 신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세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말하건대, 그들의 행동 방식을 잘 봐야 합니다. 폭력적이고 악의에 찬 방식이었습니다. 제일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예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람을 처음부터 바보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일(신학교 폐교)은 그런 식으로 실현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불의하고 불법한 방식이었습니다. 샤리에르 주교의 후계자인 마미(Pierre Mamie) 주교에게는 성비오10세회를 폐쇄시킬 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주교님이 한 수도회를 자신의 주교구에 받아들여 창립한다면, 그는 더 이상 그것을 폐지할 수 없습니다. 폐지는 로마만이 할 수 있습니다. 주교는 로마에 수도회를 폐쇄시켜 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교가 직접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수도회 폐쇄가 너무 쉽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주교는 자신의 주교구에 수도회 설립을 허가합니다. 주교가 죽으면 새 주교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안 됩니다! 나는 이 수도회를 원치 않아요. 끝입니다. 나가세요. 폐쇄시키라는 교령이오. 끝이에요! 나는 이 회를 원치 않소.”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비합리적입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교회법에 그것을 명시해 놓고 있습니다. 로마 편에서는 주교가 자신의 주교구에 있는 수도회를 받아들였으면, 그것을 폐쇄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만약 폐쇄하고 싶으면, 로마에 신청해야만 합니다. 로마가 폐지의 교령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미 주교는 자신이 직접 폐지의 교령을 냈습니다. 그것에는 법적인 효과가 전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나는 그것이 법에 어긋난 것이기에 무시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성직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것도 무시했습니다. 비합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나는 편지를 썼으며, 로마에 재판을 신청했습니다. 나는 그 편지에 이 교령은 비합법적이고, 가톨릭 교회법전에 어긋난다고 썼습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할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계속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제 서품을 주면서까지 계속할 것인가요?”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그래요. 그만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성 비오10세회는 폐쇄되지 않았어요. 폐지의 교령이 비합법이기 때문입니다. 원한다면, 교회 재판에 회부하세요. 그렇게 되면 듣던 중 반가운 얘기가 되겠군요. 하지만 우리를 폐쇄시키는 것은 안 됩니다. 나는 사제 서품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성직정지’였습니다! 이 ‘성직정지’도 아무 효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합법적인 행위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비합법적인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직정지’도 무효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얼굴에 던진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주교구에서 그랬습니다. 내가 여기에 오니 여기 주교는 3, 4일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성직정지’ 처분을 받았고 반로마다. 이것에 반대하고 있다. 저것에 반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반란자, 항명자, 등등이라고 말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현실, 즉 현재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천주께서 우리의 사업을 축복해 주고 계시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1970년 이후를 보면 오라니에 신부가 1971년에 서품을 받았으니, 성 비오 10세회에서 서품을 받은 최초의 사제였습니다.

 

 1971년의 이 서품식 이후 지금(1987년)까지, 나는 약 325명의 사제에게 서품을 주었습니다. 벌써 작은 군대입니다. 그리고 천주의 은혜로 우리의 신학교 수는 증가했습니다.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우리의 6번째 신학교가 개교할 참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는 에콘, 플라비니, 독일의 자이츠코펜, 미국의 신학교, 아르헨티나의 신학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오스트레일리아의 신학교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군요.”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유명해졌나요?에콘이라는 작은 마을은 여행안내서의 지도에도 실려 있지도 않을 법한 곳이잖아요. 그런데도 대주교님은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로마가 일등공신입니다. 그들이 나를 지탄해마지 않았죠. 그들이 내 머리를 크게 가격해서 그랬을 거예요.” 곧바로 모든 대중매체가 반응했습니다. 그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 있나요?

 

 모든 대중매체가 나를 쫓아다녔습니다. 대주교님, ‘성직정지’라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이 움직였습니다. 내가 ‘성직정지’ 처분을 받았을 때에 일어난 대소동은 그 유명한 릴의 미사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내가 상상도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릴에 있는 내 고향 친구들이 나를 초대하여 미사를 바쳐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이전에 내가 거기에 갔을 때, 이따금 50, 60명 정도의 사람들이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소. 미사를 바치러 가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 내가 미사를 바치러 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50명, 100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초대했던 친구들이 나에게 편지를 띄웠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릴의 미사는 언제 있는지, 이것저것 묻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럼 좀 더 넓은 장소를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5백 명이 들어갈 장소를 확보했습니다. 그런데도 다 들어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여러 곳으로부터 연락이나 메시지를 받았는데, 릴에서는 미사가 언제쯤 드려지는지 물어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사실은 대중매체가 여러 곳에서 이 이야기를 선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우리는 르페브르 대주교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를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지탄받았다. 우리가 지지한다는 것을 표명해야 한다.’  다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니스로부터도 달려왔습니다. 열차를 몽땅 대절해서 릴로 온 것이죠. 적어도 10,000명, 12,000명의 사람들이 릴의 미사에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이르는 곳마다 여기저기서 대소동이었습니다. 미국이고 유럽이고 따질 것 없이 여러 곳에서 왔습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콜롬비아에 여동생이 살고 있는데, 그 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빠,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지금 콜롬비아의 신문은 온통 오빠 얘기로 난리야!”


 만약 내가 로마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냥 우리 일을 계속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이 좁은 에콘에 있을 뿐이었을 거란 말이죠. 그러나 전 세계가 주목했습니다. 전 세계의 청년들이 이것을 읽은 것입니다. “어라, 주교 한 사람이 성전을 지키고 있네. 거참, 대단한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폭발적으로 불어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곧 신학교가 6개교가 됩니다. 지금은 5개교에서 신학생들을 받아들여 대략 270명에서 300명의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대신학교 신학생들이죠. 참으로 특별한 일입니다.


 정말로 이 모두를 인도해 준 것은 천주의 섭리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선전 활동을 한 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섭리지요. 그 다음에 수도자, 수녀, 카푸친회 수사, 도미니코회 수사 등이 우리 신학교에 와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르곤의 작은 카푸친회 수사들. 아브리에의 도미니코회 수사들. 루카루 신부님의 사제들. 그들이 훈련을 받겠다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나는 동 제라르의 베네딕토회 수사들에게도 서품을 줍니다. 기타 등등. 안타깝게도 동 오귀스탕의 베네딕토회 수사들은 우리를 떠났습니다. 유감입니다. 나는 동 오귀스탕의 베네딕토회 수사 24명에게 사제 서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에 대한 이 같은 폭발적인 인기는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세요. 지금부터 10년, 15년 전에는 오늘 아침과 같은 미사를, 이 같은 미사성제를 대규모 장소에서 드리는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이라면 10명, 15명, 20명이 될까 말까였겠죠. 그러나 이제는 지금의 교회를 흔들고 있는 극적인 상황을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성전을 지킬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이것은 이른바 민속학적인 하찮은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신앙을 성실히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서 신앙을 아이들에게 전하세요. 그로부터 사제 서품의 중요성이 생겨납니다. 또 관구의 중요성, 조직의 중요성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우선 사제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현재 사제수의 2배, 3배의 사제들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그저 여러분에게 있는 그대로를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을 아주 단순하게 보세요. 우리는 분열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열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결코 기뻐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비오 12세의 시대에 살았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카르에서 교황대사(Delegue Apostolique)였을 적에는, 해마다 교황 비오 12세를 알현했습니다. 그 교황님을 뵙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교황님은 평소 걱정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교활동 일체에 대해 질문하고, 물었으며, 모든 것에 흥미를 갖고, 우리의 전교활동에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비오 12세 교황님을 만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요? 교황님은 정말로 교회의 종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감각, 교회의 감각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대재앙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재앙이었지요.


 그러니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요 얼마 전에 3권의 책을 발행했으니 그것을 읽으면 될 것입니다. ‘공개서한, 혼란스러워 하는 가톨릭인들에게 보냄’은 우리의 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한 것입니다. 우리가 투쟁하는 진정한 이유, 로마와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어려움이 극심한 이유, 교리상의 어려움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분들은, 자유주의에 관한 ‘저들이 우리 주를 왕위에서 끌어내렸도다(Ils L'ont decouronne)’를 읽으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잡지 ‘Fideliter’의 최근호는 나의 주교 40주년 특별호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의 도표 몇 가지가 게재돼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로서 읽으세요. 간단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추천합니다. 이 출판물들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어쩌면 가족 안에서도 때로는 잘 모르는 사람들, 정보가 없는 사람, 여러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머나! 당신은 르페브르 대주교와 함께 하는 거야?” “아! 당신은 이래, 저래!”라는 말을 듣는 일이 자주 있을 테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이걸 집어 들고 읽어봐요. 잘 읽고 직접 판단하라고요. 우리가 정말로 어쩔 도리가 없는 극악한 자들인지, 행동을 보고 판단하세요.”


 혹시 우리가 떼를 쓰고 있다거나 교회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리에서건 전례에서건 개인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의무라는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미사를 지키는 일, 교리를 지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성직자가 새로운 지침을 강요했습니다. 완전히 자유주의적인 교회의 새 지침입니다. 우리는 단박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대재앙이 될 거야. 대재앙!” 실제로 우리는 지금 이 대재앙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게재된 신문 기사를 읽어 보기만 해도 미국이 어디까지 가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동성애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미국 가톨릭은 교황이 동성애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여 교황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죠. 미국의 주교들은 사제의 결혼 및 여자 사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교들이 말입니다!우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교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둥 하는 식으로 말할 때가 아닙니다.


 “당신이 틀렸다. 당신은 자신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고 있다. 당신은 틀렸다. 당신은 순응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도대체 무엇에 순응한다는 것일까요?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신학교를 현대에 순응시킨다면, 신학교의 문에 열쇠를 채우게 될 거요. 그렇게 되면 끝장입니다. 다른 신학교처럼 기울고 말 거예요. 다른 신학교가 새로운 방식 때문에 성소자가 없어서 폐교해야 한다면, 내 신학교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그런 결과가 됩니다. 반대로 신앙 안에서, 성전 안에서 신학교를 지킨다면, 성소자가 올 것입니다. 성실한 성소자가 많이 올 것이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상입니다. 이 정도면 여러분에게 격려가 되고, 우리가 항명하고 있지도 않거니와 교황께 반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켜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나는 언제나 그 대로였고, 신학생들 및 사제들에게 거듭 ‘교황제도에 충실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교황님에 충실하지 않잖아요!”

 

 교황님이 우리의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된)전통신앙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 부분에서는 유감스럽지만 교황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가장이 아이들에게, 이를테면 음식이 필요하니 백화점에 가서 슬쩍 해오라며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해야 할까요?아뇨. 훔쳐서는 안 되죠. 훔치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에큐메니즘을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모든 종교와 형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모든 종교가 같은 것처럼 하라고들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앙을 잃고 말아요. 그건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에 독을 퍼뜨리려 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비록 교황님이 에큐메니즘의 길을 장려하고 있었다고 해도 우리는 신앙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교황님은 무류합니다. 교황님은 그르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일정한 조건을 채우고 있는 경우에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교황이 전 세계를 향하여, 진리를 믿을 것을 요구하거나 혹은 도덕의 측면에서 이러저러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할 때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교황이 하는 것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교황님이라도 배교로 이끈다든지 배교로 향하는 것 같은 사목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혹시 무의식 속에서는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황의 양심을 읽는 게 아니라 교황의 행동을 읽는 것입니다.


 천주께서는 묵시록을 통하여 온 세상에 배교가 있으리라고 예고하셨거니와, 성 누가의 복음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자 올 때에 세상에서 신덕을 얻어 볼 줄로 여기나냐.”(누가 18,8)라고 하신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신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에서 신덕을 찾아볼 수 있을는지를 질문하셨으니, 이 세상에서 배교와 냉담이 성행하여 신앙이 사라져 버리기 위해서는 로마가 흔들려야만 할 것입니다.

 

 로마가 흔들리지 않는 한, 교황이 언제나 확고하게 서 있는 한, 로마 전체가 그 모든 성스러운 기관에서, 아니, ‘로마의 성직자들’이라고 하죠, 로마의 성직자들이 신앙 안에서 견고하게 서 있는 한, 신앙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이 믿지 못할 시련이 일어나는 것을 천주께서 허락하셨다면, 로마가 모호한 표현의 안개, 확실치 않은 표현의 안개, 자유주의의 안개 속에서 흔들리는 것이 허락되었을 것입니다. 현실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큰 신비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절망해서 “뭐라고! 만약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여도 별 수가 없다. 신앙을 지켜도 별 수가 없다. 수계범절을 해도 별 수가 없다. 기도해도 의미가 없다.”는 등의 식으로 말할 이유가 못됩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해야만 합니다. 애석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절망하는 것과 반대로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앙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위험이 클 때야말로 결의를 표명하고 순교자처럼 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는 아직 피를 흘리지는 않았으며, 우리의 활동, 기도, 희생, 열심을 신앙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바칠 수 있습니다.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께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내가 오늘 아침 말씀드렸듯이,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께 신뢰합시다.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는 현대 세계를 위해서 특별히 오셨습니다. 금세기를 위해서 오신 것이죠. 천주의 동정녀께서 1917년에 오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오신지 벌써 70년이 됐군요. 그래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파티마로 순례하러 갔습니다. 마리아께 우리를 도와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성모 마리아께서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미리 경고해 주시기를 바라신 것 같군요. 우리 손을 잡고 “조심하라. 자, 조심하라. 그대들은 극도로 힘든 시대를 맞고 있노라. 공산주의가 온 세상에 퍼지리라. 조심하라. 기도하라. 간구하라, 희생을 바치라. 희생하라. 신앙 안에서 굳건히 서 있으라. 묵주를 들고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충고를 들읍시다. 그리하면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참된 가톨릭으로 남아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