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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교성성 1년 후 르페브르 대주교의 인터뷰 - 항상 해왔던 그대로의 일, 가톨릭을 계속할 뿐이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08



항상 해왔던 그대로의 일, 가톨릭을 계속할 뿐이다


주교성성1년 후<피델리떼르(Fideliter)>지와의 인터뷰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께서 지 카스트루 마예르(de Castro Mayer) 주교와 함께, 참석했던 이들 모두가 경탄과 더불어 감격스러웠노라고 회상하게 될 예식으로써 4위의 주교를 성성한 것이 바로 1년 전 6월 30일이었다. 그 첫 번째 기념일에 대주교 각하는 <피델리떼르(Fideliter)>지의 몇 가지 질문에 응하겠노라고 승낙하셨고, 그 사건이 있은 후에 일이 되어 가는 양상에 대해 크게 만족스러워 한다고 표명하신즉, 그 분의 표현을 빌면 “기적적”이라 했다.


 

Fideliter  대주교 각하, 주교를 성성하겠다고 결정하셨을 당시에, 이미 조만간 그렇게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향을 교황에게 알리려고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와 함께 편지를 쓰기까지 하셨습니다. 특히 “마땅히 그래야 한다면, 나는 주교를 성성할 것이다”라고 했던 이탈리아의 간행물 <트렌타 죠르니(Trenta Giorni)>지를 통해서도 공식 성명을 발표했으며, 1987년 에콘(Eco^ne)에서도 사제서품식을 거행하시면서 거듭 확인하셨습니다.


 이는 그 문제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말한 최초의 순간이었으니, 일련의 사건 중 시발점이 되는 연결고리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7월 말, 주교성성 40주년을 기념하던 때에 대주교님은 랏징거(Ratzinger) 추기경에게서 온 서한을 하나 받아 보고는, “로마에서 무언가 바뀐 것 같다. 저들이 지금 제의한 것을 보니, 사안에 대해 방법을 달리 해서 대처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고 하셨습니다. 그후 다각적으로 접촉하여 1988년 5월의 토론이 있었고, 다음에는 일치를 이루기 위한 협의안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그 협의안에 서명할 만한 열의가 없었으니, 바로 다음 날 생각이 미친 결론 한 가지는 다름이 아니라 랏징거 추기경이 1명의 주교를 선택하기를 계속 지연시킨 것은 그저 장난친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4위의 주교를 새로이 성성해야겠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고, 그것을 6월 15일의 기자 회견에서 공식 발표하셨습니다. 그렇듯 중대한 결정을 내린 목적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로 인해서 바티칸에서 불쾌한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사제직 및 그에 따른 성사를 계속한다 하여 이단으로 몰려 파문까지 당하고 낙인찍힐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Lefebvre 그렇습니다. 분명히 각오했었지요. 그 모두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점점 늙고 있으니 조만간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미리 확보해 놔야 한다는 것을 로마에 있는 저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여러 해 동안 얼마나 애쓰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주교 없이는 신학교와 신학생들이 있을 수 없으며, 신자들에게도 신앙 생활을 계속하게 하고 성사 특히 견진성사를 거행하기 위해서는 주교가 필요합니다.


 로마는 그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것에 관해서 여러 번 말하다가 드디어 공식적으로 실행했을 뿐입니다. 로마에 있는 저들은, 내가 불시에 기습했다거나 그것에 관해서 전혀 몰랐다거나 주교를 비밀리에 성성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사실이 아닙니다. 저들은 몇 년 전부터 내가 보낸 편지, 내 강론을 수록한 것으로 저들이 지니고 있는 카세트 녹음, 그리고 지 카스트루 마예르 주교와 내가 교황에게 쓴 서한을 통해서 경고를 충분히 들은 상태였습니다. 사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를 향한 저들의 태도가 좀 변화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우리가 과연 주교성성을 실행하랴 싶었던 한 편으로 감히 실행하리라고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1987년 6월 29일, 그 문제에 관해 공식적으로 얘기하자 랏징거 추기경이 꽤나 불안해 한 이유입니다.


 로마는 내가 정말로 주교를 성성하지나 않을까 하여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장차 있을 주교성성을 중지시키고자 하여 저들은 나에 관하여 양보하기로 결정했으니, 한결같이 요구했던 것이란 다른 게 아니고 요한 23세의 1962년도 예식에 따른 미사와 성사 그리고 여러 가지 역할을 거행하는 주교의 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공의회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았고, 내 후계자가 될 주교가 있게 될 것이라고까지 얘기했었습니다.


  그것은-아주 심각한-매우 근본적인 변화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관한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해서, 내가 직접 총장상을 만나 도움을 구하는 동시에 의견도 묻고자 하여 리헨바흐(Richenbach)에 갔지요. 우리에게 내민 손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결코 희망적이지 못하다고 본다”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들의 영역에서 일했기에 저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저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었던 게지요. 그러나 교회의 성전(聖傳)을 믿는 사람들과 비오 10세 회에 속한 사람들 대다수가 나중에라도 “당신은 적어도 시도는 해 볼 수 있었을 것이며, 저들에게 한 번쯤 말을 꺼내 본다 하여, 즉 대화한다 하여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을 터인데요”라고 하게 될 것을 나는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멘징겐(Menzingen)에서, 지역 장상들이었던 사람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서는 “대화를 하자는 저들의 제안을 무시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들에게 말을 꺼내 보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지요.


  나는 곧 랏징거 추기경을 만나는 데 동의했고, 만나게 되면 그 결과를 증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통을 후원하게 되면 어떤 점이 유익한지를 일러주겠노라는 희망에 차서 추기경을 방문해야겠다고 강경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로마에서의 우리 입지가 확고해지지 않을까 하는 동시에 전통을 변호하는 주교 몇 사람과 로마위원회를 확보하는 등, 내 요구 사항을 더 잘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곧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뇽 추기경(Cardinal Gagnon)과 펄 주교(Mgr. Perl)가 로마로 돌아가자 곧 우리 일은 치욕스럽게 다루어졌습니다. 가뇽 추기경이 보도기관을 통해 최고로 황당한 연설을 한 것입니다. 내가 주교를 성성하면 지지자중 80%가 떠날 것이며, 우리가 로마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한 편으로 화목하게 되기를 원함은 물론 기꺼이 우리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했다고 발표한 것이지요. 결국 방문객들은 겉으로 드러난 외양만을 보고 말한 것입니다--천주님만이 내면의 것을 보실 수 있지 않습니까--그러니 그 방문으로써 증명된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저들은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말하고 행한 것을 몽땅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한 번은 바티칸에서 등을 돌렸고, 또 한번은 로마의 악영향을 받고 역시 로마적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서는, 또 다시 뒤를 돌아다보면서 우리를 경멸한 것입니다.


  그랬음에도 예정된 논의를 하러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로마로 가긴 했지만 낙관적이지는 않았습니다. 1월초에 나는 벌써 오라니에(Aulagnier) 신부에게, “6월 30일이 되면 틀림없이 주교를 성성할 것입니다. 바로 올해 그 일이 일어나는 해가 될 터인즉, 무슨 일이 있어도 소망을 굴복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선량한 우리 믿음을 보여 주려고,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와 협력하고자 애쓴 것이지요.


 다음으로 저들은 한 번 더 우리에게 공의회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미소하나마 받아들일 만한 방책은 이루어졌습니다. 저들은 미사와 성사, 그리고 전례서(liturgical books)를 허락해 주었지만 로마위원회와 주교성성의 문제에 이르자 우리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위원회에 관해서는 일곱 사람 중에서 두 사람만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중 아무도 총장도 부총장도 아니었으며, 내가 주교 3명을 요구한 반면 저들은 1명만을 허락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명하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그 허락된 주교가 언제 있게 되느냐고 물으면 저들은 열심히 뒷걸음질만 쳤습니다. 그럴 의향마저 없었던 것입니다. 11월? 미적거렸습니다. 성탄 때? 몰랐습니다. 저들에게 날짜를 정해 달라고 마냥 맡겨 둘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상의 내용이 일치를 향한 길을 트도록 고안된 협의안에 서명할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후 계속 숙고한 끝에 내가 느낀 의혹 및 저들의 미적거림으로 미루어 내린 결론은, 저들이 5월 5일 제출한 후보 3명의 신상조사서 중에서 6월 30일에 성성될 만한 주교 1명을 지명하는 것이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랏징거 추기경이 “그런 식이라면 협의안은 취소다. 모두 끝장이다--더 이상의 협의안은 없다. 그대가 관계를 끊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그였지, 내가 아니었습니다.


  5월 20일에는 교황에게 편지를 보낸즉, 내가 협의안에 서명하기는 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주교를 성성할 것이며 6월 30일까지는 그리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보면, 해결점에 도달하게 할 만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랏징거 추기경에게서 등돌림을 당하고 난 뒤에 그가 말한 것을 보면, 8월 15일에 우리 주교 1명이 있게 되리라고 했을 때조차도 여전히 바티칸에서 바라는 유형의 인물됨을 지닌 1명의 후보를 교황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고자 하여 더 많은 신상조사서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 상상이 가나요?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6월 2일 교황에게 또 다른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토의를 계속하건 협의를 진전시키건 그래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견해상 목적이 달랐거든요. 저들은 우리를 자기네 입장에 가까이 끌고 가서 거기에 끼워 맞추려 한 반면, 우리는 저들더러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내내 해온 그대로, 전통대로 계속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그 후 6월 15일의 기자회견을 열기로 결정했으니, 아무 것도 몰래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통은 전통적인 주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전통적인 주교가 필요한데, 그것이 성 베드로회 및 르 바루(Le Barroux)의 수도자들을 혼란케 하는 이유입니다(역자 주: 성 베드로회와 르 바루의 수도원에서는 전통미사를 보존하고 있었으면서도 르페브르 대주교가 주교성성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그들에게는 전통적인 주교가 없기 때문이지요.


  Fideliter 소문에 의하면, 성 베드로회에 주교 1명이 있을 거라던데요.


  Lefebvre 어떤 주교 말입니까? 바티칸에서 원하는 유형의 인물됨을 가진 사람? 그런 경우라면 좀 늦어지기는 하겠지만 공의회의 정신에 일치하는 주교를 얻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철두철미하게 전통적이면서 공의회의 실책 및 공의회 이후의 개혁에 반대하는 주교는 결단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주교가 없는 상태임으로 해서 우리가 서명한 것과 같은 협의안에 서명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랏징거 추기경과 함께 서명했던 협의안에는 우리에게 적어도 주교 1명은 있어도 된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주교 1명을 임명하는 데 따른 로마의 승인을 청한 셈이었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교황에게 불순종했다고들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불순종했을는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불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랏징거 추기경이 서명하면서까지, 우리 회의 회원인 주교 1명이 있도록 허가해 주지 않았습니까? 사실을 보면 4명을 성성했다고는 하나, 1명이건 여러 명이건 우리에게 주교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있어서는 교황이 승인한 셈입니다.


  현재 다들 알다시피, 우리를 떠난 사람들은 주교도 얻지 못했고 로마의 위원회에서 대표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추진력에 있어서 손발이 묶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통을 유지한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렇듯 전통적인 주교를 임명하는 것이 내 의무인 동시에 신자 및 신학생들에게도 절대로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한 공동체는 똑같은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주교들 없이는 신앙에든 전통에든 충성이 유지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불가능한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교회는 우선, 주교들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제대로 된 사제만 있으면 되지만, 사제는 주교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제를 양성하고 서품식을 행하는 이는 그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제의 동향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총체적으로, 피정을 통하여, 강론을 통해, 신학교에서, 사제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현대적인 주교 가지고는 전통을 유지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신앙을 지탱할 가톨릭 전통을 유지할 주교들을 보장받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가톨릭 전통이 신앙이고 또 지금은 다름 아닌 신앙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Fideleter 혹자는, “그렇다. 우리 단체는 한때 인정받아서 금지조치가 해제됐으므로 각하가 로마와의 협상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교회 안에서 활동했더라면 더 효과적이었을 터인데 이제는 스스로 교회 밖으로 나가 있다”라고 하던데요.


  Lefebvre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요. ‘교회 안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선, 어떤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까? 공의회를 따르는 교회라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가톨릭에 남아 있고자 하여 공의회를 따르는 교회를 굳이 가톨릭화하기 위해, 그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공의회에 의한 교회에 대항하여 싸운 사람들입니다. 장상은 아랫사람에 의해 썩지 않지만, 아랫사람은 자기 장상의 영향을 받아 부패되는 법입니다.


 현대주의자 및 진보주의자 주교들에 따르면, 나는 시야에서 사라졌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내 목소리가 잠재워졌을 테니까요. 나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신자들 및 신학생들도 보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로마는 틀림없이 “됐다. 그대들에게는 그렇고 그런 주교가 있어서 신품성사를 거행할 수 있고, 신학생들은 교구의 그렇고 그런 교수들에게서 배워야 하게 되었다”라고 했겠지요. 성 베드로회에는 아우구스부르크(Augusburg) 교구에서 온 교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부류의 교수입니까? 무엇을 가르치고 있나요? 그들은 현대주의를 가르치므로 우리는 그들을 믿지 못합니다.


  Fideliter: 긴 안목으로 보아 대주교님이 천국에 있게 된 후에 틈이 서서히 벌어져서, 혹자들이 ‘가견적 교회’라는 말을 ‘변화하는 교회’로 대체한다는 인상을 주지나 않을까 하여 두렵지 않으신지요?


  Lefebvre: 동 제라르(Dom Gerard)와 마디란 씨(Monsieur Madiran)의 ‘가견적 교회’에 관한 이야기는 유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누구라도, 우리가 구현하고 지속시키려 애쓰고 있는 가톨릭 교회에 반하는 공의회에 의한 교회를 ‘가견적 교회’라고 말할 거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톨릭 교회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내가 스스로 교황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는 식의 비난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성교회와 마찬가지로, 성교회가 항상 해왔던 그대로 하고 있으니 가톨릭 교회의 충성스런 대표자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가견적 교회의 표시--오직 하나임, 공번됨, 종도로조차 전해 내려옴, 그리고 거룩함--을 지닌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이로써 가견적 교회가 구별됩니다. 마디란 씨는 ‘그리고 무류성’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무류성에 관해서는 듈락(Dulac) 신부가 바오로 6세를 들어 말하면서, “교회 역사를 훑어보면, 동시에 여러 교황이 있었을 적에는 각자 자기 구미에 맞는 교황을 좇을 수 있었으나 지금 우리에게는 이중적인 교황이 있다”라고 한 것은 꽤 의미심장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여러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들어 ‘머리가 둘 달린’ 교황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황이 교황권의 전통, 즉 무류성의 전통을 표현하는 범위 안에 있다면 우리는 교황에 일치합니다. 교황에게 부여된 무류성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귀속되려는 것이며 아직까지도 그런 무류성을 지지하는 이는 우리뿐입니다. 반면에 어떤 면에서건, 존재론적으로 말해서 교황은 무류성을 구체화한다고 일컬어질 수 있으나, 그 자신이 무류성을 믿지 못함으로 해서 틀림없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무류성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니, 공식 선언이나 문서 중 어느 것에서도 무류성을 나타내는 표시라곤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게 당연하지요. 저들은 무류성을 믿지 않는 까닭에, 2차 바티칸에 대해 말하기를 교리에 관한 공의회가 아니고 사목상의 공의회라고 주장합니다.


 진리가 ‘살아 있어서’ ‘진화하니’, 어쩌면 역사, 과학, 기타 등등과 발맞추기 위해 틀림없이 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류성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교리와 진리를 영원토록 규정합니다. 우리는 공의회에 의한 교회와는 달리 무류성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공의회를 따르는 교회는 분명히 무류성으로써 영원토록 규정된 진리와 교리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랏징거 추기경만이 무류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교황마저도 자신의 철학적 배경으로 인하여 무류성을 반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해두죠. 우리는 베드로의 주교좌인 교황청의 변하지 않는 가치 때문에 싸우는 교황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무류성을 믿지 않고 에큐메니즘을 실행하는 현대주의 교황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말로는 분열하지 않는다면서 실제로는 분열하고 있는 공의회적인 교회에는 결단코 반대합니다.


 그런 교회는 현대주의 교회이기에 사실상 파문 당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우리가 가톨릭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그 이유만으로-우리를 파문했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황과 가톨릭 교회에 결합되어 있고 싶습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마디란 씨는 상황을 잘 알면서도 우리더러 가견적 교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무류성이라는 은혜를 받은 가견적 교회에서 갈라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Fideliter: 주교성성에 관하여 어떤 식으로건 이견이 없는 것, 저들에게 어떤 이견이든지 전달하지도 않는 것, 그리고 대주교님이 에콘을 설립할 당시 의도했던 대로 사제를 이룬다는 게 여전히 가능한지요? 신학생들이 가톨릭 사제직을 위해 양성되고 있다면, 그들에게 신품성사를 베풀 가톨릭 주교가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Lefebvre: 가톨릭 주교가 없다면 그들에게는 몬시뇰 드 밀르빌(Mgr. de Milleville)과 같은 주교가 있게 될 터인데, 그는 사제 서품시에 평신도처럼 옷을 입고 퐁공보(Fontgombault)에 나타났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강론을 하게 되면 신학생들에게 뭐라고 설교할는지 그리고 그 신학생들에게 어떤 표양을 보일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아닙니다. 악한 결과만을 내비치는 공의회에 의한 교회입니다.


 저들은 교회를 파괴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습니다. 듈락 신부가 표현했듯이, 한 사람에게 두 가지 교황이기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은 요한 23세였습니다. 세계를 향해 교회를 개방하기를 시작한 사람도 요한 23세였습니다. 그 후로 모든 것은 애매모호, 전형적인 자유주의의 징후를 띠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지 주교성성에 관하여 의심이나 망설임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파문 당하지도 않았으며, 교황에게 대항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지 않으며, 새 교회를 세우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게들 말한다면 완전히 넌센스입니다. 우리는 항상 해왔던 그대로일--가톨릭을 계속할--뿐입니다. 문제를 복잡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포페(Paupert)가 자기 저서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작은 교회(Petite 'Eglise)'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마지막 부분에서 말한 것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까지 합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상 모르겠다!”


  그 포페 씨는 한때 사제는 아니지만 신학생이었습니다. 신앙을 잃었다가 다소나마 회복하여 전통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도 공의회적인 교회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이제 가톨릭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종교로써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나는 요즘 교회에 들어가면 이방인처럼 느낀다. 그것이 내가 영성체를 안하는 이유다”라고 기록했습니다.


  포페 씨는 영리하기는 하지만 일종의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려서 빠져 나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일이지요. 이는 결코 순직하게 자기 입장을 밝히지 않을 가톨릭 신자 및 전통을 지지하는 사람 모두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현재 교황을 차지하고 있는 주교들과 더불어 공식적인 교계제도가 있는 공동체에 남고 싶어하지만, 어렸을 때 행했던 대로의 가톨릭 신앙을 느끼지 못하고 또 그 신앙으로 다시 돌아올 의지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가톨릭 신자들이 수백만이나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많은 이가 주일이 되어도 성당에 가지 않는 이유입니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이단으로 빠지거나 신앙생활을 함께 하기를 포기하여 결국에는 신앙을 잃고 맙니다.


  Fideliter: 드 마르게리(de Margerie) 신부는, 저서 “에콘이라는 비극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Econe, Comment Denouer la Tragedie)"에서 대주교님이 계속 거부해 온 것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여 로마와 화해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Lefebvre: 개인적으로는 드 마르게리 신부를 모르지만 그의 책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분명코 그는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려는 뜻에서 그 탓으로 돌리려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전통에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려 함에 따라 자유주의자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나는 그런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매우 영향력 있는 인사 몇 사람을 포함하여 공의회적인 교회를 지지하는 자들은 지난 해 베니스 의회에서 종교의 자유에 관해서 무언가 정말로 변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 중에는 교황의 사회에 관한 회칙에서 초고를 도맡았던 라테란 대학교의 총장과 로마에서 중요한 인물인 몬시뇰 파방느(Mgr. Pavan)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에 관하여 아주 많은 저서를 집필한 랏징거 추기경과 신학자들과 같은, 다른 이들은 여전히 종교의 자유가 전통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입증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근본적으로 진리에 관한 자유를 고찰했으나, 지금의 자유는 인간의 양심에 기울어져 있고 또 그것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참된지 선택하는 일이 양심의 자유에 맡겨져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권’을 용인하는 것은 대변혁의 독약을 마시는 것입니다. 적어도 몬시뇰 파방느와 라테란 대학교의 총장은 그에 관한 한 정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 입을 막으려고 무언가를 말하려 합니다. 그러나 흑백이 분명한즉, 원래 국가, 시민 사회는 참된 종교를 구별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우리 주님 때부터 계속된 교회의 역사는 그에 관한 어떤 주장도 극구 부정합니다. 교회를 보호했던 아르크의 성녀 요안나(Jean d'Arc-잔 다르크), 성인 성녀들과 성 왕, 성 군주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이 참된 종교를 구별할 수 없었습니까? 뉘라서 감히, 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말들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로마에서 중재자들을 거쳐 온,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응답은 아무 것도 바꾸지 않고 전통만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의 주장은 종교의 자유에 관한 공의회의 발표에서 이루어진 것보다도 훨씬 더 사악합니다. 그것들은 틀림없이 공식적인 거짓입니다.


  로마 당국이 공의회를 따르는 개념--종교의 자유, 에큐메니즘, 주교가 교황과 함께 행정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기타 등등--을 수용하는 한, 저들은 잘못된 궤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 상황은 실제 결과 때문에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황이 쿠바를 방문한 것에 대한 합리화이기도 합니다. 교황이 공산주의 지도자들--그리스도인을 고문하거나 피 흘려 죽게 한 데 책임이 있는 자들--을 방문하거나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치 그들이 훌륭한 인간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Fideliter: 루스티제(Lustiger) 추기경이 키예프(Kiev)에 갈 수 없었을 때 방해받지 않았습니까?


  Lefebvre: 그는 모스크바가 가톨릭이 되었다고 여기면서 소련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교황이 모스크바에 우크라이나 총대주교를 임명하고 그 곳에 있는 사람이 슬리피(Slipij) 추기경의 후계자를 복위시킬 권한을 다소 허락했다고들 하지만 임명된 사람은 분명히 피멘(Pimen)과 같은 소련의 앞잡이였습니다.


  그런 방문들은 모두 소련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방문은 그들이 원하는 바, 즉 정부의 조종을 받는 교계제도를 설치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인들이 자기들 손안에 있게 하기만 하면 끝날 것입니다. 그들은 헝가리에서 민첸티(Mindszenty) 이후 그가 지켰던 자리에 레카이(Lekai)를 임명할 때에도 똑같이 했었습니다(역자 주: 민첸티 추기경은 폴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주교였으며,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다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감옥에 갇혔었다). 레카이 사건이라!; 얼마나 치욕스런 일이었는지요! 예전에 모든 추기경과 주교들은 가톨릭교를 보호한다 하여 감옥에 투옥됐었는데, 이제는 그 후계자들이 가톨릭 사제들을 감금하는 데 앞장서는 바람에 진정한 책임이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전의 사제들과 같은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주교들은 우리가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박해합니다. 우리는 무신론의 정부,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프리메이슨에게 박해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소위 가톨릭 주교, 즉 공의회적인 교회의 주교들에게 박해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는 ‘평화사제단’에 속한 그리고 공산주의 정부를 지지하는 공의회의 주교들이 있습니다. 작금의 박해자는 이제 정부가 아니라 주교들입니다.


  나는 현재 헝가리에서 지내고 있는 사제가 거기서 띄운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주교와 그의 사제들 사이에 논쟁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답시고 이상적인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끼어 든다고 하였습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요. 교황은 실책과 악덕을 수반하는 정책을 통해서 진리와 덕목과 같은 사항에 많은 해악을 끼쳤습니다. 그것은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파멸을 안겨 주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덕행, 도덕성의 진짜 기초, 사회 그 자체까지도 완전히 파멸시킵니다.


  Fideliter: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족의 화합을 보호하고 사제의 결혼을 반대하며 낙태를 반대합니다. 도덕적 가르침에 관한 한, 많은 이가 그를 훌륭한 교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Lefebvre: 자연적 윤리성의 원칙에 관한 한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더라도 실질적인 단계에서는 피임을 공개적으로 찬성하는 사제를 반대하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어떤 것에든 엄격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며, 강경한 행동을 취해 정지시키지도 않습니다.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자연법에 지나지 않는 일반적인 의견만을 공언할 뿐입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낙태에 반대할 때에야 교황이 지지하리라는 것은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지요?


  Fideliter: 오스트리아 및 여타의 지역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소 전통주의 쪽이라고 생각되는 주교들을 임명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프랑스 출신의 다른 이들이 지지하는 일단의 독일 신학자들로부터 비난받았습니다. 최근에 랏징거 추기경 역시 신앙 고백문과 더불어 충성을 서약하는 것에 대해 그런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주교님은 이렇듯 약간의 정정이 이루어짐과 전통적인 교리를 향한 회두의 조짐이 더 많아진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까?


  Lefebvre: 그것이 진정한 회두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전쟁을 하는 것에 비유해 봅시다--군대가 너무 앞서 간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을 저지시키지 않겠습니까? 같은 식으로 저들은 공의회를 지지하는 자들이 너무 앞서 가고 있어서 2차 바티칸의 고삐를 조금 늦추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경우이건, 신학자들을 자극해서 좋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논하고 있는 주교들은 공의회적인 개혁과 에큐메니칼하고도 카리스마적인 운동의 공의회를 100% 지지합니다. 어느 면으로는 저들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온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통 교회의 느낌을 다소 보여주기는 하되 속속들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들은 공의회의 주요 원칙, 실책으로 이어질 것들을 환영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합니다. 실제로 나는 저들 보기에 아주 가혹하게 취급해야 할 부류가 되었을 정도로 멀리 간 상태일 것이며, 공의회 편에서 보자면 가장 고집쟁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어떤 켐페인에서든지 필요한 전략입니다--무절제를 피해야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교황은 곧바로 독일에서 몬시뇰 카스퍼(Mgr. Kasper)를 주교좌에 착좌시켰습니다. 그는 브뤼셀의 다니엘스(Danieels) 추기경이 의장이었을 적에 1985년 교회회의의 국무원이었던 사람입니다. 카스퍼는 교회회의의 배후에서 진정한 지도자였던 동시에 기획자로서, 매우 영악스럽고 가장 위험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교황이 주교로 세운 것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독일성직자협회 의장이면서 극히 위험한, 트리르(Trier)의 주교와 같은 사람입니다. 마음속으로는 라너(Rahner) 및 큉(K¨ung)과 같은 사람들을 지지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 매우 조심하는, 철저하게 좌익인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똑같이 일합니다. 그래서 아닌 것입니다. 정말로 나는, 현재로서는 어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겠습니다.


  Fideliter: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랏징거 추기경들에게서 보는 것과 같은 태도와 르 바루의 베네딕토 수도회, 성 빈첸시오 페레회 또 성 베드로회, 계속 묵묵부답하고 있는 마예르(Mayer)에 대한 태도는요? 그들이 진지하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아직 다른 전통주의 단체들을 설복시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속 다르고 겉 다른 게임을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보십니까? 나중에 ‘화해가 이루어진’ 사람들에게 자기네 계획을 털어놓고 공의회에 복종하라고 할까요? 아니면 그들의 정책 변화를 참되다고 인정해야 할는지요?


  Lefebvre: 모두 다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여 그 쪽을 향한 것은 예외적인 방법입니다. 모든 사제들과 전세계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결정이 아닌 것이지요. 특별한 경우에 허락되는 예외적인 특전입니다. 저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퐁공보의 수녀원에서, 주끄(Jouques)의 수녀들에게 그리고 다른 여러 수도원에서 허락된 것은 특전이라는 이름으로 허락된 것입니다. 자, 특전이란 언제나 폐지될 수도 있는 예외적인 것입니다. 특전이라 함을 뒤집어 보면 새미사 및 전반적인 새 전례가 일반 규칙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공동체들은 예외로 취급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사례 한 가지를 보면, 대주교 추기경은 우리 근거지 근처에서 시험 삼아 3대의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해서 우리 신자들을 떼어놓는 것이었습니다. 6개월간 시험적으로 운용할 예정이라면서 말입니다. 신자들이 우리 본부를 떠나기 시작하면 계속할 요량이었던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우리 신자들이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있으면 그 시도를 중단할 것이었습니다. 그런 미사가 드려지지 않게 되면, 전통적인 전례를 아는 신자라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류스티제 추기경은 우리를 떠난 사제들에게 교회를 맡기려는 듯 하지만, 그 교회에 있으려면 마찬가지로 새미사를 봉헌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랏징거 추기경은 로마에서 우리와 논의하던 중, 성 니콜라(Saint Nicholas)에서 사용되었던 옛날 방식의 전례가 허락되려면, 그 곳에 새 양식의 미사도 있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역자 주: 성 니콜라 뒤 샤르도네는 파리에 있는 가톨릭 교회로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들이 오로지 전통미사만을 드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저들이 새미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도무지 꿈도 못꿀 일인즉, 오히려 반대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양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가능한 한 많은 신자들을 우리에게서 떼어놓기 위한 전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은 항상 그런 목적을 가지고 약간 더 신경 써서 우리를 만족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술책인 까닭에 공의회를 따르는 주교와 현대주의 로마의 손아귀 안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공의회의 실책을 피하느라 그저 공의회를 공언한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 20년 동안 싸우고 있는 게 아닙니다.


  Fideliter: 대주교님이 성성한 주교들은 1년 동안 각자가 맡은 성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주교님이 바라시던 대로 그리고 성성이 있기 거의 1년 전에 쓴 서한으로써 그들에게 제시해 주신 방향대로 되었는지요?


  Lefebvre: 지금까지는, 다 잘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주교들에게 일종의 영유 지배권을 주려고 한다 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즉, 어떤 주교도 특정한 지역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 주교는 프랑스인을 위하여 성직을 수행하고 독일어를 말하는 주교는 독일인에게 성직을 수행하는 등등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비난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따금씩 서로 교체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윌리암슨(Williamson) 주교는 통상적으로라면 미국에서 견진성사를 거행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필레(Fellay) 주교도 세인트 메리(St. Mary's)에서 견진성사를 거행할 수 있으며, 따라서 미국이 윌리암슨 주교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필레 주교는 또 남아프리카에도 갔었고, 남아메리카에도 갔었으며, 독일의 자이쯔코펜(Zaitzkofen)에도 갔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며 우리는 이렇듯 주교들에게 영역을 배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사제를 서품할 수도 있고 견진성사를 거행할 수도 있으며, 내가 여러 해 동안 해왔던 것을, 나를 대신하여 행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밖에 다른 목적도 있지만, 특정 지역으로 가도록 지명된 교구 장상들은 가능하다 면 언제나 자기를 부르는 영혼들을 도우러 달려갑니다. 그 영혼들에게는 성사와 진리를 구할 자격이 있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그들을 도우러 가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부르는 것은 교회법으로써 규정된 권리이며 따라서 그들을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게 잘되고 있다고 보며 천주께 감사드립니다. 신자들에게서 돌아오는 메아리는 그들이 우리 주교들에 대해 만족하고 있고 또 기뻐 환영해 마지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사제와 신학생 몇 명을 잃는다는 게 자못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순례상의 특성으로 인해, 우리와 완전히 일치하지 못하고 우리 싸움을 이해하지 못하여 사람들이 우리를 떠나도록 천주께서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욱 강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 행동도 더 단호해집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비난하고 또 우리와 일치하지 않아서 분열과 혼란으로 이끌 수도 있는 사람들이 계속 있을 것입니다.


  슈밋버거(Schmidberger) 신부님이 강조하셨듯이, 우리 신학교에는 대단한 흡입력이 생겨서 비오 10세회의 수녀들과 그 밖에 다른 수녀들도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몇몇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우리를 걱정시켰던 큰 손실로 말미암은 영향을 그리 심하게 겪지 않고 있습니다.


  Fideliter: 대주교님은 근래에 티앙둠(Thiandoum) 추기경의 요청으로 그를 만났었습니다. 그가 화해의 길을 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Lefebvre: 그가 네일리에서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회의 수녀들과 함께 있었을 때, 자기를 만나 달라고 주장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갔었지요. 아직은 매우 우호적이기는 해도, 지금으로서는 절대로 로마로부터나 티안둠 추기경으로부터, 혹은 그밖에 다른 어떤 추기경으로부터도 제안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늘 그렇듯이, 말보다는 행동이 더 요란하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신자들이 “대주교님은 교황에게 정말로 중요한 편지를 써야 합니다”라고들 합니다. 20년 동안이나 서한을 보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로마에 설립된 신학교와 소수도원과 학교 그리고 수녀회로 수녀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드는 것을 보여줍시다. 그것이 억지로라도 협상하게 만드는 단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여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기반과 사업에 관한 문제입니다. 로마는 그것이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교들은 우리가 여기 저기로 다니는 것을 보자 당황하여 로마에 호소했고, 그로써 로마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로마에 어떤 접근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기다려야 한다고 믿고 있으니, 그것은 불행히도 저들 편에서 상황이 더 악화되었노라고 여기는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저들은 아직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Fideliter: 로마가 단 1명의 주교라도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협의안은 일치를 끌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양보가 거절당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 큰 양보도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세계에 거의 3,000명의 주교가 있는 것에 비하면 1명의 주교는 적은 것이 아닌가요?


  Lefebvre: 맞습니다. 어이없는 일이지요. 그에 대한 해답 한 가지는 저들이 전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겠지만, 저들은 공의회의 실책에 반대하여 일하는 주교가 1명이라도 있을까 두려워 그냥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Fideliter: 대주교님은 랏징거 추기경이 제정한, 충성을 서약하고 또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신앙 고백문 교육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Lefebvre: 무엇보다도 먼저 신경(Credo)을 거론해야겠습니다. 손대지 않은 상태 그대로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첫째와 둘째 문단을 보면, 표준 가톨릭 신학이므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바입니다. 그러나 세째 문단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현대의 주교들이 지닌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손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문은, 그 문단이 공의회의 정신에 입각하여 첨가되었음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음으로 해서 공의회 및 공의회주의자들의, 이른바 현대의 교정권에 딱 들어맞습니다. 저들은 “교정권이 전통과 완전히 일치하는 한에 있어서… ”라는 말을 덧붙여야 했습니다.


  현 상태로는, 그런 신앙 고백문은 위험함은 물론 사물을 보는 관점이 일치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공의회 후에는 할 수 없게 된, 현대주의를 반대하는 선서를 부활시켜 충성의 선서를 하게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절대로 이치에 닿지도 않을 뿐더러 허위입니다. 독소는 셋째 문단에 몽땅 다 들어있는데, 그런 신앙 고백문에 서명하도록 설득 당한 사람들을 강요하여 자신이 주교들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선언하게끔 교묘하게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리안파 이단이 있었던 시기에 누군가 “지금 당신은 그 점에서 아리안파 주교들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합니다”라고 했던 것과 같은 것이지요.


  결코 과장하는 게 아닙니다. 서문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속임수인 걸요. 로마가 같은 식으로 협의안의 원문을 바꾸려 하지나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생깁니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공의회를 꼭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없었기에 교리상의 선언 제3조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리해 보였었습니다. 지금 저들이 행하는 것은 그랬던 것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들이 성 베드로회의 성직수임 후보자 및 사제들로 하여금 그런 협의안에 서명하게 할 것이 분명한즉, 그것은 저들이 공의회를 따르는 주교들에게 복종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들이 일하는 방식은 늘 그런 식이며, 변함이 없습니다.


Fideliter: 마지막으로, 대주교님은 의혹을 품는지요? 어는 정도 후회하시나요?


Lefebvre: 아니요! 결단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을뿐더러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모두가 천주님의 뜻에 의해 그리고 거의 기적적으로 이끌려 왔다고 믿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은 늙고 있습니다. 돌아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해요? 라고 하면서 나를 몰아세우는 바람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3년 또는 4년 전에도 주교를 성성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합당치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저들의 인가를 받은 상태에서 전통을 지키는 주교를 확보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다했음을 로마에 보여주도록, 천주님이 점진적으로 진전되는 상황이 되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한층 더 끝없는 어려움을 겪어야했습니다. 나는 올바른 결정을 내렸고 급기야는 로마와 함께하는 궤도의 종점에 도달했다고 확신합니다. 친애하는 우리 주교 데 카스트로 마이어는 기운이 너무 없어져서 이제는 미사를 드리지 못하며 주교성성이 있은 후 1년도 채 못 되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나는 그가 계속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신앙을 훌륭하게 고백했으며 우리 주교들을 나와 함께 성성하는데 동의한 것이 진정한 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그가 존재하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와 새로이 탄생한 주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성총이었습니다. 두 명의 주교가 그들을 성성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 자신에 관해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만족하고 있으며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운이 매우 급속도로 떨어지는 바람에 건강이 충분하지 못하므로, 이제껏 거행하고 있는 예식들도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것처럼 세계를 순방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또 미국에 가서 위노나(Winona)에 새로 생긴 신학교를 방문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나는 한계점에 도달해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지치게 하지 않는 일-성당축성, 깔멜 수도회의 착복식, 사제의 첫 미사에 참석하기-만을 받아드리는 데, 과거에 했던 것과는 턱없이 차이가 납니다. 나에게는 지난해의 6월 30일이 마지막 기한이었음을 아주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일이 이루어진 그대로 보이게 하는 것이 천주님의 뜻이었다고 믿습니다. 주교성성의 예식에 참석했던 이는 모두가 그것을 기억하되 경탄해마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섭리였습니다.


 나는 이제 신자수가 계속 늘어나고 그들의 눈이 열려서 마침내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게 되어, 점점 이단화되고 있는 공의회에 의한 교회가 아닌 전통 안에서 구원을 발견하게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Fideliter: 대주교님 물론 ‘오해의 성직자 명단(Annuario Pontificio)’에서 주교님의 이름이 삭제된 것을 알고 계신지요?
 
Lefebvre: 그래도 천주님의 ‘성직자 명단’에서는 삭제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됐더라도 상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