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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4. 흔들리지도 않거니와, 타협할 수도 없다(1990. 09. 0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6-10

 


흔들리지도 않거니와, 타협할 수도 없다(1990. 09. 06)


 평신도들은 그대들에게 또 잘 모르는 이들은 나에게, 미래에 관해서 그리고 성 비오 10세회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와 관련하여 빈번하게 묻는 의문, 즉 “로마와의 관계는 결별인가? 모두 끝인가?”라는 식의 질문에 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몇 주 전에 아마 3주 전이었을까, 오디 추기경에게서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각하, 사건을 수습할 방법이 없나요? 아무 방법도?” 나의 대답, “당신들이 바뀌어 전통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전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신앙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니요. 아니예요! 신앙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예요! 교황은 준비가 되어 있으며, 당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 편에서 아주 작은 몸짓, 용서를 받겠노라는 요청을 조금만 하면 다 잘될 터인데요.” 바로 이렇게 오디 추기경이 말했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떤 식으로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데에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어느 것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이는, 다소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ㅡ팔라찌니, 스티클러, 가뇽, 오디 추기경들에 대해서 한결같이 적용된다. 그들은 로마에서 세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영향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으며, 그나마 있던 영향력도 다 잃고 말았다. 그들이 소용되는 구석이라곤 성 베드로회에서 서품식을 거행하는 일만 있을 뿐, 아무 데에도 힘이 되지 못한다.


 어쨌거나 문제가 심상치 않게 되었다. 매우 심상치 않다. 절대로 축소 해석하지 말아야 하는즉, “위기가 언제 끝날려나? 우리가 과연 성공할까? 우리 전례, 우리 성사를 허락 받을 방법이라곤 전혀 없는 건인가?”라고 질문하는 평신도들에게 그런 식으로밖에 달리 대답할 도리가 없다.


 확실히 전례와 성사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로마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신앙 문제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모든 시대의 신앙. 트리덴틴 공의회에 의한 교리문답식 신앙. 성 비오 10세의 교리문답식 신앙, 따라서 성교회의 신앙, 성교회의 공의회식 신앙과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재임한 교황들의 신앙을 지키는 바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지금 공식적인 교회는 제 2차 바티칸공의회의 그릇된 생각 및 심각하나 오류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도 간신히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탬 신부는 멕시코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 극히 흥미로운 일 몇 가지에 대한 원고를 상당량 보내주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그는 『오쎄르바토레 로마노(Osservatore Romano)』지에서 가위질한 기사, 그러니까 교황, 카사롤리 추기경과 랏징거 추기경의 연설, 교회의 공식적인 연제를 실은 로마의 공식 신문에서 가위질한 가사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공식적인 기록의 문헌들은 『오쎄르바토레 로마노』지가 강행한 것으로,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할 여지가 없는 것인 까닭에 요긴하다. 즉, 그 신빙성에 있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싸움은 예로부터 있어 온 싸움이다.


 자, 그 원문은 아연실색할 것들 일색이어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 원문 가운데 몇 가지를 간략하게 인용하겠다. 믿을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지난 몇 주 동안, 약간의 시간을(이제는 여가가 좀 생겼으므로!) ‘자유주의 가톨리시즘’이라는, 에마누엘 바비에(Emmanuel Barbier)가 집필한 책을 재독하는 데 보내고 있었다. 현재 우리가 행하고 있는 싸움이, 정확히 19세기의 ㅡ프랑스 혁명의 결과로서ㅡ 위대한 가톨릭인들 및 비오 6세, 비오 7세, 비오 8세, 그레고리오 16세, 비오 9세, 레오 13세, 그리고 비오 10세, 비오 12세에 이르기까지 역대 교황들의 싸움과 얼마나 똑같은 싸움인지 알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분들의 싸움은 실라부스(Syllabusㅡ비오 9세의 교서요목: 이단서의 표)가 실린 회칙, ‘콴타 구라(Quanta Cura)'와 비오 10세의 ’파첸디 도미니치 그레지스(Pascendi Dominici Gregis)' 속에 요약 되어 있다. 그 위대한 문헌 두 가지는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서 특히 ‘인권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에 들어 있는 오류들, 즉 현대의 오류들에 맞서는 교회의 가르침을 펼쳐 보인 것으로, 당시의 세상을 놀라게 하고 충격을 주는 문헌들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한창 몰두해 있는 싸움과 똑같은 싸움이다.


 실라부스와 파첸디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반대자들은 프랑스 혁명의 원칙, 현대의 오류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실라부스와 파첸디에 찬성하는 이들은 참된 신앙과 더불어 가톨릭 교리 안에 충실하게 남아 있다.


 여러분은 랏징거 추기경이 자신에 관한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대하여 ‘반 실라부스(anti-Syllabus)'라고 한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그 추기경은 분명히 실라부스를 반대하는 자들 편에 섰었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확언하기를, “정말로,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열중했으면 교회는 교회 자체의 원칙이 아닌, 현대사회에서 비롯된 원칙을 향해 문을 열였다.” 즉, 모든 이가 이해하는 바에 따른 1789년 인권의 원칙과 같은 부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확언하건대, 우리는 비 추기경(Cardunal Pie), 프레펠 주교(Monseigneur Freppel), 루이 베이요(Louis Veuillot) 등이 취했던 입장, 그리고 당시의 주교들과 힘을 합하여 훌륭하게 싸워 주었던 데푸티 켈러, 스위스의 메르미요(Mermillod) 추기경 등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대다수의 주교를 자기편으로 확보하는 행운이 있었다! 듀팡로(Dupanlo) 주교와 그를 따랐던 프랑스의 몇몇 주교들은 예외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실라부스를 공공연하게 반대하였으니, 비오 9세를 반대했던 독일 주교 몇 위와 이탈리아 주교 몇 위는 통례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고 혁명 세력, 혁명의 유산이 있었음이 확실했으니, 혁명권역을 향하여 손을 내밀고 인권의 정반대인 천주권에는 절대로 호소하려 들지 않았던 듀팡로, 몽트러이(Montreuil), 라므네(Lammenais) 및 다른 이와 연계된 손이 있었다. “우리는 모든 인권, 모든 이에 의해 분배되는, 모든 종교에 의해 분배되는 권리를 요청할 뿐 천주의 권기를 요청 하지 않는다ㅡ.”라고 그 자유주의자들은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착각하지 말자.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한창 치열한 큰 싸움 가운데 서 있다. 크나큰 싸움이다. 우리는 역대 교황들이 보증해 주는 전쟁을 치르고 있으므로 그 어떤 망설임도 두령무도 없다. 망설임이란, “어째서 우리 자신의 것만을 계속해야 하는가? 끝내 로마와 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황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식의 망설임을 말한다. 그렇다. 로마 및 교황이 전통과 같은 대열에 서 있다면, 저들이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모든 교황들이 이룬 것과 같은 업적을 수행하고 있다면 당연히 망설인다! 하지만 저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더불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하지 않는가. 저들은 완전히 새로운, 교회의 새 원리에 입각하여 생활하자면 제 2차 바티칸공의회가 새로운 무대라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저들이 직접 그렇게 말하므로 뻔히 보이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우리 백성과 함께 저들을 이끌고 혁명 저편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교회 역사 전체와 우리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 점을 납득시켜야 할까 보다. 그것은 천국과 지옥의 싸움이다. 우리 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궁극적으로 천주님의 은총을 신뢰하기만 하면 되므로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언제쯤에나 끝나려나?”


 천주님만의 비밀이요, 신비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결단코, 현재 로마에서 유행하는 생각, 교황 자신의 입, 랏징거 추기경의 입, 카사롤리 추기영의 입, 빌레브란트 추기경의 입과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생각에 맞서 싸워야 한다 ㅡ 분명히 그런즉, 저들이 행하는 것은 온통 교황들이 말했던 것 및 150년 동안이다 엄숙하게 선포해 왔던 것과는 정반대로 하는 것 일색이기 때문이다! 교황 바오르 6세에게도 말한 적이 있지만, 우리는 택해야 한다. “우리는 한쪽 편의 당신 및 공의회와 다른 편에 있는 당신 전임자들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즉,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선포했던 당신 전임자들과 합류하든지 아니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따르는 신식과 합류하는 것이지요.” 그의 대답, “아, 그것은 신학으로 파고들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신학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한 순간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


그릇된 사랑


 우리를 떠나는 길목에 있는 사람들과 합류하지 않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잠시 잠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는 늘 옆집 마당의 정원이 근사해 보인다며 (달리 말해서, 남의 떡이 커 보인다며) 부러워한다. 동지들, 교회를 옹호하는 자들, 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편에 있는 우리 원수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너그럽고 친절해야 하며 분열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도 트리덴틴 미사를 봉헌하고 있으며, 다들 말하는 것과 같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라면서ㅡ그렇지만 그들은 우리를 배반하고 있다! 교회를 파괴시키는 자들과 손잡고 있다! 교회가 비난한 현대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주의 생각으로 찌든 사람들과 손잡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악마의 일을 하고 있다.


 한때 우리와 하나였고 영혼 구원을 위해, 주님의 권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에게 옛 미사를 허락하는 한, 로마와 손을 잡아도 된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마침내 어떻게 될지는 우리는 안다. 그들은 도통 있을 수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언급한 것인즉, 현대주의자들과 손을 잡은 채로 전통을 따르는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당치도 않을 일이다. 현재 상황에 있는 저들을 데려 와서 전통 쪽으로 전향하게 하고자 하여 저들과 접촉하려는 것이라면, 좋다, 타당한 형태의 에큐메니즘이다! 그러나 본디 사람이란 대부분 결별이라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속성이 있으니, 그런 뜻에서 저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니 된다! 저들은 우리를, 죽은 시체와 같이 전통주의자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저들을 우리에 대해 일컫기를 시체처럼 굳어 있는 자들로서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하고, 우리 것을 이르되 살아있는 전통이 아닌 동시에 융통성 없는 전통이라고 하고 있다! 믿을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 같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선량하기는 하지만, 몸을 도사린 채로 숨어서 성 비오 10세 회를 지지하는 어떤 평신도들, 그리고 한때에는 주교성성을 받아들였지만 자기가 함께 했던 이들과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게 된 이후로는 자신이 주교성성을 받아들였던 것에 대해 과오를 저질렀다면 크게 후회하는 어떤 평신도들, 처음부터 주교성성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도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제기하는 의문은 다음과 같다. “갈라지다니 애석하다”면서 “왜 저들과 타협하지 않는가? 가서 함께 마시자, 저들과 접촉을 갖자”라고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ㅡ 그렇게 하는 것은 배교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무슨 신호만 있으면 방향을 바꾸어 우리를 떠난 사람들과 합류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마음을 정해야 한다.


우리는 타협할 수 없다


 이상과 같은 태도가 프랑스에 있는 교회 뿐 아니라 독일, 그리고 스위스에 있는 교회, 유럽 전체의 기독교계를 죽였다 ㅡ 다름 아닌 혁명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가톨릭의 원칙을 함께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과 접촉했던 자들은 바로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교회의 붕괴 및 그리스도 왕의 사회적 왕권을 괴멸시키는 일에 정말로 함께 참여하기로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위해 계속 일하기로 결심할 것인가?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여, 천주께 감사, 그들이 어디서 오는 사람들이건 간에 환영한다. 그들이 어디서 오는지는지 문제가 안 된다. 그들이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여 갈 길이 다르니 우리를 떠난 자유주의자들과 친하게 지내겠다고 ㅡ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일하겠다고 말하지 말게 하자. 타협이란 있을 수 없으리니.


극도로 잘못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와 자유주의자들 및 현대주의자들 사이의 이 싸움은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전면에 걸친 싸움이다. 그만큼 단순하면서도 광범위하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분석할수록, 교회의 인가를 받고 이루어진 문헌 해석을 분석하면 할수록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표면적인 오류, 몇 가지 잘못 ㅡ 에큐메니즘, 종교의 자유, 주교단체주의, 확고한 자유주의 ㅡ 뿐만 아니라 그보다는 오히려 대대적인 정신적 타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새로운 철학은 전반적으로 현대철학, 주관론에 입각해 있는 상태다. 독일 신학자가 출판한 책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것은 교황의 생각, 특히 피정을 하면서 바티칸에서 강론한 그의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주관적인지를 보여 주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도 그 강론을 곱씹어 보면 그의 생각이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톨릭처럼 보이지만 가톨릭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교황이 천주님에 대해 지니고 있는 관념, 교황이 우리 주님에 대해 지닌 관념은 그저 자신의 의식의 심연에서 나온 것일 뿐 혼신을 다해 지켜야 할 절대적인 계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천주님에 대한 개념을 나름대로 연구한 것이다. 최근에 그는 문헌으로써 말하기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ㅡ 삼위일체에 관한 개념은, 인간 내면의 철학이 삼위일체를 정의할 수 있어야 했으므로 필요에 따라 뒤늦게 생겼을 뿐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삼위일체에 관한 개념이 외부로부터 오는 계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의식에서 비롯되었고, 내부의 인간성에서 솟아 나온 것이며, 인간 의식의 심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계시, 신앙, 철학을 전면적으로 다르게 각색한 것이라니! 얼마나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인가! 완전한 타락이다!


 여기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그 독일 신학자가 보여 주듯이(그 신학자의 책 중에는 교황의 생각에 관하여 기술한 곳이 두 군데 더 있다고 본다).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작은 오류라 할 수 있겠는가. 결코 사소한 것을 다루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틀림없이 칸트, 데카르트에게로 귀결되는 철학적 사고의 대열 속에 있다 ㅡ 혁명을 지지하여 길을 닦았던 현대 철학자들의 대열 속에 있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에큐메니즘


 비교적 최근의 몇 가지를 인용해 보겠는데, 교황이 노르웨이에 있었을 때인 1989년 6월 2일자의 『오쎄르바토레 로마노』지에 실린 에큐메니즘에 관하여 예를 들겠다. “내가 스칸디나비아나라들을 방문한 것은 그리스도인,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에 일치를 이루는 에큐메니즘이라는 사업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해 주기 위해서다. 25년 전에 제 2차 바티칸공의회가, 그렇게 해 달라는 신청이 봇물처럼 교회로 쇄도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적이 있다. 나의 전임자들은 에큐메니칼한 운동의 신성한 근원이신 동시에 보증이 되는 성신의 은총으로 주의를 다해서 그것을 이루려고 계속 노력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목상의 관심사중 최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에큐메니즘이다.” 틀림없이 이런 내용이다.


 에큐메니즘에 관련된 다량의 문헌들을 읽어보면ㅡ모든 종교, 모든 교파들로부터 오는 대표단을 연이어 받아들이는 바람에 에큐메니즘에 관하여 연설에 연설을 거듭하고 있다 ㅡ 주제는 항상 에큐메니즘, 에큐메니즘, 에큐메니즘이다! 그래도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ㅡ 다시 말해서, 결과라곤 예외 없이 비 가톨릭인을 개종시키기는커녕, 그들의 오류를 재 보증해 주는 바람에 도리어 자기네 오류를 확고히 지키게 했을 따름이다. 교회는 이 에큐메니즘이라는 것으로써 아무 진보도 이루지 못한즉, 최소한의 진보도 없었다. 결국 그가 말하는 것이란 그야말로 온통 뒤섞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친교’ ‘더 가까워지는 것’ ‘완전한 친교를 조속히 이루고 싶은 소망’ ‘성사상 친교를 조속히 이루고 싶은 소망’ ‘일치에 있어서’ ㅡ 뒤범벅이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1989년 2월 카사롤리 추기경이 유엔 인권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f Rights of Man)를 향하여 행한 연설로, 『오쎄르바토레 로마노』지에서 발췌한 것을 들어보자ㅡ 어떤 연설이었는지 보라!


 “본인더러 여기 와 달라는 여러분의 초청에 기꺼이 응함에 즈음하여 인간 양심, 종교의 자유의 준하는 생각 및 특별히 행동의 본질적인 자유에 관한 견해에 있어서, 여러분이 이해하고자 하는 것에 교황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격려를 전달하면서 얼마 동안 지내고자 하는 바입니다.”


 소위 대주교라는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들이다! 인간 양심, 따라서 종교의 자유에 준하는 생각과 행동의 자유라니! “작년에 세계평화의 날을 위한 메시지에서 요한 바오르 2세는 서슴지 않고, 종교의 자유란 인권이라는 체제에 주춧돌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권을 강론의 주요 주제로 삼아가톨릭 교회 최고의 목자는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이라면서 빠뜨리지 않고 인권을 되새겼습니다.


…”(카사롤리 추기경의 직접 발언!) “…사회 조직 전체가 인간적인 차원을 최우선의 중심 과제로 삼는 한, 그 전체 사회 조직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천주님은? 천주님은? 인간 안에 천주적인 차원이란 게 도무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섬뜩하다! 이교 사상이 아닌가! 그러면서 계속했다. “모든 이와 인간의 모든 것, 그것이 교황의 첫째 임무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여러분의 첫째 임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그 같은 사람들과 공유할게 과연 무엇이냐는 말이다. 전혀 없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야말로 가톨릭교회의 상속자인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심과 영혼 구원을 위해 공의회 시기까지의 역대 교황 및 공의회 이전의 주교수와 더불어 ‘콴타 쿠라’, ‘파셴디’에 입각한 가톨릭교회의 상속자이다. 그것 말고도 우리는 혁명 정신에 입각한 세계정부안에서 봉사자로서의 입지를 얻고자 하여, 진짜 배교를 바탕으로 하는 인권의 원칙을 인정하는 가톨릭교회 및 그 교리와 결별하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상속자들이기도 하다.


우리 힘은 주님 안에 있다


 단순히 위와 같은 내용만을 말한다면, 우리 싸움을 그 역사적 경위 안에 가두는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분명히 말하건대. 그것은 제 2차 바티칸공의회를 시발점으로 하여 시작한 것이 아니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격렬하고도 매우 고통스러운 싸움이었으니, 그 싸움에서 많은 피가 흘렀다! 그리고는 박해, 정교분리, 수도자 및 수녀들의 유배, 교회 재산의 압류, 기타 등등….


 자, 그런 혁명가들과 합류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교황이 공언한 교리,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 교회의 권리, 우리 주님의 권리를 방어하고자 저항하여 들고 일어난 목소리를 무시해 버릴까? 참으로 우리에게는,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 힘과 바탕이 있으니, 우리가 싸우는 게 아니라 교회가 수행해 온 우리 주님의 ㅡ 선한 싸움이 아닌가 한다. 교회에 맞서거나 아니면 새로운 교회를 지지하거나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따르는 새로운 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아무 관련도 없거나 연관성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교황이 인권에 대해 말할 때에는 인간의 의무를 내비쳐야 하는 데도,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온통 인권, 인간만을위한 것, 인간에 의한 것만을 주장하고 있다. 정말로 섬뜩한 일이다!


성 비오 10세회는 싸움을 계속 하련다


 천주님의 성총을 힘입어 여러분의 싸움을 인식시키고, 여러분을 강하게 하기 위한 생각 몇 가지를 펼쳐 보일까 한다.


 좋으신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할 게 뻔한 연고이다. 성 비오 10세회가 사라질 뻔한 적이 적어도 4, 5회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있으니, 천주께 감사! 우리가 건재함에 대하여 감사에 감사를 거듭할지니. 특히 1988년 주교성성이 있던 때에 사라질 뻔 했었다 ㅡ 그렇게들 예견했었다. 판결 예측가 전체와 우리 측근 중에서도 “안 됩니다, 안돼요, 각하,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하면 성 비오 10세회는 끝장입니다, 모든 게 끝나고 말 터이니 두고 보십시오, 그만두셔야 합니다.”라고 한 이들이 있었으나 우리는 살아남았다.


 아니다. 좋으신 주님은 당신의 싸움, 혁명에 맞서 순교하신 분들이 있었던 싸움, 그리고 19세기에 걸쳐 겪었던 박해로 말미암아 정신적으로 순교한 이들이 있었던 싸움이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 시대에도 성 비오 10세는 순교자이셨다. 그렇든 신앙에 있어서 모든 영웅들, 박해 당한 주교들, 압류된 수도원들, 추방된 수녀들. 이 모두가 그냥 무위로 끝나야겠는가? 그 모든 싸움이 헛된 싸움이련가? 그 희생자들을 비판하는 싸움인가? 또 순교자들을 비판하는 싸움인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당시와 똑같은 조류에 휩쓸려 있고, 그로써 똑같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니, 천주께 감사드릴 일이 안고 무엇인가.


 우리는 박해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박해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쫓김을 당하는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그 밖에는 내쫓김을 당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만 물리적으로까지 박해받고 있다. 예컨대, 스위스에 있는 우리 동료들은 또 다시 병역의 의무를 지고 있다. 스위스 정부에 의한 박해인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우리에게 들어오는 수입을 차단시킴으로써 질식시키려고 교구를 양도됨에 따른 유산을 봉쇄시키는 바람에 결국 프랑스 지역의 성 비오 10세회를 박해하고 있다. 이는 박해다. 역사적으로 계속돼 왔던 그런 종류의 박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도 천주님은 당신의 방법대로 작용하고 계시다. 통상적으로 프랑스의 우리 교구는 질식당해 왔고, 학교의 문을 닫아야 했으며, 우리에게 금전을 지불하는 모든 교육기관을 폐쇄시켜야 했건만, 그런 상황이 현재 2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중임에도, 그렇든 불의 불법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섭리께서는 우리 후원자들이 관대해져서 재정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시고 계시다. 불법이라고 하는 이유는 법규, 법규 해석이 우리 편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류스티제(Lustiger) 추기경은 프랑스 대사에게 보내는 서한으로써 우리 유산을 봉쇄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한은 다름이 아니라 그 사건을 조종하는 배후의 힘이었던 어둠의 영인 몬시뇰 펄이라는 주교의 영향을 받고 쓰여진 것이다. 바로 그 자다. 1987년 성 비오 10세회를 공식적으로 방문했을 적에, 만면에는 웃음을 띠면서도 악귀로 작용한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 재정을 마비시키면,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 우리가 있게 되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더라고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조(聖祖)들을 볼진대, 아직까지는 금세기 초에 소유물을 몽땅 몰수당하고는 맨 주먹이 되어 거리로 내쫓긴 가톨릭인들 만큼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지 않은가.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뻗어 나갈수록,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편에 있는 이들은 모두 시샘하여 더욱 더 분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좋으신 주님의 성총을 바탕으로 좋으신 주님을 의지해야 할것이니.


 어떻게 될까? 모른다. 어쩌면 엘리야의 도래일지도! 오늘 아침에 성경을 보니 엘리야가 돌아와서 모든 것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으리라는 내용이 있었다! ‘에트 옴리아 레스티투엣(Et omnia restituet) ㅡ 그래서 그가 모든 것을 회복시키리라’는 것이! 감사할진저! 그분이 금방 오신다면 얼마나 좋으랴! 인간적으로 보면, 지금은 로마와 우리 사이에 일치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어제 누군가 말했다. “그러나 만일 로마가 당신의 주교를 인정해서 다른 주교들의 관할권에서 완전히 면제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첫째로, 저들이 그런 일을 지금 바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니, 우선 저들이 그런 제안부터 하게 하자. 그러나 저들을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를 볼진대 지금까지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는 게, 정확히 말하면 저들이 우리에게 전통주의 주교 한 사람을 허락해 주는 것이었다. 저들은 원치 않았다. 교황이 정한 개요(槪要)에 의하면 전통을 지키는 주교가 있었어야 했다.


 ‘개요’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않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들은 전통주의 주교를 허락해 줌으로 인해 정통주의자의 요새가 계속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저들은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성 베드로회에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988년 5월 우리가 서명한 것과 똑같은 협의 안에 성 베드로회의 협의안이 채택하지 못한 주교 1위와 로마 위원회 위원 2명이 있었으니, 사실과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명한 협의안과 그들이 서명한 협의안은 똑같은 것이 아니다. 로마는 그 두 가지 특권을 없애는 데 이용하려고 새 협의안을 작성한 것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저들은 그것을 무효화시키고 싶은 것이었다. 1988년 6월 30일 우리는, 우리가 했던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밝은 미래


 어쨌거나 나는,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여러분을 고무시키고 경하(慶賀)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불만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성 비오 10세회에 속한 사제들의 사업에 대해 감사 편지를 보내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그들에게는 성 비오 10세회가 생명이다! 그들은 자기가 원했던 생활, 신앙의 길, 그들에게 필요한 가족 정신, 그리스도인 교육에 대한 소망, 우리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이 하고 있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모든 학교, 그리고 전통을 지속시키려는 뜻으로 함께 일하는 우리 동지들을 다시 발견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사업을 체계적으로 계속하라. 여러분이 현재의 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러분 모두를 서로 더 많이 뒷받침해줄 수 있도록 우리 공동체가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늘어서 그 숫자가 더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우리 공동체의 열정과 헌신에 대해 장상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정말로 좋으신 주님이 비오  10세회 설립 20년을 맞이하여 좋으신 주께서 신앙을 지키고, 교회의 진리를 지키며, 아직 교회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을 지키는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표징으로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성 비오 10세회라고 내심 확신하는 바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도 없거니와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ㅡ 사제직의 성총, 견진의 성총을 베풀어주는 신앙의 수호자, 신앙을 설파하는 이들의 보호자로서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하고 있는 총장상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주교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그 모든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천주께 감사해야 하며, 사람들이 언젠가는, 1987년의 방문이 열매를 거의 맺지 못했음에도 우리는 계속 충성했으며 그 방문이 있은 후 저들은, 자기들이 방문했었다는 것을 우리 외부에 분명하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성 비오 10세회가 선한 일을 행하고 있었노라고 인정하게 되고야 말도록 계속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들이 언젠가는 전통의 신앙으로 돌아오면 ㅡ 누리게 될 기쁨과 만족을 느끼면서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영적인 힘과 신앙의 힘으로서의 역할을 그동안 성 비오 10세회가 맡아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터인즉,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여러 나라를 순방하면서 지향했던 바를 모두 파티마의 성모께 청하되 특별히 동정 성모께서 도와주시어 성 비오 10세회에 성소자가 낳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우리에게 성소자가 좀 더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아직은 우리 신학교가 신학생들로 다 채워지지 않은 상태인데, 그 신학교들이 채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천주님의 성총을 힘입어 그렇게 되리라.


 끝을 맺으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착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 내 할 일은 내내 그 뿐인 것 같으니.


(사제들을 위한 강론. 에콘. 1990. 09.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