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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 서거 26주년을 맞이하여(2017년 3월 25일, 에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05


르페브르 대주교 서거 26주년을 맞이하여(2017년 3월 25일, 에콘)


1991년 당시 에콘 신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데니스 푸가 신부님(Fr. Denis Puga)의 증언을 이곳에 게재합니다.


천주님의 사람


3월 16일, 토요일, 수술이 있기 2,3일 전, 신학교에서는 차부제(次副祭)들에 대한 서품식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저는 타차 타고 마르티니 병원에 가서 르페브르 대주교님의 동료가 되고자 헀습니다. 환자 돌봄 의자에 앉아서 그분을 지켜볼 수 있었고, 1988년에 있었던 네 분의 주교성성이 있은 후에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당시에 네 분의 주교들은 대주교께서 더 이상 신체적으로 거동을 못하여서 서품을 주고 있었습니다. 늙은 시메온의 Nunc Dimitis를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예, 이제 나는 평화 속에서 갈 수 있네요. 성비오10세회를 무장(武裝)시키고, 체계화했으며,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련하고 갑니다.”


그날 몇 칠 전, 대주교께서는 몸의 상태가 위중해짐을 느끼고, 당시 에콘 신학교 학장인 시모울린(Fr. Simoulin) 신부님께 종부성사를 해달라고 하셨고, 신학교 사제더러 고해성사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대주교님의 요청에는 어떠한 고뇌나 걱정거리는 없었고 그저 그리스도인의 성향으로서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면서 주님을 만나려는 준비를 소망했습니다. 수술이 있기 까지 대주교께서는 매일 성체를 영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어느 날 나의 실수로 인해 그 사제는 병원에서 오히려 일찍 있었던 식사분배하고 난 후에서야 올 수 있었습니다. 대주교께서는 식사를 하지 않아서 간호사를 무척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렸죠....또한 제가 병원을 가로질러 가면서 ‘강철주교(대주교)’를 엑스레이 찍느라, 심각한 통증을 일으키는 대주교님의 복부 종양의 정도를 살펴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낸 방사선사를 기억한 것이 생각납니다. 그는 나를 세우고 말했는데, 그의 정확한 발언을 전하고자 합니다:

“신부님. 나는 통 알지 못하는 르페브르 대주교와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분은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며, 선함을 발산하고 있고, 진정으로 천주님의 사람이군요.”

 


이 의사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저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천주께서 성 주간 시작 때에 당신의 종을 데려가기 위해 오심으로써, 교회가 특히 주님의 수남을 통하여 이루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선언하신 그날인 성지 주일날 마지막 생을 살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증표를 주시고 있음을 생각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성육신의 기념일인 4월 25일 새벽, 르페브르 대주교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든 이러한 섭리적인 요소들은 성비오10세회를 설립하신 설립자의 기본적인 주제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제가 기억하건대, 몇 달 후 오디 추기경(Cardinal Oddi)은 에콘 신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에콘의 위기가 있는 동안 그분은 성직자성성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네 분의 주교 성성이 있기 바로 전날, 대주교님의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르페브르 대주교를 설득하고자 노력했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방문이 있던 기간에 대주교님의 묘를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간의 침묵의 기도가 있은 후에, 큰 소리로 마무리 하였습니다:“고맙습니다. 각하!” 그래서 진정한 로마인의 마음에서 성신의 작용은 조금씩... 조금씩 파문(破門)에서 고마움으로 전이되는 준비과정이었습니다.


26th Anniversary of Archbishop Lefebvre's Death

March 25, 2017 

District of the USA 
Archbishop Marcel Lefebvre in Ecône, Switzerland.
March 25th was the 26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Archbishop Lefebvre (1991).


We publish here a testimony from Fr. Denis Puga who was a professor at the Seminary St. Pius X at Ecône in 1991.


A man of God


Two or three days before his operation, on Saturday, March 16, while the ordinations to the subdiaconate were being held at the Seminary, I took my car and went to the hospital of Martigny to keep Archbishop Lefebvre company. I can still see him, sitting in his sick chair. In our conversation, we mentioned that it was the first time since the consecration of the bishops in 1988 that the new bishops were conferring orders that he, the Archbishop, was physically incapable of giving. He made this remark that reminded me of the old man Simeon’s Nunc Dimitis: “Yes, now I can go in peace, I have left the Society armed, structured, with everything it needs to survive and develop.”


A few days before that, the Archbishop, feeling his condition greatly worsening, had asked Fr. Simoulin, then director of Econe, to administer Extreme Unction and to send a priest from the seminary to hear his confession. There was no anguish or worry in the Archbishop’s request, simply the disposition of a Christian who, feeling his death draw nigh, wished to prepare for his meeting with his Master. Up until his operation, he received Communion every evening. I remember that one day, by my fault, the priest was only able to come after the distribution of the meal that is rather early in hospitals. The Archbishop had not touched his meal, which greatly worried the nurses. He was waiting patiently… I also remember crossing in the hospital hall the radiologist who had just spent a long time X-raying the “iron bishop” to try to see the extent of the abdominal tumor that was causing so much suffering. He stopped me and spoke to me, and I will try to give his exact words:
"Father, I just spent a long time with Archbishop Lefebvre whom I did not know; he deserves to be known, he radiates goodness, he is truly a man of God.”
 

I later learned that this doctor was not a Catholic.


It is impossible not to think that God gave us a sign by coming to take His servant at the beginning of Holy Week, after letting him live his last day on Palm Sunday, the day when the Church particularly proclaims the Royalty of Christ that is worked through His Passion. On the dawn of March 25, anniversary of the Incarnation, Archbishop Lefebvre left this world. All these providential elements recalled the fundamental themes of the founder of the Priestly Society of St. Pius X’s preaching. I remember that a few months later, Cardinal Oddi visited the seminary of Econe. He had been the prefect of the Congregation for the Clergy during the crisis of Econe, and he was the one who, the day before the consecration of the bishops, had desperately tried to dissuade the Archbishop from accomplishing what he considered to be an irreparable act. During his visit, he asked to see Archbishop Lefebvre’s tomb. After praying in silence for a few moments, he ended out loud: “Thank you, Your Excellency.” Thus in the heart of the true Romans, the action of the Holy Ghost was little by little preparing the transformation of the excommunication into thanksgiving…


Sources: Le Chardonnet,  #316, March 2016 — La Porte Latine, March 1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