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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4. 세 가지 선물(1977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25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4. 세 가지 선물(교황, 동정 마리아, 성체)


사랑하는 형제 그리고 친우 여러분

신학교로 귀환한 오늘이 과거 당시 제가 태어난 도시에서 있었던 저의 주교성성 기념일(1947년 9월 18일)과 우연히 겹치는 것은 천주님의 섭리라 보여 집니다. 저는 친구들의 요청으로 인해 특별한 방식을 빌어 이 기념일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성무일도서(聖務日禱書)에서 토비아의 교훈을 읽었는데, 이 글은 이스라엘 왕이 만들어 논 황금 송아지를 경배하는 자기네 사람들인 유대인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젊은 토비아가 천주께서 명령하신 희생제물을 성전에 바치기 위해 충직하게 나갔습니다. 토비아는 그래서 천주님의 계명에 충직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토비아처럼 천주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직해왔다고 바라는 바입니다.


그 후에 나오는 토비아서에는 니니바(Niniva)에 보내진 죄수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성경은 이르길, 토비아의 모든 동료들은 이교도의 사교(邪敎)에 경배를 하고 있었던 반면에, 토비아만이 진리를 계속 고수하였습니다. retinuit omnem veritatem. 모든 진리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라 믿으며, 우리 또한 젊은 시절과 포로 시절의 토비아처럼 충직하게 진리에 애착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면에서 포로생활, 우리 주변을 둘러싸는 억압, 모든 제재, 세상과 교회 내부 자체의 오류에 대해 절을 하고 있는 저들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되는 규제는 사실이 아닙니까? 진리를 가지고 사기 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숨은 진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악마에 의해 노예화된 세상에, 오류에 의해 노예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진리를 수호하려는 것이 우리의 바램입니다. 우리는 이를 계속해서 주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진리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나요? 다른 이들은 진리를 가지지 못하며 오직 우리만이 진리에 대해 말할 정도로 잘났다고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창안한 것도 아닙니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전승된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글로 쓰여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살아있는 것이요, 교회 온 역사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알려진 것입니다. 책 안에 있고, 교리 안에 있으며, 공의회 모든 강령에 있고, 교황들의 강령과 칙서에 들어있습니다. 우리 신경(信經) 안에 있으며, 십계명에,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안에,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에, 그리고 성사(聖事) 안에 있습니다. 이 진리를 창안한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이 진리 안에서 보존할 뿐입니다.


진리는 영원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고백하는 진리는 천주님이요, 천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 천주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천주님은 불변으로 계십니다. vicissitudinis obumbratio 라고 말씀하신 분은 성 바오로입니다. 천주님 안에는 변천이라는 그림자도, 변화의 가능성 그림자조차 없습니다. 천주님은 불변이요, semper idem 항상 같으십니다. 분명히 천주님은 변화하는 모든 것의 원천이지만, 천주님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진리로서 천주님을 고백하는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진리를 통해, 같은 길을 택해 영원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저 진리를 변경할 권리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진리는 변할 수 없습니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원에 대한 저 진리의 빛을 조금 받은 상태로 이 땅에 놓여있습니다. 저들은 다소 영원의 빛을 역시 맛보기는 하지만, 저들이 변하는 사물에, 움직이는 사물에 애착을 가지는 정도에 따라 천국으로 부터 멀어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저들은 저들 안에서 이미 지금 영원가운데 있는 죽을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행복하게 될 혹은 불행하게 될 영혼을 영혼인데 (육신은 죽으나) 존재하는 것은 이 영혼이요, 죽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으로 들어가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사물이, 천주님에 속한 참된 영원한 사물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우리에게 지극히 핵심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리를 찾는 것이고 영원을 찾는 것이니, 왜냐하면 사람들은 영원에 대한 필수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성을 주시고자 하는 수단, 우리와 교류하고자 하시는 수단, 이곳 지상에서 조차 영원성이 우리 생활에 녹아내리게 하는 수단은 무엇이가요? 흔히 제가 아프리카 나라를 통하여 그곳의 교구에 가게 될 때, 제게 가장 친근한, 가장 소박한 것을, 교통수단을 역시 고르는데, 여러분들은 많이 들었지만 소박한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요약해서 말합니다. 좋으신 천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생명, 영생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저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 가지 위대한 선물은 교황, 동정 마리아, 그리고 성체입니다.

 

교황권


참으로 천주께서 우리에게 베드로의 계승자를 주시고, 그 베드로의 계승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진리 안에서 이러한 영속성을 주심에, 교황을 통하여 진리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계승자이신 교황을 주신 것은 특이한 선물입니다. 이는 베드로의 계승자가 반드시 전달해야만 하는 진리를 전승함에 있어서 여하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정으로 계승자의 계보에서 실제적으로 사라지지 않고 교황은 교황들이 항상 교류했던 저 진리를, 교황 개인에게 속하지 않은 신앙의 유산을 전함에 있어서 실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산은 교황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20세기 동안 가르쳐진 진리의 보물입니다. 교황은 충직하고도 정확하게 이 진리인 신앙의 유산을 자기 차례가 되어서는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교황 자기 자신 아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교황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상상력을 방해하고 우리의 개념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환경 때문에, 만약 베드로 좌에 앉은 교황인 그가 진리를 전달할 자기의 의무를 어느 정도로 모호한 자세를 취하거나, 또는 진리를 충직하게 전달하지 않거나, 또는 어떠한 방법으로 진리를 어둡게 하거나 감추는 오류를 허용한다면, 그러한 일이 발생된다면.... 그러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온 영신을 다하여 교황을 위해 기도해야만 하고, 저 진리의 빛이 전승할 책임이 있는 그 교황 위에 드리워져야합니다.


성 삼위는 결코 변할 수 없다.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과 미사의 희생제사는 결코 변할 수 없다.


이러한 보는 것들은 영원하다.


저 모든 것들은 천주께 속한 것이다.


진리를 전달할 책임 있는 자인 교황이 연약하고, 그리하여 그의 주변에 오류가 퍼지고 잇다는 그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가 그 오류를 따를 수도 없거니와, 진리를 변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어둠이 우리를 잠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빛 안에서 살고자 합니다. 2000년간 가르쳐진 저 진리에 충직하고자 합니다. 2000년간 가르쳐지고 영원성의 일부가 된 저 진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르쳐 전달된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원하신 천주, 영원하신 천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천주님을 중심에 두는 모든 것은 영원을 중심으로 두고 있습니다. 성 삼위일체는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업과 미사의 희생제사는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영원합니다. 천주께 속한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어느 누가 이 영원한 것을 바꿀 수 있는가요? 이것을 바꿀 수 있다 변형시킬 수 있다고 그런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제는 누구입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소유할 때, 현재를 소유하는 것이고, 미래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바뀐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예요. 현재와 미래로부터 과거를 분리하는 것은 은유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천주님은 더 이상 천주가 될 수 없습니다! 천주께서는 더 이상 영원하시질 못합니다! 천주님은 더 이상 불변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을 게 더 이상 없게 됩니다. 우리는 완전히 오류 안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걱정할 것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전개되는 이 끔찍한 드라마의 공포에 대해 눈을 감고, 우리가 지키는 신경(信經), 십계명, 우리의 계명인 산상수훈에 대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미사의 희생제사에 애착해야하며, 우리 주변에 다시 비추어 줄 그 빛을 기다리는 성사에 애착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 주님께 충직하지 못한, 비통하고도 폭력적임이 되지 않고서 이를 행해야 합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이 되도록 합시다. 기도하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 천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모든 시련을 받으면서 고통을 받고 견딥시다. 토비아가 행한 대로 우리도 그렇게 행합시다. 저들이 이교도들의 황금 송아지를 경배하러 갔을 때, 모든 이에게 버림을 받고는 그래도 충직하게 남았습니다. 오직 토비아만이 충직하게 남았기에 그 역시도 자기가 실수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던 간에 천주님은 변치 않으심을 알았습니다. 천주님의 진리는 존재하고 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천주께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동일하시다는 그 진리에 의존해야 합니다. Jesus Christus heri, hodie et in secula.


그래서 우리는 교황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박아두어야 한다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황이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있는 한, 그 베드로의 계승자에게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교황이 자신의 의무에 완전히 충직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생기면 과거에 베드로의 계승자였던 그 선임 교황들께 우리는 충직해야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교황의 의무는 신앙의 유산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두 번째 선물은 동정녀 마리아를 주신 선물입니다. 성모님은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 동정녀 마리아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대한, 성모님의 성자에 대한, 십자가의 희생에 대하여, 구속 사업에 관하여, 성모님의 태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상상이 가능한 것입니까? 성모님이 자신의 신앙을 조금 바꾸고, 성모님 생애에 있던 얼마간의 기간에 대해 의심을 하고, 성모님이 실수도 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성모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대해, 복되신 성 삼위께 대해 의심을, 그리고 성모님이 성신에 의해 충만하심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 있는 건가요? 불가능합니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곳 지상에서 성모님은 이미 영원과 함께했습니다. 신앙을 통하여, 심오한 신앙을 통하여 성모님은 어떤 방법으로도 훼방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주변의 시끄러움으로 인해 우리가 훼방 받지 않도록 하고, 오히려 성모님처럼 충직하게, 신앙에 충직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중요해 보이는 그 무엇,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이 주제에 좀 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께서 이 말씀을, 저 말씀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우리가 듣습니다. 성모님이 여기에 나타나고, 저 사람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었다라고 합니다. 물론, 동정 마리아의 말씀이 성모님이 택한 어떤 이에게 전달되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의심스런 이 시기를, 신앙의 혼란이 있는 이 시기를 고려해보면 그런 것 (사적계시) 신뢰를 못합니다.


성모님은 미사의 희생제사에 항상 계신다.


성모님은 성모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분리할 수 없다.


동정 마리아께 대한 우리의 신심은 심대하고 완벽해야 한다.


가톨릭교회 신학에서 동정 마리아의 위치는 제가 평가하건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후, 모든 이 위에 성모님이 계시므로 우리가 성모님을 무한히 사랑하는 것은 타당하니, 우리는 날마다 심오하고도 지속적인 신심을 성모님께 드려야 마땅합니다. 메시지가 성모님으로부터 오느냐 아니냐에 우리가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그런 메시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가 인정한 발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곳에서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해야합니다. 항상 저는 성모님이나 우리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되는, 이곳에서 받은 메시지, 저곳에서 받는 메시지 등, 제게 전해지는 그런 사람들이나 그 소식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반면에 사실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매일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미사성제에) 계신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모님은 미사 때에 계십니다. 우리는 성모님이 함께 하심을 압니다. 매일 제헌하는 미사의 희생제사에 와 계십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 대한 우리의 신심은 심오하고 완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적 메시지에 의존해선 안 됩니다.



성체에 담긴 희생제사


천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 계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는가요? 제가 자주 신학생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만약 성비오10세회가 특별한 영성을 가지고 있다면, - 그리고 비록 성 이냐시오, 성 도미니크와 성 빈센트 드 바오로 분들이 세워졌던 그 당시에 의심의 여지없이 천주섭리에 의하여 자신의 회단에 특별한 특성을 주고자 원했던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 성비오10세회가 어떤 특별한 특성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 제가 생각건대 우리 성비오10세회에 특별한 표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에 대한 신심이라 생각합니다.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의 위대한 신비에 의해 우리의 영성, 영신 그리고 우리의 몸이 사로잡힌다면 어찌 감개무량하리오!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의 위대한 신비를 우리가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 비율에 따라 우리는 사제직의 신비, 사제직의 장엄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제가 은유적으로 말씀드리건대 사제직은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와 친밀하게 묶여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우리는 이 미사의 희생제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미사의 영성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습니다. 사제뿐만 아니라, 수도사제, 수사, 수녀 그리고 모든 평신도들, 이곳에 모인 신자도 그러합니다. 예전보다도 더 큰 신심이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에 필요하니 왜냐하면 이 미사는 우리 신앙의 초석(礎石)이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는 가톨릭 신학교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천주께서 제게 생명을 주신다면 신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쳐져야할 가톨릭 교리의 일부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죽는 게 낫습니다.


제가 칠레에서 3일간 머무르는 동안 그곳에서 일어났던 어떤 사례를 여러분께 감히 인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 생각이 제게 떠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의 관념이 교회 최고위 성직자들 여러 명이 심중(心中)에 가지고 있는 타락한 점을 살짝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제가 칠레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미사제헌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고 있었는데, 산티아고의 보좌주교가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은 화면을 보고 있진 않았지만, 그 미사를 봤던 많은 이들이 제게 그 모습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약 15내지 20명의 사제가 그 보좌 주교와 미사제헌을 하고 있었는데, 보좌 주교는 신자들에게 설명하기를, 즉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길, 이 미사는 식사이며, 식사 중에 흡연을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보좌 주교는 미사를 드리면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참 신앙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갔나요! 이는 타락의 슬픈 상태요, 그 주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신성모독의 형태인 것입니다. 들어보지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같은 상처, 상상할 수 없는 악한 표양에 대한 배상 차원으로서의 보속이 수년간 행해져야합니다. 사람이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얼마만큼 멀리 벗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미사는 아주 소중한 것으로서 우리는 미사에 밀착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가장 친근한 것에 달라붙듯이, 미사는 가장 존중받아야 하고, 가장 거룩하고, 지극히 신성하며 따라서 우리는 천주성이 깃들인 것에 애착을 가져야 하듯이 말입니다. 저것이 이 신학교가 존재하는 의미입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우리 신학교를 비난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이래라 저래라 결정하지만, 그러나 사실 저들은 아무 결정도 못하고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신학교는 있는 그대로 있습니다. 신학교가 왜 설립되고, 하는 일이 무엇이가에 맞게 계속 있게 될 것입니다. 신학교는 가톨릭 신학교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천주께서 제게 생명을 주신다면 그 신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쳐져야할 가톨릭 교리의 일부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죽는 게 낫습니다. 천주님의 성총으로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들이 하라는 대로 놔두세요. 저들이 신학교는 새로운 방향을 가지고 가야한다, 이래야 한다, 또는 저래야한다 그래도 놔두세요, 신학교를 파괴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일을 하도로 말하는 것은 악마입니다. 분명히 악마는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 사제를 참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니, 이곳, 저곳 모든 나라에서 특히 프랑스에서 그러하니, 그곳에서는 진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있고, 비방과 과장된 말, 어리석은 표현, 온당치 못한 추측이 있습니다. 이걸 다 무시합시다. 그 대신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천주님의 뜻을 실행하면서 일을 잘하고, 우리의 전임자와 우리의 선조들처럼 이 신앙을 이어가면서, 트리덴트 공의회가 요청한 것을 행하면서, 사제들을 계속해서 양성해야 할 우리 주교들에게 요구된 것을 행합시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행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신앙에 충직하게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를 조용하게 놔두세요. 우리가 신앙의 유산에 충직한 상태로 있게 그대로 놔두세요. 이곳 신학교에서 저 가톨릭 전통의 가르침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나를 떠나세요. 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만약 제가 가톨릭의 진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세요! 그러나 만약 제가 가톨릭 신앙을 가르친다면,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모든 도서들을 갖게 될 것이고, 무엇이 우리에게 전해졌는지 아닌지를, 전승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가지세요. 우리는 모든 것을 할 것이고, 그리하여 가톨릭 신앙이 계속해서 이곳에서 가르쳐지고, 이런 전적인 가르침 안에서 여러분도 역시 은총과 생명이 참으로 가득 찬 저 진리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저 생명이 필요합니다. 신자들은 생명과 진리에 굶주려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제들에게 우리가 왜 이것을 요청합니까? 신자들이 진리와 천주님의 은총, 초자연적인 생명에 목말라하고 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저 영원한 천국에 목말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 자신인 이 르페브르에게 대한 신뢰감이 아닌, 20세기 동안 교회에서 해왔던 것을 우리가 그대로 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세요. 저는 다른 이들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잘난 척 하지 않습니다. 그와 반면에 왜 천주께서 저로 하여금 30년간 주교직을 허용하셨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저는 생각하길,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판단한다면, 가봉의 정글 안에서 전교지로서 그대로 남아있길 선호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고립 가운데 주교로서 30년간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를 가지고는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님은 이 방법을 원하셨으니, 우리를 활용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천주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그래야 되고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계속지고 가야 합니다. 천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저버리려는 십자가를 부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우리가 우리 주님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친구, 신자여러분. 교황이 진정으로 베드로의 계승자임을 충실히 드러낼 때 베드로의 계승자인 그 교황에게 충직하세요. 왜냐하면 그 점이 교황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이런 의미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교회와 베드로의 계승자의 권위에 파열음을 내고자 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의 20세기 전통을 깨뜨리려하는, 20세기 동안의 베드로의 계승자 전통을 깨뜨리려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순명하기로 했으며, 지난 20세기 동안 교황들이 가르친 것에 순명하기로 했으며, 베드로의 교좌 위에 앉은 이가 이러한 신앙의 유산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천주께서 그를 심판하시겠지요. 우리는 오류 속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베드로의 계승자들을 연쇄 고리에 파열음을 낼 수 있는 것이기에 때문입니다. 신앙의 유산을 우리에게 전승해준 베드로의 계승자들에게 충직하게 남아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톨릭교회에 충직하게 남아있는 것이고, 우리는 결코 종교분열의 길로 가길 원하지 않습니다. 20세기 동안의 신앙에 우리가 애착하고 있기에, 종교분열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에게는 보증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항상 똑같아야 할 신앙에서 분리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거의 옛 신앙을 유지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신앙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감을 가집시다! 모든 환경 아래에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성모님께 요청합시다. 성모님은 전투를 앞둔 군대처럼 강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순교자의 여왕으로서 고난을 받으신 분입니다. 성모님을 따라 성모님과 함께 순교할 준비를 하여 구속 사업을 이어가야 할 것 아닌가요?


 르페브르 대주교 주교성성 30주기에 

 1977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