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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6. 연옥은 존재하나니(1977-11-0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8-10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6

연옥은 존재하나니 – 연령(煉靈)의 날(1977-11-01)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친구, 형제 여러분. 교회는 항상 모든 성인들의 축일(11월 1일)과 더불어 연옥에 있는 영혼과 관련된 전례를 지냅니다. 사실 오늘 저녁 (모든 연령들의 날의 만과)부터,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권장하며, 그리고 내일은 온 종일 그 연옥영혼들을 위해 봉헌하는 날입니다.


 내일 세 대의 미사를 드리게 되는 사제들은 연옥영혼들이 천국으로 들어가게끔 우리 주님께 간청하고, 미사 하나하나에 적용하여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전대사(plenary indulgence)를 주어지도록 청원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잠시 이 순간에, 저는 연옥의 현실과 이에 대한 신심을 갖도록 여러분의 관심과 이에 숙고하도록 하고자함이니, 이는 이 정화의 장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에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신심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연옥은 존재하느냐? 입니다. 오늘날 글로 표현된 모든 것을 만약 믿는다면, 심지어 오늘날 가톨릭 성직자들이 요즈음 쓴 것을 믿는다면, 연옥이란 중세시대의 우화에 불과하다는 유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연옥은 교리요, 신앙의 교리입니다. 누구든지 연옥의 실재를 거부하는 자는 이단자입니다. 사실, 이미 13세기에, 제 2차 리용 공의회(the Second Council of Lyons)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엄숙하게 공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16세기에, 특히 트리덴틴 공의회에서 연옥을 부인하는 개신교인들을 반대하였고 신앙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연옥의 존재를 엄숙하게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연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의 교리임이 분명한데, 이는 성경에 의해서보다도 특히 성전(聖傳)에 의해 확인되고 지지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능한 한 분명한 연옥에 대해 넌지시 암시를 주는 구절을 줄 뿐입니다. 또한 우리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지향하여 주어지는 미사에서, 교회에서 사용되는 서간경에서, 유다 마카베오가 1만 2천 달란트를 예루살렘에 보내어서 전투에서 죽은 군인들이 (연옥) 고통에서 빠져나와 천국으로 가려는 저들의 지향을 위하여 사제들에게 희생제헌을 요청하는 ‘마카베오서’의 설명도 있습니다. 성경은 덧붙입니다: “이는 우리 죽음을 위해 기도하는 인사드리는 사고(思考)이다.” 바오로 성인은 또한 그가 어떤 영혼들은 즉각 천국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quasi per ignem, 즉, 완전히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부족한 영혼들에 대해서는 정화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암시함으로써 연옥에 영혼들이 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연옥의 존재와 실재에 대한 신앙에 관한 이러한 암시는 특히 종도들과 교회 교부들에 의해 전승된 성전(聖傳)에 의한 것입니다.


왜 연옥이 존재하나요? 연옥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완전한 깨끗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는 상태로) 영혼들이 그저 천주님을 뵐 수 있다고요? 죄 있는 우리가 우리 마음으로는 상상을 초월하시는 천주님과 일치되어 들어가 그분의 빛 안에서 참여한다고요? 천주님의 빛과는 반대되고, 천주님의 영광과는 반대되며, 천주님의 조촐함과 반대되고 천주님의 성화와 반대되는 우리의 성향이 연옥을 가지도 않고 그저 천국으로 곧장 간다고요?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상태에서 죽었지만, 죄가 용서받은 이후 지은 죄로 인해 생긴 보속으로부터 완전하게 깨끗함을 얻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소죄를 지닌 사람들은 지극히 복되신 천주 성삼위 앞에 합당하도록 있기 위해 저들에게 부과된 정화의 장소를 반드시 통과해야합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니, 왜냐하면 설령 우리가 용서를 받았더라도 그걸 잊지 말아야하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죄로 인하여 생긴 무질서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도덕적 잘못은 고해성사로 인하여 용서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 영혼에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무질서로 고통 받고 이것은 치료받아야 됩니다. 이웃에게서 물건을 훔친 회개하는 이들에게 비유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로써 우리 주님께 자신을 고해하여야하고 또한 훔친 그 값에 해당되는 것을 아울러 배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한 모든 죄도 이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무질서를 만들었고, 불의를 만들었으며, 그리고 그 죄가 용서받은 이후에도 이 불의에 대해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연옥에 있는 연옥들은 용서는 받았지만 죄로 인해 생긴 보속으로부터 완전히 정화될 때까지 연옥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연옥 영혼들은 자신을 위해 연옥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공로를 얻을 수 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이 지상에 있지 못하기에, 우리와 같지 않아서 공로를 얻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는 악한 곳에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배상할 공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연옥 영혼들은 더 이상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연옥영혼들은 분명히 성화시키는 은총 속에서 은총 받은 것은 확실하고 이것이 큰 기쁨, 변경할 수 없는 기쁨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그들이 천국으로 가게 예정됨을 여러분은 압니다. 그러나 연옥영혼들이 또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니, 왜냐하면 연옥영혼들은 천주님이 어떤 분이고 천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광,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께 아직 도달할 수 없다는, 아직은 영원히 천주님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그 생각으로 인한 고통으로 심하게 고통 받습니다. 또한 연옥영혼들은 그들이 목격한 선하신 천주님과 자비에 대한 회한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자기들에게 베풀어 주신 천주님의 자비를 연옥영혼들은 잘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를 짓고 천주님과 분리되었으며 죄에 대해 벌 받는 것이 정당함을 이해하니, 이 죄란 그들이 지은 것이요, 그리고 주님의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화되어야 함을 이해합니다.


“교회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이러한 공로를 진정으로 적용하기를 바라는 영혼들을 처분할 수 있는 공로의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저들의 고통을 줄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저들이 보다 빠르게 천국으로 들어갈 허락을 줄 수 있을까요? 연옥 영혼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예. 그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신비체 몸(교회)의 일치로 인하여 그들을 위해 공로를 쌓는 사람들이 우리 아닙니까? 신전지회(지상교회)에 있는 우리가 단련지회(연옥)에 있는 영혼과의 일치, 그리고 우리가 저들 영혼들을 위해 공로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은 신비체의 일치라는 그 위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단련지회와 신전지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됩니다.


우리가 저들을 위해 공로를 세울 수 있기에,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특히 거룩한 희생제사인 미사 때,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고통의 고통에서 보다 빨리 벗어나도록 간청하도록 해야 하고, 진정으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의무이니, 왜냐하면 연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은 저들이 그 연옥에서 벋어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특히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통하여 우리가 연옥 영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았던 죄에 대해 우리에게 부과된 그 벌에 대해 보속하기 위하여 우리가 보속과 희생으로 연옥영혼들을 도울 수 있고,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연옥기간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이것이 천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천주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천주님과 합류하기 위하여 연옥을 통하지 않고 천국에 직접 가는 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희생을 해야 하고, 교회가 우리 의향대로 하게끔 부과한 그 보물, 또한 이곳 이 세상에서 살았던 모든 성인들의 공로의 보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로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진정으로 적용되길 원하는 영혼의 처분대로 할 수 있는 공로의 보물을 교회는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어느 특정한 기도를 하게끔 하여서 이러한 공로를 얻게 하고 또한 연옥영혼들에게 이러한 공로가 적용되도록 권장합니다. 우리가 연옥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대단한 용기를 주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성화시켜주는 용기인 것입니다. 연옥영혼들이 연옥에서 무슨 고통을 받는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저들 영혼들이 벗어나게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하고 우리 자신 역시 연옥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면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리가 믿고 있는 완벽하게 알려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현실인 교회의 진리에 관한 이러한 안식을 아는 것은 유익합니다. 트리덴틴 공의회는 우리가 사면이 주는 횟수의 미묘함, 정확성에서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그런 숫자 계산에 대해 빠져들지 말아야 된다고 요청합니다. 예를 들어, 특전이 있는 한 대의 미사, 결과적으로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아마 적용이 될 수 있는 전대사를 받는 그런 제대에서 이루어지는 한 대의 미사에 놀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사가 적용되는 그 영혼이 즉각적으로 잠벌로부터 해방되어 천국으로 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가요? 대체로? 예. 신학적으로? 예. 왜 그런가요? 왜냐하면 전대사는 용서를 받은 후의 죄로 인한 잠벌에 대한 완전한 사면에 대해 교회에 의해 구체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트리덴트 공의회가 잘 성명한 대로, 이 대사를 주시는 천주께 달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사는 천주께 달린 것입니다. 천주께서는 영혼의 특성을 살피시고 결과적으로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의 심판자이시니, 연옥에서 고통 받아야 되고, 잠벌을 받아야 할, 보속을 해야 할 영혼들의 심판자가 바로 천주이십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그 사람이 행한 어떤 행위, 어떤 기도를 한 그 순간으로 부터 수학적으로 그 기간을 셈을 절대 못하지만 그 영혼은 반드시, 절대적으로 연옥으로부터 나옵니다. 이는 천주님의 정의에 달린 것입니다. 교회로 인해 얻게 된 모든 공로, 대사에 적용되는 공로를 심판하시는 천주님을 바라고 생각하여 이들 연옥 영혼들이 벗어날 수 있기 진정으로 소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형제, 내 부모, 죽은 친구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사람이 없는 수많은 영혼들과 일치되기 위하여 연옥의 실체에 대해 묵상해야 합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죽은 자들을 위한 훌륭한 전통미사전례는 그래서 우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불행히도,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에서 오는 오늘날의 방법은 이러한 기도를 건드렸고 변형시켰으니, 이는 참으로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큰 슬픔입니다.

 
게다가, 화장(火葬)에 관하여 공의회 개혁(이차 바티칸 공의회)에 언급을 주는 것은 유익하다 생각합니다. 죽은 자에 대해 말하게 될 그 순간에 화장에 관해 언급하리라 생각되는데,  저들의 죽음이 교회에서 권하는 매장을 강탈당한 이후에 육신을 이러 저러 방법으로 화장하길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하면서 화장법을 권장하는 것이 교회법에 적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는 매장이 박탈된 법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공의회 때 교회는 매장에 관한 법을 바꾸었으니 이런 것들은 참으로 혐오스런 것입니다!


교회가 생긴 이후부터 교회는 성신의 성전인 육신이 성세에 의하여 성화되었고, 성사로 인하여 성화되었으며, 성체성사를 받음으로써 성화된 육신, 그리하여 성신이 거하시는 이 육신이 존중되길 원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 가톨릭인??이라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절단되고 화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교회법에서 주목될만한 것입니다. 교회가 신자들에게 가졌던 큰 존경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하여 성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러한 화장이라는 혐오스런 관습을 거부해야하고, 더욱이 이 관습은 프리메이슨 관습이기에 거부해야합니다.


교회법은 화장해야한다는 저들 단체들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런 단체들은 분명히 프리메이슨 단체입니다. 프리메이슨 단체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이런 화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의 몸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화된 분들이고 그리스도인들이 해온 것처럼 저들을 묻어주어야 합니다. 죽은 자들에게 대해 존중해주어 묘지에 묻어주어야 합니다. 무덤은 완벽하게 보존되어야 하니, 이 죽은 몸이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는 신앙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내일 기념하게 될 모든 연령의 날을 즈음하여 우리가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일치하도록, 성자를 묻을 적에 도우셨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청하여 주께서 성모님이 천주성자의 육신에 대해 가지고 계셨던 사랑과 존경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청합시다. 주님께 우리가 죽은 신자들, 우리 주변의 죽은 친구들과 친척들의 육신에 대해 배려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