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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 공의회, 그리고 슈나이더 주교를 생각하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04



르페브르 대주교, 공의회, 그리고 슈나이더 주교를 생각하며(2017.08.09)


Corrispondenza Romana에 실린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해석과 현대교회의 위기와의 관계”에 관한 아나타시우스 슈나이더 주교의 기고는 온라인에서 한동안 돌아다녔다.


최근 몇 년간 아스타나의 보좌주교가 이런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실로 그가 분명하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톨릭 교의의 중요한 요점들-에큐메니즘, 주교단체주의, 종교자유, 현대세상과의 관계-에 관하여 잘못된 입장들을 (슈나이더 주교가 반복하듯이 그 중 몇몇은 모호하다) 담고 있다고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오류들을 현대 위기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공의회에 대한 전반적 입장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 계열에서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사안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공의회 개혁에 대한 반응의 주된 기준인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의 말씀, 태도와의 비교는 우리가 해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역사상의 대조


현대 교회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그의 판단을 설명하기 위하여 슈나이더 주교는 그의 칼럼을 “아리아니즘이 절대다수의 주교들을 오염시키고 교회의 삶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던 4세기의 전반적 위기”와 대조시키면서 시작한다.


이는 위기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상기해볼 때 아주 좋은 대조이다. 소수만이 일군의 변혁세력들(아리우스파)에 맞서 교회의 전통에 충실한 채 남아있었다. (성 아타나시오와 성 힐라리오 주교가 이끌었다) 아리우스파들은 그들이 소수라는 것을 온전하게 인지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들은 교회권위의 주요 기능을 수십 년간 장악했다) 이 두 소수의 사이에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한쪽 또는 다른 쪽 (준 아리우스파)으로 기울어졌고, 힘을 가진 소수에 의하여 그들의 사상을 다수에게 강요하도록 이용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류에 맞서 일어서지 않는 것은 연루되어 있는 것보다 다소 심각했다. 오늘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세력들 가운데에서 (오늘날에는 약간 수적으로 다양해졌다) 우리는 완전히 같은 상황임을 발견한다.


하지만 곧 세 범주에 다른 범주가 합류했다. 아리우스파들이나 준 아리우스파들이 그들의 오류를 깨닫고 단죄하기 시작하고 성 아타나시오가 관대한 사람이며 점점 늘어나는 전통 교리에 충실한 이들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음이 증명되었을 때, – 처음부터 참된 교리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명쾌함과 열의가 전혀 없었지만 – 그 무리의 지도자인 칼리아리의 루치페르의 이름에서 비롯된 루치페리안(Luciferians)이라 불리는 아주 적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그러한 관대함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아리우스파나 준 아리우스파가 자신들의 오류를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그 때까지 오류에 저항해 온 이들의 업적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참된 가톨릭 신자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후자의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나타난다. 슈나이더 주교의 기고(寄稿)에 대한 응답으로 진정 몇몇 이들은 그를 그저 “여전히 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 기반하는 보수적인 주교들 가운데 또 한 주교... 그들은 시작부터 가톨릭교회 파괴를 목표로 삼고, 가톨릭교회를 2천년의 역사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떨어져나간 개신교로 어느 정도 대체하려고 한 공의회의 위험한 본성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


위기에 가능한 점진적인 해결책을 거부한 루치페리안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런 노선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려하고 있다. “슈나이더 주교가 말했던 것처럼, 4세기 아리우스 위기가 아리아니즘의 제거로 해결되었듯이 교회를 뒤흔드는 위기에 대한 오직 하나의 해결책은 재앙스런 공의회의 백지화다.”


이는 역사적 실수다: 아리아니즘은 수 세기 후에야 최종적으로 제거되었다. 그리고 위기는 단시간에 극복되지 못했다. 그러나 더 깊은 오류는 이 단어들에 의해 전달된 바로 그 생각이다. 정반대의 오류 (가톨릭 현대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의 생각은 정말로 자주 반대자들과 직면하게 된다는 점을 확인시킬 뿐이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이를 거슬러 경고했다:


“우리의 의무는 그 구성원들이 여전히 교회의 한 부분인 한 교계제도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는 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하고, 우리가 반드시 고수해야만 하는 성스러운 (교리상의)가르침과 나쁜 목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오류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 그리고 온화함과 확고함의 모범으로 반드시 그들을 깨우치고 회심시키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온화함과 확고함: 우리가 신앙을 드러내는 방법은 온화함으로, (suaviter in modo.) 그리고 양보 없이 신앙인으로 남아있는 것은 확고함이어야 한다. (fortiter in re)


2 – 온화함 : Suaviter in Modo


우리는 실제적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 기고에서 슈나이더 주교는 진정 단지 “많은 보수적 주교들”의 입장에서 말한 것인가, 아니라면 그는 펠레 주교가 최근 인터뷰에서 정의했던 “우리만큼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우리만큼 공개적이지도 않지만, 생각에 있어서는 우리만큼 강한 저항하는 교회인들, 그들은 새로운 것들에 맞서고 있으며” 또한 “이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사람들의 최종적 모범인가?


물론 슈나이더 주교가 공의회를 존중하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들에 의하여 소집된 정당한 회합이다. 우리는 반드시 공의회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이 그를 자유주의자로 만든다면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 또한 그러하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헌장들을 반포했을 때 여러 차례 “의심의 여지없이... 교회의 중요한 헌장들이다. 하지만 반드시 공의회 이전의 모든 진리들과의 관계에 따라 고찰해야 한다.”라 하였다.


슈나이더 주교가 공의회에 가장 관대하게 보여지는 지점은 그가 공의회의 긍정적 부분들을 짚고자 할 때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원적이고 소중한 공헌은 모든 교회 구성원에 대한 거룩함에로의 보편적 부르심(교회헌장 5장), 교회의 삶 안에서 성모님의 중심 역할에 대한 교의(교회헌장 8장), 가톨릭 신앙을 보존하고 수호하며 증진시키는 데 평신도의 중요성과, 일시적 현세를 교회의 영속성에 따라 복음화하고 성화해야 할 평신도의 의무(교회헌장 4장), 그리고 교회의 삶과 전례 거행 안에서 천주님을 흠숭하는 것의 최고 우위성(전례헌장 nn. 2; 5-10)에 놓여있다. 나머지는 어느 정도까지는 이차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지거나, 나중에는 거의 잊혀질 수도 있는 것들...”


틀림없이 복음화하는 데 공의회가 부여한 평신도 역할의 중요성은 공의회 이후 이 원칙의 전개를 고려했을 때 논쟁거리다. 하지만 공의회에도 올바른 입장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다소 자극적으로 언젠가 (교회의 권위자들이 이 문헌들의 오류를 수정했을 때) 이 정확한 입장들은 이 공의회에 의한 유일하고 진정한 교의적 공헌으로 남아있으리라고 주장한다면 그를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데 충분한가? 이와 같은 경우, 르페브르 대주교 또한 자유주의자였다. 성모님을 “성교회의 어머니” (슈나이더 주교가 공의회에서 긍정적 요점이라 여긴)로 선포(교회헌장)한 이후 1965년부터 르페브르 대주교는 “언론이 간과하거나 그저 매우 짧게 언급한 특별한 이벤트다. 우리는 절대 이것에 대하여 충분하게 말할 수 없다. 교회 역사 안에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한 최초로 한 공의회로 남을 것이다.... 이 이벤트는 참으로 성신의 감도에 따른 것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이 말을 취소한 적 없다는 사실도 숙지해야 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종류의 그의 선언은 점점 더 적어졌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이유는 그가 그의 마음을 바꿨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의회 문헌이 적용되었을 때, 긍정적인 요소들은 완전히 간과된 반면, 전통을 거스르는 요소들이 공의회의 주요한 열매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혼의 참된 목자로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거의 대부분의 고위 성직자들이 공의회로 인한 재앙들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우선순위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며, 중대한 오류가 포함된 문헌에서 가져온 본문을 권위를 가진 구절로서 인용하는 것은 이러한 오류에도 권위가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점을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몇몇 공의회의 긍정적 요소들을 언급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채택하기에 가장 적합한 태도가 아니라면, 이것이 슈나이더 주교의 발언이 거짓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시적으로 부적절한 것과 근본적인 거짓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몇몇 공의회 문헌의 몇몇 부분에 대한 긍정적 언급들은 슈나이더 주교의 공의회의 오류에 대한 단죄의 역사적이며 특별한 긍정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그(슈나이더)의 어조가 “나는 고발한다”라기 보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맟춘 외교적인 어조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르페브르 대주교의 유명한 저서「나는 공의회를 고발한다(1976)」의 어조는 아니다. 하지만 1976년 이전 르페브르 대주교의 저술들 또한 「나는 공의회를 고발한다(1976)」의 어조와 같다고 할 수 없는데 이는 성 비오 10세회의 설립자가 서서히 강하게 공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는 표시다. 이 사실은 그가 겁을 냈다거나 이전에 자유주의자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심지어 그 후에도 계속 차이가 나는데, 그의 호교적(護敎的) 저작들, 공공에 널리 퍼진 저작들과 교회 고위 성직자들에게 쓴 것들은 늘 차분하고 외교적이며, 그의 강론들이나 1986년 아씨시 종교회합 같은 신앙을 거스르는 사건들에 대한 대응은 훨씬 예리하다. 필요한 상황들에서 부드럽게 하는 것은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힘이다. 일반적으로 늘 고함을 지르는 자는 설득력 있는 다른 논의들을 찾을 줄을 모른다.


3 – 확고함 : Fortiter in Re


차분하고 균형감 있는 어조로, 그러나, 이것이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다: 이는 더 효과적으로 담론의 진실성과 우리가 항상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 하는 진리를 더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수단이다. 슈나이더 주교의 공의회에 대한 결론적인 언급을 -르페브르 대주교의 생각과 계속 비교할 것이다. - 면밀히 살펴보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반드시 지금 그대로 그리고 진짜 그랬던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선 사목적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는 새로운 교의를 제시하거나 결정적인 형태로 제시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한다. 르페브르 대주교도 그러한데,


“이 공의회는 특이한 성격을 갖는다... 사목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교황 요한 23세 자신은 이 공의회에서 진리에 대하여 어떠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에 필요한 진리들을 충분히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가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주교는 그리고 나서 공의회의 확언들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하여 말하고, 세 유형을 구분한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충실한 이들, 모호한 이들, 그리고 오류에 속하는 자들이다.


첫 번째 부분에서, 그는 “공의회는 대부분 전통적이고 일관된 교리를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모호한 진술들을 명확하기 위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 “모호한 공의회 문헌의 진술들은 반드시 영속적인 교회의 교도권과 온전한 전통에 따라 읽혀지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의회의 진술들이 앞선 교의들과 맞을 수가 없다면 그것들은 참으로 오류다.


“영속적인 교도권의 진술들 (수 세기동안 같은 의미로 확실하고 반복되는 전통임을 증명하는 과거 공의회와 교황문헌들)은 모호하거나 새로운 진술들을 드러내 준다... 이는 지속적인 이전 교도권의 구체적인 진술과 (예를 들어, 모든 인간 사회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섬겨야 할 국가의 의무, 베드로의 수위권과 보편 교회에 대한 통치, 주교 단체주의에 대한 참된 의미, 비 가톨릭 종교의 유해성과 영혼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위험성) 일치되기 어려운 모순이다.”


슈나이더 주교가 준 예시들에 덧붙여, 이것들은 정확하게 성 비오 10세회가 계속 비판해 온 것들이다. (종교 자유, 주교 단체주의, 그리고 종교일치운동), 그의 접근은 르페브르 대주교와 매우 유사하다. 대주교는 자주 반복했다:

나에게는 - 내 생각에, 우리에게는 - 우리가 전통의 빛 안에서 공의회 문헌들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분명하게 전통에 거스르는 것을 거부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석학의 연속성”이라는 표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의 빛 안에서의 공의회 해석”의 본질은 이미 르페브르 대주교가 제시했다:

“교황 성하와 라칭거 추기경의 마음속에는,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전통에 공의회의 신조를 합치시키고, 기어코 포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노력이다 ”


슈나이더 주교 역시 이러한 해석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해석학의 연속성’원칙에 대한 맹목적인 적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득력도 없고 불변의 가톨릭 신앙 진리들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해 주고 굳건히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강요된 해석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르페브르 대주교에 따르면, 공의회를 만들고 적용한 교회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은 교의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때문에 사목적으로 되기를 원했고 공식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교회 문헌에 쉽게 소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행할 때, 그들은 공의회의 교의를 만들었고 니케아 공의회와 비교하여, 다른 공의회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면 그 공의회들과 같은 것인 체 했다.”


슈나이더 주교는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한다:

“교회의 최근 위기의 문제는 부분적으로 몇몇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 객관적으로 모호하거나 지속적인 교회 교도권의 전통과 일치하기 힘든 부분이 – 존재한다. 그것들은 무류화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필연적으로 암묵적이거나 암시된 수정을 수반한 건강한 논쟁은 막혔다...우리는 반드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절대시하거나 완전히 무류화시키는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4 – 양순하고 겸손한 마음 : Mitis et Humilis Corde


이제 모든 것이 완벽한가? 이는 논점이 아니다. 논점은 단순히 상한 갈대를 꺾거나 연기가나는 아마포를 끄는 것이 아니다. 요약하자면, 시작할 때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의 입장이 완전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완전한 자 저 돌을 던져라.), 슈나이더 주교는 의심의 여지없이 펠레 주교가 말했던 “우리만큼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우리만큼 공개적이지도 않지만, 생각에 있어서는 우리만큼 강한 저항하는 교회인들, 그들은 새로운 것들에 맞서고 있으며” 또한 “이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에 해당된다. 또한 그의 저항이 점점 공공화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전통에 충실한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의 태도 -그들의 첫 시작을 포함하여, (그들이 큰 공로로) 출발부터 오늘날의 오류에 망설임없이 명백하게 맞선 이들- 조금씩 조금씩 돌아오는 그러나 더 더욱 전통에 명확한 사람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는 (그들이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었을 때), 4세기 루치페리안들의 태도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알퐁소 데 갈라레타 주교가 2017년 6월 29일 에콘에서 있었던 사제서품에서 했던 강론에서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점이 있지만, 그것이 오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귀중한 평신도들, 주교들, 그리고 추기경들의 좋은 반응이다... 그렇다, 소수이며 때때로 반응은 약간 소심하거나 단지 절반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신앙과 전통, 신앙의 회복, 교회와 사제직을 수호하는 노선을 따르는 실제적이고 건강한 대응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의 도우심이 그분의 교회와 함께한다는 표시다. 우리는 기뻐하며 용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성 비오 10세회의 목표는 그 구성원 뿐 아니라 일반 사제들의 성화다. 그리고 이는 사도직의 광대한 분야다. 따라서 우리는 – 물론 현명하게, 이는 분명하다 – 사도적 열림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우리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늘 온화하고 확고했던 참으로 존경하올 성 비오 10세회의 창립자인 르페브르 대주교를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신학교들의 수호성인이신 성 토마스 아퀴나스께도 충실할 것이다 : 건강한 토미즘은 언제 어디서나 선을 택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의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성 토마스는 이교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당대의 학자들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음이 양순하고 겸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가질 것이다. 그분께서는 서기관과의 대화에서 가야 할 길이 남아있으셨음에도, 그분께서 본질을 잡고 계시며 진리에 열린 마음을 지니셨음에도,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보라, 너는 많은 보수적인 서기관들 가운데 하나로 마음으로는 오직 규정들을 어떻게 인용해야 하는지 만을 알고 있다.” 오히려, 사랑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네가 천주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