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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9. 세상과 싸워 이기라(197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06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29. 세상과 싸워 이기라(1979)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Confidite, nolite timere, ego vinci mundum.'" 수난과 죽음의 여정을 떠나기 전에 이 말씀을 우리에게 남기신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확신을 가지고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그리고 사실, 우리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으니, 성 요한이 설명했던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the concupiscentia oculorum, concupiscentia carnis, superbia uirae?" 무슨 뜻이죠? 부, 명예, 육신의 기쁨과 쾌락..... 이런 것이 세상이니, 우리 주님은 그 세상을 이기신 것입니다!
 
성혈로 덮이고, 가시관을 쓰신, 또한 그분의 옆구리가 열린 상태의 그분의 십자가에 애착하여 우리 주님을 묵상하는 것,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세상을 정복하신 것, 세상의 부를 이기신 그 분을 묵상하는 것이니 십자가에 달린 우리 주님보다 더 가난한 자 누구인가요? 세상의 명예에 있어서 – 일반적인 법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 가운데 그 누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우리 주님만큼 더 겸손하신 사람이 있는가요? 마지막으로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는 십자가 위에서 성혈을 흘리신 우리 주님의 육신이 찢겨지고, 희생과 고통, 슬픔보다 그 정욕을 이긴 것은 어느 있나요? 참으로 우리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이 사랑했던 것을 이기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것을 비웃었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세상일을 업신여겼나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부를 사랑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세상과 동시에 천주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랑으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성부에 대한 사랑으로, 천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로 펼쳐진 팔과 열려진 성심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세상을 이긴 승리 안에는 매우 큰 교훈이 있습니다. 천주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왜냐하면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이에 따라 죄를 이긴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태어난 이런 파생된 근원에 있는 죄 바로 그것입니다. 그걸 세상이라 부르고 저 모든 것이 원죄에서 나와 우리에게 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십자가로 인하여 죄를 이긴 승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인간은 천국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천국 문이 열리는 왕도입니다. 죄는 우리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성혈과 물로 인하여 정복당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시는 모든 성사 안에서 형성되어지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님의 성혈이 주어지고 적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성세성사 안에서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이후 지금까지 성세를 받은 모든 영혼들은 성세성사에 의해 원죄로부터 옮겨져서 천국과 우리 주님을 따르도록 갈망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원죄뿐만 아니라 고해성사, 종부성사 그리고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성체성사)에 의해 우리의 개인적인 죄까지도 벗어나게 하십니다. 진정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우리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에서 벗어났으니, 그래서 죄에 대한 전쟁을 그만두고, 우리 영혼 안에서 영적인 훈련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요? 아닙니다. 원죄의 결과가 우리 영혼에서 사라지고, 그리고 그 결과 이러한 모든 잘못된 욕망, 세상에서 일어나는 터무니없는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실 수 있지만 주님은 그리하시지 않았으니, 성 토마스 성인이 가르친 대로 주께서 바라신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의 영적 전쟁, 고통, 시련, 유혹 안에서 보내게 됨을 원하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의 작은 인생 드라마, 큰 드라마가 있으니, 위기인 내적 위기가 있습니다. 천주님, 우리 주님의 힘 어디에 서 있을까요? 우리에게 천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청하시는 천주님의 계명에 우리가 순명하나요? 우리 각자는 그가 어디에 서 있어야할지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싸우세요! 전쟁에서 정전(停戰)이 있을 때, 고급 지휘관은 이 지역에서 왜 패배가 있었는지를 자문자답하게 되고 적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게 되며, 그리하여 전투가 다시 시작될 때 승리를 얻기 위해 분투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때때로 우리 삶을 묵상하는 동안, 피정도 하여,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깨달고 어떻게 전쟁을 치룰까, 우리 주님과 더불어 승리를 거둘까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요결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시고, 만약 죄를 이기셨다면 또한 주님은 악마를 이기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악한 영향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시듯이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목격합니다. 분명히 주님의 수난 전에, 죽음 이전에, 부활 이전에 악마가 저들의 내부 영혼들을 통치했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참으로 악마를 정복하신 것입니다. 악마에게서 영혼을 내좇는 퇴마 행위에서 보듯이 영혼들이 성세를 받기 전까지는 악마는 영혼을 지배하고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수난 덕분에, 주님의 승리 덕분에 – 그리고 주님께서 확증하시듯이- nunc eiicietur princeps huis mundi “이 세상의 왕자는 내쫓길 것입니다.” 진정으로 악마는 성세 받은 영혼 안에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이 세상의 영향력 안에 아직도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부적으로 악마는 우리를 유혹할 수 있고 모든 방법을 통하여 우리 생활 안에서 긴장을 촉발시키고 –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의 모든 수단을 통하여 우리를 어렵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패배는 확정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 영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 전쟁을 경각심을 가지고,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악마적인 영향력에 대해 두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님의 승리의 결과인 그분의 부활을 기념합니다. 동정녀 마리아께서 십자가의 발아래에서 서신 것처럼 만약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면,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언젠가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인용하려하는 이 구절은 칠고(七苦)의 성모 축일에 관한 기도문에 있습니다.  Dilectus meus candidus et rubiscundus totus spirat amorem 내 사랑하는, 순수하고도 그와 동시에 주님의 완전한 호흡 가운데 (성혈에 의해 흐르는) 장미는 caput inclinatum, “그분의 머리는 옆으로 숙여지고.” manus expensae, “그분의 손은 벌려졌습니다.” pectus apertum, “그분의 성심은 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께서 하시던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위에서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합시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 이 사랑을 주시도록 요청합시다. 그러나 이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희생을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일어난 모든 면은 우리에게 그것을 증명합니다. 만약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가 수동적으로 남아있다면, 만약 우리가 잠에 빠진다면, 그러면 적인 악마는 강력해질 것이고 우리 영혼에 한 번 더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내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오늘날 이것은 교회의 대 비극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거두신 이 승리는 부활 이 축일에 그 자체로 명백해졌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세상, 죽음, 그리고 죄에 대항하여 싸우는 거대한 전투를 포함합니다, 우리 주님은 대승리를 거두셨지만 그러나 이 전투는 계속되고, 그리고 교회역사의 전체는 이 전쟁의 역사입니다, 이 전쟁은 가지각색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악마가 다시 통치하는 어둠의 시간에 살고 있지 않는가요?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은 모든 곳에 널리 퍼져있으며 그리고 모든 곳에 침투하고 있지 않은가요? 우리는 죽음을 향해, 영원한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슬프게도, 교회 내부 자체에서도 저들은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보속도 없이, 잘못에 대한 비난도 없이, 고해와 희생도 없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모습들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들은 손을 내려놨습니다.


그래서 악마는 그 자신이 강력해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악마와 더 이상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말하건대 악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날이 곧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세상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 하면서...... 세상은 좋은 뜻으로 가득찰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악마((마귀)의 도구가 우리를 왜곡하여 타락시키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만약 세상이 우리 주님을 미워한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은 여러분을 미워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 자신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세상은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로써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 자신이 분리될 것입니다. 반면 오늘날에 성직자 심지어 주교들조차도 그저 자기만족으로 가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인권선언”에 관한 어느 추기경의 선언을 읽고 있었는데, 지금부터는 더 이상 천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계명에 관한 것도, 천주님에 대한, 우리 주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대한 질문이던가?... 아닙니다. 오직 “인권”에 관한 것일 뿐입니다. “인권선언”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럴듯한 필요성이지만 스스로를 깍아 내리는 것 아닌지,,,, 이 세상의 물건들을 나누는 것일 뿐입니다! 세상 것을 나누는 것은 필요하지만, “인권선언”이 그 자체 인간을 깍아 내리는 것을 가지게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십자가에 관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 그것인가요? 우리 주님은 분명히 우리더러 이 세상의 부에 대해 멸시하라고 요구하시며, 또한 이곳에서 이러한 세상의 부를 멸시하라고 가르쳐야만 하는 사제들에게도 가난의 정신을 사랑하라 하시며, 설령 그가 부자라도 가난하게 살라하시며, 이 세상의 물건과는 분리되어 살라고 하시니, 보세요, 이런 것을 가르치는 이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이들이 이제는 이 세상의 물건에 대한 할당에 대해서만 오직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 마음속에 질투를 일으키게 합니다. 항상 더, 이웃보다 항상 더, 물건을 소유한 이들에 대한 질투를 키우고 사람들 마음속에 이 분열을 심는 것은, 이 계급투쟁을 심는 것은 분명히 악마가 세상을 파괴하기 위하여, 영혼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원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금년에 브라질에서 오직 “인권선언”만을 토론하기 위하여 주교회의에 참여하는 모든 대표자들이 회합이 있을 것 아닌가요?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나요? 저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인권선언“에 대해 토론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존엄성이란 진리와 선을 사랑하는 데에 존재합니다. 진리를 우리로부터 분리시키고, 천주님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는 지경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은 우리는 더 이상 존엄성의 가치도 없는 것이요, 천국에 들어갈 가치도 더 이상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악마가 존엄성의 가치를 지니고 있단 말인가요? 이와 같은 것은 진리를 가르치고, 그리하여 오류를 예언하는 이들에게 조차도 실제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심각한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히, 내 친애하는 형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잡고 있어야합니다.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모든 곳에서, 우리 방과 집과 거리의 교차로에서 십자가를 놓고 묵상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통치하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눈앞에, 모든 곳에 십자가가 있도록.....  그래서 우리는 아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이로운 방법으로 주시는 이러한 지속적인 교훈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그분께 속하기 때문에 주님은 부자입니다. 가난하게 사시고, 가난하게 죽고자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온갖 명예를 가졌어야만 했습니다. 그분 앞에서 전 인류는 와서 부복(俯伏)하여 주님께 명예와 영광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분은 죄인으로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만물을 소유하시고 이 세상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합당한 즐거움들을 그분 스스로 가질 수 있었지만, 십자가 위에서 성혈을 흘리면서 죽고자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으로 살고자 하길 원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범인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친애하는 친우 여러분, 그래서 그것은 성 바오로가 했던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래에 전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전할 내용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무엇을 전도했습니까? 십자가를....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를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영혼의 선익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를 전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다가간 신자들을 기만하는 것이고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하고 그분의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지킨 결과인 것입니다. 요즈음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더 이상 존중받지 아니하고, 특히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가 경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저런 영혼들, 방향감각을 상실한 영혼들,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에 있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 안에 있고, 우리 제대 위에 올려서 날마다 주님의 성혈을 흘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이 십자가에 의하여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이고, 다른 길은 없으며, 구원의 방법도 없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 만입니다. 그 분은 천국으로 가는 황금 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무슨 비용을 치루더라도 이러한 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동정 마리아께 우리에게 십자가에 관해 가르쳐 달라 요청합시다. 성모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고, 우리를 위해 천국의 길이 무엇인지 진정을 가르쳐주실 것이며, 그와 같이 만약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다면, 우리가 죽음의 시간이 왔을 때 우리를 환영하실 것입니다. 영혼들이 빛나게 될 이 날에 대해, 물론 사제들의 마음, 이들은 진리를 전해야 되고, 성신에 의해 빛나게 될 이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면류관인 십자가의 이러한 예상으로 돌아오도록 그런 날이 오도록 아울러 요청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Translated by Joseph Cottins at Ecône—March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