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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강론 36. 십자가 아래에 계신 성모님(1981.04.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5-29





십자가 아래에 계신 성모님(1981.04.10.)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칼은 성모성심을 꿰뚫을 것이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칼로 찔린 이 심장은 성모님의 성자 수난과의 연관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또한 기록하기를, 복되신 성모 마리아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순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옆에 서있었다고 합니다: "Stabat Mater iuxta Crucem."


그러므로 우리는 천주 섭리가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의 탄생과, 이 땅에 오시고, 유년기에, 주님의 숨겨진 생활과 그분의 공적 생활에 관련될 뿐 아니라, 특히 무엇보다도 그분의 수난과 연결시키고 싶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있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십자가에서의 수난의 순간, 그분의 죽음의 순간이었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가장 중요한 순간도 역시 성모님의 수난의 순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순간과 친밀한 결합의 그 순간이었습니다.


성모통고에 대한 신심


이 신심은 교회에서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성모칠고 및 성모수난첨례 축일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몇몇 수도회가 동정 마리아 그분의 요청에 따라 성모님의 슬픔과 수난을 묵상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의 슬픔과 특히 연민에 대해 묵상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 자신의 직접 개입을 통해 종교 단체가 설립되었습니다. 복되신 성모 마리아 자신의 요청에 따라 일곱 인의 설립자(the Seven Founders)에 의해 세워진 마리아의 종(The Servites of Mary)이 좋은 사례입니다. 그들은 특히 그녀의 고난에 대한 묵상, 통고의 동정녀와의 일치를 위해 슬픔의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묵상에 바쳐진 또 다른 수도회는 십자가의 성 바오로의 수난회(the Passionists of St. Paul of the Cross: 역자 주-18세기 초에 창시됨) 입니다. 수난회 단체는 그들 회원에서 많은 성인들을 배출했으며, 가장 열렬한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인 중 한 명인 Addolaata의 성 가브리엘(St. Gabriel)은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 묵상하면서 인생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Addolorata"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자신과 예수의 고통을 연관지기 위하여


왜 이 묵상이 필요합니까? 왜 성모님의 수난 안에서, 성모님의 고통 안에서, 성모님의 꿰뚫림 안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러한 일치가 필요합니까? 우리 자신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더 친밀하게 관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성심으로 고난을 당한 마음이 있다면, 십자가 위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일치되었던 영혼의 소유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마음이 었습니다! 성모님은 주님처럼 결코 죄를 짓지 않았고, 스스로 배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고난을, 끔찍한 고난을, 심히 고통을 겪고자, 몸으로 고통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자비로 불타는 두 성심


그러니 예수성심과 성모성심 이 두 성심의 정감을 꿰뚫도록 노력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연민 모두가 자비에 의해 심히 감동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두 분의 성심은 성신의 사랑으로 타 오르는 자비로 가득 찼습니다. 성신과 하나의 본질인 천주님의 말씀은 천주님을 타오르게 하신 성신의 사랑으로 인하여 가득 찼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또한 영혼, 몸, 육화된 성심은 성신에 의하여 불탔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자기가 낳은 성자를 닮았고, 천주성자의 정감을 닮으려고 했습니다. 성모 역시 성신으로 충만했습니다. 이것은 수난 기간 동안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성모님의 일생 동안,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게 성신으로 가득했습니다.


성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신에 의해 불타오르는 이 두 성심의 으뜸이자 주요 목표는 성부께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성신의 사랑, 이 "소진하는 불"은 성부께로 인도합니다. 그것은 천주님에 대한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천주는 자비이다." 그러므로, 성신은 우리를 천주께로 인도하는 것, 우리를 성부께로 인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성부이신 천주님의 영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고통을 겪고 계셨습니다. 성모 마리아도 역시 성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성자의 고난과 일치했습니다.


성부께서는 천주성자로부터 무한한 영광, 정말로 무한한 영광을 받습니다. 또한 성부는 특권을 가진 피조물로부터 가장 위대하게 창조된 영광을 얻습니다. 이 피조물은 천주성자와 일치된 복되신 성모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진실로 구속받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죄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완전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의 성육신을 고려할 때, 성모님은 무염시잉모태였고 그래서 결코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은 고통 속에서 성부의 영광을 노래 불렀습니다. 슬픔 속에서 성모님은 천주님의 영광을 불렀습니다. 성모님은 지구상에서 천주님의 영예와 영광을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자비로운 사랑


그들 모두를 삼킨 이 사랑은 그들을 자비로 충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위대한 사랑과 위대한 자애의 즉각적인 결과는 자비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소유한 이 마음들이 퍼져 나가기를 원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그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과 이브 이후 모든 죄 많은 인류, 이 세상에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의 죄를 보았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창조주이시고 구속 자이시므로 분명한 비전과 그분의 천주성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갖고 계셨습니다. - 그분은 이 모든 불행, 천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성부를 생각하지 않는 이 모든 사람들, 그들의 창조주와 구원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보았고 그분의 성심은 자비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이 자비는 희생으로 이어집니다. 자비는 희생의 근원입니다. 이것은 자비가 인간의 마음에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전적으로 그 자체를 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희생으로 인도합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은 고난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고뇌의 정원에서 이마로부터 피땀을 흘리면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비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그리고 복되신 마리아는 똑같은 이유로 주님의 수난을 정확하게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성모님은 이 모든 영혼들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두 분은 함께 고통을 겪었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치명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성부의 영광과 영혼 구속을 위해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성신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의 사랑으로 온 마음과 모든 영혼을 불타오르게 하시면, 복되신 성모님께서는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애를 드렸고 순교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성모님은 참으로 치명자의 여왕이라고 불립니다. 성모님은 자기 자신, 모든 피, 모든 생명, 성모님이 가진 모든 것과 특히 천주이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좋으신 주님께 드렸습니다. 자비의 모친(Mater Misericordiae) 이십니다. 그러한 것은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의 통고의 기원입니다.

 


평화와 기쁨이 있는 수난


 

수난 안에서 절망에 이르는 슬픔이 있으며 이 슬픔은 예수와 마리아의 영혼을 어떤 종류의 절망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아니, 전혀! 이 수난의 기원 인 자비이었으므로 자비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 속에 생겼습니다. 수난, 고통, 자비가 심오한 기쁨으로 결합하는 것이 믿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은 참으로 기쁨 이 충만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성심도 우리 주님의 성심과 일치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 일체의 기쁨, 위대한 자애가 주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자비가 영혼들 속에서 낳는 평화는 형언 할 수 없는 평화입니다. 예수와 마리아는 신체에 많은 고통을 받는, 깊은 슬픔과 절망의 마음을 가진 많은 영혼들처럼 고문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는 이런 식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분들의 성심은 진정으로 평화로우며 복되신 동정녀가 평화 가운데 십자가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이 이 평화를 누리지 못했다면, 성모님이 이 자애를 갖지 않았다면, 그분의 천주성자의 고난에 자신을 연관시키는 이 친밀하고 심오한 기쁨을 가지지 않았다면, 자신을 천주자비와 성신으로 충만함에 관련시키지 않았다면,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에서 서있을 수 없었고 복음서도 "슬픈 성모(Stabat Mater)"라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되신 성모님을 에워 싼 사람들은 눈물과 외적인 감정을 통해 성모님보다 외적인 고통을 더 많이 겪었을 것입니다. 동정녀께서는 평화 가운데 고유함을 유지했습니다.


성비오10세회 후원자이신 수녀님들


여기 여러분의 후원자들인 가장 귀중한 수녀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와 일치하기 위해 이곳에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은 거의 모든 수사(Oblates)가 있는 이곳 에콘의 집에 왔거나, 적어도 모두가 단합하기 위해 여기에 함께 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사제와 함께하려고 이곳에 왔으니, 왜냐하면 사제는 또 하나의 다른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반드시 특히 그가 제헌하는 희생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해야합니다. 그래서 사제는 예수성심의 정감과 또한 마리아의 정감을 혼인해야합니다. 사제는 반드시동정녀께 청하여 그가 좀 더 많이 두 분을 잘 느끼고 이해하고 결합하도록, 이러한 정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제들의 도우미들은 여러분의 손으로 그들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사제직에서 돕는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에서, 주님의 통치의 확장, 천주사랑의 확장을 위한 십자가 안에서 여러분의 영혼과 여러분의 정신으로 돕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복되신 성모 마리아와 천주성자가 일치할 때 여러분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여러분을 일치시키고 주님의 수난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능력 있는 방법으로 영혼의 구원에 강력하게 기여할 것이며, 천주님의 섭리가 여러분에게 줄 수단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수단에 기여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사제직에 더욱 깊이 들어가서 여러분이 봉사하는 사제들과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이 진정한 사제들이 될 수 있도록, 진정한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이 보다 훨씬 심오하고 더 완벽한 방법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이르도록 자신들을 연결시키게 할 것입니다.


이 은총을 얻도록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향을 위해 여러분의 고통과 여러분의 희생을 바치십시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확장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