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 계명 지키기(2015-07-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7-13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계명 지키기(성신강림 후 제7주. 2015-07-1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우리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바오로 성인의 서간경 6장을 계속 읽어나갑니다. 지난 주에는 첫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 장에서 바오로 성인은 매우 중요하고 위안이 되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말미암아 천주님의 계명, 도덕률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고, 악과 죄를 피하는 것이 가능하며, 선한 일을 하고 그럼으로써 천국을 갈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 성인은 경이로운 짧은 표현을 제시하니, 그것은 은총이 계명을 실현시키나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이 계명이 지시한 것을 실현한다는 것 입니다.

 천주로부터 오는 것은 천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천주님은 첫째 원인이자 모든 사물의 마지막 끝입니다. 모든 사물은 그 분으로부터 나오고 천주께로 돌아갑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시작과 끝이니라”(묵시록21:6) 사물이 어떻게 천주께로 돌아갑니까? 천주님의 법에 의해서입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유형 무형을 창조하시고 모든 물질과 영적인 것을 창조하십니다.


 자, 모든 물질을 살펴봅시다. 모든 물질은 완벽하게 천주께서 물질에게 설정한 법칙을 따릅니다; 중력의 법칙, 전자 마그네틱 법칙, 화학의 법칙 그리고 저 물질에다 천주께서 붙여 놓으신 다른 법칙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세월 동안 태양을 도니, 피로하군 그러니, 내 길을 가고 싶어”이렇게 말하는 행성은 하나도 없습니다. 온 우주 가운데 천주께서 정하신 물리적 법칙을 완벽하게 따르지 않는 입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물질은 천주께 찬양을 드립니다: 천주님 법칙에 대한 완벽한 순응, 우주적인 순명은 주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한 놀라운 찬양입니다. 매번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 모든 아름다운 풍경, 하늘의 아름다운 별, 지상의 모든 작은 꽃들, 저들의 아름다움과 조화와 천주님의 완벽한 실현은 천신들과 인간들의 찬양 핵심이니, 이들은 천주님의 일들을 묵상하고 모든 사물의 창조주를 찬양합니다. “우리 주 천주여, 너 영광과 존경과 권능을 받으심이 마땅하도소이다. 대저 그는, 너 만물(萬物)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이 존재하고 창조(創造)되었음은 이 너의 성의(聖意)로 말미암는 바이로소이다.“(묵시록4;11) 이것은 물질이어떻게 천주께로 돌아가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저들이 (자기하고픈 대로의) 장점이 없으니 자유가 없는 거군요! 예 실제 그렇습니다. 이것이 천주께서 영적인 존재들, 천신, 사람 등 저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여 저들이 필요해서가 아닌사랑에서 주님의 계명(誡命)을 지키도록 조성한 이유입니다. 


 천주께서는 그 분의 계명을 불순종하라고 자유를 준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천주님의 계명을 사랑으로 순명하기 위하여 우리가 자유가 있는 것이지, 그 분의 계명을 거역하기 위하여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님의 법 그 자체는 사랑의 법입니다: “네 주 천주를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과 온전한 뜻으로 사랑하라 하였으니, 이는 가장 크고 으뜸가는 계명이요, 제 이는 이와 같으니, 곧 남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으니.“(마테오 22:37-39)


 천주님 그 분 자신이 자비입니다. 성 요한은 실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주는 사랑이시니라. 그런즉 사랑에 머무르는 자는 천주 안에 머무르며, 천주 또한 저 안에 머무르시느니라.“(요한 1서 4:16) 그리고 바오로 성인은 “사랑은 남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 그러므로 사랑은 법을 온전히 준행함이니라.“(로마13:10) 여기서 “사랑”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아가페 -“agape - ἀγάπη”- 인데, 이는 영적인 사랑을 의미하며 육욕의 사랑은 에로스 - “eros - ἔρος”-이니, 왜냐하면 많은 악이 육욕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대(大) 그레고리 교황께서는 가르치시길, 우리가 “사랑의 단계(gressibus amoris)”에 의해 천주께로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토마스 성인이 설명하기를,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생활에서 먼저 천주께 드리고 (그래서 주(周)의 첫째 날인 주일은 천주님께 봉헌되는 것이고)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그 분께 우리의 모든 활동을 드리고, 그래서 그 분을 우리의 모든 왕으로 세우시는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한 놀라운 보상이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 천주님- 성부, 성자, 성신-을 영원히 뵙는 지복직관, 천주님과 지극한 행복을 나누게 되는 보상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놀라운 것이요, 이것이 천주님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몇몇 자유의지를 지닌 피조물들은 자유를 남용하고 천주님의 계명을 깨뜨립니다. 이는 끔찍한 일이니, 저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지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천주께 말합니다: “우리는 너의 길을 따르지 않겠다. 우리 자신의 길이 더 좋다!” 모든 사물 위에 천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합니다. 저들의 자존감이 있어서 창조주 위에 피조물을 놓습니다. 저들은 돈, 쾌락,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이웃을 멸시하며, 강탈하고, 강간하며, 현대세계에서 너무나 자주 온갖 무질서와 왜곡 속으로 빠집니다.


 죄란 인류의 커다란 각본입니다. “두 사랑이 두 도시를 세웠다. 천주를 몹시도 경멸하기까지 하여 자아의 사랑은 세속도시(죄의 도시)를 세웠고, 자아를 몹시도 경멸하기까지 한 천주님의 사랑은 천상의 도시(신의 도시)를 세웠다(-성 어거스틴, 신국, 14:28) 죄는 기본적 무질서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모든 생명을 무너뜨리고, 영혼 안에 죽음을 놓으며, 영벌(永罰)로 이끕니다.

  그래서 피조물이 천주께로 돌아오는 것은 천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으로써 되는 것이며, 이는 아름다운 것으로서 선택사항이 아니라 엄격한 의무인 것입니다.

  천주님은 악에 정복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으로써 악을 정복하십니다. 그 분은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인간을 구원하기로, 우리를 죄에서 구령(救靈)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루터와 같은 사악한 사람들은 이러한 구원을 왜곡시킵니다.


 몇몇 개신교인들은 율법에 의해 인간을 구원하려는 구약에서의 천주님의 첫 번째 계획이 성과를 이루지 못했기에, 신약에서 천주님이 새로운 계획 – 오직 믿음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계획- 을 세웠고, 계명에 대한 준수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에 대한 빚을 배상함으로써, 성부의 명예를 회복시킴으로써, 먼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을 씻어내고 우리의 영혼을 치유함으로써 주님의 성총으로 인해 그 분의 계명을 따르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 서간경(書簡經)의 전체 주제인 것입니다.

 성세로서 죄의 오물로부터 우리를 씻어냅니다: “그 분의 자비에 따라 재생의 놋대야(성세의 물)로, 성신의 은총으로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도다.“(티토 3:5) 성세로 부터의 재생은 확실히 영혼의 힘을 회복시키어 우리가 더 이상 죄에 빠져 살게 하지 않고 천주와 더불어 살도록 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세를 받은 우리가 다 그의 죽음 안에 세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우리는 저의 죽음 안에 받는 바 세(洗)로 말미암아 저와 함께 묻혔노라. 대저 이는 그리스도 성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로 조차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재생하여 새 생명을 가지고 거닐으기를 위함이니라.“(로마6:3-4)


 우리는 죄에 죽은 것입니다. 육신의 죄는 매장되어 끝나고 더 이상의 죄가 없으니, 죄란 선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우리 묵은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은, 죄의 권하(權下)에 속한 육신이 멸망되어 우리가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함임을 우리가 아노니.“(로마6:6)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은 친히 간음한 여인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서 이 후로는 다시 범죄하지 말라.“(요왕8:11) 베사이다의 못에서 치유해준 사람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너 이미 나았으니, 다시는 범죄치 말라. 두리건대, 무슨 더 언짢은 것이 네게 당할까 하노라.“(요왕5:14)

 “더 이상 죄 짓지말라”는 것은 소극적인 측면이고 적극적인 면은 천주님으로 들어가 사는 것 입니다:”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었으나 천주를 위하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로 여길지니라.“(로마6:11)


 바오로 성인은 이것을 “부활과 비슷한” 것으로 부릅니다. “우리는 저의 죽음과 비슷한 죽음으로 인하여 저와 합생(合生)되었은즉, 또한 저의 부활과 비슷한 부활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리라.“(로마6:5)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이는 우리가 확신하거니와-또한 저와 함께 살리라. 대저 우리는 그리스도 죽은 자 가운데로조차 부활하사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저에게 아무 권력도 가지지 못함을 아는 도다.“(로마6:8-9)


 그래서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생명은 우리가 더 이상 영적으로 “죽지 않는”것과 같아, 즉, 죄가 더 이상 없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의하여, 우리는 더 이상 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되는 것이니, 벌을 받지 아니하고 계명을 깨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죄로 하여금 너희가 그 욕정을 좇도록 너희 죽을 육신 안에 있어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할지니라. 너희 지체를 불의의 연장으로 삼아 죄에게 바치지 말고, 오직 죽음에서 생명으로 온 것으로서 천주께 바치며, 너희 지체를 의덕의 연장으로 삼아 천주께 바칠지니라. 대저 너희는 죄악에서 지배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이미 법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총 아래 있음이니라.“(로마6:12-14)

 어떻게 그게 그리 될까요? 바오로 성인이 앞서 5장에서 로마인에게 조금 설명하셨듯이: “우리에게 베퍼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 안에 주입되었느니라.“(로마5:5) 우리가 죄와의 전쟁에서 싸워 이길 수 있게 도와주시고 우리 마음에 주님의 자비를 쏟아주시는 분은 성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혹을 받을 때 기도하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죄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한,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천주께서는 은총을 구하고, 주님께 충실히 남아 있으려 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 하는 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고 보속(희생)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는 기도함과 재소(소재와 대재-금식)함으로써 아니하면 좇아내지 못한다.“(마테오17:20)


 토마스 성인은 기도에는 어떤 무류성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이 겸손과 인내를 가지고 천주님을 기쁘게 하는 어떤 것을 요청할 때, 여러분의 구원에 필요한 것을 구하고자 할 때는 얻는 데에 있어서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돈이나 쾌락이나 세속적인 것을 요청한다면 천주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속적인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때때로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주님의 뜻을 행하게끔 해달라고 요청할 때 겸손과 인내를 가지고 행하면 주님은 여러분이 요청한 것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여러분이 구원되길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여러분이 구원되길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구령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 세상에 불을 놓으러 왔으니, 불붙는 것 외에 나 원할 것이 무엇이리요? “(루까12:49)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죄 없이 살수 있으며 대죄 없이 살아야만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사람과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이 죄에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간통이나 그 밖에 다른 슬픈 죄를 짓고 있기에, 그래서 여러분이 질문합니다. 만일 어제 당신이 죽었다면 당신은 어디에 있게 될까요? 만약 가톨릭인과 얘기하고 있다면 그는 정상적으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지옥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묻습니다. 정말로 당신은 지옥에 가기를 원하나요? 그 대답은 훨씬 빨라집니다. 아니오. 절대로 아니오! 그리고 나서 내가 질문합니다. 당신이 지옥에 가길 원치 않으면 왜 지옥으로 이끄는 죄를 짓고 있습니까? 당신이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면 천국으로 이끄는 일들을 왜 하지 않나요?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대답하기를, 오. 아니에요, 신부님! 나는 지옥에 가지 않을 거예요. 왜냐 하면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지옥에 가진 않을 거에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천주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독생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사, 무릇 저를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치 아니하고 오직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Jn. 3:16)...... 믿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이 죄의 상태에서 살면서 죄를 쌓고 살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잘 표현합니다. “저런 자를 판단하면서 그와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너는 천주의 심판을 면할 줄을 생각하느냐? 혹은 저의 인자와 인내와 참을성의 무량하심을 경히 여기느냐? 천주의 인자하심이 너를 개심(改心)시키고자 하심을 너는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그 마음으로 인하여 너는 천주의 의노(義怒)와 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날을 위하여 의노를 네게 쌓으니, 저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시리라.“(로마서 2:3-6).

 주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주님의 계명을 깨트리며 온갖 종류의 대죄를 저지르고 그들 입으로 공언(公言)했던 그들의 일들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말로는 천주를 아노라 단언하나, 행실로는 이를 부인하니, (참으로)가증한 자들이며, 불순한 자들이며, 모든 선업을 행함에 적당치 못한 자들이로다.”(Tit. 1:16)


 저들 신앙은 죽은 신앙이요. 이와 같은 신앙은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구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악신도 또한 믿고 두려워 떠느니라.”(Jac. 2: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福音書)에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무릇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성부의 뜻을 봉행하는 자 천국에 들어가리니,”(Mt. 7:21). 


 주여 주여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만일 실생활에서 신앙을 실천하지 않으면 “저 날에 많은 이가 내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들이 네 이름을 의지하여 후래 사정을 미리 말하지 아니 하였사오며, 네 이름을 의지하여 마귀를 쫓아내지 아니 하였사오며, 네 이름을 의지하여 많은 영적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나 그 때에 저들에게 밝히 이르되, 나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악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Mt. 7:22-23).

 그러므로 천주님의 도덕적 계명은 신약에서도 요구되는 것이 분명합니다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하여 우리가 일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받게 됩니다. 율법은 새로운 법의 성사(聖事)에 의하여 대체되었습니다. 죄에 대해 처벌을 주는 판결의 법은 새로운 법의 자비에 의하여 순화되었습니다.


 간통 죄를 지은 여자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 너를 정죄하지 않으리니, 가라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죄를 짖지 말라 Jn. 8:11). 그러나 도덕상의 계명은 더 높은 요구조건으로 올라갑니다. “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덕(義德)이 학자와 바리새이의 의덕(義德)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Mt. 5:20)


 주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에게 화 조차 내지 말라! 전례에 관한 법, 관할치교법, 도덕상의 계명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도덕계명은 더 이상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개신교인들은 더 중한 오류로 빠집니다. 도덕률은 더 이상 의무조항이 아니다, 또는 주님은 자비하시므로 사람이 무슨 일을 하던 간에 모든 이가 천국에 간다라고 주장하는 그러한 사람들 일부에 커다란 불경(不敬)이 있는 것입니다.

 천주님은 정말로 자비입니다만 그 분의 자비는 보속으로 이끕니다: “천주의 인자하심이 너를 개심(改心)시키고자 하심을 너는 알지 못하느냐?“(로마2:4) 그 분은 우리가 거룩하길 명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또한 거룩하라.”(베드로 전 1:16) “하늘에 계신 너의 성부 완전하심과 같이 그러므로 너희 또한 완전하라.”(마테오5:48) 그래서 거룩함을 향한 경향은 선택이 아닙니다. 좋은 소식은 바로 우리가 충실하게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이는 주님에게 어떠한 장애도 놓지 않는 영혼 안에 주님이 얼마나 많이 성취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성모께 기도 드립시다. 성모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우리가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리하여 우리가 또한 죄를 피하고 천주님의 계명의 길,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자비의 길을 앞서 나가도록 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