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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한 사마리아인과 성비오10세회- 성신강림 후12주(2015-08-1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8-17




착한 사마리아인과  성비오10세회- 성신강림 후12주(2015-08-16)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흔히 우리는 사람들이 성 비오10세회(SSPX)의 교회법적 상황에 관하여 질문하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오늘날의 우화(寓話)는 아마도 우리의 입장, 우리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교부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고, 인류란 천주님으로부터 받았던 본래의 정의와 선물을 강탈한 도둑인 악마의 수중에 떨어진 모습임을 보여주면서 이 우화를 자주 언급했습니다. 그(인류)는 “노상에 절반은 죽은”상태로 누어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사제와 레위인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 같이 다른 나라에서 오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天國)으로부터 내려오셔서 인류를 돌봤습니다. 그 분은 상처를 닦아내고 묶어주셨으며 당나귀에 태워 숙소인 여관으로 우리를 데려갔으니, 즉, 그곳인 가톨릭교회에 대해 “내가 돌아올 때까지” 환자(인류)를 돌보라고 명했습니다. 그 분은 자비의 상징을 보여주는 “동전 두 개” (천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개의 계명)를 주니, 이것으로 인해 가톨릭교회는 부상당한 이(영혼)를 돌봅니다. 

  이와 비슷하게 1960년대와 1970년대 당시에 현대주의자들이 행한 변화는, 부상당하고 반쯤 죽은 많은 영혼들을 노상(路上)에 방치하였습니다. 그 지역의 사제와 성직자들이 지나갔지만 (신자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비오10세회 및 우리 사제들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설령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낯선 이들이지만 우리는 그 영혼들을 돌봤고 기름과 포도주, 즉 전통교리와 성사, 특히 전통미사를 가지고 저들의 상처를 묶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저들이 (현)교회로 돌아가던지 (전통)교회 안에 남아 있던지 간에 저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이 유대인에 의해 취급 받은 것처럼, (현시대의 성직자들에 의해) 우리는 온갖 비난과 거부를 당했습니다.

 성 비오10세회가 출발할 당시, 르페브르 대주교는 최초 회합의 집이 있었던 프리브르그의 샤리에르 주교에 의해 적법한 교회법상의 승인을 얻었습니다. 대주교께서는 영성의 집으로서,  그리고 완전한 신학교로서 개교할 목적으로, 적법한 교회법상의 허가를 에콘에 위치한 아담 주교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법상의 승인은 교회가 사회적 몸체, 즉 교회법에 의해 질서가 필요하고 적절한 관계와 규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1969년에서 1974년까지 처음 9명의 신학생이 90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바로 그 당시에는 많은 프랑스 주교들이 자기들의 신학교를 닫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분개(憤慨)하였습니다. 그 주교들은 자기들의 교구에서 사제들이 전통미사에 애착을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오10세회 신학교를 “방문” 즉, 조사하려고 하였고 두 명의 방문객이 1974년 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험한 생각들을 개진하였고 가톨릭교리를 반대했기에 르페브르 대주교께서는 아름답게 서술된 저 유명한 1974년 11월 21일자 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우리는 온 마음과 온 영신을 다하여 가톨릭신앙의 보호자이자, 이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전통 로마 가톨릭, 지혜와 진리의 배우자인 영원한 로마에 견고하게 서 있음을 선언한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제 이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공의회 이후 이곳에서 쟁점화된 모든 개혁에서 오는 신 현대주의 및 신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성향을 띠고 있는 로마를 거부하며 항상 이러한 로마를 따르는 것을 거부해왔다."

 이 선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차 바티칸 공의회는 어떠한 교리를 정의(定義)한 것이 아니고, 교리는 교회의 “임의적 치교권(治敎權)”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상적인 치교권에 대한 무류성의 기준은 장소와 시간에 있어서 연속성과 보편성을 갖습니다. 무류성은 항상, 모두에 의해, 모든 곳에서 가르쳐져 내려왔습니다. 신앙의 유산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설령, 공의회가 “탈 가톨릭”, 즉 교회의 지속적인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이러한 잘못한 것을 거부하는 것이 모든 가톨릭인들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하신 일은 결코 반란이 아니며, “영원한 로마”에 애착을 갖고 전통에 충실히 남고자 하여, 이차 바티칸 공의회의 변혁(變革)을 거부함으로써 자기의 의무를 다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더불어 교회가 가르치는 두 개의 덕, 신학적 덕목과 도덕상 덕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상의 덕목은 신덕, 망덕 그리고 애덕에 관한 덕목입니다. 이 덕목들에 관해 토마스 성인은 가르치길, 천주님 안에서 지나친 신앙, 천주님 안에서 지나친 망덕, 천주님 안에서 지나친 애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지만, 도덕상의 덕목은 결핍과 과잉 그 중간의 적당한 중용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강용의 덕행은 결핍(비겁, 약함)과 과잉(폭력)의 중간인 지점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특히나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분명합니다. 많은 부모들은 약함과 훈련 부족으로 인해 실패와 죄를 짓고 있고, 어떤 부모들은 폭력과 혹독함이란 과잉으로 인하여 실패하고 죄를 짓습니다. 굳셈과 선, 훈련과 친절로 이루어진 중용이 항상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순명의 덕목이란 불순명의 부족함과 굴종이라는 지나침 사이에서 중간 지점인 적절한 중용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불순명은 합법적인 명령과 질서에 대해 실천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실패입니다. 지나침이란 천주님의 계명에 반대되는 불법적인 명령과 질서를 추종할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자기들의 주인의 명령을 실천하고 압살롬의 형제를 죽이는 압살롬의 노예들을 보게 되는데 저들은 순명의 노예였나요? 절대 아닙니다! 순명의 덕행을 거스르는 지나침에 의한 죄, 굴종의 죄입니다. 물론, 압살롬의 죄는 더 나빴고 그가 더 많은 책임을 지었으나, 그 노예들도 역시 옳지 않았습니다. 그 노예들은 그와 같은 부도덕한 명령을 반대하고 저항했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맹목적인 명령에 따르는 이들에 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소경이 만일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지느니라.“(마테오15:14) 지도자와 추종자 둘 다 구덩이 속으로 떨어집니다. 한 명은 악을 명령하며 다른 한 명은 악을 실행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는 내 잘못이 아니오, 난 단지 순종했을 뿐이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순명의 진정한 덕목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순명의 덕을 거스르는 지나침에 의한 죄인 것입니다.

 신약에서 바오로 성인께서 “사람이 아니라 천주께 순명할지어다”(종도행전5:29)라고 하신 말씀을 보게 됩니다. 성인께서는 그 말씀을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산헤드린에게,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않는 종도들에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 교회가 항상 가르쳐왔던 것에 충실히 남아있기 위하여 이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온 변혁을 저항하는 르페브로 대주교의 위치는, 즉, 성 비오 5세 교황에 의해 성문화된 모든 시대의 전례에 충실히 남고자 하기 위해 새로운 전례에 저항하고, 모든 시대의 도덕에 충실히 남아있기 위하여 새로운 도덕률에 저항하고 있는 이와 같은 대주교의 위치는 바로 그 순명의 덕행에 의해 요구되는 위치이며, 불행하게도 교회 내부에 조차 찾아볼 수 있는 지나친 굴종에 저항하는 위치인 것입니다.
 
 교회 안의 순명을 신학상의 덕목처럼 과잉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분명히 교회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그 분의 신학대전 제 2권 2장 104항목에 이르는 질문 조항에서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두 개의 글을 대조(對照)합니다: 제 4항: 천주님에 관한 모든 일에서 반드시 순명해야만 하는가? 그렇다! 하위 성직자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저들의 장상(고위 성직자)들에게 반드시 순명해야만 하는가? 아니오! 모든 일에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오. 그리고서 토마스 그 성인은 장상의 명령이 그 보다 더 높은 명령, 즉 궁극적으로 천주님의 계명에 거스르는 명령이 있을 때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부당(不當)한 명령은 따라서는 안 되는, 오히려 (권위 그 자체로 인한 존경심으로)이에 저항해야 하는 아래 등급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이 1975년에 일어났으니, (전례를 담당하는) 예부성성 장관인 부그니니 대주교는, 사제가 75세 이상 연로(年老)하거나 신자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만 예외적으로 전통미사를 드리게 하고, 실질적으로는 모든 사제가 전통미사를 제헌해서는 안 된다는 서한을 전 세계 모든 주교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러한 명령은 많은 이유에 있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첫째, 이것은 교황에 의해 확증이 된 것이 아니고 교황의 모든 행위를 포함한 바티칸의 공식 발행물인 the Acta Apostolicae Sedis에 들어있지도 않았습니다. 둘째로, 이것은 교황 성 비오 5세의 칙서 Quo Primum, 모든 사제는 전통미사를 거행하는 “영구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한, 그 어느 주교나 대주교도 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명백한“특전(Indult)”에  직접적으로 거슬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그니니가 이 전통미사를 금지할 순 없었습니다. 셋째로, 교황 베네틱토 16세가 제시한 원리; 성 교회의 원리란 지극히 고귀한 보화, 가장 거룩한 행위 등은 시시때때로 금지되거나 막아서는 안 된다는 원리입니다. 설령 (그러한 권한을 가지지 않지만) 교황이 그럴 권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권위란 교회 내에서 임의 재량인 것이 아니라, “너희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를 건설하기 위하여“(코린토 후 10:8, 13:10)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르페브르 대주교 및 성 비오10세회 뿐만 아니라 성 비오10세회와 연관이 없는 많은 사제들은 이러한 부당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전통미사를 지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권리의 남용에 대항하는 진정한 순명입니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불순명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부랑자, 들고양이처럼 취급 받고 내동댕이 처진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잘못된 비난입니다. 사실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진정한 순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서 주교들은 전통을 지키려는 사제들을 처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성무정지도 시켰습니다. 저들의 대의명분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처벌은 무효입니다. 만약 처벌이 정당한 명분을 상실한다면, 교회 내에서 처벌은 무효인 것입니다. 유효한 위반이 없으니 유효한 처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같은 해 1975년5월6일, 샤리에르 주교 후임인 프리브르그의  마미 주교는 전임자가 승인한 성 비오 10세회에 대한 승인을 철회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첨가된 흠결이 있습니다. 교회법에 의하면, 주교는 자기 교구 내에 새로운 종교단체나 회합의 집을 세울 수 있으나, 좋은 명분이 있다 하더러도 일단 세워진 단체를 폐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로마(교황)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이 생긴 이유는 이들 단체에 대한 안정성을 주고자 하는 의도이고, 주교들의 채찍에 굴복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미 주교의 행위는 교회법에 저촉이 됩니다. 이에 따라 르페브르 대주교는 마미 주교의 결정에 항의하여 로마에 항소하였습니다.

 카드로 내민 세 분의 추기경인 타베라, 라이트, 가런이 있었으니, 1975년 2월에 르페브르 대주교를 만난 적이 있는 이들은 에콘 방문 이후에 아마도 “조사를 보충(補充)”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사실 그들은 심판관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이들 세 분의 추기경들은 성 비오10세회를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한이 마치 마미 주교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의 항소에 들은 대답은; “교황이 자기 손 안에서 그 일을 처리했으니, 그러면 된 것이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첫 번째 조치에 대항하여 두 번째 항소는 “그대들이 주장하는, 즉, 교황이 친히 자기 손으로 일을 처리(處理)했다는 그 문서를 내게 보여달라”하면서 “종도(교황)의 서명”, 교회 내 최고 재판소의 서명을 보여달라 호소합니다. 대주교와 비오10세회를 재판할 권한을 받은 이들 세 분의 추기경들이 작성한 문서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 권한의 범위는 어디에 있는가? 이 두 번째 항소에 대한 답변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는 빌로 추기경의 명령에 의해 묻혔습니다. 이 추기경은 국무원장인데, 그는 전혀 이 일에 관련 없는 인물입니다.

 교회법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항소는 “(성무)정지” 승인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 비오10세회에 대한 제재는 재판관이 이 항소를 재판할 때까지는 무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판이 전혀 이루어진 적이 없기에, 교회법에 따라서 성 비오10세회는 현재에도 온전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실질적으로는 성 비오10세회가 유효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지만, (로마의)제재가 표면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빌로 추기경은 전 세계주교들에게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어떠한 지지도 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 서품을 기다리는 사제들의 근원이 되는, 교구 주교들에게 요구되는 통상적인 “파송문서”가 서품을 주려는 르페브르 대주교에는 주어지 않았습니다. 


 대주교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사제서품에 거슬리는 교회법을 쓰거나 남용하는 이러한 반대 앞에서 내가 포기할 것이냐? 전통 미사에 애착을 가질 것이냐? 그리고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하는 비오10세회와 신학교를 닫을 것이냐? 또는 현대주의에 의해 상처받은 영혼들의 요구, 자기에게 좋은 사제들을 보내라고, 모든 시대에 교리와 모든 시대의 전례와 모든 시대의 도덕률에 충실하게 애착해 달라는 저들의 요구를 고려해야 할 것인가? 이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갈등 가운데 망설이며) 말하는, “나는 이방인이야, 내 일이 전혀 아니야, 부상한 행인을 돌볼 이유는 없어”라는, 그가 갖고 있는 딜레마와 몹시 흡사한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대주교는 도움을 간청하는 영혼을 돌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교회법상의 상황은 “변칙적”인 것이 되었고 그러면서도 교회법의 커다란 원칙 “최우선은 영혼의 구원 --prima lex salus animarum --” 에 그 분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법령의 문서에 따른 것이 아니라, 법령의 정신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 재제는 대주교를 반하는 것이 되었지만 그 재제들은 성 비오10세회를 억압하려고 추정되는 재제였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교회법에 어긋나는 것이고, 공허하고 무효이며, 명분으로도 결함이 있습니다. 

  같은 일이 더 깊은 차원에서 1988년에 일어났습니다. 아씨시의 추문(1986년10월)이 있었고, 두비아의 추문에 답변이 있은 후, 대주교는 (비상시의 교회를 살리기 위하여) 주교들을 성성하고 자신의 과업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라칭거 추기경(후일 베네딕토16세)은 대주교에 대한 조치가 실패한 것을 깨달아, 가뇽 추기경으로 하여금 성 비오10세회를 두 번째 방문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추기경은 첫 번째 방문보다는 훨씬 좋은 자세를 보였습니다. 가런 추기경은 자기가 본 신학교의 모습에 매우 흡족해하였고 심지어는 신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좋은 일들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고 하면서 에콘의 방문록(訪問錄)에 서명하였습니다.


 대주교께서 행하신 선과 요청에 따른 합법성은 1988년 5월 5일자 의정서에 대한 서명으로서 실질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라칭거 추기경을 통하여 교황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한 명을 주교성성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로마는, 이 주교성성에 대한 날짜와 실질적인 실행을 연기하고, 또 연기를 반복하면서(주: 총 네 번) 대주교를 쥐나 고양이 다루듯이 연기를 지연시켰습니다.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는 나이가 들게 되었고 자신의 건강이 점점 악화됨에 따라 1988년 6월 30일 주교성성하기 하기로 결심합니다.(주:1991년 3월 25일 선종)

 그리고서 7월 2일자로 추정되는 파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법에 의하면, 긴급히 필요한 상황, 비상시 상황에는 이러한 파문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저들의 입장이 무엇이던 간에 베네딕토16세 교황은 2009년 1월 해제해주었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파문 당했다 라고 주장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교회법적 상황은 변칙적이지만, 우리의 위치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간단합니다: 우리 상황의 비상 상황에서의 변칙성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성 교회의 모든 전통을 거슬러서 전통미사를 금지하고자 하는 저들의 잘못에 있습니다. 전통 성전에 충실하려는 것은 올바른 방향에서 많은 이들을 도와왔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전통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제와 신자들은 르페브르 대주교께 고마워할 수 있으니, 그 분이 없었더라면, 이 전통 미사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통미사는 많은 영혼들, 특히 사제들과 수도회원들에게 있어서 많은 은총의 근원이 되어 왔습니다. 전통미사는 교회의 미래이며, 이 전통미사는 영혼들이 이러한 “이 악한 세대(인생)“(종도행전2:48) 와중에서 신앙을 지키고 살아갈 영양분을 찾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 가운데, 완전한 충성, 모든 시대의 신앙에 대한 충성, 모든 시대의 전례에 대한 충성, 모든 성인들의 도덕률에 대한 충성, 교회에 대한 충성 그 선상(線上)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통 가르침과 전례와 도덕률을 원하는 그 영혼들을 계속 돕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좋으신 주님이 교회 내에 많은 질서를 되돌려 놓는 시기, 각자가 천주님이 배정하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그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극히 충실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우리의 일을 보호하시고 우리 각자 모두가, 당신에 속한 우리 각자 모두가 세상 끝날까지, 충성에 대한 약속된 영원한 보상이 있을 때까지 신앙을 보존(保存)할 수 있게 도와 주소서!


 “잘했다, 착하고 충직한 종아, 네 주의 즐거움에 들어오라.“(마테오25:21)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