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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의 길을 따라 - 마리아 성명 축일(2015-09-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9-14



성모님의 길을 따라 - 마리아 성명 축일(2015-09-1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 동정녀는 마리아라.“(루까1:27) 복음서의 이 간단한 말씀은 우리에게 있어 아름다움과 은총과 유익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먼저 Clairvaux의 대 수도원장이며, 교회박사(敎會博士)이신 성 베르나르께서 하신 이 복음 말씀에 대한 아름다운 강론(講論)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은 성인의 가르침을 음미(吟味)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이 이름에 대해 몇 마디 하겠습니다. 이 말은 바다의 별로 해석되며 그리고 Maiden Mother(동정녀인 어머니)에 잘 어울리니, 그 분은 별처럼 아주 흡사한 분입니다. 별은 아무런 해악이 없이 동정녀께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동정녀는 동정성에 손상이 없이 아들을 낳습니다. 별빛은 별 자체로부터 어떠한 것을 취하지 아니하고 자손의 출생은 마리아의 동정으로부터 그 어느 것도 빼앗질 않습니다. 성모님은 야곱으로부터 오게 되었던 신성한 별(민수기24:17)이니, 이 별의 빛남은 아직도 온 세상을 비추고 있으며 별빛은 천국에서도 지극히 빛나며, 지옥에서 조차도 빛나고, 중간지인 이 세상에서도 비추며, 육신보다는 영혼을 따뜻하게 하며 선을 키우며 악을 혐오하여 멀리합니다. 나 말하노니, 성모님은 조찰하시고 비추는 별이며, 탁월성으로 반짝이며, 모범으로 찬란히 빛나고, 필요가 있기에 이 거대하고 넓은 바다의 표면을 내려다봅니다.

 “오 당신은, 그대가 누구이든 간에 이 세상의 바다에서 돌풍과 폭풍으로 이리저리 상처투성인 채로 이 땅 위에 걷도록 이곳에 와 있음을 압니다. 만약 당신이 사나운 비바람으로 인해 압도당하지 않다면, 그대의 눈을 고정시켜 이 별이 또렷한 빛을 비추고 있음을 보시오. 만일 유혹의 허리케인이 그대를 거슬러 올라오거나, 요동치는 돌 위에 그대가 달리고 있다면, 별을 보고 마리아를 방문하시오. 교만, 야망, 중상비방이나 질투가 당신을 충동질하고 있다면, 그대는 별을 보고 마리아를 방문하시오. 만약 분노와 탐욕 또는 육체 유혹의 파도가 그대 영혼의 소리에 거슬러 몰아친다면 마리아를 바라보시오. 죄의 거대함이 당신을 괴롭히거나 양심의 더러움이 당신을 혼란과 좌절을 불러오면, 심판의 두려움이 당신을 공포로 짓누른다면, 당신이 깊은 낙담으로 빠져든다면, 절망의 구덩이 속으로 빠진다면 마리아를 생각하시오”

 위험에 처하거나, 어려움, 의심이 들면 마리아를 생각하고 마리아를 방문하시오. 성모님이 그대의 입이나 마음으로부터 떨어져있지 않도록 하고 성모님 기도의 구원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며 성모님과의 교제의 사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시오. 만일 그대가 성모님을 따르면, 결코 빗나가질 않을 것이오. 마리아가 그대를 잡고 있으면 그대는 절망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만일 그대가 마음속에 성모님을 생각하고 있다면, 결코 방황하지 않을 것이오. 성모님이 그대를 잡고 있다면 그대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오. 성모님이 그대를 인도하시면 결코 그대는 피로하지 않을 것이요. 성모님이 도우시면, 그대는 마지막까지 집에 안전하게 도착하여서 그대 안에서 그 동정녀의 이름이 마리아라는 말이 그 얼마나 꼭 들어맞는지 입증할 것입니다.“


 왜 우리를 도우시려는 마리아에게 이러한 권능이 있으며, 왜 우리가 그 분을 의지해야 하나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교만”은 모든 죄의 시작입니다.(Eccli. 10:15) 그래서 천주께로 돌아가는 방법은 겸손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사 십자가에 죽으시기 까지 조차 순명”(필립피2:8)하셨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난 성인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 그리스도께로 직접 갈 수 있어. 왜냐하면 그 분이 진정한 하나님이니까. 그 분은 구원하실 강력한 권능이 있고 우리를 돌보시는 선한 목자이니 다른 이는 필요 없어.”


 이와 같은 (개신교인들의)태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많은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되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나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귀화(회개)하여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테오18:3)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어머니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인 주님의 어머니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는 네 모친이시니라.”(요왕19:27) 라는 말을 복음주의자들은 안 합니다:“주님이 요한에게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랑하셨던 제자에게 말씀하셨다”던 것이니,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랑하는 모든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지 성 요한에게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그래서 어떤 이가 “사랑받는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그는 성모님을 고려하여 어머니로서 그 분을 생각해야 하니, 그래서 성모님이 우리를 “어린 자녀”로 만들어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우리가 구원될 수 있게 함이니, 왜냐하면 “천주께서는 거만한 자를 배척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시느니라.”(야고보4:6)

 성모님은 예수 이후 그 어느 다른 이 보다 더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높이 현양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서에서 영예(榮譽)를 받을 적마다, 성모님은 자신을 숨기셨습니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 그곳에서 성모님이 나오시고 십자가 아래에 선 첫 번째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몽소승천 안에서 죄를 이기시고 죽음을 이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연관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위대한 권능, 영혼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여 영혼을 구령시키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성모님은 자비의 모든 은총을 영혼들에게 나눠주는 책임을 진 자비의 모친이십니다.

 상처받은 어린이들이 치료와 보호를 받기 위해 자기들의 어머니에게 달려가듯이, 죄인인 우리 모두가 성모님께로 달려가서 그 분이 우리의 영혼을 깨끗이 하도록,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고, 우리 죄에 대해 어떻게 울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어떻게 의지해야 하며, 그 분에게 어떻게 하면 충직할 수 있는가를 성모님의 모범을 통해 가르치도록 합시다. 그와 반대로 마리아 막델레나를 성모님이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은 죄 없는 이에게도 끌려 나오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모친이신 동정중의 동정이신 마리아에게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들이 함께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신 것을 봅니다. 성모님 이후에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끌어냄으로써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그녀의 구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영화, 극장, 비디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불결함이 넘쳐나고, 피임, 반 자연적인 악, 그리고 심지어 사악한 이들이 이러한 악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며, “낙태에 대한 권리”도 주장하고, 악과 덕행 사이의 “동등성”을 주장하는 우리 시대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헌신하는 것은 특히나 필요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천사와 악마, 성인과 악한, 영의 일과 육신의 일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지요? 무지가 결코 (과거엔)그렇게 퍼져나가진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악의 추함이 부끄러움으로 찌든 그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덕행의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는, 동정중의 동정인 그 분의 온화한 빛이 필요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포근한 사랑과 진정한 헌신을 하는 신자들은 저들의 눈앞에서 성모님의 표양을 지키고 성모님을 촉범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피합니다. 이러한 신자들은 대죄를 피할 뿐만 아니라 죄로 이끄는 것조차도 피합니다.


 절제를 실천하니, 복장에서도 절제하고, 외모나 언어나 행동에서도 절제합니다. 절제에 관해 말하자면, 허접한 옷을 소유하지도 말고 품위 없는 옷을 사지도 마십시오. 그런 옷을 사지 않으면 소유하지 않을 것이며, 소유하지 않으면 결코 입지도 않을 것입니다! 무절제한 옷을 샀을 때 여러분은 이미 무절제의 죄를 범한 것 아닙니까? 초기에 죄에 대해 저항하십시오. 이것이 훨씬 쉽고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성모님께 헌신하는 것은 계명과 복음의 권고를 실천할 큰 용기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보다 더 완벽해지길 원하며, 더 더욱 복음의 권고, 가난, 정결, 순명을 실천하는 데에 애착을 갖게 됩니다. “너 만일 완전한 자가 되고자 하거든, 가서 가진 바를 팔아 빈궁한 자에게 주라. 너 하늘에 보배를 얻으리니, 그제는 와서 나를 따르라.”(마테오19:21) “처녀에 관하여서는 나 주께 아무런 계명도 받지 아니하였으나, 주의 성총을 입어 (사람들의)신뢰를 마땅하게 받은 자로서 의견을 주노니 (동정성에)충실하라.”(코린토 전7:25)


 그리고 성인은 봉헌된 동정성을 지니고 주님을 위해 남아있기를 권고합니다. 그리고 순명에 대한 권고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례에서도 보여준 바 있으니, 주님은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며, 더구나 십자가상에 죽음까지라도 순명”(필립피2:8)하셨습니다. 심지어 결혼해서 사는 신자들도 복음의 권고를 존중할 필요가 있으니, 이는 세상의 부패로부터 신자들의 보호막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동정 중의 동정으로서 베들레헴에서 가난 속에 사시면서 영보고지(領報告知)때부터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천주님 말씀에 순명하신 이와 같은 복음의 권고를 따른 모범입니다.


 오늘날 사제직과 수도생활에 있어 선하고 거룩한 성소의 필요성이 긴급히 요구됩니다. 이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일어난 교회의 위기는 많은 사제, 수도회원과 신자들에게 지독한 상처를 주었고 수도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니, 많은 열정을 가진 성소자들, 사이프리안 성인이 봉헌된 동정자들이라고 부른 것처럼 그리스도 신자들의 가장 큰 영광스런 부분을 차지하는 성소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공급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복되신 동정이신 마리아의 성명(거룩한 이름)에 대해 큰 사랑을 갖고 있다면, 그 분은 바로 요셉 성인입니다! 그 분만큼 성모님을 가까이 하신 사람은 없습니다. 그 어느 사람도 그 분만큼 놀라울 만큼의 순수하고도 깊은 사랑으로 성모님을 사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 요셉만큼 성모님으로부터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인은 침묵 속에서 기도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현양하고, 가난 속에서 인내를 견디고, 숙소로부터 거부를 당하고 이집트로 망명하는 것을 성모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그 분은 겸손을 배웠으니, 성전에서 예수를 찾을 때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비록 요셉 성인이 가정의 아버지였지만 우리 주님을 꾸짖지 아니하고, 왜 성전에서 이런 일을 했느냐 묻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말하게끔 했습니다! 크나큰 방법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천주님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었을 때,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성 요셉께 기도하여 그 분이 우리가 마리아에 대한 이 같은 비슷한 헌신을 얻게 해 달라고, 그래서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신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과 온 영신과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