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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께 새로운 찬미가를 노래하라 - 성신강림 후 제16주일(2015-09-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9-14




주께 새로운 찬미가를 노래하라  - 성신강림 후 제16주일(2015-09-13)


“Cantate Domino canticum novum, quia mirabilia fecit Dominus !

 Sing to the Lord a new canticle, because the Lord has done marvellous things!”


"주님께 새로운 찬미가를 노래하라, 주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도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알렐루야 찬미 노래에서, 새로운 아가(雅歌)의 노래로 천주님을 찬양하라는 권고를 듣고 있습니다. 구약의 찬미가도 있지만, 찬양하기에 새롭고도 더 나은 찬미가가 현재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첫 번째 찬미가는 창조에 대한 찬양, 창조에 있어서 그 분께서 행하신 경이로움에 대한 천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노래이며, 새로운 찬미가는 구원에 대한 찬미가로서, 구속 사업에 있어서 그 분이 행하신 더 큰 경이로움에 대한 찬양입니다.

 실제로 천주님은 “창조의 사제”로서 모든 물질 창조의 정점에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천주께로부터 오는 것은 천주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직도 천주님은 우리가 필요하지 않고 그 분의 창조행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분이 절대적으로 완벽하신 분이니, 그 분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그 분께 어떻게 우리가 드릴 수 있나요? 피조물이 천주께 드리는 것은 “영광”이니, 천주 완벽하심을 인정함과 모든 선의 최고의 원천으로서 그 분을 인정하는 것이며, 위대한 예술가에 대해 그 분의 지혜와 그 분의 전능과 그 분의 선하심에 증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몰이나 무지개의 장엄함에서 꽃들의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은하계의 역동적인 힘과 작은 코알라의 부드러움, 천둥의 강렬한 힘과 새의 달콤한 노래 소리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외치되:“우리의 상주이신 주 이시여, 당신의 이름이 온 세상에서 얼마나 기이하시나이까! 당신은 당신의 엄위를 하늘 위로 현양하셨사오며”(성영8:2) “주님의 업적들아, 주님을 찬미할지어다. 영원히 그 분을 찬미하고 드높혀 현양할지어다.”(다니엘3:57) “해와 달이여, 그이를 찬미할지어다. 빛내는 모든 별들이여, 그이를 찬미할지어다.”(성영148:3) 이것이 창조에 관한 찬미가입니다.

 지상의 모든 인간의 활동은 천주님께 이러한 찬미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분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총을 천주께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 천주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수도원이나 수녀원에서 자신의 온 생애를 거룩하고 봉헌된 생활 속에서 성영을 노래하고 천주님을 위해 진정 살아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사제들 역시 성무일도로 천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이 찬미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주요활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천주께 대해 감사의 빚(debt)을 갚으며 그 자신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을 준비함이니, 그때에는 천주님의 모습을 직접 뵙고 묵상하며, 그 어느 인간도 표현할 수 없는 지극히 무한한 방법으로 천주님의 탁월성을 노래할 것이며 영원한 기쁨을 노래하게 되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에 대한 이 찬미가를 충직하게 노래함으로써 천주께로 돌아가질 않고, 창조주께 돌아가려는데 자신을 쓰기보다는 창조된 피조물에 자신의 최종목표를 둠으로써 죄로 떨어졌습니다. 천주님을 잊어버리고 궁극적인 목표로서 세속적인 일을 사랑함으로써 인간은 부를 축적하고, 자신을 위해 쾌락과 권력을 잡으며 더 이상 천주님을 섬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죄는 창조에 있어서 특히 인간에게 있어서 무질서와 악을 끌어드렸습니다. 천주님은 악이 퍼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악이 결정권을 갖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요구되는 (주님의)속죄로 정의의 질서를 회복합니다!


 그러나 재건보다는 파괴가 쉽습니다. 인간은 죄에 빠질 수 있었고 그 스스로 일어설 수 없었으며, 천주님이 인간에게 주신 영적인 생명을 죽일 수 있었으나 그 스스로는 생명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모든 창조를 합한 것 보다 더 아름다운 사업을 무한하신 자비의 방법으로 고안하셨으니 그것이 구속 사업이었습니다.

 천주께 영광을 회복시키고 타락한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죄 지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천주님은 그 분의 유일하신 독생 성자를 세상의 구원자로서 우리의 죄와 온 세상의 죄에 대해 그 분의 아들이 보속을 치루고, 주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이들 영혼들을 치유하고 우리를 천주님의 자녀로서 받아드리기로 하셨습니다. 성 육신과 구원이라는 천주 자비의 위대한 증거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천주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독생 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사, 무릇 저를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치 아니하고 오직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요왕3:16) “우리에 대한 천주의 사랑은 천주 우리를 당신 독생 성자로 인하여 살리시고자 저를 세상에 보내신 여기에 나타났느니라.”(요한1서 4:9)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버리신 여기에 우리는 천주의 사랑을 인식하였느니”(요한1서3:16)

 죄인들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인의 불행으로부터 그를 끌어올려 그를 치유하고 천주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이 경이로운 천주님의 사랑은 천주자비라 부릅니다. 천주님은 무한히 자비로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 성자를 보냄으로써 인간을 향한 천주님의 자비가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천주자비에 묵상하면 할수록 더 더욱 이렇게 주장해야 합니다: “천주자비를 나 영원히 찬미하리라.”(성영88:2) 이것이 구속의 찬가입니다!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는 자서전에서 첫마디가 있으니, 그 분은 우리 주님의 자비를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주 야훼 말씀하시니, 맹세코 나는 악한 자의 죽음을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악인이 저들의 길에서 뒤돌아서 살기를 원하노라. 돌아오라, 너의 악한 길에서 돌아오라. 오 이스라엘 집이여, 왜 네가 죽으려 하느냐?”(에제키엘33:11) 죄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천주의 자비는 이보다 더 크고 위대합니다. 주님은 죄인을 회두시킬 수 있고 – 그리 원하시며 – 죄인이 생명으로 돌아오길 바라십니다.

 천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회개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죄인이 자기의 죄로부터 떠나길 원하십니다. 어떻게요?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보속으로 그 빚을 지불했습니다. 이것은 죄인의 마음을 끌어들여 크나큰 시혜자인 주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한 범죄자가 이웃집에 방화를 했다고 가정(假定)하고, 이에 대해 그가 집을 다시 지어주지 않는다면 감옥에 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는 값을 치루게 되면 그럼으로써 그 죄인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 죄수는 자기에게 베푼 시혜자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아닌가요?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한 범죄자입니다. 천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피조물들의 남용으로써 우리는 빚을 불러들이고 우리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빚을 갚으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그 분께 고마워해야만 합니다! 천주님께서 우리가 이러한 점을 이해하게끔 하실 적에는 우리 마음이 그분께로 돌아오도록 당기십니다.

 일단 우리가 촉범했던 천주님의 선하심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해야 하고 우리의 죄에 대해 울어야 하며, 죄에 대해 보속을 해야 하며 죄를 혐오해야 하며 “통회”로써 우리의 죄 지은 마음을 부수어야 합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혐오 없이는 천주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죄를 혐오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천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죄에 대한 이러한 혐오는 과거의 죄에 대한 보속을 행함으로써, 미래의 죄의 기회를 피함으로써, 죄를 피하는 수단을 강구함으로써, 참되고도 규칙적인 기도와 묵상과 훈련과 선한 행시로써 반드시 생활의 진정한 변화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시니, 모든 덕행의 궁극적인 모범과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이러한 십자가 보속의 길을 우리가 지도록 권하실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우리를 강화시킵니다. 이러한 것이 연옥생활이니,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이때는 주요 목표가 죄를 피하고 과거의 죄를 보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분께서 싫어하시는 것 무엇이든지 피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지혜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델레나 같이 천주자비를 이해하였고 천주께로 돌아가길 원하는 죄인은 커다란 통회를 가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와서 죄에 대해 울어야 하며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절대적으로 죄를 피하고 죄의 기회도 피하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해야 하며 그 죄를 피할 수단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이 죄의 기회가 된다면, 없애야 합니다!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네 눈이 만일 너를 범죄케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한 눈을 가지고 천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불 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더 나으리니 거기는 그 독충이 죽지 아니하고 불이 꺼지지도 아니하리라.”(말구 9:46-47)

 일단 훌륭한 고해와 진정한 보속으로써 죄로부터 자유가 되면, 그 영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덕행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주님을 닮아가며, 항상 그 분을 배우려 하면서 이러한 구원의 찬미가를 부르는 자유가 됩니다. 이것은 묵상과 선업의 실천을 통하여 영적 생활의 주요관점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알고 사랑하면 할수록 하는 그곳에서 빛을 발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보속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더욱 과거의 죄를 혐오하고 죄에 대한 배상의 실천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속의 생활이 더 쉬워지니 왜냐하면, 영적 생활의 이 두 번째 단계에서 더 많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주님에 대한 사랑은 모든 덕행을 실천하는 데에 용이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덕행과 선한 행실에서 이루어지는 인내를 통하여 결합되는 생활, 세 번째 단계이자 가장 높은 영적인 생활에 도달하니, 이곳에서의 주요 초점은 자기 자신을 항상 점점 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의 모든 영역을 뛰어넘어 자비의 지배를 받아 천주님과 깊이 일치시킵니다. 기도가 점점 단촐해지고 깊어지며 덕행은 점차로 강해지고 더 완벽해지며 사람은 옳은 일뿐만 아니라 천주님의 순수한 사랑에 도달하면서 그의 동기도 순수해집니다. 대체로 이러한 깊은 영적인 생활은 다른 많은 이들의 회두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위대한 십자가들을 나르는 것과 동행하는 것이며 그것에 의하여 그 사람은 구속의 신비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이 지상에서의 성인들의 생활이며 천국으로 가는 즉각적인 준비입니다.

 첫째 아담은 창조에 대한 찬미가를 잘 노래했지만, 그러나 비참하게 추락하여 그의 후손들이 모두가 그의 타락에 들어왔습니다. 성 교회는 첫 아담이 회개를 했으며 구속에 대한 찬미가를 고통스럽게 부르면서 새로운 아담이 그가 불러온 모든 그 상처를 치유하고 원상복구 해주길 기다렸다고 가르칩니다. 새로운 아담이 왔고 창조에 대한 찬미가와 구속에 대한 찬미가를 지극히 완벽하게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더 높이 그 분은 – 영원한 말씀으로서 — 지상에서의 우리의 모든 찬미의 노래가 매우 희미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에 비해 성부께 영원한 영광에 대한 완벽한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천국에 있는 성인들은 영원한 찬미가를 들을 것이요, 이것은 영원히 저들의 지복직관이 될 것입니다. 성인들은 자신들을 이 영원한 말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일치시켜 그 분 안에서 노래하고 그 분과 함께 그 분으로 말미암아 성신의 타오르는 불길 안에서 성부의 영광을 노래할 것입니다. 우리가 저 천국의 합창대, 천상의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오로 성인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완벽하게 실현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중에 풍성하게 머무르시게 할지니, 너희는 온갖 지혜로서 서로 가르치고 서로 권고할 것이며, 성영과 찬미와 성시(聖詩)로써 너희 마음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천주께 노래할지니라.”(콜로새 3:16)

 지상에서 지극히 즐거운 음성으로 이러한 찬미가를 부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우리가 이 은총을 얻게끔, 천국에서 이러한 노래를 당신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 (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