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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님을 통해 본 천주님의 섭리/Follow Providence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01


르페브르 대주교님을 통해 본 천주님의 섭리 - 육순주일(2013-02-03)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주일,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참된 가톨릭인이 될 필요성과 성 교회에 있어서 20세기,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참된 가톨릭 신자로 남을 수 있게끔 도와주시는 르페브르 대주교님이야말로 얼마나 천주님의 큰 성총이었는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 분의 탁월하신 지혜와 그 분을 인도하시는 천주님의 성총으로, 그 분은 교황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열교를 원하지 않았고, 불행한 2차 바티칸공의회에 퍼져있는 현대의 오류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긴 생애를 통하여 르페브르 대주교님을 인도한 다른 원리를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이 원리, 첫째는 모범행위로써, 그리고 말씀으로써 끊임없이 우리를 가르쳤던 이 원리는 우리 생활에서 우리가 천주님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쉬우나 때때로 이러한 적용은 큰 영웅적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원리를 설명하고 나서 어떻게 르페브르 주교께서 천주님의 섭리대로 사셨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천주섭리의 수단을 따르기 위해, 무엇보다도, 모든 사물 속에 천주님의 의지를 찾기 위해, 그리고 일단 이를 찾고 행하려 하면,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바쳐 충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자, 어떻게 어떤 사항이 천주님의 뜻인지를 압니까? 천주님의 뜻은 무엇보다도 십계명을 통하여 우리에게 환히 밝혀주셨고, 그리고 가톨릭 성교회의 법령에 의하여, 적법하게 임명된 장상들의 합법적인 명령계통을 통하여, 그리고 성신의 영감과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가 특별히 ‘섭리’라고 부르는 것에 의하여, 즉 이것은 우리 생활 속의 다양한 환경 건강, 사건, 날씨, 사고 등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천주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왕은 거룩하면서 평생 몸이 마비된 가난한 거지를 알았습니다. 이 빈한한 사람은 로마의 성 클레멘스 교회에 아침마다 들것에 실려와서 교회입구에 누워 행인들로부터 구걸을 했습니다. 그는 화창하거나, 비가 오나, 추우나, 눈이 오나 항상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거지에게 왜 당신은 항상 그렇게 행복하시오 라고 물어보면, 항상 똑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날씨를 결정하는 것은 천주님이십니다. 천주께선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우리는 천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천주님의 뜻이며, 얼마나 우리를 성화시키고자 원하는지를 알고 있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왜 내가 불평을 해야 하나요?”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천국으로 불러드리는 천사들의 합창을 들었습니다.

 

천주섭리를 따르는 것, 진실로 천주 섭리에 굴복하는 것은 내적 평화와 기쁨의 비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령 상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는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의 역설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기쁨을 가질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수난과 고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천주님의 손 안에 있고, 고통은 우리 사적인 죄에 대해 주께서 의도하신 것이며, 혹은 어떤 영혼을 구령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님의 고통에 우리를 보다 더 가까이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천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전능하시며 천주님의 통제 밖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은 없다,’라는 점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이 성인들의 내적 행복의 비밀입니다.

 

이 같은 원리가 르페브르 대주교님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봅시다. 어린 마르셀 르페브르가 부모님께 신학교에 들어가려는 소망을 말씀 드렸을 때, 비록 교구 신학교가 집 근처에 있었지만, 부친은 프랑스에서 공부한 후 영원의 도시 로마에서 공부하고 있는 형과 함께 로마에 가서 공부하기를 원했는데 이는 현명한 아버지의 결정을 통하여 천주께서 그 분을 로마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에서의 6년간, 주교께서는 정말로 이해했습니다. 지난 주 우리가 안 바대로, 한 손에는 성 교회의 가르침, 로마 가톨릭 신앙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이 똑같은 가르침, 같은 신앙을 파괴하고자 하려는 현대주의 오류를 깨달으신 겁니다. 두 개 사이의 근본적인 반대, 진리와 오류 사이에 치명적인 전쟁이 진행되는 것을 목격하셨습니다.

 

젊은 사제로서의 그 분의 열망은 교구에서 일하면서 근로자들을 사목하고 그 가족과 자녀들에게 천주님의 성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일년 이렇게 하고 나서 아프리카에서 이미 전교자로 일하던 형 레네가 아프리카로 와서 전교 활동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젊은 사제인 르페브르는 아프리카 전교활동을 하게끔 동의해준 주교님께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천주께서는 주교를 통하여 아프리카 전교자가 되게끔 인도하셨습니다.

 

주교께서는 전교자로서13년을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그 후 그분의 장상은 주교님을 프랑스에 있는 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 교장으로서 임명하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우셨는데, 왜냐하면 아프리카인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허나, 장상을 통하여 명백하게 드러난 천주님의 섭리에 굴복하여 프랑스에 돌아오셨는데, 그때가 1945년 이차 세계대전 끝 무렵이었습니다. 로마에서 공부했었을 당시에 알았던 오류들이 성직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예를 들어 주교님은 헨리 드 루벡(이 사제는 나중에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주도한 사제가 되었는데)가 쓴《천국에 가려면 성세 받을 필요가 없다》라는 매우 끔찍스러운 기사를 읽으셨습니다. 이때가 겨우 1945년입니다! 그래서 르페브르 사제는 프랑스에서3년 짧게 계시다가 교회의 적들이 성교회에 침투했다는 것을 아셨고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밀밭 가운데 가라지를 베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짧은 3년이 지난 후 교황께서는 그 분을 다카르의 대주교로 임명하셨고, 이 임무에다가 또 다른 짐을 추가했는데 서 아프리카 전역을 담당하는 교황대사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1947년부터 1961년 동안, 14년 동안 이 직무를 맡았습니다. 교황님을 대표했기 때문에 이 기간에 교황 성하께 보고 드려야 하기에 자주 로마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황 비오 12세와 바티칸을 아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천주께서 가까운 장래, 즉 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에 엄청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갓 생겨난 성비오10세회와 함께 싸우도록 그 분을 준비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정확하게 왜 1970년에 성 비오10세회를 설립하셨나요? 새미사가 출현하는 것과 같이 1970년에 종교단체를 설립하는 것은 매우 위태로운 것을, 특히 성비오10세회 단체가 전통전례와 성 교회의 전통 가르침을 유지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치열한 전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는데 왜냐하면 과거에 성 교회에 의해 견책된 현대주의 오류를 신장시키려는 지도자들이 프랑스 주교들이라는 점에 저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학생들이 그분에게 회를 세우라고 촉구하러 나섰고, 저명한 사람들 몇몇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그분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의 요청에 감동을 받아 성비오10세회 정관을 작성하고 말씀하시길 “내가 이 정관을 지역주교에게 보일 것이오, 만약 그가 인가 서명을 한다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 싸우라는 천주님의 섭리가 될 것이며 그가 찬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천주님의 섭리로 받아 드리는 바이오.”

 

그리고 난 후 샤르에르 주교는 사실 성비오10세회 단체에 강복을 주셨고 1970년 11월1일 인가를 내주셨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에겐 이와 같은 초기의 축복에 대한 신뢰감이 우리 단체가 가톨릭 성 교회의 진정한 단체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며 그 분의 분명한 대표성을 통하여 구체화된 천주님의 섭리를 우리가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다시 1988년 6월 네 분의 주교성성을 이끌도록 하신 천주섭리를 따르고자 하는 황금의 원리였습니다. 주교성성을 해야 하나 하는 문제로 수년간 망설였으나, 한편으로는 공의회 로마가 (교회)자살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보시고, 또한 이것은 1986년 10월 아씨지 모든 종교회합과 그 후 대주교께서 로마로부터 받은 문서에서 분명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사제직에 대한 성소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과, 세계 전역에 있는 신자들이 전통사제를 원한다고 필사적으로 요청하는 것을 보시고, 대주교께서는 천주섭리의 분명한 표징과 그래서 자신이 영혼 구령을 수행할 의무의 표징을 보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결론적으로 성부께서 “그대로 될지어다.” 라는 말씀을 우리가 하게 될 때 우리 일상생활에서 이 의미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천주께서 사건과 환경과 의무 상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천주님을, 우리가 이러한 신앙의 눈을 가지고 봐야 합니다.

 

행동하시는 천주님을 봐야 되고 그 분의 거룩한 의지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천주님의 섭리를 따르라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천주섭리에 완전 굴복하신 자세로 천주님 의지에 순명하신, 진정한 모범이 되신 마리아여, 당신처럼 우리가 천주님 의지에 순종하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다니엘 큐츄어 신부 (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장)




Follow Providence


Dear Faithful,
Last Sunday we spoke about the necessity of being true Roman Catholics in order to go to heaven, and how Archbishop Lefebvre was really a gift of God to the Church, in the twentieth century to help us remain true Roman Catholic in these difficult times. Thanks to his great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hich guided him, we do not want to become either schismatic, by rejecting the authority of the Pope, nor do we want to become heretics by accepting the modern errors which have unfortunately entered the Vatican and are spreading everywhere.


I would like today to highlight another principle which guided Archbishop Lefebvre throughout his long life. This principle, which he taught us constantly first by his example then by his words, is that in our life, we must always follow Divine Providence. It is easily said, however, sometimes the application can be heroic. Let us explain the principle first, then, let us see how Archbishop Lefebvre lived up to it.


To follow Divine Providence means, first of all, to seek to find God’s will in all things, and once we find it to do it, to execute it faithfully, with all our mind and heart. Now, how do we know something is God’s will? The will of God is first of all manifested to us through the Ten Commandments, then by the laws of the Holy Catholic Church, then by the lawful orders of our lawful superiors, then by the inspirations of the Holy Ghost, and finally by what we specifically call ‘Providence’, that is the various circumstances in our lives: our health, the events, the weather, accidents, and so on, things we do not really control.


St Gregory the Great knew a holy man, a poor beggar, who was paralyzed all his life. This poor man was brought on a stretcher every morning to the church of St Clement, in Rome, to lie at the entrance of the church and to beg from the people going in. He was always happy weather it was a sunny day, a rainy day, or a cold and snowy day. When people asked him why he was always happy, he always gave the same answer: “It is God who decides the weather, and God loves us, and we should love everything God gives us! So, I’m happy because I know that this is the will of God on me, and that is how God wants to sanctify me. Why should I complain?” When he died, people heard choirs of angels welcoming him to Heaven!


To follow Providence, to have a trustful surrender to Divine Providence, is one of the secrets of inner peace and joy. Even if it hurts. You see, that is one of the paradoxes of our beautiful faith: we can have joy in our heart, and suffer and be in pain at the same time. The reason is because we know that we are in God’s hands, that the pain is willed by God either for our personal sins, or to save some souls, or to unite us more closely to the sufferings of our Blessed Crucified Lord. We know that God knows everything, that He is almighty, that nothing can happen to us outside of His Divine control. That is the secret of the inner happiness of the saints.


Let us now see what this principle meant for Archbishop Lefebvre, and how he lived it. When young Marcel Lefebvre told his parents of his desire to enter the seminary, although there was a diocesan seminary nearby, his father wanted him to go and study in Rome, with his brother who was already in the seminary for the French, in the eternal City. . God guided him to Rome through this wise decision of his father. And in his 6 years in Rome, he really understood, as we saw last Sunday, on one hand the teaching of the Church, the Roman Catholic Faith and, on the other hand, the modern errors trying to destroy this same teaching, this same faith. He saw the radical opposition between the two, that there was a deadly war going on, between truth and error.


His desire as a young priest was to work in a parish, to minister to the workers, to bring the grace of God to the families and the children. He did this for one year, then his brother Rene, who was already a missionary in Africa, urged him to come and join him in the missions. Young Father Lefebvre consulted his bishop who agreed to let him go to the African missions. So, God guided him through his bishop to become a missionary in Africa.


He spent 13 years as a missionary in Africa, after which his religious superiors appointed him as the rector of a seminary of philosophy back in France. He cried when he heard the news, because he loved the Africans so much, but, he submitted to the will of God clearly expressed through his religious superiors. Back in France, this was in 1945 just at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he noticed that some of the errors he had studied in Rome had started to be spread by the clergy. For example, he read in a terribly dangerous article by a priest called Henri De Lubac (this priest would later become one of the main thinkers of Vatican II) that it was not necessary to be baptized to go to heaven! And this is only 1945! So, Fr. Lefebvre, by being in France for a short 3 years, realized that the enemy had entered the Church and was starting to sow the cockle in the middle of the wheat, as Our Lord said in the Gospel.


A short three years later, the pope appointed him archbishop of Dakar and soon after added another burden to this duty, by making him also Apostolic Delegate for the whole of Western Africa. He was at these posts for about 14 years, from 1947 to 1961. During these years, because he represented the Pope, he had to report to him, and thus he had to go to Rome frequently. He got to know Pope Pius XII and also the Vatican very well. This way,God was preparing him for the great battles he would have to wage in the near future, those during the Council Vatican II, and the battles he would have to fight with his young Society of St Pius X.


Why precisely did Archbishop Lefebvre found the Society of St Pius X in 1970? He knew that to start a religious society in 1970, just as the new mass was coming out, was very risky, especially a society that would maintain the traditional liturgy and the traditional teaching of the Church. He knew it was going to be a fierce battle, especially against the French bishops who were the leaders in promoting the modern errors condemned by the Church in the past. Nevertheless, many young seminarians were urging him to come to their help, and some eminent people, some in the clergy and others from the laity, urged him as well. Moved by their requests, he wrote the rule of the Society and said: “I am going to show this to the local bishop and if he approves it, it will be the sign of God’s will for us to go ahead, but if he does not approve it, it is God’s will not to go ahead.” And Bishop Charriere did in fact give his blessing to the new Society and approved it on November 1, 1970. For Archbishop Lefebvre, fidelity to this initial blessing is the guarantee that we are truly a religious Society of the Catholic Church, that we are following Gods will, manifested through his visible representative.


Finally, it was again this golden principle of wanting to follow Divine Providence that led him to consecrate the four bishops in June 1988. He had hesitated for many years in doing so, but seeing on one hand, that the Conciliar Rome was not changing its suicidal direction -- this was clear with the meeting of all the religions in Assisi, in October 1986, and in a document the Archbishop received from Rome soon after--, and on the other hand, seeing that the number of vocations to the priesthood especially was continuing, and that the faithful all over the world were still desperately asking for traditional priests, the Archbishop saw in these signs the clear expression of Divine Providence and therefore sign of his duty to perform this saving act.


In conclusion, my dear Faithful, when we say in the Our Father, “Thy will be done”, we have to think about what this really means in our daily life. We must have the eyes of faith to see God speaking to us, guiding us, through events, through circumstances, through our duty of state. We must see God acting, and we must submit to his sanctifying will. That is what “follow Divine Providence” means. May our Blessed Lady, who is indeed a model in this obedience to God’s will in this total surrender to Divine Providence, help us to be as docile to the will of God as she was. Amen.


Fr. Daniel Co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