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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께서 평화를 주시는 사정 - 성신강림 제9주일(2015-07-2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25




천주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사정 - 성신강림 제9주일(2015-07-26)


성비오10세회 성모무염시태성당 전통미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7월 26일 성심강림 제 9주일을 미사를 하고 있습니다.


“슬프다 네게 평화함을 주시는 사정을 너 과연 오늘이라도 깨달으면 다행하련마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보면서 슬퍼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십니까?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무시하여 파괴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원 17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예루살렘은 우리 영혼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가지고 있다면 우리 영혼은 완전하여 성모님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죽이고자 한다면 예루살렘처럼 우리 영혼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우리 영혼의 원수들이 우리가 죽을 때에 어떻게 공격하는가를 보고 결론으로써 우리 영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묵상합시다.


아우렐리우스 따르면 “우리의 마지막 영혼에게 세 가지 원수들이 온다.”고 합니다. 하나는 우리 양심이 우리로 하여금 천주께 돌아가게 해야 하는데 양심이 마비되어 천주께로 돌아가지 못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마귀가 우리를 절망하도록 공격한다. 세 번째는 우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참된 통회를 못한다고 합니다.


제일 원수는 우리의 양심마비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말씀하시길 “만약에 우리가 항상 죄로 생활하고 있었다면, 마지막 죽을 때에 하는 통회는 너무 약하다. 그런 상태의 죄인들이 참된 통회로써 천주께로 돌아오는 것은 죽은 사람을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죽을 때까지 죄를 사랑하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죄를 뉘우칠 수 있겠습니까?  죄 안에서 항상 시간을 보내고, 죄 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죽을 때 마음으로부터 죄를 뉘우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죽을 때까지 미운 원수를 갑자기 사랑할 수 있고, 그리고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던 사람을 갑자기 미워할 수 있다면, 아마 우리도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있던 죄를 갑자기 미워할 수 있고, 지금까지 미워서 보기도 싫었던 천주를 갑자기 사랑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죄 속에 생활하는 사람들은 양심이 마비하기 때문에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둘째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도, 신약성서에서도 마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신화가 아니며 사실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죽을 때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도록 모든 힘을 다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도, 성인성녀이라고 그렇게 공격합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엘리아자르라는 왕이 있습니다. 그 엘리아자르는 죽을 때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은 사람은 죽기직전까지 가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귀에다가 ‘너는 이웃 사람에게 얼마나 나쁘게 했는지 아느냐. 너는 도둑하고 이웃사람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 어떻게 보속할 할 수 있느냐? 지금은 도저히 못한다.'


또한 '너는 천주의 부름을 지금까지도 무시하였고, 기도하라 주일미사 보라 죄를 피하라 하는 많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시해버리고 있다. 그런 무시를 받은 천주께서 어떻게 너를 구할 수 있느냐? 네가 한 고백성사는 다 무효다. 왜냐하면 너는 고백성사 형식적으로만 하고  진짜 통회는 없었다. 네가 한 것은 다 쓸데없었고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귀가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만약에 살아있을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면서  ‘우리를 긍련히 여기소서!’ 그런 기도를 많이 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비하심을 믿나이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무시해 버린 사람이 어떻게 그때에 예수님의 무한한 자비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셋째는 이사야 예언자에 따르면 “주님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찾아라.” 예! 주께서 만약에 우리가 통회하고 주님으로 돌아가고 한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총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성총을 주신 그때에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가 죽을 때 반드시 우리가 주님께 돌아갈 특별한 성총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어야지만 주께서 마지막까지 견딜 수 있는 성총을 특별히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창조주가 ‘ 어, 네가 진짜 나의 피조물인가? 그렇게 인정하실 수 있을까요? 영혼들은 절망할 것입니다. ‘나는 수많은 피해를 주께 보이고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주님이 마지막에 어떻게 가까이 올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피조물 사랑하고  미신을 믿고 있었는데 왜 마지막에 참된 주님께서 나를 생각하실 수 있느냐?’ 라고 영혼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예루살렘을 따르면 안 됩니다. 그러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우리 영혼 속에 지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심에는 두 가지 열정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하나는 천주성부에 대한 사랑으로 천주성부의 뜻을 다하겠다는 열정입니다. 둘은 어떤 힘든 방법이라도, 혈세라도, 십자가의 고통을 받더라도 우리 영혼들을 구령하겠다는 열정입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영혼에 항상 가집시다. 어떻게 가집니까? 죄를 피하고, 죄의 기회를 피하고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영혼에서 지킵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성체로 영하여 받으면서 예수그리스도와 항상 일치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성체로 ‘모신다’라는 것은 우리가 희생으로써 죄 사함을 위하여, 죄 보속을 위하여 희생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희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체성사처럼 호스씨암(hostiam)이 되는 것입니다. 호스씨암은 희생이라는 뜻이요, 빵의 형상 속에 참으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도 희생이요, 우리 인간에게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셔야 합니다. 그렇게 항상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면서 우리는 마지막에 영원한 영광까지 가도록 기도합시다. 이것을 위하여 성모님께 기도합시다. 성모님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태속에, 영혼에, 마음속에 가지신, 살아있는 감실입니다.


“슬프다 네게 평화함을 주시는 사정을 너 과연 오늘이라도 깨달으면 다행하련마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