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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 같고 들풀 같은 우리 - 성신강림 후 제14주일(2015-08-30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25




꽃 같고 들풀 같은 우리 - 성신강림 후 제14주일(2015-08-30)

 

성비오10세회 성모무염시태성당 전통미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8월 30일 성심강림 후  제14주일입니다.


“들풀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에 들어갈 것이라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이름도 없는 들풀에 대해 이야기 하십니다. 들풀일지라도 잘 지키시고 신경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데 우리 사람에게는 얼마나 더 신경을 쓰실까요?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에 따르면 “우리 모든 인간은 풀이요, 영화(榮華)는 들의 꽃과 같다”고 합니다. 성 야곱 종도는 “부자는 풀꽃처럼 쓰러질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이야말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오늘 여기 있다가 내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우리는 이 세상을 끊어 버릴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서, 왜 끊어 버릴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 묵상하고 좋은 결심을 세웁시다.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느 날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과 결별해야 때가 옵니다. 이 세상의 명예, 부, 즐거움 등 모든 것을 떠나야 할 때가 확실히 있습니다. 그런 때를 우리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구약성서의 욥 성인은 “알몸으로 이 세상에 나온 이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라고 했습니다. 예! 우리는 죽을 때 모든 것을 놓고 알몸으로 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열심이었든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 게 되도록  눈이 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회의 재의 수요일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흙속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강론하셨습니다. “로마황제의 묘지에 가서 여쭤보라, 당신이 살아있을 동안에 모든 군주들이 당신이 두려워했다. 모든 도시가 당신을 경외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을 보고 무서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에 가지고 있었던 영광이 어디 있느냐?” 성 암브로지오도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죽은 사람을 보라, 누가 부자인가 누가 가난한 자인가 구별할 수 있느냐?”


우리는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는 끝나버릴 이 세상에 왜 있습니까? 이 세상이 다 ‘끝난다.’ 라는 것을 아는 우리와 ‘이 세상이 끝나지 않고 항상 여기 있을 것이다.’ 라고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잠깐의 시간은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시간은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기 위해 얻은 것이고 이를 위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잠깐 동안의 시간은 끝없이 계속 될 지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재미있게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 시간을 쓰고, 천주님이 계신가 안계신가, 지옥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내세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하고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환상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이 세상은 끝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돈과 물질만 있으면 우리가 다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가장 부자가 되어야 행복하다’고 가르칩니다. 공산주의는 ‘우리는 다 노동자다. 일하면 일 할수록, 노동하면 노동 할수록 지상에 낙원을 만들고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잠깐 동안인 이 세상은 우리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기 위하여 있다. 우리는 영혼 구령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생활하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비즈니스 유일한 사업은 영온구령, 이것을 위하여 창조 받았다.’ 우리의 목적은 영혼 구령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 가든, 그림, 은행구좌 이런 모든 것보다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는 재산, 즉 천주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 구령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고 우리 모든 인생 구령하기 위하여 다 쓰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난한 생활 보내시고 항상 고통 받으시고 우리 영혼 구령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셨습니다.


셋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생각합시다. 만약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네가 미래를 잘 준비하는 것을 원한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로 주겠다.’ 그리고 그 선물 받은 이가 ‘그런 은혜를 잘 받고 미래를 잘 준비하겠다.’ 라고 그렇게 답한다면, 우리는 더 잘 도와 줄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귀한을 선물 받으면서 감사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하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몰염치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주께로부터 모든 선물을 받으면서도 더 나쁜 것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누군가에게 미래에 잘 준비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줬는데 그 돈만 받고 ‘네가 여기 있으면 괴롭다, 없어져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주님에게 받은 시간, 받은 재능, 받은 모든 것을 쓰고 있으면서도 주님께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없어져라. 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든 은혜를 주님으로부터 받으면서도 주님을 죽여서 냉담하고 그분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을 구령하기 위해 얼마나 고통을 받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수많은 가시 중 하나라도 우리가 받았다면 우리는 죽을 만큼 아프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병사에게 가시관을 눌림 받기까지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많은 편태를 우리가 한 번이라도 받으면 우리는 너무 아파서 못 산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편태를 알몸으로 100번 이상 받으셨습니다. 상처받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혈을 다 뿌리시고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욕도 받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우리 영혼 구령을 위해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잠깐인 인생을 잘 쓰고, 영원을 얻기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괜찮다 하면서  영혼은 생각하지 않고, 천주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우리가 죽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올 형제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생명은 들풀 같다고 생각합시다. 꽃 같다고 생각합시다. ‘오늘 있다가 내일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영혼생활, 우리 영혼구령을 생각합시다. 마지막으로 성모님께 기도합시다.


성모께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계시고 영혼 구령하기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많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성모님을 따라 영원구령을 위해 모든 것을 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들풀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에 들어갈 것이라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