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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란 무엇인가?- 천주경에 관하여(2015-11-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6



기도란 무엇인가?-천주경에 관하여(2015-11-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불교도의 명상과 비교하지 않고 아빌라의 성 테레사께서 기도에 관한 몇 가지 조언을 제시함으로써 더 나은 기도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가톨릭의 기도란 불교의 무념무상이라는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란 천주님에 의해 영혼이 채워지는 것이라는 점이 훨씬 분명합니다.

모든 기도의 모범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천주경 바로 그 기도입니다. ‘완전한 길’이라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아름다운 작품에는 이 천주경에 대한 놀랄만한 글이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 생각함으로써 항상 우리의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나 왕에게 같은 방법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왕에게 말할 때에는 특별한 형식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인간인 왕이나 황제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복종하고, 가장 커다란 은하계로부터 전 우주에서 가장 미소한 입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가장 높은 천신들과 천신들의 모든 군단을 포함한 모든 영적 존재들이 왕 중의 왕이자, 전 우주의 최고 황제이신 천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어떠한 존경심과 현양으로 천주이신 그분께 말씀 드려야 되겠나요? 그래서 천주 성자 친히 “우리 아버지”라는 기도로 천주님께 드리는 이 기도(祈禱)를 가르쳤습니다.


천주님의 초월성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단어로서 표현됩니다. 참 천주는 프리메이슨이나 이교도들이 생각했던 분, 즉 인류와는 동떨어져있고,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추상적인 신)이 아니고, 우리를 돌봐주시는 천주로서 그분은 우리 각자 하나 하나를 개인적으로 소상히 알고 계시며, 모든 아버지 중에 가장 좋은 아버지로서 우리 모두 한 명 한 명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인하여 우리가 “천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오, 천주 사랑의 경이로움이여! 오, 그리스도인의 고결함이여!

“천주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으니”(요왕3;16) 우리는 이 모든 진리 안에서 천주 성자께서는 당신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끔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 예수 안에서” 천주님의 자녀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회원인 만큼 그 안에서 천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천주 성부는 우리 안에서 당신의 아들이신 성자의 모습을 볼 때,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바로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실제로 성 바오로 말씀하시길, 천주님의 의도는 우리를 “미리 아신 자들을 당신 아들의 모상과 동형(同形)이 되도록 예정하셨으니, 이는 당신 아들로 하여금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 되게“(로마8:29)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모가 기도의 열매입니다: “가리우지 않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우러러보는 우리들은 다 이 우러러봄으로써 항상 더욱 영화롭게 주와 동일한 모상으로 화(化)할 것이니, 이는 주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니라.“(코린토 후3:18)“


많은 형제들”이 있고 그러면서 “유일한 아들”있으니, 왜냐하면 많은 형제들이 모두 함께 일치되어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그리고 유일한 참 교회 가톨릭 교회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아버지” 안에서 “우리”라는 의미 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에,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 혼자만을 위하여 기도해선 안되고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교회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현재 교회의 실제적인 회원들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들어가려고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즉 구령되기 위하여 교회에 들어가려고 하는 이들을 위하여, 모든 인류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돌보며 아이들을 부양하고 교육시키며 자녀가 잘못 나아갈 때에 교정을 합니다. 마치 바오로 성인이 히브리인들에게 말씀하듯이 ”너희는 책벌하시는 바를 감수 인내할지어다. 천주께서는 마치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대하는 것과 같이 너희들에게 대하시니,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책벌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 어디에 어디 있겠는고? 그러나 너희가 만일 모든 이가 다 당한 책벌을 받지 아니한다면, 너희는 적자(嫡子)가 아닐 것이며, 참된 아들이 아니니라. 또한 만일  우리가 전에 우리를 책벌한 우리 육신의 아버지를 효경(孝敬)하였으면, 더구나 생명(生命)에 나아가기 위하여 신(神)의 아버지에게 순종(順從)하지 아니하리요? 저들은 겨우 얼마 동안에만 자기의 뜻을 쫓아 우리들을 책벌하였으나, 천주께서는 우리를 당신 성덕(聖德)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고자 책벌하시느니라. 무릇 온갖 책벌은 그 당시에 있어서는 달갑게 생각되지 않고 오직 괴롭게 생각되나, 그러나 후에 이르러는 이로 말미암아 단련함을 받는 자로 하여금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하리로다. “(헤브리아12:7-11)


현대 세상은 더 이상 우리를 교정하는 아버지로서의 천주님을 원하는 게 아니고 그들이 지극히 반란을 도모하는 자녀로서 천주 성부를 거절합니다. 이는 매우 위험하니, 왜냐하면 같은 서간경에서 이르기를, “생활하신(살아계신)천주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가히 무서워해야 할 것이니“(헤브리아10:31) 저들이 회개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주님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로써 당신 자신을 재헌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저들을 위해, 진정한 자비를 얻기 위해, 저들이 마침내 저들의 나쁜 행실을 정화시키고 모든 아버지 중에 가장 뛰어난 아버지에게로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참된 자녀로써, “어려움을 참아내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네 이름이 거룩하시며, 네 나라의 임하시며”: 천주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이름이 거룩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 그 자체를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님의 완전성은 우리와 모든 인간들에 의하여 알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천주님의 완전성을 인식하는 것은 오직 천국(天國)에서만 가능할 것 입니다. 이 세상(世上)에서는 “우리가 육신(肉身)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순례자(巡禮者)로서 주를 멀리 떠나 있음이라.” (2 코린토후 5:6)고 쓰여진 것처럼 그곳 천국에서 볼 수 있는 빛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질 않습니다.”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또 당신의 빛에서 우리가 빛을 보기 때문입니다.“(잠언35:10)


천주님의 이름은 거룩함으로써 천국에서 완전하게 인식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다음의 청원 속에서 이 거룩한 이름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라는 바로 이 첫 번째 나오는 두 가지 청원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르치시길, 우리의 소망은 그분이 우리를 창조했던 바로 그 첫 번째 소망, 우리 생명의 그 목적이란 바로 천국에서 천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 입니다.”


이러므로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더음으로 주시리라.”(마테복음6:33) 천주님의 빛이 천국에서 우리의 지성 안에 풍성이 비추게 될 때에, 거룩하신 천주님의 그 이름은 당신 왕국이 천주 사랑의 불로서 우리 의지 안에 완전히 통치할 때에 온전히 실현될 것 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아버지를 가르치심으로써, 우리 주 그리스도는 이 소망을 항상 갈망하도록 합니다.”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힘을 얻을지라. 주의 얼굴을 더욱 찾으라. 주를 찾는 자들의 마음은 즐거워할지어다.“(성영 104:3,2) ”주시여, 나는 당신의 얼굴을 찾나이다.“(성영26:8)

또한 이 두 가지 간청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소금’으로서 그리고 ‘세상의 빛’이 되어 살아가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어 하여금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를 현양(顯揚)케하라.“(마테오5:16)우리는 진실한 생명의 삶으로서 ”성소(聖召)를 합당하게 부름 받은 바 되게“(에베소4:1)하고 “그리스도와 천주님의 왕국”이 확장되도록 간청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늘이 여기로 다시 내려오는 겁니까? 천주께서는 모든 곳에 계십니다. “주 말씀하시되, 나 하늘과 땅을 채우지 않느냐?”(예레미야23:24) 만약 천주님이 모든 곳에 계신다면, 왜 우리 주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말하도록 가르치셨나요? 천주께서는 영(靈)이시니, 천주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신과 진실 안에서 그분을 현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이라는 단어를 물질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천주님이 이 지상이 아닌 어떤 별, 즉 어느 공간에 계신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늘이라는 단어는 천주님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영적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이는 모든 창조된 조물 위에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 성 삼위의 최고의 탁월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몸이 어떤 꿈에서처럼 어느 다른 행성이나 어느 다른 별로 간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모든 세속적인 기쁨을 능가하는 지복직관이라는 극히 무한한 최고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묵상 속에서 이러한 “천상”의 기쁨을 미리 맛 본 연후에, 그 영혼은 세속적인 모든 재미를 잃게 됩니다. 어린 아이로서, 이미 이러한 커다란 위안을 맛본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는 천주님께서 자기로부터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을 빼앗아 달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주님께서 진실한 회개 뒤에 많은 영혼들에게 몇 가지 유사한 위안을 주셨더라도, 그들이 마음을 세속적인 물건에 두기 때문에 영적인 생활에서 거의 진보하지 못한다고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가르칩니다. 이것이 악화되지 않은, 즉 침몰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혼이 세속적인 것을 사랑할 때 나타나는 너무나 많은 이들의 영적인 침체의 원인인 것입니다.


성 요한은 우리에게 강렬하게 경고합니다: “너희는 세속과 및 세속에 속한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지라. 누 만일 세속을 사랑한다면, 성부께 대한 사랑이 그에게 있지 아니하리라.“(요한1서2:15) 무서운 일입니다. 성부의 자비가 그 사람 안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며, 이는 육신의 죽음보다 훨씬 더 나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간청하오니,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에 속한 물건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간청할 때,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이란 우리가 간청한 것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그저 천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단순하게 간청해선 안되고, 오히려 주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간청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점점 더 “참여”하게 되는 것이고, 큰 차원의 방법으로 이에 속하게 되는 입니다.


특히 이와 같은 청원은 죄와는 절대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를 하면서 그와 동시에 천주님의 계명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그는 실제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천주님이 우리에게 십계명(十誡命)에 대한 준행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설상가상으로, 천주님이 거짓말쟁이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이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성부의 뜻을 봉행하는 자 천국에 들어가리니, 저 날에 많은 이가 내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들이 네 이름을 의지하여 후래 사정을 미리 말하지 아니하였사오며, 네 이름을 의지하여 마귀를 쫓아내지 아니하였사오며, 네 이름을 의지하여 많은 영적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나 그 때에 저들에게 밝히 이르되, 나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악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리라.“(마테오7;21-23)


천주님의 계명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천주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을 얻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곳에서 “우리 아버지”라는 기도 가운데 간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명을 준수할 수 있도록 은총을 요청하여야하니, 이는 우리가 순종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한 자들”에게 약속하신 보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이 간청해 합니다. 실제로, 성서 어느 곳에 이런 말씀을 볼 수 있는 것 기억하나요?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이다- FIAT voluntas  tua” 성모님이 말씀하시는 것, “네 말씀과 같이 내게 이루어지이다- 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주님 친히 올리브 동산에서 말씀하시길,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우리 주님의 모든 성화(聖化)는 ““FIAT –천주께 예”라는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온 생애는 총체적이고 완전하며 절대적으로 천주님께 “예”하면서 순종하였습니다. 놀라운 순명, 겸손, 지극한 사랑인 ‘예”라는 말씀은 항상 성 육신에서부터 십자가 아래에 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죄는 천주님에게는 안됩니다. 성화만이 주님을 기쁘게 합니다. 주님의 수난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천주님께 “노”가 아닌 천주님께 완벽한 순명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며, 더구나 십자가상에 죽기까지라도 순명하심으로써“(필립피2:8)


 때때로 우리는 천주님께 완벽한 “예”와 같은 말을 하기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천주님이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천주님이 우리를 강화시켜서 그분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풍성히 차고 넘치는 은총”(로마5:20)을 주시지 아니하고 십자가만을 부과하는 분은 결코, 절대적으로 아닙니다. “나를 견고하게 하여 주시는 저 그리스도 안에 나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노라.”(필립피4;13)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충만하니라.”(코린토 후7:4) “현시(現時)의 고난은 우리에게 주실 것으로 나타날 장래의 영광에 비할 바 못 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노라.“(로마8:18)


그래서 우리가 성부께 기도할 적마다, 우리더러 청원에 절대 한계를 두지 않도록 하며, 오히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요청하여 성부의 뜻을 온전히 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은총을 주시도록 함으로써 주님과 성모님의 모방 안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십자가가 무엇이든 간에 받아드리고, 예수와 함께 우리를 (성부께)드림으로써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로마8:17)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성 마테오는 실제로 “우리의 초 본질적인 빵”을 갖고 있으니, 이는 분명히 육신(肉身)을 위한 빵(아주 이상한 말이 되겠지만)이 아니고, 오히려 “천국에서 내려오는 살아있는 빵”(요왕6:52) 즉, 성체를 말함이니, 주님 말씀하시길, ”만일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요, 또 세인을 살리기 위하여 내가 줄 바 이 떡은 곧 내 살이니라.“(요왕6:52)


이 성체는 진정한 굶주림으로 우리가 소망해야 되는 음식이니, 왜냐하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 날에 저를 부활케하리니.“(요왕6:55) 매일 여러분은 영적인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전통미사에 가서 값진 영성체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천주성자께서 그분의 “몸과, 성혈, 천주성이 깃든 영혼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없는 것이며, 성 바오로 이르시되, “어찌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을 저와 함께 주시지 않으리오?“(로마8:32)


 천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실 수 있으니, 이는 우리가 변화되어 천국에 들어가도록 그분 친히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최상의 선물과 함께 성부 역시 모든 다른 일용품을 주십니다. 우리가 근로로부터 면제(일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고 심고 물을 줄 때, “그 생장(生長)은 천주께서 주신 것“(코린토 전 3:6)이고, 혹은 “우리가 온 밤을 새워 일한 후”에 그 분은 그 일의 적합한 것을 아시고, 잡은 물고기를 주십니다(루까5:5-6) 우리가 요청하는 이러한 물질이 우리가 청하는 것의 주요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사물 안에서 우리가 청하는 주요 목표란  항상 영적이고 영원한 선익(善益)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에게 보태어 주시리라.“(루까12:31)

“우리 죄를 면하여 주심은, 우리가 우리에게 득죄한 자를 면하여 줌과 같이 하시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제외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인하여 원죄와 모든 죄를 면한 자가 누구인가요? 우리 모두는 죄가 있고, 회개한 이후 조차 몇 가지 소죄를 가지고 있으니, 성서 이르기를: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느니라.“(잠언24:16)


의로운 사람이 떨어지는 것은 적게 떨어지는 소죄이고 사악한 사람이 저지르는 대죄와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천주님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필요함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주시여, 당신이 죄악의 기억을 늘 품고 계시면, 주시여, 누가 감당하오리까?“(성영129:3) 우리가 천주님의 용서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내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모든 청원 가운데 우리 주님이 다음 말씀 안에서 주장하는 유일한 것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사람에게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면, 천상의 너희 성부 또한 너희 죄를 용서하실 것이요, 너희가 만일 사람에게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성부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마테오6:14-15)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이들을 용서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사랑이 요구되는가를 배우고,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얼마나 천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배우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12:21)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천주님의 섭리 안에서 천주님은 우리가 이웃을 용서할 기회를 주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촉범하게 하는  것을 막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점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에, 천주님의 지혜,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며, “천주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저 만사를 선으로 유도하심을 우리가 아노니, 이는 저들이 천주의 결의를 따라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연고니라.“(로마8:28)하게 하시는 분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유감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우리가 유혹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죄는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악입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악의 근원인 커다란 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달라고 천주님께 간청해야 합니다. 천주님을 분노하게 하는 자는 천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저 기도 안에는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는 겸손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요왕15:5) 우리가 연약하고 단지 죄에 떨어질 뿐인 것입니다:”나는 쇠약하오니,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의 뼈 마디가 쑤시오니, 주여 나를 고쳐주소서.“(성영6:3)


바오로 성인께서 “너희는 인력에 지나치는 유혹을 당하지 아니하였느니, 천주는 성실하신지라, 너희 힘에 지나치게는 유감을 당하게 아니하실 것이요, 오히려 그 유감을 감당하게 하시여 유감과 한가지로 그를 쳐 이길 은혜 또한 너희에게 주시리라.“(코린토 전 10:13)하시듯이 커다란 신뢰를 가지고 이를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를 흉악에서 구하소서”: 용서로 인하여 죄 자체로부터 용서를 받게끔 청원을 한 후에, 죄의 기회(유혹)로부터 구함을 얻는 것은 우리가 죄의 결과로부터도 구원함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천국에서 완전해지지만 이곳 지상에서 이미 천주님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 보다 적게 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한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 인정하면서 죄에 관한 용서에 대해 천주님께 감사하며, 천주께 자비를 요청해야 하고 죄에 대한 벌의 용서를 빌며 천주님이 주시는 부드러운 벌을 받아드립니다. 우리를 위해 요청하며,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요청해야 하니, 저 연옥영혼들의 고통이 짧아지고 줄어들도록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께로 돌려야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기구(祈求)하는 법을 가르쳐주소서“(루까11:1)함으로 우리 주님은 가르쳐주셨습니다. 주여, 우리가 항상 기도를 잘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특히 가장 거룩한 기도인 “천주경”을 잘할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소서! 성   요셉이시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나자렛 주님의 성 가정은 분명히 가장 잘 “기도하는 집”(마테오21:31)이었습니다.


실제로 바오로 성인은 이르시길, “너희는, 너희가 천주의 성전이요, 천주성신이 너희 안에 거처하심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3:16) 성신과 분리되지 아니하고 성부와 성자 역시 우리 안에 거하시니, 우리 주님 이르시길: “누 만일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준행할 것이니, 성부 너를 사랑하실 것이요, 또 우리 등이 저에게 와 한가지로 거(居)하려니와“(요왕14:23) 만일 우리가 성신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고 성부, 성자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의 영혼은 진정 “기도하는 집”이요,  우리 기도의 모범이 되시는 “우리 아버지” 의 기도하는 집이 됩니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