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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님 빛 안에서 사신 성모님- 무염 성모 시잉 모태(2015-12-0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09

 


천주님 빛 안에서 사신 성모님-무염 성모 시잉 모태(2015-12-08)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복되신 동정(童貞) 마리아는 잉태(孕胎)되실 적에 티없이 깨끗하신 무염(無染)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성모님은 “무염시잉태”입니다. 이 신앙의 교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천주님의 특은이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원죄로부터 보호받으신 것입니다.

원죄는 인류 시작 초기에 일어난 커다란 재앙이었으니, 이브와 아담은 천주님을 거역하고 금단의 과일을 먹었으며, 천주님의 뜻보다는 자신들의 의지를 선호하였고, 천주님의 계명을 불순명하였으며, 천주님의 말씀보다는 악마의 말에 신뢰를 하였고, 자기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였으니, 즉, 자기들 스스로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규정하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위에는 어떠한 법도 없기를 원했고, 천주님의 계명도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지식 가운데 이런 범죄를 저질러 좋으신 주님에게 엄청난 불충을 행하였으니, 반면에 주님은 저들에게 멋진 낙원과 고통이 없고 죽지 않으며 지식과 정의(正義) 그리고 모든 성화(聖化) 은총을 주셨습니다. 성화의 은총이란 천주님과의 놀라운 친교이니, 이것은 천주님과 함께한 친근한 저녁 대화에 의해 분명해집니다. “그날 저녁 바람을 맞으며 낙원을 걸어갈 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적에, 아담과 그의 아내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 낙원의 나무 속으로 저들이 숨더라.“(창세기3;8)

범죄 이후, 저들은 천주님과의 이러한 친교가 깨진 것을 즉각 알았고, 그래서 그들은 숨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육신의 욕망이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느끼자 무화가 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성화의 은총을 상실했습니다. 저들은 지식, 정의, 무 고통, 불멸이라는 “초자연적 선물”을 상실하여 죽음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의 본성은 깊은 상처를 받았으니, 쉽사리 죄에 떨어지려는 악의 경향을 느꼈습니다.

아담의 죄는 아담의 자손으로 전달되니, 왜 이리 그렇게 되는 가요? 공정해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천주께서 성화의 은총을 아담과 이브뿐만 아니라, 이 성화의 은총이 저들의 자녀들에게도 전달되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성화의 은총이 몸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이 함께 묶여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서 초자연적인 은총이란,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하여 이것이 천주님의 자녀에 합당하게 만들도록 하는 즉 본성과 은총 사이의 “결합”과 같은 것입니다. 아담이 복음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천주님의 양자(養子)이기에, 루까 성인이 그리스도의 혈통 계보에서 “아담은 천주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면서 끝을 맺었으니, 이는 본성의 아들이 아닌 은총으로 인한 아들을 말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본성으로 인한 유일한 독생성자이시니, 성부와 같은 천주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담은 은총으로 인한 의자(義子-양자)로서 아들입니다. 아담이 초자연적인 은총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가 잃어버린 초자연적인 은총을 우리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천주님과의 결합을 상실했기 때문에, 아담은 육신의 생명과 함께 영혼의 생명(성화은총)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과오로 인하여 영혼의 생명을 박탈당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본래의 은총이 상실된 것이 분명히 원죄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아담의 상처받은 본성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원죄(原罪)는 인류 초기에 일어난 커다란 재앙이었습니다.

원죄는 신앙에 관한 교리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로마인들에게 쓰기를: “한 삶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오고 또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니, 모든 이가 범죄한 고로 만민 위에 죽음이 미침이라.“(로마5:12) 인류를 보게 되면 너무나 많은 악, 죄에 쉽사리 떨어지는 경향을 보게 되니, 우리는 천주님의 사업이 항상 그리도 좋은 것이라면,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가 놀라워합니다. 오직 인류 초기에 일어났던 이와 같은 비극이 이와 같은 인간의 죄악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원죄는 세 가지 결과를 초래(招來)합니다: 1/성화은총의 상실, 2/죽음이라는 벌, 3/죄의 상처이니, 지성에서의 무지의 상처, 의지에서의 악(이기심)의 상처, 성향에서의 연약함과 정욕의 상처입니다. 그러나 천주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죄로부터(마테오1:21)”구원하실 구세주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본시 의노(義怒)의 자식들이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자비하신 천주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생활케 하였으며 너희는 성총으로 인하여 구원되었느니라.“(에페소2: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려 나타나심이요, 저에게 죄 없음은 너희가 아는 바로다.“(요한1서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천주님의 아들입니다. 성부와 동등하시고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구원하실 모든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능의 증거는 오늘 축일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바로 무염시잉태입니다. 성모님은 죄로부터 너무나 완벽하게 보호되어 있기에 죄가 성모님을 관여할 어떠한 힘도 없고 절대 흔들지 못합니다. 완벽히 티없으십니다. 성모님은 잉태에서부터 온 생애 기간 동안 무결(無缺)이며 무염(無染)입니다. 모든 영역에 걸친 동정의 의미로서 완벽한 순수, 결코 죄에 물들지 않은 동정 중의 동정입니다. 잉태의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죄로부터 보호되었으니, 죄에 대한 최고의 치료, 예방적 차원의 치료를 받았고 결코 어떠한 소죄도 범하지 않았으며 원죄에 의해 오염되지도 않았습니다. 결코 죄에 끌리는 경향도 없었고, 그와는 반대로 절대적으로 무결하십니다.

원죄를 부정하는 몇 개의 이단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펠라기안이라고 불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구원에 대한 은총을 부인하였고, 구원이란 죄 없이 우리 자신의 자연적인 힘으로, 천주님의 모든 은총을 지킴으로써 그리고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 없이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이러한 이단은 오늘날 현 시대에 자연주의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으니, 자연주의 역시, 원죄를 부인(否認)하며 모든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가 사람들을 악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루소의 철학이고 다른 많은 철학자들 또한 그러합니다.


교황 비오9세께서 1854년 12월8일 성모 무염시잉태교리를 선언할 적에, 이 교리는 펠라기안니즘과 자연주의의 오류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혹자는 말하길, 만약 성모님이 원죄가 없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도 필요 없는 것 아니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오해입니다. 실제로 성모님이 원죄로부터 보호를 받은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은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는 별개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분명히 “성총이 가득하신”분입니다! 성모님 안에서 이러한 위대한 일을 하신 분이 바로 천주님이라는 것을 인식한 최소의 인물이 마리아입니다:”내게 크게 베푸신 자는 전능하시고, 그 이름이 또한 거룩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은 세세 대대로 당신을 두리는(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도다.“ (루까1:49-50)

성모님 안에서 우리는 원죄의 반대됨을 보니, 즉 성모님은 성총이 가득하심을 봅니다. 죽을 운명은 아니였으나, 아들 성자께서 우리의 죄의 빚을 갚기 위하여 죽기로 하사, 성모님은 주님과 일치하기 위해 몸은 비록 돌아가셨으나, 생명(生命)으로 뒤돌아와 몸과 영혼(靈魂)이 천국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또한 성모님은 절대적으로 죄의 상처가 없으시고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도 없으며 이기심이나 연약함도 육욕도 없었습니다.

성 베르나르 말씀하시길, 성모님은 성모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천주님의 성총을 보여 주시는“(루까1;30) 분이라고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가 되도록 우리에게 부여되신 분입니다.(요왕19:27) 성모님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벌어놓으신 은총을 우리에게 나눠주시는 분이요, 우리 영혼 안에 있는 원죄의 상처를 치유하는 그러한 은총을  나눠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나는 포도 줄기요, 너희는 그 가지라. 내게 머무는 자는 나 또한 저에게 머무르매 많은 실과를 맺느니, 대저 너희가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함일새니라.“(요왕15;5)


우리의 지성을 비추고 무지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신앙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물보다 천주님의 은총과 함께 하려는 우리의 의지에 불을 붙여주고, 우리의 이기심과 악을 치유할 자비의 은총이 필요하며, 연약함의 상처를 치유하고 천국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모든 어려움, 특히 세상의 장애 때문에 겪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강용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욕정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절제와 금욕의 은총이 필요하고, 순간적인 만족과 세속적인 쾌락을 향한 우리 속 안의 악에 기울어 경향에 저항함으로써, 특히 기도 속에서 우리 영혼이 천주님께로 올라가야 합니다. “마음이 조촐한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천주를 뵈올 것이요 “(마테오5;8)  성모님은 “성총이 충만한” 이러한 은총으로 가득 찼으며 우리를 위해 이러한 모든 은총을 구해주실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묵상해야 할 외형적인 모범일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을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내부 은총을 우리를 위해 얻어다 주시는 적극적인 중재자 이십니다. 

천주님은 악으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십니다. 원죄는 우리를 겸손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유용합니다. 죄가 교만으로 인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원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교만해졌고 통탄하게 추락하였습니다. 원죄를 지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비참함을 인정할 때에, 이와 같은 인정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성세 이후, 남아있는 상처 또한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성모님이 받으셨던 은총으로 인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항상 가장 겸손함을 유지하였습니다.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루까1:48) 성모님은 우리가 겸손의 실천을 하도록 도와 주시는 데에 있어서 강력하십니다.

겸손의 첫 번째 행위는 천주님께 우리가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모든 선한 것들은 우리가 천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성모님은 “내게 크게 베푸신 자는 전능하시고,“(루까1:49)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고마움은 아름다운 덕입니다. 우리는 특히 감사의 완전한 희생인 성체를 봉헌함으로써 천주께 고마움을 드립니다.

천주님은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 - ens a se-” 이십니다. 그분은 존재를 외부로부터 받지 아니하고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다른 이에 의한, 타(他)에 의해 조성(造成)된 -ens ab alio-”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천주님으로부터 존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절대적으로 그분의 피조물과는 독립적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천주님께 완전히 의존적입니다. 이러한 천주님의 초월성이야말로 바로 경배의 이유입니다. 성모님의 마니피캇, “그의 이름은 거룩하시도다”(루까1:49)같은 문장에서 나오는 초월성을 성모님은 인식했습니다. 겸손은 천주께 대한 존경과 현양(顯揚)에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주께 완전한 미사의 거룩한 희생인 경배의 희생을 제헌합니다.

성모님은 천주께 대한 이러한 의존성과 천주님의 무한한 완전성을 너무나 잘 이해하셨기에 천주 앞에서 완전한 순종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의 종이 여기 대령(待令)하오니, 네 말씀같이 내게 이루어지이다.“(루까1:38) 그러나 불행히도 다른 모든 인간들은 많은 죄에 떨어지니, 어떤 이는 단지 소죄에만 떨어지나, 많은 이들이 대죄에 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천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추가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가 서 있을 가치도 안 됩니다. 우리는 단지 비참한 죄인일 따름입니다. 물고기를 기적으로 잡은 후, 성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말하길, “나는 죄인이오니, 주여 나를 떠나소서“(루까5:8)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배상하기 위해 천주님께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 완전한 속죄제를 제헌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죄 지은 것임을 인정하게끔 도와 주시지만, 성모님의 완벽한 정결과 순수함과는 반대로 우리의 죄는 진리의 빛 안에서 추함만을 드러냅니다. 대죄(이 죄는 우리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니 대죄는 절대로 안됩니다!)이것뿐만 아니라, 소죄 역시 천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니 거부해야 하며, 무결하신 성모님이 하신 것처럼, 성모님의 도움으로써 은총과 정결에 더 충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죄와 맞서 싸우는 가운데 있어서, 성모님은 지극히 강력하십니다: 성모님은 오만에 찬 이 괴물인 악마의 머리를 부수었습니다: “내가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가 네 머리를 부술 것이다“(창세기3;15) 죄와 맞서 싸우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성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성모님 발 밑에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불행으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성모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필요하고 이 은총을 요청하기 위해 미사의 거룩한 희생인 완전한 청원의 희생제를 제헌합니다.
 
성모님은 천주님의 빛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끊임없이 사셨기에, 하자 없는 생활은 모든 깨끗하고 전부 순수하였습니다: “저 말씀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이 곧 사람의 빛이라.”(요왕1:4)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운 데 행치 않을 것이요, 오직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왕8:12)성모님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생활하실 때부터 끝까지, 십자가 아래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히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성모 몽소승천으로 인해 천국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를 합당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몽소승천은 성모 무염시잉태에 견주어 성모님의 충성에 대한 궁극적인 보상입니다. 무염시잉태가 성총이 가득한 성모님의 생활의 시작인 것처럼 몽소승천은 성총이 가득한 성모님의 마지막 생활입니다. 성모님은 성총이 가득찬 분이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독생성자의 영광이요, 성총과 진리가 충만하더라.“(요왕1;14)

그러므로 성모님에게 있어서 하자 없으신 무염시잉태의 놀라운 선물에 대한 깊은 존경심의 열매, 주님께서 모친 안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우리가 볼 적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 안에서 이루어진 깊은 신뢰, 원죄의 결과로서 이루어진 우리의 비참함을 생각할 때 나오는 겸손, 천주님께 대한 우리의 의존성을 생각할 때, 그리고 성모님을 닮으려고 노력할 때 생각나는 겸손, 주님의 생활, 주님을 위한 생활, 복된 날 -주님의 은총으로 인해 -우리가 주님을 천국에서 직접 대면할 날, 성부와 성신을 뵈올 날이 올 때까지- 주님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에 대한 크나큰 충성, 이러한 이 축일의 열매를 우리가 끌어오도록 합시다. 아멘.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