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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 번의 예수 탄생- 예수 성탄 팔부 내 주일(2015-12-2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29



세 번의 예수 탄생- 예수 성탄 팔부 내 주일(2015-12-27)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천주성자께서 사람의 자녀들이 천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오늘 서간경에서 바오로 성인이 말씀하십니다: “천주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며 법률에 속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으니, 이는 법률(法律)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贖良)하사 우리를 천주의 의자(義子-양자)로 삼으시기를 위하심이었느니라.“(갈라타4:4-5) ”천주 그의 아들을 보내사”, 이는 예수님은 천주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는 그래서 참 천주이자, 영원한 성부의 영원한 아들이시며, 크리스마스 밤에 탄생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아들이신 참 사람입니다. 그래서 천주 성자께서 사람의 아들인 마리아의 아들이 되셨으니, 우리가 그분의 의자(義子-양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탄생”을 축하했기에, 그래서 세 대의 미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주의 영원한 성자의 영원한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그래서 자정 미사 초입경에서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아들이라.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성영2:7)”이날”은 천주님의 “영원한 오늘”입니다. 그 날의 복음경도 들었습니다. “비롯됨에 말씀이 계시고, 말씀이 또 천주께 계시니, 말씀이 곧 천주시도다. 이 말씀이 비롯됨에 천주께 계신지라. 만물이 다 저로 말미암아 조성함을 받았으니, 조성함을 받은 것이 저 말씀을 말미암지 않고 된 것은 도무지 없느니라.“(요왕1;1-3)

우리는 베들레헴 구유에서 마리아의 아들로서의 일시적인 탄생을 축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미사의 초입경에서 들었습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나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천주, 영존자라“(이사야9:6) 우리는 자정 미사 때에 베들레헴에서의 탄생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의 현양의 복음과 함께 새벽 미사인 세 번째 미사가 있었고, 그 초입경은 “빛이 우리 위에 오늘 비추리니,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 안으로 태어나시고, 그분은 경배하올 왕, 평강의 왕, 세상의 아버지로서 오시는 그분의 통치는 끝이 없으리로다.”  이는 우리 영혼 안에서의 예수의 탄생인 세 번째 탄생을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실제로 그분은 “진리의 빛이 이 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라.“(요왕1:9)  “나는 빛이로다. 세상에 와서 무릇 나를 믿는 자로 하여금 어두운 데 머물지 아니케하노라.“(요왕12;47)

우리 주님은 “신앙의 빛”으로 우리 마음을 비춥니다. 신앙은 빛입니다. 신앙을 통하여 천주님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니,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십자가 위에서 그 아들의 희생으로써 죄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려는 그분의 계획,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그분의 계획, 우리의 성화를 위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수단, 특히 성사 안에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분의 내적인 천주 생명, 영원한 세 천주 위격을 알게 됩니다. 신앙은 천주님을 직접 뵈는 지복직관을 준비합니다! 성 요한은 말씀하시되, “천주는 빛이시라. 그 안에는 어둠이 도무지 없도다”(요한1서1:5) 그리고 바오로 성인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어두움에로조차 빛이 비칠지어다. 하고 말씀하신 천주께서는 천주의 영광에 대한 인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게 하시기 위하여 빛을 우리 마음 속에도 빛나게 하셨도다.“(코린토 후4:6)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인 어둠에 있습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모르니, 천국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다른 이에겐 없습니다.  저들은 모든 인간의 질병에 대한 치료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영적인 욕구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릅니다. 저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도와줌으로써 신앙의 빛을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아무라도 등불을 켜 모발 밑에 두지 아니하고 오직 촉대 위에 두어 하여금 집안에 있는 모든 이를 비추게 하느니,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어 하여금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를 현양케하라.“(마테오5:15-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과 정신에도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베퍼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입되었느니라.“(로마5:5) 성인들이 주장하신 전통과 함께,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 마음 안에 부은” 정결의 덕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친히 성신께서도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다 라고 지적하십니다! 복음서에서 우리가 기도하라고 권고하신 후, 우리 주님은 결론을 내리시길, “너희는 비록 악할지라도, 너희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만선(萬善)의 신을 주심이냐?“(루까11:13)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 선물의 효과는 바로 영혼이 “성신이 거하는 성전”이니, 바오로 성인은 다시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희는, 너희가 천주의 성전이요, 천주 성신이 너희 안에 거처하심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3;16)

성신과 함께 세 가지 천주 위격(位格)은 분리될 수 없기에, 성부에게도, 성자에게도 오십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만일 나를 사랑한다면, 내 말을 준행할 것이니, 성부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또 우리 등이 저에게 와 한가지로 거처하려니와,“(요왕14;23) 그래서 영혼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성전이 됩니다.  “천주는 사랑이시라. 그런즉 사랑에 머무르는 자는 천주 안에 머무르며 저도 또한 천주 안에 머무노라.“(요한1서 4;16)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주 모든 곳에 계시니, 거룩한 삼위일체 이미 그 이전에 그곳에 안 계셨는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이 커다란 차이점을 분명하고도 아름답게 설명합니다. 물질이 어느 한 장소에 있는 것처럼, 영은 같은 방법으로 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물질들은 장소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영은 장소에 한계가 없습니다. 영 자체가 어느 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치”는 물질계의 물질 “사건들”이 존재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영은 영이 그 장소에서 작용할 때 어느 한 장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호수천신이 항상 “우리와 함께, 우리 가까이”있는 것이니, 왜냐하면 호수천신(護守天神)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때때로는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천주 모든 곳에 계시니, 왜냐하면 모든 사물이 존재하도록 주고 있으며, 사물이 존재되도록 지탱하면서, 모든 사물의 제1의 원동력이 되는 존재자이기 때문입니다. 저 행동은 모든 물질계에 있어서 공통되는 것이니 (선하고 악한 천신에게 있어서도 작용되니)그래서 천주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곳에서, 심지어 지옥에서도 조차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러한 일반적인 행동 훨씬 위에, 온당한 영혼 안에서, 은총상태 안에서 사는 이들의 영혼 안에서 특별한 작위(作爲)가 있으니, 천주님은 그들을 성화시켜 이름하여 “성화시키는 은총”입니다. 천주께서는 저들에게 신앙의 빛과 정결의 덕을 주심으로써 성화시키시고, 그래서 저들로 하여금 모든 사물 위에 천주님을 더 사랑하게끔 하며, 저들과 친교를 세웁니다. 이 행위는 우리의 본성보다 위에 있는, 즉 초자연적인 것이기에, 온당한 가운데 천주님의 새로운 현존에 있어서, 친교와 은총의 현존에 있어서 일치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주님과 성 바오로, 그리고 제가 위에서 인용한 문장에서 의미한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신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천주님의 친구”(야고보2;23)가 되도록 합니다.그래서 지혜서는 이르길, 천주님의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 안에 들어가 그들을 천주님의 친구와 예언자로 만든다.“(지혜서7;27)

이것이 예수의 세 번째 탄생, 우리 영혼 안에서의 예수 탄생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내 안에서 사시나니”(갈라타2:20) 저 새로운 탄생은 성세 때에 먼저 태어납니다. 그리고  만일 죄로 인해 생명을 잃으면, 고해성사로서 새로운 생명을 다시 찾습니다. 대죄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대죄는 예수를 잃게 만들고, 우리 안에서 천주님의 사랑의 현존을 상실하게 만들며, 무한하신 선을 놓치게 만듭니다! 성세 때에 우리 안에서 저 예수의 탄생은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의 예수의 탄생과 평행이 됩니다.


성 요한 복음의 바로 그 서론에서 이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을 영접하며 겸하여 그 이름을 믿는 이에게는 능을 주사, 곧 천주의 자녀가 되게 하시더니, 이런 자는 혈기로조차 남도 아니요, 육욕으로 조차 남도 아니요, 남자의 정욕으로조차 남도 아니라, 오직 천주로조차 남이더라. 이에 말씀이 강생하여 사람이 되사 우리 사이에 거처하신지라. 우리가 그 영광을 보매, 곧 성부의 독생 성자의 당연한 영광이요, 또 성총과 진리가 충만하시더라.“(요왕1:12-14)

성 요한은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 안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천주님의 아들이 되었을 때”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믿을 때” 일어났으니, 이 모든 구절은 성세에 해당합니다. 다음 구절은 그들 안에서 이러한 예수의 탄생이 승화되어 저들의 탄생은 “천주님의 아들들”이 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혈기로서 난 것이 아니며, 육욕의 의지로서 난 것도 아니며, 남자의 정욕로서 난 것 아니며, 오직 천주님에 의해”태어난 것입니다.


실제로 성세는 폭력(“혈기로 부터”)으로 난 것이 아니며, 저급한 목적으로 난 것 아니며(“육욕의 의지로 난 것이 아닌”) 심지어 세속적인 정직한 목적으로 난 것 아니며 (“사람의 의지로 난 것이 아닌) 오직 천주 목적을 위한 (“천주님에 의한 탄생”)것 입니다. 그래서 그 구절은 성세에 대해 이전의 구절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이 사람이 되사”, 이는 분명 크리스마스에 해당됩니다! 같은 것이 성세에 들어맞듯이 크리스마스에도 해당됩니다. 크리스마스 때 그리스도는 “혈기로서가 아니고, 육욕의 의지로서도 아니며, 인간의 의지로서 아니며, 오직 천주님의 의지로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 성세의 모범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천주 성자께서 지상에 내려오시는 축일입니다. 천주 성부께서는 크리스마스 날에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유일한 독생 성자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성세는 우리 생애에, 우리 영혼에 천주 성자께서 오신 것이고, 천주께서 당신의 자녀로서 우리를 받아드리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의 일원으로서 받아드린 때입니다. 천주님의 선물에 고마워합시다! 천주성부께서 당신의 유일한 독생 성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줄 수 없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성화의 은총으로써, 주님의 생애를 우리가 살도록 하고, 신덕, 망덕 그리고 애덕을 갖게 함으로써, 당신의 신비체인 몸인 가톨릭교회의 일원으로 만드신 것보다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천주님의 선물에 고마워하고, 주님을 따라 살며, 이와 같은 은총에 값진 삶을 살도록 합시다. “이러므로 주 안에서 수인(囚人)이 된 나는, 너희로 하여금 그 받은 바 성소(聖召)에 합당하게 거닐으기를 간절히 훈계하노니, 너희는 겸손과 양순함과, 또한 인내를 다하여 서로 사랑으로써 참을 것이며, 평화로써 서로 연결되어 정신의 일치를 보존하도록 힘쓸지라. 이는 한 몸(그리스도의 신비체)과 저 성신이 있을 뿐이니, 마치 너희가 너희 성소를 받을 때에 다만 한 가지 희망으로 말미암아 불리었음과 같으니라. 한 주(主)이시요, 한 신앙(信仰)이며, 한 성세(聖洗)가 있을 뿐이로다.“(에페소4;1-5)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크리스마스 때에 그리스도가 오시는 아주 유일한 장소를 가지고 계시기에, 그리하여 성모님은 우리 영성 생활에서 아주 유일한 장소가 됩니다. 천주님은 마리아를 통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주셨듯이, 이처럼 마리아를 통해서, 특히 양자가 되는 은총으로 인하여, 우리가 천주님의 자녀들로서, 모든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십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예수의 모친이며, 머리요, 몸이며, 예수와 예수님의 온전한 신비체인 몸입니다. 성모님은 각자의 어머니요, 그리스도의 모든 일원의 모친이요, 모든 신자들의 모친이시고,예수께서 살아 계시고 통치하시는 모든 이들의 모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마리아의 아들”이 되실 것입니다. 만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의 통치를 확장하면서, 우리가 마리아의 훌륭한 아들이자, 성모님의 기사(騎士)라면, 우리도 주님을 따르게 될 것이고, 주님을 진정으로 모방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성 루이 마리에 그리뇽을 따라서 성모님께 봉헌경을 바쳤습니다. 만약 봉헌경을 바치지 않았다면, 2월2일에 준비하도록 권고하는 바 입니다. 오노다 신부님이 그날 서울에 계실 것이고 이 날이 바로 “아기 예수 자헌 및 마리아 취결례”날입니다. 그날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여러분을 성부께 드리도록” 합시다.


성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살게 되는 천주님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이는 우리의 생활을 예수 탄생에 따르게 합니다. 예수께서 출생 시에 가난하셨기에, 따라서 우리도 역시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분리시켜 영적으로 가난해야 합니다. 안락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영혼의 구령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진복자로다.“(마테오5;3) 예수님은 순명하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드시니“(루까2:51)


그래서 역시 우리 또한 우리의 장상에게 순명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제헌하고자  “천주님의 어린 양”(요왕1:9)으로서 태어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역시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처럼 내 이웃의 영혼 구령을 위해 성심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해 사랑의 희생제물로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은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패배가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천주님의 전지전능의 행위입니다. 죄를 이기는 승리입니다. 죄가 모든 고통과 죽음 (죽음은 죄의 벌)의 원인이기 때문에, 죄를 극복하여 승리한다는 것은 모든 고통과 죽음을 이긴 승리의 대의명분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승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늘 초입경에서 봅니다. 실제로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만물이 한 밤 중의 고요함에 고개 숙일 때, 그 밤은 중간쯤 도달하고 오, 전능하신 말씀이신 주여, 천상의 하늘 왕관으로부터 내려 오셨도다.”  이것은 이집트의 마지막 역병으로서, 이집트 장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리하여 모든 히브리인들이 파라오의 노예로부터 빠져 나오는 천주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 노예는 악마의 권력아래 있는 죄의 노예를 의미합니다. 어린 양의 희생제물로서 히브리인들이 빠져 나왔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희생제로서 죄의 노예상태로부터 빠져 나옵니다.

호주에 있는 우리 성당 가운데 있는 것 중 어느 제의(祭衣)위에 쓰여진 두 번째 말씀,”위대한 ‘O ’ 교창(응답가)”은 이 초입경을 아름답게 설명해줍니다. 12월 17일부터 23일간, 즉 크리스마스 전 7일간, 매일 ’ O ’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마니피캇에서 특별한 응답가를 합니다. 이 노래들은 “Great O Antiphon”라 부르며 각 노래는 메시아가 오시는 특별한 제목을 묘사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응답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오, 주여,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여, 그대 타오르는 숲 풀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시나이 산 위에서 그에게 계명을 주신이여. 오소서, 그대 팔을 뻗어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아도나이는 주님이란 뜻입니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천주님 (야훼; 신성한 네 글자, iod he, waw, he )의 거룩하신 이름을 읽을 때 사용된 방법입니다. 그래서 타는 숲에서 발현을 언급할 적에, 천주(야훼)께서 이 이름을 보이십니다. 시나이 산 위에서 계명을 주신 것은 홍해를 건넌 후 50일 즉 첫 부활절 날, 돌판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성인은 신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그 계명은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성신 강림 때에 성신에 의해 자비의 계명으로써 우리 마음 속에 새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팔을 쭉 펴서 내민다”는 뜻은 열 가지 역병으로 이집트를 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주님의 전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제의 위에는 아름다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적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쭉 펴신 팔을 의미합니다. 양쪽의 경우에 있어서, 이는 전능하신 천주님의 효과로서의 승리이며, 죄를 이긴 승리입니다. 악에 대해 악으로 갚는 것 보다 악에 대해 선으로서 이기는 것이 더 강력합니다. 크리스마스 때 유명한 기도 가운데 하나는 이르길, 천주님은 특히 자비를 보여줌으로써, 죄를 용서하는데 있어서, 선하심으로 죄를 극복하심으로써, 그리고 용서의 은총으로써 당신의 전능을 보이신다 합니다.

아기 예수는 구원할 만큼 강력하시기에, 그분께서는 천주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제물로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성세로 인한 우리 안에서의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영혼과 많은 이들을 위해 주님과 함께 우리 자신을 제헌하도록 하십니다. 성모여, 우리가 성세의 은총에 충직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 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