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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4계명 - 네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라(2016-03-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14



제 4계명 - 네 부모를 공경하라(2016-03-1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십계명의 첫 3가지 계명에서 천주께 대한 우리의 핵심적인 의무를 명령하고 난 후, 천주님은 나머지 일곱 계명에서는 우리 이웃에 대한 의무를 명령하십니다. 이 모든 계명은 사랑의 계명 안에서 실현됩니다. “네 몸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마테오4;21) 실제로 “천주를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함은 이 우리가 저 천주로부터 계명으로 받은 것이니라.“(요안 1서4;21) 바오로 성인은 친히 설명하시길:”대저 모든 법률은 네게 가까운 자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한 가지 계명으로써 완성됨이니라.“(갈라타5:14)


 천주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두 개의 판에 주셨는데, 첫 번째 판에는 천주에 관한 첫 3가지 계명이 있고, 두 번째 판에는 나머지 일곱 개의 계명이 있는데 이 계명들은 사랑의 두 계명에 호응되며, 이에 관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씀하시길:”모든 교법(敎法)과 선지자의 글이 이 두 계명에 달렸느니라.“(마테오22;40)


 영어로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나 포괄적이고 너무 넓게 쓰입니다. 이는 그리스어로 세 가지 단어에 호응되는데  ‘성적인 사랑’인 에로스’와 ‘인간적인 박애’인 ‘필로스’ 그리고 영적이며 자기 전부를 희생하는 ‘아가페’가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이 세 번째 종류는  ‘카리타스(자비)’로 라틴어로 번역되는데 이는 최고의 사랑으로서 “천주는 사랑이시라”(요안1서4:8)입니다.


 현대의 세속적 영어는 사랑에 관한 저속된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가톨릭인들은 ‘아가페’로서 영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에 대한 이러한 높은 관념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시듯이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버리신 여기에 우리는 천주의 사랑을 인식하였으니, 우리도 이와 같이 형제를 위하여 생명을 버려야 하리로다.“(요안 1서3;16)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천주님을 공경함에 있어서(제1계명) 순교자로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이웃의 영혼 구령을 위해서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천주님의 계명은 우리에게 참 사랑, 본질적인 사랑을 명령하십니다.


 우리 이웃을 향한 계명 가운데 우리에게 으뜸인 것은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20;12)입니다. 이 계명은 심지어 “살인하지 말라”(출애굽20:13)보다도 앞에 있습니다.이것은 부모공경의 계명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자기의 부모(시부모, 처부모 등)조차 공경하지 않는 사람, 부모를 공경하려고 하지도 않으려 하는 자는 형편없이 무가치한 자 입니다! 이 계명은 너무나 엄격한 계명이기에 천주님은 이에 덧붙이시길, “네 아버지나 네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죽일지라.”(출애굽21;17)  그리고 산상에서 강론하실 적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 두 말씀을 언급하시고 구약에서는 부모불경이란 죽음에 이르는 벌, 극히 심각한 죄인 대죄임을 언급하십니다.


 천주님의 말씀이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라”이지,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흠숭하라”하지 않은 것을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부모님들에게 상대적인 탁월성으로 인하여 그분들에게 피조물에게서 찾을 수 있는 존경과 공경을 드리는 것이고, 천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탁월성을 인한 흠숭지례는 드리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왜냐하면 우리가 부모를 통하여 우리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모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만 그러나 부모님들이 생명의 원천은 아닙니다.


 천주 홀로 살아 있는 생명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단지 자신들이 받았던 생명을 우리에게 생명을 전달해주는 전달자입니다. 천주님이 생명의 근원이기에, 그래서 최고의 탁월성을 소유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의 공경, 즉 흠숭을 드립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기들이 받았던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하기에 우리는 그분 부모들에게는 상대적인 공경을 드리고 이것은 참된 공경이지만 최고의 공경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을 거스르는 두 가지 죄가 있으니,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결핍으로 인한 죄가 하나이며, 조상을 숭배함으로써 생기는 과잉으로서의 죄가 또 하나입니다. 부모 공경에 대한 결핍은 오늘날 현대 세상에서 너무나 흔합니다. 부모께 대한 불경은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인이 하는 것이 아니며, 좋은 가톨릭신자로서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와 같은 죄를 거스르는 것은 대단히 엄격하게 다루었고, 만약 반란죄를 저지르면 그 처벌은 죽음이었으니, 그래서 대죄를 의미합니다.”한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 말이나 어머니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면,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상들에게 나아가서 말하기길,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여 술에 취한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라.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惡)을 제거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명기21:18-21).


 과잉에 의한 죄는 조상숭배(제사)가 있는 중국 문화권인 이교도(異敎徒) 사이에 꽤나 흔합니다. 하나이신 참 천주보다 어떤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조상숭배는 구약에서 죽음으로써 또한 처벌받았습니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 사는 여러분들은 과잉에 의한 대죄가 되는 이 조상 숭배 죄(제사)를 조심해야 합니다.


 젊은 시절에 부모로 인한 공경은 부모를 순종해야 하는 자녀들의 의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순명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큰 덕행입니다. 성 그레고리는 이 덕행을 ‘모든 덕행의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자녀들이 부모를 순종할 때, 그러므로써 그들은 모든 다른 덕행의 실천을 배우게 됩니다. 그 이유는 부모는 (설령 부모가 항상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시간을 자녀들로 하여금 옳은 행실을 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순명은 아기 예수의 덕행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전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십대일 때도 “부모와 한가지로 나자렛으로 내려오사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드시니“(루까2:51) 예수님은 이전에도 무척 순명하셨기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은 왜 예수님이 부모와 떨어졌는지를 이해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에 계신 성부께 순명하는 차원에서 예수님은 나중에 마리아와 요셉에게 ‘복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명을 해야 하는 이유는 어린 아이는 아직도 자기 앞가림을 할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아이들이 자연스레 부모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하셨고 순명으로써 무엇이 옳은가를 배우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권위는 자녀들의 선익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명령합니다;”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에페소66;10)


순명은 결핍(불순종, 합법적인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과 과잉(굴종)사이에 있는 덕행입니다. 순명을 거스르는 대부분의 죄는 불순명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 불순명은 과잉에 의한 죄에서 일어납니다. 그러한 전형적인 경우가 자녀 남용에 해당하는, 즉 일부에서 일어나듯이 딸을 팔아 넘기는 부모의 죄이고, 또는 자기 딸을 학대하는 아버지의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자녀들은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엄격한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녀의 의무입니다. 물론 그와 같은 경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들의 권위를 남용하는 부모들의 죄는 엄청난 죄인데, 왜냐하면 자녀의 선익을 위해 있는 부모의 권위라는 그 목적에 절대적으로 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나쁜 짓을 하도록 명령하지 않더라도, 아직도 현대세계에서 저런 경우가 있으며 이는 비난 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드리는 공경은 또한 다른 많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께서 말씀하실 때, 자녀들은 경청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참견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지하절에서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연로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앉으라 하고 부모는 옆에서 서 있으면, 이러한 모습은 불행히도 오늘날 매우 흔한 광경인데, 이는 훌륭한 교육에 거스르는 것이며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어른이 되고 난 후, 그들은 자기 부모들에게 엄격한 순명을 부모의 덕분으로 더 이상 돌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모를 공경은 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만약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생활뿐만 아니라 음식, 옷, 모든 교육(비) 목록을 적는다면, 매우 길 것입니다. 더 훌륭한 부모라면 그 항목이 더 길 것입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부모님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더욱이 부모가 아프거나 연로했을 때, 자녀들은 부모들을 돌볼 특별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렸을 때 당신들께서 오랫동안 돌보신 것에 대해서 보상해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많은 자녀가 있을 때 -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 자녀들이 연로한 자기 부모를 돌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2명의 자녀가 있는 어느 어머니를 기억하는데 그분이 최근 몸져누웠을 때, 자녀와 손자들이 그분을 끊임없이 보살펴드리려고 조를 짰습니다. 그분은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자녀나 손자가 항상 곁에 있으니, 함께 기도하려 하였고 서로 위로를 하였습니다. 훌륭한 부모에게는 아름다운 보상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부모님이 종부성사를 받도록 사제를 부모에게 모셔오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뜨신 후에도 자녀들은 부모에게 적절한 매장지를 제공해야 하며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반대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많은 의무를 이행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현대 세상은   노인들을 돌보는 데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잇습니다. 노인들을 돌보는 젊은 세대들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낙태는 안락사를 이끌게 됨을 봅니다! 낙태가 자녀를 위한 부모의 의무를 거스르는 최악의 죄인 것처럼, 안락사는 부모님에 대한 자녀들이 저지르는 최악의 죄입니다!


 실제로 제 4계명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자녀들의 의무와, 또한 자녀들 돌봐야 하는 부모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심지어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를 갖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의 “번성하라”(창세기1;28)고 주어진 계명입니다. 최소한 자녀의 수는 2명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두 부모는 최소한 4명의 자녀를 낳아야 되고, 할 수 있다면 훌륭한 가톨릭 가정은 5, 6, 7명이 흔하며, 이보다 더 많은 자녀가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한 두 명 있는 것 보다 많은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이 쉽습니다. 실제로 이기심은 대가족에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한 두 명 자녀를 둘 때 자녀들의 이기심이 생기는데 그 자녀들은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갑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이 혼인의 제1목적입니다.


 부모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녀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면서 신앙 안에서 교육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되고 심지어 혼인 전에도 해야 되는 데 미래에 부모가 될 사람은 미래에 태어날 자녀를 위해 미리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매일 기도를 배 속에서 들으면서 가족기도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실제로 가족의 기도야 말로 가족생활의 핵심적인 부분이며 훌륭한 자녀교육의 핵심입니다. 가정에서의 규칙적인 기도는 필수이고 기도의 길이보다는 기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매일 하루에 묵주기도 한 단 하는 것이 어쩌다가 한번 묵주기도 전체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너무 긴 기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성장해가면서 기도도 자녀와 함께 커가야 합니다.

 훌륭한 교육은 훌륭한 모범이 요구됩니다. 부모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모범적인 역할,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의 덕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훌륭한 교육은 또한 몇 가지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교정하지 않는 부모의 나약함은 죄이며, 자녀들을 적절한 교육으로써 실패하게 하는 부모들은 천주님께 그 이유를 변명해야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흔히 부모의 역할에 있어서 너무나 지나친 관대함과 방종(放縱)으로 인해 망가집니다.“저들의 열매로써 그들을 알게 되리라”(마테오7;20) 자녀들은 부모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자녀들은 훌륭한 부모에 대한 최고의 보상입니다.


훈육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을 때처럼, 지나침도 역시 있기 마련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 점을 부모에게 경고합니다: “아비된 자들아, 너희도 또한 너희 자식들의 분노를 도발시키지 말고 오직 저들을 주의 규율과 훈계로써 가르칠지니라.“(에페서6:4)


 어느 가정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부모도 없거니와 따라서 모든 가정에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용서해야 하며 (설령 저들을 올바르게 가르쳐도)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서로 서로 용서해야 하며 심지어 부모의 잘못이 있더라도 혹은 자녀를 돌보는 것이 부족함 점이 있더라도 그 점에 대해 용서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 형제나 자매나 부모 그리고 자식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누가 용서하려 할까요?  “너희 각 사람이 만일 네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내 성부 이와 같이 너희게 용서하지 않으리라.“(마테오18:35) “너희가 만일 (잘못한)사람을 용서(容恕)하지 아니하면, 또한 너희 성부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마테오6:15)


 많은 자녀가 있는 훌륭한 가톨릭 가정에서는 천주님은 그 자녀 일부를 성소(聖召)로 불러들여서 천주께 저들을 받치게끔 수도생활이나 사제의 길로 부르십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강요하여 성소의 길로 가게 한다든지, 또는 자녀가 원하는 성소의 길을 막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부모의 의무는 바탕을 준비시키고 자녀의 나쁜 습관을 뽑아내는 것이지 성소의 씨를 뿌리는 것은 천주님께서 적절히 하십니다. 그래도 훌륭한 부모들은 자녀 가운데 성소자가 생기도록 기도를 하고 있으며, 천주님은 저들이 요구한 것 그 이상으로 주십니다!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의 부모님을 보십시오!


 부모는 자녀들에게 오직 세속적인 부와 성공을 바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녀들의 성공을 너무 갈망하여 부모가 실제적으로는 자녀들에게 세속적인 것을 사랑하게 만들고 영원한 것은 무시하도록 가르칩니다. 이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어느 세속적인 부 보다 더 중요한 덕행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께서는 쓰시길, “물론 신심이 과욕을 겸하였다면 생활의 방도를 위함이 크리로다. 대저 우리는 아무 것도 못 가지고 세상에 왔으니, 또한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음이니라.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만 가졌다면 이로써 만족해야 할지니라. 대저 재물을 탐하는 자들은 유감과 마귀의 올가미와 또한 사람들을 타락과 멸망에 침몰케 하는 쓸데없고 해로운 각가지 욕망에 떨어지니라. 대저 온갖 악의 한 가지 뿌리는 재물에 대한 탐욕이니, 이를 탐구함으로써 신앙에서 멀리 방황하며 많은 고통을 자기에게 장만하는 자들의 수는 그리 적은 것이 아니니라.“(티모테오 전:6:6-10)


 제 4계명은 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권위, 세속사회와 교회에 이르기까지 확장됩니다. 실제로 모든 권위는 가부장적인 어떤 종류인데, 이 권위는 모든 자연적인 권위의 으뜸이자 기본이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쓰시길:”각 사람은 다 상관의 권력에 복종할지니라. 대저 천주께로조차 오지 아니한 권이 없으니, 권리가 있는 곳마다 그 권리는 천주의 지령대로 되었느니라.“(로마13:1) 그리고 결론을 내리길, 이러므로 모든 이에게 너희 책무를 이행할지니, 세금을 바치는 자에게는 세금을 바치고, 구실을 바치는 자에게는 구실을 바치고, 경외할 자는 경외하고, 존경할 자는 존경할지니라.“(로마13;7) 이는 특히 티모테오에게 쓰시듯이 교회의 권위에 해당됩니다. “자기 직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제로서, 특별히 설교자와 스승으로서 활동하는 자들은 배로 더 존경을 받기에 합당한 자이다.“(티모테오 전5;17)


 저 권위는 또한 순명의 의무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하는 대로, 순명이란 결핍(불순명)과 과잉(굴종)사이에 있는 덕행입니다. 그래서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같은 사악한 법은 반드시 반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당국의 명령과 혁신이 수세기 동안 종도들과 거룩한 계승자(교황)들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승되어 온 것과는 반대될 때에는, 이러한 혁신들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권위의 남용에 저항하면서 모든 권위의 근원이신 천주 바로 그분의 권위를 부여 받은 사람을 찾으면서 권위를 진정 소유한 이에게는 존경해야 합니다.


 성 가정의 머리이며 아버지들의 모범이신 요셉 성월(聖月)인 이 달에 그분과 그분의 거룩한 정배이신 동정 마리아께, 그리고 아기 예수께 우리가 기도함으로써, 그분들이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이 제 4계명을 실현하도록 도우시도록, 그리고 천주님의 영광과 모든 영혼들의 구령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