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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6계명 - 간음하지 말라(2016-04-0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11



제 6계명 - 간음하지 말라(출애굽 20: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 5계명에 있어서 한 가지 마지막 요점을 덧붙이자면 5계명은 또한 추문(악한표양)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 추문은 우리 이웃의 영적인 생명을 공격하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추문에 강력히 반대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미소한 자 중 하나라도 범죄케 하는 자는, 차라리 제 목에 나귀가 돌리는 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으니, 악한 표양 때문에 세상에게 앙화로다. 대저 악한 표양이 없을 수 없으나, 그러나 악한 표양을 내는 사람에게는 앙화로다.“(마테오18:6-7)


 악한표양은 또한 사람을 죄로 유인합니다. 악한표양(추문)이 덕행에 반대될 수 있지만, 악한표양 그 자체가 추가되는 죄를 형성합니다. 일이 잘못되게끔 하는 것으로도 나쁜 것이며, 악한표양으로 인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그렇게 행하도록 유인합니다. 신앙에 거스르는 악한표양(추문)이 있습니다. 즉 나쁜 문학작품을 읽으라고 독려하든지, 신앙교리에 의문이 가게 하는 현대주의 신학자들을 소개한다든지,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있어서 악한표양이 되는 경우입니다. 정의에 어긋나는 악한표양이 있으니, 사장이 직원으로 하여금 사업에 있어서 속임수를 쓰는 경우입니다. 사랑에 거스르는 악한표양이 있는데, 무절제라든지, 호색그림을 전시한다든지, 저속한 대화를 한다든지, 이와 같은 행위들은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신앙과 정의와 정결 자체를 거스르는 죄이며 이에 더하여 악한표양의 죄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고해 때에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계신 분이시고 그 자체 영원하신 생명이시오, 모든 생명체의 첫째 근원이신 천주께 대해 흠숭하라고 명령하신 후에, 그리고 우리에게 그 생명을 전달해주신 분들인 부모를 공경하고, 생명 그 자체를 존중하라고 하신 후에, 천주님은 생명의 전달을 우리가 존중해야 한다고 명하십니다. 이것이 제6계명의 목표입니다. 생명의 전달은 매우 중요한 행위이니, 이는 (천주님의)창조의 사업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생식, 번식’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놀이가 아닙니다! 혼인은 자손번식을 위해 천주께서 설계하신 장치입니다. 실제로 자녀들은 단지 몇 년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에 혼인 밖에서 다른 아이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분명히 혼인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번식을 위해 이루어지는 매우 특별한 생애기간 동안의 결합입니다. 혼인으로부터 생명의 전달을 끊는 행위는 제6계명을 거스르는 많은 죄 가운데 첫 번째 원인입니다.


 혼인이 인류의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천주께서는 사람들이 자녀를 갖도록 독려하고자 혼인의 행위 가운데 어떠한 보상, 어떠한 쾌락을 설정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만약 천주께서 혼인행위 안에다가 저 쾌락을 심어놓지 않았더라면 자녀의 수가 많이 줄어들 것이며, 아마도 인류는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고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께서 선하시고 지혜로우심을 보게 됩니다. 혼인에 있어서 생명의 전승을 위한 보상으로서 쾌락이 존재하는 그 이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명의 전달에서 오는 쾌락을 끊어버리는 것은 봉급을 원하는 근로자에게 일이나, 보상도, 공로도 없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단절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흔하며 제6계명을 거스르는 많은 죄의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의 행위는 혼인 안에서 오직 이루어져야 하며 생명에 열린 방법 안에서 - 혼인의 모든 행위가 새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혼인의 자연스런 열매가 결코 적극적으로 배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의 역할이란 단지 자녀를 갖는 것 만이 아니라, 자녀들을 훨씬 더 많이 양육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녀들을 준비시켜 이 세상에서 저들을 살아가게 하고, 자녀들을 천국(天國)으로 가게 준비시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念頭)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훌륭한 가톨릭 교육을 주는 것은 부모의 중요한 의무입니다. 훌륭한 부모에 대한 가장 큰 보상 하나는 훌륭한 자녀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쾌락은 사라지지만 훌륭한 자녀들은 남습니다. 쾌락은 매우 빠르게 사라지는 보상이나, 훌륭한 자녀는 오랫동안 남는 보상입니다! 만약 자녀들이 천국에 간다면, 그들이 받은 훌륭한 (가톨릭) 교육에 대해 부모님께 영원히 고마움을 표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6계명은 혼인 밖에서의 혼인 관계가 아닌 혼인 안에서의 충직성을 명령합니다. 이는 그러므로 혼인 안에서 참된 인간 사랑, 충실한 사랑, 자기를 주는 사랑, 생애에 걸친 사랑, 천주님의 사랑을 닮는 참된 사랑을 보호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그러면 너희는 천주의 사랑하시는 자식답게 저를 모범할지어다. 또한 너희는 그리스도 너희를 사랑하사 당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으로 삼아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드리셨음과 같이 사랑 안에 거닐을지니라.“(에페소5:1-2)


 그러므로 제 6계명은 특히 모든 간통을 금합니다. 이것은 간통의 결합으로 인해 태어날지 모르는 자녀의 선익에 반하는 것, 즉 그에게 아버지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게 됨입니다. 그 자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를 때에는 더 나쁜 것입니다. 간통은 배우자의 유익에도 거스르는 것이니, 배우자의 독점에 대한 혼인의 권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배우자 정결에 대한 덕행과 정의의 덕행, 이 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애에 걸친 간통행위의 잠재적 결과 때문에 매우 통탄스런 죄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만약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간통죄에 떨어지면 오랫동안의 공개적인 처벌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에 대해 바오로 성인께서는, “대저 모든 음탕한 자와 정결치 못한 자와 탐욕 많은 자는 이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같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천주의 왕국에 상속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잘 알고 또한 깨닫는 바니라. 누구나 헛된 말로써 너희를 미혹케하지 말지니, 대저 이와 같은 것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의노하심이 불순함의 자식들 위에 내림일새니라. 이러므로 너희는 이러한 자들 중에 참여하는 자 되지 말지니라.“(에페소5:5-7)


 제 6계명은 또한 사음을 금하는데, 이 사음은 (동거나 혼전관계 등) 혼인하지 아니한 자 사이에서의 혼인관계입니다. 혼인 전의 정결은 혼인 안에서의 정결을 위해 준비되어야 하고, 혼인 이전의 정결의 상실은 혼인 안에서의 불충으로 흔히 이끕니다. 그래서 훌륭하고 거룩한 혼인의 준비로서 젊은이들은 순결해야 하며 정결 및 동정성의 덕행을 가꾸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훨씬 더 행복한 결혼이 됩니다. 교회는 가르치기를, 혼인이란 좋은 것이지만 천주께 봉헌된 결혼은 더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동정이 오직 봉헌된 생애를 위한 젊은이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동정은 또한 훌륭하고 거룩한 혼인을 위해 준비과정으로서 요구됩니다. 젊은이들이 결혼하는 날까지 동정을 유지하는 것이 천주님의 뜻입니다. 설령 현대세상이 이를 멸시한다 하더라도 훌륭한 가톨릭신자들은 이러한 정결의 덕행을 귀중하게 생각하여 붙잡고 있어야 하고, 자녀들이 죄의 기회를 멀리하게 함으로써 자녀들 안에서도 정결이 유지되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특히 르페브르 대주교께서는 텔레비전 시청을 피하라고 강력하게 권고 하셨습니다. 대주교님은 심지어 TV조차 가지고 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훌륭한 수사(修士)와 사제들의 모범은 젊은이들에게 자극을 주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해 이러한 정결의 덕행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함으로 알게 해줍니다.


 제 6계명에 거스르는 몇 가지 다른 죄가 있는데, 천주님의 질서에 곡해를 더 첨가하는 것들입니다. 강간과 같은 폭력의 죄는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동성애와 같은 자연을 거스르는 죄들은 천주께서 ‘극히 지겨운 것’(레위18;22)으로 부르며, 심지어 짐승과 관계되는 수간(獸姦)과 같은 더 악한 것도 있습니다. 근친상간과 같이 가족을 거스르는 죄가 있으니 이런 것들은 바오로 성인께서 파문으로서 처벌되었습니다!(코린토 전5;1-5) 소아 성폭행, 즉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성행위는 것은 지극히 비탄스런 것입니다. 현대세계에서 비 도덕성이 커감에 따라 이러한 죄들은 증가되었고 오늘날 사회에 끔찍한 부패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제5계명에 거스르는 피임, 불임수술 그리고 낙태의 죄를 알아보았습니다. 이에 관련된 신체절단과 (낙태)살인으로 인하여 이러한 죄들은 생명의 전달이라는 궁극적인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6계명에도 거스르는 것입니다. 고대에도 그러한 죄들이 있었지만 현대세계에서는 수단을 뛰어넘어 그 죄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구약시대에 유다의 아들인 오난은 혼인을 속이고 체내사정(射精)을 하지 않아, 천주님은 그에게 죽음으로 벌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통탄할 죄를 교회에서는 ‘오나니슴’이라 부릅니다. 20세기의 교황들은 피임의 현대적인 수단을 견책하셨고, 이에 아무런 변혁을 주지 않았습니다. 비록 (피임의) 수단이 새롭더라도 구약에서 천주께서 친히 오나니슴을 책벌하셨기 때문에 교리는 오래되었고 오래된 그 안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저 견책의 처벌은 교부들에 의해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제 6계명은 또한 자위행위 또는 자아 남용도 금하는데 이 두 가지는 혼인 안에서나 밖에서도 금지됩니다. 이것은 완전히 이기적인 것이고 육욕의 노예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왜곡입니다. 혼인이란 자기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게끔 허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돼지우리처럼 지저분해서는 안되고 절제의 덕행을 실천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즉 식탐을 절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자주 말씀하시길, 혼인은 ‘정결의 아름다운 학교’라고 불렀으니 성 바오로는 “혼인은 만민(萬民)이 다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이며, 또한 부부된 자의 침소(寢所)는 더럽히지 말아야 할지니라. 대저 천주께서는 음행(淫行)하는 자와 간음(姦淫)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리로다.“(히브레야13:4)


 제 6계명에 거스르는 한 가지 마지막 죄는 무절제입니다. 앞서 노출된 다른 모든 죄들은 비탄스런 죄이니, 왜냐하면 생명의 전달이란 매우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무절제는 스캔들과 좀 떨어질 경우에는 소죄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대죄가 될 수도 있으니, 특히 다른 이들에게 진정한 추문이 되거나 유혹의 목적으로 분명하게 행해질 때에는 대죄입니다. 그와 반대로 절제는 아름다운 덕행이고 정결의 수호자입니다. 육신을 통제하는 빛나는 영혼의 아름다움입니다. 절제하는 여성들은 훨씬 더 아름답고 참된 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영혼은 육신의 잠시 스쳐가는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됩니다.


 쾌락을 궁극적인 목표로서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쾌락주의는 현대세계에서 너무나 많이 퍼져있고 영혼 안에서 무수한 파괴를 자행합니다.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영이 아닙니다. 실제로 바오로 성인은 쓰시길, “대저 육체는 영신을 거슬러 욕구하고, 영신은 육체를 거슬러 욕구하니니…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속한 자들은 자기 육체를 그 정욕과 육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라타5:17,24) 그리고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삼아 죄에 바치지 말고 오직 죽음에서 생명으로 온 것으로서 천주께 바치며, 너희 지체를 의덕의 도구로 삼아 천주께 바칠지니라. “(로마6:13) 또한 “오히려 내 육신을 편태하여 내게 복종시키느니, 이는 나 남에게는 설교하고도 내 자신은 버림을 당할까 두림이로다(두려워하도다).“(코린토 전9:27)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제 6계명을 준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거짓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하여, 제 6계명과 다른 계명을 준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와 같은 방법으로 모든 다른 대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하자 없는 무염시잉태의 특권을 통하여 오직 성모님만이 모든 소죄와 모든 죄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성인들도 소죄를 지었고, 모든 사람들은 죄와 맞서는 일생기간의 투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회두한 이후에 대죄 없이 사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 부활절 시기는 우리에게 이를 입증하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성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이르시길, “대저 우리는 그리스도 죽은 자 가운데로 조차 부활하사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저에게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함을 아는 도다.“(로마6:9)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설명하길,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은 우리가 성세 때에 받았던, 그리고 보속의 성사에서 회복하는 ‘새 생명’의 모양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죽지 않는 사실은 우리가 받았던 새로운 영적 생명이 ‘더 이상 죽지 않는’ 보증입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대죄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성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되, 성자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얻어보지 못하고, 오직 천주의 의노를 제 신상에 당하느니라.“(요왕3;36)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왕6:48)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 날에 저를 부활케 하리니”(요왕6:55) 그는 이미 영혼의 영원한 생명의 시작 아래에서 있는 것이고, 세상종말 때에 육신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제 6계명을 준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또 다른 증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은 어떤 영혼을 높은 차원의 덕행으로, 봉헌된 동정성의 덕행으로 끌어올리기까지 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성총이 만약 더 높은 덕행을 주실 수 있다면, 분명히 너 낮은 덕행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사제, 수사, 수녀들의 모범은 신자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어 신자들로 하여금 결혼생활에서 순수함과 충직함을 갖게 합니다. 저들의 자녀 가운데 봉헌된 동정성에 대한 존경심을 배양함으로서 부모나 교육자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정결의 기본적인 덕행을 실천하도록 도와줍니다. 악한 습관을 고치거나 또는 죄의 상처를 치료하기 보다는 잘못된 길에서 출발하는 것조차 하지 아니하고, 모든 악한 사건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깨지지 않은 꽃병이 아교로 다시 붙인 깨진 꽃병보다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죄와는 타협을 하지 마십시오!


 불결함은 사랑의 부패이므로, 제 6계명에 대한 순명은 참 사랑의 보호임을 확신하는 것이며 영혼으로 하여금 천주님의 사랑을 묵상하게끔 열어줍니다. “마음이 조촐한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천주를 뵈올 것임이요.“(마테오5:8) “저희 길이 깨끗하고, 주님의 법 따라 걷는 자들은 복되도소이다.“(성영118:1) 예수님은 조촐함을 사랑하시고 동정을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는 동정이신 제자 성 요한이었습니다!


 제 6계명 실천을 위한 커다란 수단은 기도, 보속, 고해성사를 자주보고, 영성체를 하며 성모님께 대한 큰 신심입니다. 기도는 영혼 구령에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영혼은 자기 영혼을 구하지만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자기 영혼에 저주가 됩니다. 기도는 일반적으로 필요하지만 특히 정결의 덕행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실제로 원죄의 상처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육욕에 대해 자동적인 통제를 상실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정서와 상상력을 통제하시는 천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그러한 도움을 받습니다. 유혹을 받으면 기도하세요 그러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기도하는 한, 죄로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는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만약 유혹이 지속되면 계속 기도하세요! 승리를 완전히 얻을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유혹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떨어지지않음에 천주께 고마움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수단은 보속입니다. 기도와 결합된 보속은 모든 종류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며, 특히 육욕을 이길 수 있는 수단입니다. 손가락 위에 무릎을 꿇고 유혹이 사라질 때까지 몇 개의 성모송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바입니다.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수단입니다! 보속은 또한 죄에 대한 배상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고해하는 용기를 주기 위해서 성 교회는 교회 초기에 부과한 보속과 비교해보았을 때 고해에 부과된 보속을 점차 줄여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번의 기도가 우리 죄에 대한 값어치 있는 배상으로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보속이 필요하고 이 보속을 우리 주님의 십자가 위의 희생과 일치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연옥에서 갚을 큰 빚(debt)이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일치된 보속은 과거의 죄를 배상하는 것이고 미래의 죄를 예방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수단은 성사를 자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죄에 떨어지면 지체 없이 고해하러 가십시오. 분명히 대죄에 떨어지지 않도록, 대죄로 떨어지기 전에 고해하십시오. 소죄들은 고해에 있어 충분한 사안이 됩니다. 진흙탕(대죄)으로 떨어지기 전에 지체 없이 샤워하십시오. 일상적인 땀방울은 규칙적인 샤워를 하는 데에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일상적인 소죄도 고해를 자주 보게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자주 고해하는 것이 전쟁의 일부입니다. 고해의 성사적 은총은 분명히 미래에 죄를 피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영성체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성체는 영혼을 강화시키고 마음을 천국의 기쁨으로 끌어올리며 영성체가 희생의 열매이며 십자가는 죄와 반대가 되기 때문에 십자가를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은 쾌락 사랑과는 반대가 됩니다! 영성체를 갈망하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 죄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줍니다. 영성체 후에 그러한 은총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기억나게 해줍니다. 


 제 6계명을 실천하는 데에 필요한 네 번째 수단은 성모님께 대한 참되고도 깊은 신심입니다. 성모님은 조촐함과 정결의 가장 아름다운 모범입니다. 성모님은 자녀들을 정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시길 좋아하시는 어머니입니다. 그분의 모범과 보호 그리고 도우심은 매우 강력한 수단입니다. 유혹을 받을 때에는 당장 성모님의 도우심을 요청합시다. 그러면 더러운 악마는 달아날 것입니다. 성모님은 회개하려는 죄인을 항상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자비의 모친’이시며 심지어 아직 회개하지 않고 있는 죄인이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조촐(깨끗)하지 않는 것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누가 주의 산에 오르리요? 또 누가 그이의 거룩한 곳에 서 있으리요?  그는 손이 무죄하고 마음이 깨끗한 자이며, 자기의 친근한 자에게 거짓 맹서도 하지 않는 자이다.“(성영23:3-4) “주시여, 누가 당신의 장막에 머무르겠나이까? 누가 당신의 거룩한 산에 살겠나이까? 그는 허물없이 걷는 자와 의리를 행하는 자로다. 제 마음에 올바른 것을 생각하고… “(성영14:1-2) 그래서 우리 주님은 친히 이르시길;”마음이 조촐한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천주를 뵈올 것임이요.“(마테오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인하여 우리가 제6계명(과 다른 계명)을 실천하도록, 그리하여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이 되는 천주님의 지복직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