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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7계명 - 도적질하지 말라(2016-04-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11





제 7계명 - 도적질하지 말라(2016-04-10)  미사사진


 십계명이란 우리가 생활하시고 모든 생명의 저자이신 천주님을 흠숭하라고 가르치는 생명의 계명이요, 우리가 생명을 받게끔 하신 우리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며, 생명 그 자체를 존중하고 생명을 전달하라고 가르치는 생명의 계명입니다. 자, 제7계명으로 우리 이웃의 재산인 생명의 외적인 수단을 존중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도적질하지 말라”(출애굽20;15)


 첫째, 교회는 재산에 대한 자연적인 권리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대저 땅과 그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니라.“(성영23:1, 코린토 전10:26) 모든 창조물은 천주께 속한 것인데 천주님은 모든 것을 관장하는 최고의 소유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상에 있는 것도 천주께 속한 것이며, 우리 자신도 천주께 속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주께서 우리와 세상을 조성하시고 그 일은 일한 이에게 속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창조물을 관장하시는 천주님의 지배권은 인간의 재산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재산의 기반인 것입니다. 실제로 천주님은 모든 물건의 첫째 원인이시지만 이차 원인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어떤 존재에게 두 번째 원인이 되도록 힘을 주시는데, 특히 천신과 인간과 같은 영적 존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일은 일한 이에게 속한 것이기에 인간 업적의 열매는 먼저 천주께 속한 것이고, 또한 둘째로 그 일을 한 인간에게 속하게 됩니다. 인간은 천주님 아래에서 두 번째가 되며 그러므로 그 물건의 진정한 두 번째 원인이 되어 이것을 관장하는 재산권이 있는 것입니다.


 교황 레오13세는 이렇게 씁니다;”만약 어느 사람이 타인에게 자신의 힘이나 기술을 내어주면, 그는 그의 욕구에 만족시키는 데에 필요한 되돌려 받을 목적 (그가 제공함으로 있게 될 봉급)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보수뿐만 아니라 마치 그가 좋아하듯이 보수에 대한 처분권인 완전하고도 진정한 권리를 얻고자 한다. 그래서 그가 여유롭게 살면, 돈을 저축하고 더 큰 안전을 위해, 토지에다가 자신의 저축을 투자하기도 하고, 이와 같은 경우 그 토지는 다른 형태 안에서 그의 보수인 것이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구매된 부동산은 그가 노동의 대가로서 받은 보수인 것처럼 완전히 그의 처분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 재산이 토지나 혹은 동산(動産)으로 구성되었던 간에 소유주(所有主)가 얻은 이러한 처분은 분명히 강력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들은 개인의 소유권(所有權)을 대개 공동체로 열심히 이전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저들이 근로자로부터 봉급의 처분권을 빼앗고, 그리하여 모든 희망과 자원(재산)이 증가될 가능성과 생활에서의 보다 나은 여건을 개인으로부터 빼앗기 때문에 모든 임금 노동자들의 이익에 타격을 가한다.”(Rerum Novarum, n°5)


 재산의 권리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속한 물건을 잘 보살피려 합니다. 공동체 재산은 오직 수도원이나 수녀원에 있을 때에만 잘 관리되는데, 그곳에서는 덕행이 높은 수사(修士)들이 공동물건을 적절하게 잘 살펴보지만, 이와 같은 적절한 보살핌을 다른 단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공산주의 경제의 실패의 원인이 바로 이런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천주님은 창조물에 대한 최고의 관리자이시지만 그러나 그분 안에서 사람과 같은 지성체들은 창조의 일부분에 해당되는 보좌적인 관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산에 대한 권리로서 창조의 일부분은 인간의 보좌적인 관리에 위임됩니다. 사적(私的) 재산은 한 가정에게 미래의 어떠한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또한 재산권은 그 재산 사용에 대한 어떠한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개인 재산에 대한 권리는 분명히 타인의 재산을 존중해 주어야 할 의무가 따르게 됩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출애굽) 도적질은 그 자체가 대죄입니다. 적은 양인 경우에는 ‘엄중한 사항’이 아니기에 단지 소죄에 그칠 수는 있으나, 작은 도적질을 반복하여 짓게되면, 그 양이 반드시 합산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빠르게 중대한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중대한 사항이란 근로자가 하루에 받는 보수의 양으로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이르길,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네게 두지 말며“(레위기19;13)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네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한 고로 그가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야훼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게 너의 죄가 될것임이니라.“(Deut. 24:14-15).


 도적질을 범하는 여러 갈래가 있으니, 사기, 강도와 같은 폭력이 동반한 강탈,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과하려고 자신의 직위를 이용한 갈취 등이 있습니다. 갈취와 유사한 것으로는 임금을 적게 지불하는 것도 됩니다. 저임금 역시 생존하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근로자의 요구를 넘어 사용자 지위를 악용한 남용입니다. 사장이 가능한한 노임을 적게 지급할 때, 그는 자기의 직위를 악용한 것이고 사용자 부분에서 이와 같은 죄는 대죄가 되는데, 왜냐하면 근로자의 수에 의해 중첩이 되기때문입니다. 또한 설령 잘 알지 못한 상태로 물건을 습득했어도 훔친 물건을 돌려주길 거부할 때에는 제7계명을 거스르는 죄가 됩니다.


 제 7계명을 거스르는 가장 흔한 죄는 일터에서의 속임수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일터에 계속 늦게 도착하여 근로계약에 동의한 제시간을 채우지 못하거나, 근로시간을 사적인 일에 쓰는 경우입니다.  이와 같은 일에 있어서, 예를 들어 개인의 긴급한 일에 한 번 정도 짧은 시간 동안 전화를 하는 것은 전혀 죄가 될게 없지만, 이런 경우가 계속되어 반복이 된다면 또는 장시간 국제전화 등을 한다면 감독관이나 사장에게 허락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허락이 없다면 전화비용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에 보낸 시간도 그 비용를 갚아야 합니다.


 공부하는데 있어서의 속임수, 특히 학생들에게 있어서 시험치를 때의 속임수(일명 커닝)은 일종의 도적질입니다. 그들에게 합당하지 않은 점수를 훔치는 것입니다. 최종시험 기간에 커닝을 한다면 이 또한 도적질과 같습니다. 학위를 훔친 의사에게 누가 자기의 건강을 맡기고자 할 것이며 그가 정말로 의학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인도에서 추문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조종사 면허증이 비행훈련시간을 채우지 못한 학생들에게 발급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승객을 태운 비행기에 대한 책임감이 무능력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이것은 정의를 거스르는 죄입니다.


 도적질은 지독한 악순환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만일 보천하를 다 얻을지리도 제 영혼에 해를 받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또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영혼을 다시 물러내겠느냐?“(마테오16:26) 사람은 스쳐 지나갈 물건을 위해 영원(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정말 지독한 악순환입니다! 항상 죽음을 기억한다면, 정의로운 사람에게는 보상으로서 영생을, 불의한 이에게는 심판과 지옥을 기억한다면 , 결코 이 같은 불의한 짓을 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배신자 유다는 ”도적질하는 자요, 또 전대를 맡아 그 속에 넣는 것을 가지고 다니는 연고니라.“(요왕12:6) 그의 자살과 저주는 도둑들에게 큰 경고입니다. 도둑들은 지옥불의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주께서 친히 유다에 대해 이르시길,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라면 다행하였느니라.“(마테오26:24)


 만약에 과거에 도적질 했다면, 그가 훔친 것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만약 그가 훔친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만큼의 양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가 훔친 것이 얼마만큼인지 모른다면 책상에 앉아서 종이에다가 작성하십시오. 그리하여 다소나마 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르시기, “도덕질하던 자는 이제로부터 도적질하지 말고, 오히려 빈궁한 자들에게 시사(희사)할 수 있기 위하여 자기 손을 움직이여 써 재산을 이룰지니라.“(에페소4:28) 그리고 테살로니카인들에게 다시 이르기를, “너희 의무를 준행하며, 너희 손으로 손수 일하여 (생활을 지지(支持)하는 것을) 영예(榮譽)로 여길지니라.“(테살로니카 전4:11) 그리고 종도행전에서 이르시길, “나 너희게 모든 표양을 보였으니, 대저 이와 같이 일하여 마땅히 연약한 자들을 대접하며, 또한 주 예수의 이르신 바 <남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니라>하신 말씀을 생각할 지라.“(종도행전20:35)


 실제로 제7계명은 정의(正義)의 덕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명령하니, 타인의 덕분으로 인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이에게 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공로로 우리가 혜택을 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농부들의 노력에, 입고 있는 옷은 의복 제조업자들에게, 집이나 아파트는 건설업자에게, 신발은 신발 제조업자에  등등…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기여해야 하고, 우리 차례가 되어 공동선익에 기여해야 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더욱이 가장(家長)은 일할 의무가 더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부양해야 할 의무, 현재 부양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도 일을 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의 미래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재산, 토지, 집 등을 획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유자는 몇 가지 책임을 가집니다. 소유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의 책임도 더 큰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에게만 속한 사람을 생각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이웃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평등은 자연스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강하고 어떤 이들은 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부지런하고 어떤 이들은 다른 이보다 건강합니다. 이와 같은 모든 자연스런 차이는 자연적으로 불평등을 이끕니다. 그래도 천주님의 섭리는 불평등의 의지를 가짐으로 하여금 조금 더 소유한 이들이 적게 가진 이에게 베풀도록,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보호하도록, 건강한 자는 아픈 이를 돌보도록, 조금 더 근면한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직업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선물에서 오는 이득을 타인에게도 베풀도록 하는 등의.... (천주님께서는)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릇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찾아낼 것이요, 많이 맡겨 준 자에게서도 많이 달라 함이니라.“(루까12:48)  그리고 바오로 성인은 “이 세상 부자들에게 명하여 저들로 하여금 교오한 생각을 가지지 말며 의뢰치 못할 재물을 의뢰치 말고 오직 모든 것을 즐겁게 누리도록 풍성히 주시는 [생활하신] 천주께 바라며, 시사하여 선업에 풍부한 자 되어 다른 이들에게 대하여 후하게 하며, 또한 자선을 행함으로써, 참된 생명을 얻도록 장래를 위한 견고한 기초를 자기를 위하여 세우게 할지니라.“(티모테오 전 6:17-19)


 실제로 도적질의 반대는 의연금(義捐金)을 내는 것입니다. 의연금으로써 우리는 ‘천국에 보물을 쌓는 것’이니, 그곳은 ”오직 너희는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 거기는 동록(銅綠)과 좀(이끼)도 손상치 못하고 도적도 파 가지 못하느니...“(마테오6:20) 교부들은 의연금이란 천주님께 빌려드리는 것이며 천주님은 무한한 이자를 쳐서 영생으로써 갚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너희는 가진 바를 팔아 써 애긍 시사하여 해어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어 핍절치 아니하는 보배를 하늘에 장만하라.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못하고 좀도 손상치 못하느니...  “(루까12:33) 성 요한은 서간에서 경고하시길, “이 세상 재물을 가진 자 그 형제의 궁핍함을 (눈 앞에) 보면서 그 마음을 저에게 대하여 봉(封)한다면, 어찌 천주께 대한 사랑이 그에게 머무를쏘냐?“(요한 1서 3:17)


 모든 성인들께, 특히 성모님과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여 정직한 생계비를 벌었던 성 요셉께 기도함으로써, 그분들이 우리가 항상 정의에 충직하고, 그리고 결코 도둑질하지 하도록, 또한 의연금을 낼 의무를 충실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

(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