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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8계명 - 거짓 증거를 대지 말라(2016-05-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16






제8계명 - 거짓 증거를 대지 말라 (2016-05-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계명은 생명을 다루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계명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최고 저자(著者)이신 천주님을 흠숭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전달해 주신 통로로서, 생명의 전승과 생명의 유지 수단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라 하십니다. 자 그러면, 제8계명이 어떻게 생명과 연관이 되었나요? 제8계명은 사회적 생활을 보호합니다.


 인간은 홀로 살도록 조성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공동체(共同體)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신을 양육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교육시켜 주시는 부모님이 필요하니, 수십 년 간의 부모 도움이 필요 합니다! 그래서 가정은 으뜸이자 가장 자연스런 사회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인간은 모든 기술을 가질 수 없기에, 각 사람은 타인의 기술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농부이고, 다른 이는 건축을 하며, 또 다른 이는 옷을 만들고, 의사, 교사 등 직업을 갖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과 상호간의 의존과 필요성은 각자가 천주께서 주신 기술과 재능의 유익함을 타인에게 이바지하도록, 우리가 자비를 실천하도록 천주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사회 생활은 각 개인간의 의사소통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단지 동물이 아니라, 생명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지적인 생명체인지라 인간의 의사소통이란 단지 인식 수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지적 수준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웃에게 우리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신이 아닙니다. 천신들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식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영적인 생각을 표현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언어입니다. 같은 영적인 생각은 다른 언어로써 표현될 수 있는데 언어는 단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의 신호입니다. 이 신호가 정직해야 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거짓말하는 것,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이 거짓말은 사회생활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의사소통을 파괴합니다. 만약 사람이 그가 따르는 사람을 믿지 못하면 그는 혼자 남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거짓말쟁이들에게 둘러싸이면, 여러분은 더 이상 신뢰할만한 사람이 없게 되어서 여러분은 혼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사회생활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그러므로 너희는 거짓을 벗어 버리고 각각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진실한 바를 이야기 할지니, 대저 우리는 서로 같은 몸의 지체가 되는 연고니라.“(에페소4:25) 어떻게 바오로 성인께서 진실을 말할 의무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오히려 서로 같은 몸의 지체라는 사실을 가지고 연관시키는지를 보게 됩니다.

 영생은 정직한 사람에게 약속됩니다: ”주시여, 누가 당신의 장막 안에 머무르겠나이까? 누가 당신의 거룩한 산에 살겠나이까? 그는 허물없이 걷는 자와 의리를 행하는 자니다. 또 제 마음 속에 올바른 것을 생각하고, 제 혀로써 무함(誣陷 - 없는 사실을 꾸며 남을 함정에 빠트림)하지 않는 자니다. 그는 자기 친우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자기 이웃 사람에게 능욕을 끼치지도 않는 자니다. 그는 악한 사람을 업신여겨 보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경하는 자니다. 그는 제게 손해하는 맹서를 하였으되, 바꾸지 않으며, 제 돈을 길미(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주는 돈) 바라고 주지 않으며, 무죄한 자에게 해 되는 뇌물을 받지도 않는 자니다. 이런 것들을 실행하는 자는 영원히 요동치 않으리다.“(성영14:1-5) 그래서 이사야는 같은 말을 합니다;”의리를 따라 걷는 자와 올바른 것을 말하는 자와, 착취의 이(利) 보기를 마다하는 자, 뇌물을 아니받으려고 제 손을 뿌리치는 자, 유혈에 관한 말을 아니 들으려고 제 귀를 틀어 막은 자, 악한 것을 아니 보려고 제 눈을 감는 자, 그 사람은 드높은 곳에 살겠으며, 바위들의 맨 꼭대기가 그의 안전한 성곽이리라. 그에게 빵이 주어지고, 그에게 물이 늘 있으리라.“(이사야33:15-1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말라키2:6)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거짓말은 항상 죄이며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거짓이 항상 대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대한 해악이 이웃에게 가지 않는다면 소죄이지만 그래도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니 작은 거짓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자신이 행한 실패를 덮으려고 거짓말을 하면 (즉 학생이 하지 않은 숙제를 변명하기 위해 꾸며내면) 그는 첫째 악에 두 번째 악을 더하게 되니, 거짓말이란 훌륭한 해결책이 못 됩니다. 좋은 해결책이란 오히려 다시는 이를 범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이를 배상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첫 번째 죄를 고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이 이웃에게 중대한 해가 있게 되면 대죄가 됩니다. 예를 들어 사업에서 사기(詐欺)와 속임수가 해당되는데 이는 제7계명(誡命)과 제8계명을 범하는 이중 죄가 됩니다. 또한 중상모략을 하는 것으로, 이는 범하지 않은 죄를 비난하는 것으로서, 타인의 명예에 중대한 해악을 가해도 대죄에 해당이 됩니다. 이 대죄는 타인의 죄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것, 가능한 한 부풀려 거짓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중상이 됩니다. 조심하기 바랍니다. 타인에 의해 상처를 받으면, 그는 쉽사리 그 공격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그가 실제로 받은 것보다 그 가해자를 더 악하게 보이게끔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절제해야 합니다. 더 비난하기보다는 덜 비난하는 것이 안전한 것이고, 오직 확실한 것에만 비난해야지, 의심이 가는 것을 비난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쉽게 용서해야 하며 이웃에 대해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중상비방과 관련된 것이 명예훼손의 죄입니다. 이 자체가 본래 거짓말은 아닐지라도 이성의 분별없이 타인의 숨겨진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그래도 죄가 되니, 왜냐하면 악을 퍼뜨리게 되는 것이며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타인의 죄를 폭로하기까지는 하지만, 항상 좋은 목적에 발을 맞추어, 예를 들면 범죄자의 교정을 얻을 목적으로 폭로합니다. 그래서 만약, 이웃이 어린 아이가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그 아이의 부모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나, 그래도 이러한 것은 반드시 아이의 유익을 위해 분명하게 이루어져야지, 심술, 악의(惡意) 그밖의 나쁜 동기로서 행해서는 안 됩니다. 또는 교사가 아이를 학대(虐待)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는 경고할 수 있거나 경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제 3자에게 그와 같은 잘못 행실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명예훼손의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선은 많이 알려져야 하고, 악은 알려지는 것이 좋지 않으며 주변에다 퍼져서는 안 됩니다.

 이보다 낮은 단계에서는 잡담으로 남을 흉보는 죄가 있습니다. 이것은 타인의 공개된 죄에 대해 이러 저러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드러난 사실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쑥덕공론이 타인에게 알려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악을 말하여서 만족을 얻고자 함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문에서 보도된 공개된 인물의 죄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데 (신문기자가 되어 쑥덕공론의 죄를 피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좀더 제한된 영역에서는 일터나 이웃에서의 험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쁜 겁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바는 주변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에 눈을 감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신 ”이 모든 것을 다 건설하기 위하여 할지라“(코린토 전14:26)는 의도이니, 여러분이 뭔가를 말한다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이 아니라면, 그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 토마스는 두 개의 죄, 이러저러한 ‘귓속말’을 추가하는데 즉, 이는 친구 사이에서 의심과 불일치를 일으키어 친교를 냉랭하게 만들고 해를 끼치는 죄입니다. 이 험담이 가족간에 있어야 할 친교, 특히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는 친교에 해가 된다면 악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죄는 조롱과 조소의 죄로서 이것은 이웃 간에 있어야 할 존경심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타인을 희생시켜서 비웃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선지자 즈카리아는 이르길:”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즈카8:16) 이 말씀에서 그 선지자는 진리는 특히 재판(법정)에서 요구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8계명의 목적임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계명들이 더 넓은 적용을 뜻하지만, 계명들은 대개 어느 특정 영역에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6계명은 정결의 덕을 보호하고, 정결에 거스르는 모든 죄를 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 6계명은 주요 죄인 간음을 직접적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8계명은 직접적으로 거짓 증언을 금합니다. 거짓 증언은 법정 밖보다 법정 안에서 훨씬 더 통탄할 죄가 됨은 분명합니다.

 법정은 위험한 장소입니다! 토마스 성인은, 판사(判事)가 천주님의 계명을 적용하지 않고 국가의 법률만을 적용할 때, 뇌물을 받으면서 재판을 왜곡시킬 때 그 판사에게도 죄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검사(檢事)는 거짓으로 (직접적으로 제 8계명이 금합니다) 기소하거나, 또는 검사가 뇌물을 받거나 협박으로 인해 범죄자를 소추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위험스런 악이 사회를 반하여 저들의 악이 함께 하도록 용인할 때 그 검사에게도 죄가 됩니다. 피고인도 자신이 저지른 것을 거짓으로 부인함으로써, 또는 타인에게 가한 잘못을 거부함으로써 죄를 질 수가 있고, 증인에게도 죄가 될 수 있으니, 특히 거짓 증거를 댄다든지 또는 증언을 철회한다든지 해서, 그리하여 무죄한 사람이 죄형을 받거나 범죄자가 빠져 나가게 함으로써 죄를 범하게 됩니다. 변호인에게도 죄가 있으니, 특히 온갖 거짓을 이용해서, 또는 악한 의도를 단순히 급급하게 변호하여서 악한 자를 도와주는 행위로써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정의는 위대하며, 선하고 정직한 판사는 많은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영국 대법관이던 토마스 모아 성인은 헨리 8세에 의해 치명 당했습니다. 그 분은 끝까지 정직하였고 진리를 옹호하셨습니다.
 
 성 야고보는 혀가 신체 중 가장 작은 부분이면서 가장 악한 곳이라고 합니다! 혀에 관한 야고보서의 (제3장의) 전체적 흐름은 제 8계명에 관련하여 생각해 보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대저 우리는 모두 많은 일에 잘못함이 있음이니라. 누 만일 말(言語)에 있어 잘못함이 없다면 저는 완전한 삶이며, 또한 능히 자기의 전신(全身)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그는 말(馬)을 우리에게 순종케하기 위하여 그 입에 자갈을 물리면 이에 우리는 그의 전신을 다스릴 수 있느니라. 보라 또한 배(船)가 있어, 극히 크며 폭풍에 휩쓸릴지라도, 그 조그마한 키(蛇)로써 능히 조종사의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느니라. 이와 같이 혀도 조그마한 지체에 불과하나, 그 도량(跳梁)하는 (세력은) 막대하니라. 보라, 극히 조그마한 불(火)이 이 얼마나 큰 삼림(森林)을 살라 버리는고? 혀도 또한 불(火)이며 불의(不義)의 전체니라. 혀는 우리의 지체 하나로서 전신을 더럽히며 우리 일생의 차륜(車輪)을 불사르고 자기도 또한 지옥 불에 살라지느니라. 대저 온갖 수류(獸類)와 조류와 파충류와 또한 바다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인간에게 지배되며 또한 지배되어 왔느니라. 그러나 혀만은 아무도 지배하지 못하도다. 그는 부단(不斷)의 악이며 치사(致死)의 독으로 가득하니라. 우리는 혀로써 아비신 천주를 찬양하며, 또한 이로써 천주의 모상을 따라 조성된 사람을 저주하느니, 찬송과 저주가 이 동일한 입에서 나오는 도다. 나의 형제들아, 이것이 이렇게 됨은 참으로 만 번 부당한 일이로다. 이 어찌 한 개의 구멍으로 달고 쓴 물을 나오게 하는 샘이 있으리요? 나의 형제들아, 무화가 나무가 어찌 올리브의 열매를 맺으며, 혹 포도덩굴이 어찌 무화과의 열매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염수(鹽水)의 샘이 능히 담수(淡水)를 내지 못하리라.  누가 너희 중에 지혜롭고 민첩한 자이냐? 그는 자기의 행하는 것이 지혜에서 말미암은 양순으로써 (된다는 것을) 착한 행실로써 보일지니라. 그러나 만일 너희가 치열한 질투와 투쟁욕을 너희 마음속에 품었다면 자랑하지 말며, 또한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는 자 되지 말지어다. 대저 이와 같은 지혜는 위에서부터 내린 것이 아니라 오직 지상적 것이며, 육욕과 마귀로 말미암는 것이니라. 대개 질투와 투쟁이 있는 그곳에는 불목(不睦)과 온갖 악행이 이루어지느니라. 그러나 위로부터 내린 지혜는 무엇보다도 먼저 결백하며, 다음으로는 평화를 즐기며, 잘 양보하며, 남의 청을 잘 들어주며, (선에 동의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로 가득하며, 편벽됨이 없으며, 겉꾸밈이 없느니라. 그러나 정의(正義)의 열매를 맺는 씨는 평화(平和)를 보전(保全)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평화 속에 심겨지느니라.”(야고보3:2-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요왕 14:6)이며, 진리의 말씀이고 '은총과 진리가 가득 찬'(요왕 1:14)분입니다. 빌라도에게 “나 이를 위하여 탄생하여 세상에 옴은, 하여금 진리를 증거코자 함이니, 무릇 진리를 좇는 자는 다 내 말을 듣느니라.“(요왕 18:37)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향한 커다란 사랑을, 진리를,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은총과 거짓말은 결코 하지 않는 은총을 주십사 하고 주님께 기도 합시다. 실제로 우리 주님은 악마에 대해 말씀하시길,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였은 즉, 저에게 진리가 없음이요, 말을 하며 거짓말 하기를 본심으로조차 말하니, 제가 거짓말장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가 되느니라.“(요왕8:44) 두 개의 진영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를 택하고 악마와 맞서야 하고 진리의 길을 선택해야 하며 모든 거짓말을 피해야 합니다!

 성신(聖神)은”저 때에 너희가 내 이름을 의지하여 구하려니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성부께 전구하리라.“(요왕15:26) 이것은 지극히 진정한 증언입니다! “저 진리의 성신이 오시면 모든 진리를 너희게 가르쳐 주시리니,“(요왕16;13) 성신은 우리에게 “오직 우리는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할 것이며, 또한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안에로 사랑으로 말미암아 만사(萬事)에 있어 성장하여야 하느니라.“(에페소4;15)라고 가르칩니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항상 정결 가운데 진리를 행하셨으니, 그것은 그분이 온통 빛이요, 한 점의 티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사랑하도록, 실천하는 가운데 진리를 행하도록, 그리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진리를 묵상하게끔 성모님을 통하여 기도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