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성서복음의 권고; 청빈, 정결, 순명-성신강림 제13주일(2016-08-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16






세 가지 성서복음의 권고(성신강림 후 제13주일 2016-08-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번 주일기도에서, 우리는 신덕, 망덕, 그리고 애덕을 구합니다. 이 세 가지 덕행은 제 1계명의 목표이니, 금년 초에 1계명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교회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께서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이란 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데에 반드시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네 온전한 마음과 네 온전한 영신과 네 온전한 힘으로 네 주 천주를 사랑하라.“(말구12:30)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이 계명의 실천에 따른 세 가지 단계을 구별합니다. 실제로, 천주께서는 무한히 사랑스런 분이시기에, 인간이 더욱 더 천주님을 항상 사랑하려 애써도, 아무리 사랑하여도 부족함이 있어 보입니다. 진리란 바로 천주께서는 사랑스런 분이신 만큼 천주 홀로 천주님을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천주님의 선하심은 무한하시고 그러므로 오직 무한한 사랑만이 이를 충족될 수 있습니다. 오직 천주 홀로 무한히 사랑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천주님을 사랑할 때, 천주님을 기쁘게 하는 ‘경배의 희생’을 우리가 드릴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성인들은 ‘온 마음과 온 영신과 온 힘을 다하여’ 중단 없이 진정으로 천주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최고정점이며, 천주 안에서 성인들이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어찌하든 무한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니, 왜냐하면 성인들은 무한한 선 안에서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완전함은 우리가 최대한 천주님을 사랑하는 데에 있으며 그리고 이것은 서로 다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천주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 모든 대죄를 무엇이든지 절대적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대죄는 사랑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대죄는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선호하는 것이고, 피조물 안에 (돈, 쾌락, 권력 등)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에 두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천주님의 사랑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 생활의 첫 단계는 ‘연옥생활’이라 부르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우리가 모든 대죄를 절대적으로 피할 때, 그리고 과거의 죄를 배상할 때인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 단계를 포함하는데, 천주님을 사랑으로부터 기쁘게 하기 위하여 덕행의 실천에 좀 더 초점에 맞춥니다. 이것을 ‘빛의 생활’이라 부르니, 우리가 열심히 성 육신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를 점점 더 알고 사랑할 때 그렇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앞에 언급한 두 번째 단계를 포함하지만, 점점 더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을 둡니다. 각각 행동 안에 점점 사랑을 두고, 우리의 동기를 더 정화시킵니다. 천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고, 방법에 있어서도 천주님을 기쁘게 하며, 천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행합니다. 천주님과의 사랑과 일치는 삶의 주요 초점이 됩니다. 그래서 이를 ‘결합(일치)의 생활’이라 부르니,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최고 정점의 수준이며, 천주님과 ‘영적인 결혼’으로 이끕니다.


이것은 모든 것, 생활의 모든 방법으로 실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보다 밀접하게 따르고자 선택하여 세 가지 성서복음의 권고를 실천하는 데, 보다 낫고 빠르게 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완전함에 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이 사람들을 ‘수도사(修道士)’라 부릅니다. 수사, 수녀들입니다. 대개 그들은 자신들을 서원(誓願)으로써 세 가지 복음 권고를 실천하고자 묶고 있는데, 그것은 청빈, 정결, 그리고 순명입니다.


성서복음의 권고를 실천하는 것은, 심지어 더 높은 이유로 인하여 사제(와 모든 성직자)의 의무 입니다. 왜냐하면 사제들은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을 다시 재현한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를 제헌하고, 마치 주교가 서품을 주는 날 자신들에게 명령한 것 같이 ‘사제인 그들은 제헌한 분을 모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십자가 위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난해야 되며, 십자가 위에서 모든 쾌락으로부터 떼어낸 예수와 더불어 정결해야 하며, 그리고 그들은 십자가 위에서 순명하신 예수와 함께 순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좀 더 자세하게 이 세 가지 성서 복음의 권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천주께서는 인간에게 계명을 주셨는데, 이 모든 계명을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합니다. 얼마 전에 간략히 이 십계명들을 설명하였는데, 여러분들이 기억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주님의 모범과 가르침으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계명을 뛰어넘어 더 완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또 세 가지 권고를 주십니다. 이것이 이른 바 세 가지 복음 권고이니, 청빈의 권고, 정결의 권고 그리고 순명의 권고입니다.


첫째, 우리 주님은 청빈의 권고를 살았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가정을 택해 오셨고, 소박한 목수의 가장(家長)에서, 덕행으로는 충만하지만 세속적인 물건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으로는 부족해서인지, 그분은 심지어 더 가난한 배경,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도록 하였고, 그분이 마을을 방문했을 적에 나사렛의 바리세이들이 우리 주님을 멸시한 점을 지적했듯이 나사렛에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는 굴이 있고, 공중의 새는 깃들인 것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를 누일 곳이 없다.“(마테오8:20) 그리고 마침내 주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옷을 빼앗긴 적신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채로 죽으셨을 때, 그 죽음은 가장 낮고, 가장 가난하며, 노예와 같은 죽음이라 할 만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복음서에서 매우 분명하게 청빈(가난)을 권고하십니다. “너 만일 완전한 자 되고자 하거든, 가서 가진 바를 팔아 빈궁한 자에게 주라. 너 하늘에 보배를 얻으리니, 그제는 와서 나를 따르라.“(마테오19:21)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또 무엇을 입을꼬 걱정하지 마라.“(마테오6:31) 그리고 모든 이에게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義德)을 구하라.“(마테오6:33)라고 가르치시듯이 돈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만으로는 복음상의 권고를 완전히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부족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적극적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효과적인 분리(分離)를 권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고결(高潔)하게 따르는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전답과 가산을 팔아 각 사람에게 요긴한 대로 모든 이에게 나누어주고“(종도행전2:45) “그 중에 아무도 무엇이든 가진 바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아니하고 오직 모든 것을 공번되이 쓰더라.“(종도행전4:32)


저 권고는 수사와 수녀들에 의해 수세기 동안 지켜진 것입니다. 이들은 개인이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수도원이나 수녀원에서 모든 물건은 공동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은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모든 허영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풍요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삽니다. 그가 입소하기 전 누구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자였던, 또는 가난했던지 일단 수도원에 들어오면 공동으로 가난을 공유합니다.


성인들 가운데는 이 청빈의 사례를 매우 자세한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성 폴리우스 (St Paulinus)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기에 원로원 계급의 로마 귀족으로서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살았습니다. 이분은 보르도(Bordeaux)주교인 성 델피누스(St Delphinus)에 의해 회두하여 성세를 받고 그리고서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팔아 모든 그의 물건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리고서는 그와 그의 아내(성 데레사, 최초의 데레사)는 이태리에서 각기 수도원 생활을 했습니다. 후일 그분은 노라(Nola) 지역의 주교가 되었고, 야만인들에 의해 납치된 과부의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 노예로서 주교인 자기 자신조차 팔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현대 세상은 복음에서 가르치는 청빈, 부(富)로부터의 완벽한 분리라는 이러한 모범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부에 대한 사랑은 이 현대 세상에서 죄의 커다란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현대 기술로 부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과거에는 비할 데 없는 이 같은 세속 재물에 대한 갈증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청빈을 실천한 저들의 실천으로 수사, 수녀 그리고 성직자들은 물질을 능가하는 영적 사물에 대한 탁월한 가치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재물을 능가하는 영적 재물에 관한, 그리고 만들어진 물건을 능가하는 천주님의 선하신 영적 재물에 관한 많은 본보기를 주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동정이라는 정결의 권고를 실천하셨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주께서는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셨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의 유일한 사례입니다. 천주께서는 봉헌된 동정성에 대해서 천주님의 존중감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동정녀로 부터의 탄생이라는 이 위대한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세속적인 쾌락으로부터의 궁극적인 분리를 실천했습니다. 봉헌된 동정성은 구약에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자마자 필립(Philip)의 네 딸과 같은 많은 동정녀들 있었습니다.(종도행전21:8-9)


교회의 모든 전통(성전聖傳)과 더불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르치시길, 모든 간선(揀選)된 자들의 일반적인 보상을 뛰어넘어서 동정(童貞)을 지킨 이들에게, 치명자(致命者)들에게, 그리고 교회 박사들에게 주는 특별한 보상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성인들에게 주는 이 세 가지 종류는 저들의 특별한 공로에 대해 ‘왕관(면류관)’을 부여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St Maximilian Kolbe)에게 나타나셨을 때, 성모님은 그에게 하얀 왕관과 붉은 왕관, 즉 동정과 순교의 면류관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종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이 권고를 가르치셨습니다: “모친 태중에서부터 본디 고자로 난자 있고, 남의 손에 고자된 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된 자도 있느니 능히 알아들을 만한 자는 알아들을지어다.“(마테오19:12) 바오로 성인은 코린토인들에게 글을 쓰실 적에 ‘동정인 채로 남아있으라’(코린토 전7:26-27) 권고하면서 우리 주님의 이 위대한 가르침을 상기시킵니다. 이 권고에 대해 여러 가지 동기를 주십니다. 1/’육신의 시련’(코린토 전7:32)으로부터 나오고, 2/지나가는 세속물건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내며(코린토 전7:32), 3/세속의 염려로부터 벗어나며(코린토 전7:32) 4/천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아내가 없는 자는 어떻게 하면 주께 의합할까 하고 주의 일을 돌아보되….“(코린토 전7:32) 봉헌된 동정성은 “아무 지장(支障)도 없이 주를 봉시(奉侍)하게 하고자 함을“(코린토 전7:35)를 줍니다. 성인은 결론을 내리길, “혼인도 좋으나 혼인하지 않은 봉헌된 동정성은 더 낫다.“(코린토 전7:36-38) 하십니다.


이 가르침은 모든 성인들, 거룩한 교회박사들, 그리고 거룩한 교황들이 수세기를 거쳐 반복한 것입니다. 결혼은 좋으나 봉헌된 동정성은 더 낫습니다. 이단과 나쁜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거부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봉헌된 동정성에 대한 이러한 우월성을 인식하려는 것을 거부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시대의 신앙, 가톨릭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트렌트 공의회는 이 동정성을 신앙의 교리로서 정의했습니다:”만일 누가 결혼한 상태가 동정성이나 사제의 독신보다 낫다고 한다면, 그리고 혼인으로 일치된 것보다 동정성을 지키거나 사제의 독신을 유지하는 것이 더 못하거나 복된 것이 아니라 한다면, 그는 파문을 받을지어다.“(트렌트 공의회, 회기 24, 전문10)


예전보다 더 우리 현대 사회는 이러한 봉헌된 동정성에 대한 모범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세상은 온갖 불결함, 심지어 지극히 천하고 부패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에 푹 빠져 있으면서, 낙태와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로 이끌리고 있습니다. 성인들의 생애라는 그 모범으로 봉헌된 동정성은 이 부패한 세상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천주께서 수사와 수녀 그리고 훌륭한 사제들이 이 최고의 정결 상태를 실천하는 데에 도움을 주신다면, 주님은 그 얼마나 결혼한 신자들이 결혼 생활에서 충직하게 되도록 도와주실 것이고 그리고 또한 미혼의 젊은이들이 혼인 전에 자신들을 정결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니, 동정을 지키는 성인들이야말로 일반 신자들에게는 커다란 용기입니다. 실제로 동정성을 지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할 의향을 가진 이들뿐만 아니라 선하고 거룩하며 충직한 결혼을 위한 이들에게도 요구되는 준비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또한 순명의 권고를 실천하셨습니다. 아기로서 태어나도록 선택하셨으니, 어린 아이로서 순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마리아와 요셉, 즉 ‘부모님께 복종’했습니다.(루까2:51) 심지어 예루살렘에 계실 적에도 이는 천상에 계신 성부께 순명(順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의 모든 삶은 천주 성부께 순명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실제로 주님 이르시길, “나를 보내신 자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심은, 내가 그 즐겨 하시는 바를 항상 행함이로다.“(요왕8:29) 마지막 최고조에 이르러서는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며, 더구나 십자가상에 죽기까지라도 순명하심으로써.“(필립피2:8)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순명의 권고를 가르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일 나를 따르고자 하거든, 자기를 끊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루까9:23)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종도들이 우리 주님과 함께 한 방법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종도들과 함께 한 방법이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주교들과 함께 한 방법은 완전한 순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은 사막에서의 교부들의 실천으로, 그리고서 수도원과 수녀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언급하건대, 우리의 현 세상은 이러한 순명의 모범이 필요합니다. 실제 자기 의지, 에고이즘, 독립하려는 정신이 오늘날 너무 널리 퍼져서 많은 이들이 그 안에 있는 악을 못보고 있습니다. 현대세상은 모든 권위를 거부하고 궁극적으로는 천주님의 권위도 부인합니다. “나는 섬기지 않겠다.” “나는 순명하지 않겠다.”(예레미야2:220)라고 소리 지릅니다. 성화(聖化)에 있어서 이러한 자기중심적 생각보다 반대되는 것은 없습니다. 실제로 성화는 천주 중심의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입니다.


세 가지 성서복음의 권고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에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는 사랑의 완전성에 이르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이 장애물이란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서 옵니다. 이러한 사물에 대한 무절제한 사랑이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이러한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세 가지 복음상의 권고는 “주님의 계명의 길을 달려가서 그때에 주께서 마음을 확장하여“(성영118:32) 영혼을 자유롭게 합니다.


 그분은 부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모든 사물로부터 벗어나, 심지어 십자가 상에서 적신으로 조차 있지 않았나요? 십자가에서 못박힌 예수보다 더 정결하며 쾌락으로부터 분리된 자 누구인가요? 예수께서 “죽기까지 순명하사, 십자가 상에서 죽음에 이르기 조차”(필립피2:8) 순명한 자 누구인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한 희생제물로서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제헌하셨을 때, 이 세 가지 복음 권고라는 최고의 모범을 주셨기 때문에,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가 사제 (수도사) 생활의 핵심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모든 수사, 수녀 그리고 심지어 많은 사제들이 저들의 생명의 은총을 새롭게 하고, 저들이 추구하는 거룩함인 그 목적을 도달하려는 은총을 얻는 곳에 이 미사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분은 부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모든 사물로부터 벗어나, 심지어 십자가상에서 적신으로 조차 있지 않았나요? 십자가 위에서 예수보다 더 정결하며 쾌락으로부터 분리된 자 누구인가요? 예수께서 “죽기까지 순명하사, 십자가상에서 죽음에 이르기조차”(필립피2:8) 순명한 자 누구인가요?


전례개혁의 각본은 (현재의) 새미사가 이 희생적인 미사의 성격을 따로 제쳐놨다는 것입니다. 현대주의자들은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들은 희생이라는 생각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란 거의 모든 수도회 단체에 있어서 성소(聖召)의 끔찍한 감소를 초래했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전통 미사로 회귀하는 데에서 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소에 대한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많은 훌륭하고 거룩한 성소에 사제, 수사, 수녀들이 있게 되고 그들이 천주님의 영광과 저들 영혼의 구원과 교회와 많은 영혼들에게 커다란 유익을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이 세 가지 복음상의 권고를 실천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른 가장 위대한 모범, 이 세 가지 복음 권고를 실천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우리로 하여금 이 은총을 얻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