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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미사를 고발한다: 전통미사와 새미사의 차이점(2016-12-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12







새미사를 고발한다: 전통미사와 새미사의 차이점(2016-12-11)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세례자 성 요한은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니, 왜냐하면 그 성인에게 주어진 사명은 메시아는 ‘바로 이 분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요한이 사용한 말씀은 참으로 탁월한 것입니다. “보라, 천주의 고양(羔羊-어린 양)이시로다. 세상의 죄를 면하여 주시는 자시로다.”(요왕1:29)


양(羊)이란 말하자면 희생의 제물입니다. 주님의 희생으로 인해, 모든 인간을 위한 그분의 한 번 있은 십자가 희생으로 인하여 세상의 죄를 없애니, 이는 (우리 죄를 면하게 되는) 미사의 희생제사로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미사의 희생제사는 십자가의 희생제사와 분리되지 않고,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배가(倍加)하지도 않으니, 매번 드리는 미사는 트리덴틴 공의회에서 정의(定義)한대로 진정한 희생제사입니다. 이 위대한 신비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안에 계신) 바로 그 신비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직 하나의 몸, 그리고 각각 봉헌된 성체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이 몸을 배가하여 확대하지도 아니하고 축소시키지도 않습니다.


 이미 성 안드레아의 치명 기록에서 보면, “우리는 제대를 가지고 있다.”(헤브레야13:10)하신 그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날마다 내가 제헌하는 그 곳에 천주님께... 전능하시고 유일하시며 참 천주이신... 소의 몸이 아니고 양의 피도 아닌 오직 흠결이 없는 양이며, 살해당한 그 양, 그 양의 몸을 먹는다 것을 그들 모두가 믿게 될 때, 그들은 온전히 거하고 사는 것이다.“(성무일도11월30일자.lectio 5)


아주 초창기 당시의 교회 시대 때부터, 미사는 희생제사라고 성 교회는 가르쳐왔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미사를 ‘주님의 몸과 성혈을 제헌하는 희생제사’(enn. in ps 33:5)라 부릅니다. 그래서 성체는 일반적인 식사가 아니라 오히려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시듯이, ‘주님의 몸을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성혈을 나누는’(코린토 전10;16)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바로, “Ecce Agnus Dei -- 보라, 천주의 고양, 세상의 죄를 면하여 주는.. (요왕1:29)” 이라는 영성체 전의 이 말씀으로 사제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주는 것입니다. 영성체는 십자가 희생제사의 희생 제물이신 천주님의 어린 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을 먹는 것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실제현존을 믿지 않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구원의 참 희생제사로서 믿지 않으며, 또한 이를 제헌하는 사제의 특별한 권능을 믿지 않고, 성 변화, 말하자면 빵의 본질을 완전히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포도주의 본질을 완전히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성혈로 변하게 하는 성 변화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 개신교인들의 만찬 예배에서는 그저 (성 변화가 없는) 빵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며, 단지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의 희생만을 기억하고, 저들의 식사란 적절하게 서품 받지 못한 관리자가 주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은 미사에 관련된 세 가지 매우 중요한 교리, 실제현존, 진정하고도 화해의 희생제사가 미사라는 점, 그리고 적절하게 서품된 사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개신교인들은 믿지 않습니다. 


1960년대에 현대주의자들이 미사를 변화시킬 때, 그들은 6명의 개신교인들을 새미사를 준비한 준비 위원회에 초청하여서 그들이 참관자가 되게 하였고, 그 위원회가 끝날 무렵 개신교 목사들은 교황 바오로 6세와 다른 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6명의 개신교 목사들은 교황과 함께 맨 앞줄에 있었고, 반면에 가톨릭 회원들은 뒤에 섰습니다. 이 사진은 1970년 5월 3일 프랑스 주교들의 공식 기관지인 ‘Documentation Catholique’(가톨릭 기록집) 첫 장에 실렸습니다. 비록 개신교 목사들이 최종 결정문에 투표는 안했지만, 위원회의 다른 회원들과 자유롭게 토론하였으며, 그 개신교 목사들은 자신들이 (전통) 가톨릭 미사를 싫어한다는 점을 알렸습니다. 그 위원회 위원장인 부그니는 1965년 말하기를, 전례개혁의 목적은 ‘갈라져 나간 형제들을 위해 방해가 되는 걸림돌의 그림자조차도 제거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미사의 많은 전례에서 위에서 언급한 교리가 억압되거나 많이 축소되어 구현된 것은 그리 놀란 만한 것이 아닙니다. 




1960년대에 현대주의자들이 미사를 변화시킬 때, 그들은 6명의 개신교인들을 새미사를 준비한 준비 위원회에 초청하여서 그들이 참관자가 되게 하였고, 그 위원회가 끝날 무렵 개신교 목사들은 교황 바오로 6세와 다른 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예를 들어, 전통미사의 전문(全文)에서는 십자성호표시가 25번이지만, 새 미사에서는 오직 한번뿐이니, 이는 십자성호표시가 95% 제거된 것입니다! (전통미사에서) 왜 그리 많은 십자성호표시가 있나요? 왜냐하면 성호는 십자가의 희생제물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제가 “천주께 순수한 희생제물, 거룩한 희생제물, 하자 없는 희생제물을 드리오니..”라고 말할 적에, 사제는 그 희생제물을 알려주는 것이며 그 희생제물 위에 십자성호표시를 세 번 합니다. 이 모든 성호가 제거되었고 심지어 첫 번째 성체 기도에서도 제거되었습니다.


교회는 성체 안에 계신 실제현존을 믿기 때문에, 사제는 우리 주님을 경배하고 성체를 잡을 때마다 전후로 두 번 장궤(무릎꿇기)로서 이러한 흠숭지례를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전통미사에서는 장궤가 10번 있지만, 새미사에서는 만약 그들이 그대로 하고 있다면 오직 세 번하고 있는데, 이는 70%가 제거된 것입니다!


더욱 비통한 것은 제헌경의 본질이 훼손된 것입니다. 전통미사에서는 사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에 참여하는 가운데 제헌합니다. 새미사에서는 사제가 단지 빵과 포도주만을 드립니다. 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전통적으로 사제는 성반(聖盤)을 드리면서, “오 거룩하신 성부여,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이 흠 없는 희생제물을 받으소서.” 하는데, - 이는 단지 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뜻하는 것입니다 - “나 비록 불감한 네 종이오나, 너 생활하신 내 참 천주께 드리는바 이 조찰한 제물을 즐겨 받으소서. 이는 내 이왕 범한 무수한 죄와, 네 성의(聖意)를 거스른 많은 허물과, 네 계명을 소홀히 여긴 내 모든 죄를 깁기 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여기 두루 있는 모든 이를 위하며, 네 성 교회의 산 이와 죽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하여 드리는 바로소이다. 엎디어 비오니, 이로써 나와 저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얻기에 유익함이 되게 하소서. 아멘.”

그리고 성작을 드리면서 사제는, “오, 주여, 지극히 존엄하신 천주 대전(大殿)에 구원의 잔을 드리오며 네 너그러우심을 간구하오니, 이 잔으로 하여금 마치 아름다운 향내와 같이 네 엄위하신 대전에 사무치게 하시어, 우리와 및 보세만민(普世萬民)의 구령을 위하여 유익함이 되게 하소서. 아멘.”


그 순간 비록 성반에 빵과 성작에 포도주가 그대로 있지만 그 빵과 포도주가 곧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로 변화된다는 기대를 가짐으로써 교회가 이를 제헌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리로 가득 찬 이 아름다운 기도들이 지금의 새미사에서는 사라졌습니다. 두 개의 기도로 교체되었는데, 그 기도에서 새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은 지금 ‘지상의 과일이며 인간의 작품인 빵을 드리며‘ 라고 기도하니, 이는 ’지상의 과일이며 인간의 수공품인 빵과 포도주을 드리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말해봅시다: 만약 미사가 단지 빵과 포도주만을 드리는 것이라면 이는 값어치 없는 것입니다! 새미사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구약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합니다: “헤브레야 10장 1절에 따라 구약의 율법에 의한 희생제사는 그리스도 수난이라는 진정한 희생제사의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가올 좋은 것에 대해 그림자만을 갖는 계명은 그 사물의 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명의 완전성을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새 계명의 희생은 더 중대한 것이 있으니, 즉,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포함하여야 하는데, 이는 의미 또는 형체에서뿐만 아니라 바로 그 사실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희생제사의 목적은 구약에 있는 빵과 포도주와 같은 형체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로 그 몸과 성혈을 제헌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 낸 작품’ 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8번 나오는데 이것은 매번 우상(偶像)을 지명할 때 쓰인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값진 일입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들 이방인의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들의 수공품이니라.”(성영113:12) 최소한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우상을 지명할 때 사용하는 이 표현을 (천주께) 제헌하는 대상으로서 사용하는 것은 안 어울리는 것입니다.


개신교인들은 빵과 포도주를 제공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주님의 몸과 성혈의 희생제물’을 제헌합니다. 개신교인들은 십자가의 희생을 단지 기념이라고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제헌하는 것이니, 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아름답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에게 주심이요, 그리하여 교회는 주님과 함께 교회 자체를 드리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미사 말미(末尾)의 플라체앗 (‘placeat’) 기도 (역자 주: 천주성삼께 드리는 기도)는 제거되었습니다. 이 기도에서는: “천주성삼이여, 네 종의 행사(흠숭지례)를 네게 의합케 하시며, 나 부당한 자로서 네 엄위하신 (천주) 대전에 봉헌한 이 제사를 즐겨 받으사 하여금, 나와 내가 봉헌한 모든 이를 위하여 네 인자하심으로 용서하시고 유익하게 하시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소서. 아멘.” 이와 같은 기도를 없애는 것은 희생제사라는 진실을 다시 침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매우 중요한 변화는 손으로 하는 영성체입니다. 비록 신학적으로 오직 한 가지 예외적으로 허용되긴 하지만, 손으로 하는 영성체가 실제적으로 (오늘날) 모든 곳으로 퍼졌고, 때로는 강요되고 있습니다. 손으로 하는 영성체는 결코 전통적인 것이 아닙니다. 설령 교회 초창기 때에 (일부) 손으로 영성체를 했을지언정 교회가 우리에게 이를 전달한 것은 아닙니다. 왜요? 우리 주님의 실제현존이라는 굉장한 믿음을 가지고 행했기 때문에 교회는 성체를 경배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앙이란 혀로, 그리고 무릎을 꿇어 성체를 경배함에 있어서 분명히 드러난 신앙이었으며, 교회는 이를 우리에게 전승했습니다. 그들이 믿고 경배했기 때문에, 그리고 무릎을 꿇고 영성체 하면서, 실제현존이라는 신앙을 우리에게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약 내가 [성체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경배한다면 내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이고, 만약 내가 [성체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나는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체께 대한 경배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저들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그 후에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다시 도입한 자들은 이단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주의자들이 새미사를 준비할 때에 도대체 왜 6명의 (개신교) 이단자들을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는지, 이는 놀라운 것입니다! 손으로 하는 영성체의 도입은 수많은 영혼들을 신앙의 상실로 이끕니다. 신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많은 사제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주의 사제들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실제현존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사제들이 우리 주님을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저들이 매일 성체 안에 계신 주님께 대한 모든 존경심의 결핍 때문입니다. 손으로 하는 영성체는 신앙의 상실로 이끌며 그러므로 이를 절대적으로 피해야만 합니다. 저는 결코 손으로 영성체를 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흔히 남용되고 있는 또 다른 하나는 평신도, 심지어 여자까지도 성체를 분배하는 일입니다. 성 토마스 말씀하시길, 이 성사를 거행하는 것과 이를 분배하는 것은 같은 그 사람(사제)에게 속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사제의 손이 사제가 서품될 때에 전례의 일부로서 성유로 도유(塗油)되는 이유입니다. 진정 그러하니, 사제의 손은 그렇게 도유되고, 사제가 심히 아플 적에 신자처럼 안쪽 위에가 아니라 손의 바깥쪽 위에 아픈 이를 도유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제의 손 안쪽은 이미 도유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손가락, 엄지와 검지는 성체를 만지는 손가락이기 때문에 특별히 도유됩니다. 

오늘날 흔히 남용되는 것 또 하나는 복사를 서는 여자들입니다. 이러한 관습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니, 예전에는 절대적으로 시행된 적이 없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압력을 받아 시행한 1997년 그 이전까지는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제와 평신도 사의의 뚜렷한 경계를 흐려놓았습니다. 제대 아래에 있는 남자복사는 시종(侍從-복사)의 역할을 이행하는 것으로서 (차부제, 부제와 같은) 보다 작은 품(品), 즉 사제직으로 나가는 단계입니다. 천주께서 제정하심으로써 사제직이란 남성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2종도를 오직 남성으로만 간선하셨으니, 왜냐하면 십자가의 희생제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간의 신비로운 혼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의 우리 주님은 새로운 아담으로서 교회의 신랑이며 새 아담의 열린 옆구리에서 태어납니다. 교회의 발밑에 계신 성모님은 새로운 이브로서 온 교회를 나타내며 우리 주님은 성모님에게 성모님의 교회로서 사랑스런 종도들을 주시고 이 신비로운 혼인의 결실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역사에 걸쳐 나온 모든 사랑스런 종도들은 그분의 교회와 그리스도 간의 이 지극히 신비로운 결합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리하여 영생으로 들어가는 열매를 맺습니다!

전통미사와 새미사 사이에는 변화된 매우 많은 다른 항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은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리에서 가톨릭교회의 신앙을 구현하는 많은 기도와 행동들을 사라지게 합니다: 1/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실제 현존을 부인하게 하고, 2/미사가 주님의 몸과 성혈의 희생제사, 진정하고도 화해하는 희생제사라는 사실을 부인하며, 3/그 희생제사를 제헌할 진정으로 서품 받은 사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합니다. (미사의 희생제사를 거부하는 관계로 인하여) 제대석은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평신도들이 성체를 나눠주고 심지어 여자까지 나누어 줍니다. 성체(감실)은 흔히 중앙 제대에서 제거되어서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심지어 다른 방에 가 있는 비통한 사실도 있습니다. 기도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보속, 지옥, 금욕(고행) 그리고 세속 일을 멸시하는 것과 같은 그런 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성 토마스는 신앙에는 두 가지 행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계시된 진리에 대해 우리가 지킴으로써 그로인한 내적인 행동, 그리고 그 신앙을 우리가 고백함으로써 그로인한 외적인 행위이다. 바오로 성인은 “마음으로 믿어 의화(義化)될 것이요, 입으로 고백하여 구령(救靈)하리라.”(로마10;10)라고 합니다. 신앙고백에 관한 체계적인 감소는 미지근하고 연약한 상태로 이끌게 됩니다(la llae qu.53a.3) 이런 상태에서 사람은 스캔들(악한 표양)이 있는 경우 일어서질 못합니다. 그러면 그런 스캔들이 생기면, 많은 이들이 죄로 떨어지고 실제적으로 신앙을 잃게 되는데, 왜냐하면 저들이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사에서 복된 (성체) 성사에 대한 존경심의 결핍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연약함으로 이끌고 그리고서 저들이 커다란 스캔들에 대해 목격자가 되면 쉽게 “이는 중요한 게 아니야, 단지 빵에 불과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저렇게 말한다면, 그는 신앙을 잃게 됩니다! 이번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신앙을 잃고 있나요?


아닙니다. 새미사는 전통미사와 같지 않습니다.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오타비아니 추기경과 밧찌 추기경은 바오로 6세에게 다음의 글을 썼습니다: “새미사(the Norvus Ordo)는 트리덴틴 공의회(16세기) 22회기에서 공식화된 미사에 관한 가톨릭 신학으로부터 전체적으로나 세부적으로 둘 다 현저히 이탈하였다. 그 당시에 명확하게 규정된 전례의 전문(全文)은 (미사) 신비의 완전성에 대항한 이단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모든 시대의 신앙을 지키고자 한다면 모든 시대의 전례, 특히 모든 시대의 미사에서 나오는 저 엄숙한 신앙의 표현을 지켜야만 합니다. 가톨릭교회의 전통신앙과 충성하는 것, 교회의 전통적인 도덕, 성인들의 도덕률에 충성하는 것, 전통미사에 충성하는 것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분리하지 않고 지켜야 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서 계시어 충직하신 동정녀여, 우리 모두를 성 교회의 가장 위대한 보물인 전통전례미사의 거룩한 미사성제에 충직하게 남아있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언젠가 천국에서 영원히 이 미사의 열매를 누릴 합당한 자가 되게 도와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