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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님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되라(2016년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25












천주님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되라 (2016,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어린이들과 우리 모두의 축일인 크리스마스는 특히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게 되는 축일이니, 왜냐하면 “너희가 만일 귀화하여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테오18:3)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한하신 천주께서 어린 아이가 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작은 아이가 되어야 할까요? ”인간은 천주님의 모상에 따라 조성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또한 그 조물주의 길을 모방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천주본성의 선하심을 거울에 비추듯이, 우리 안에 반영이 되는 자연스럽고 실제적이며 매우 높은 존엄성이다. 이 존엄성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모든 인간이 타락한 첫 아담에 속한 것 같이,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두 번째 아담 안에서 다시 부활해야 함으로서, 우리는 매일 우리 구세주의 은총을 받는다.“(성 레오 대 교황)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어 아기 예수와 같이 작아질 때 우리는 다시 부활합니다.


천주께서는 우리 각자 모두를 포함하여 모든 사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모든 사물을 아십니다. 우리를 돌보시니, 전체적으로는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 모두를 돌보십니다. 그분께서 설계하신 것은 지극히 경이롭습니다. 천주님의 축복 안에서, 천주님의 모습을 직접 뵙게 되는 지복직관을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을 한참 벗어난 것이기에, 결코 우리가 그와 같은 완전성의 높이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는 그 높이로 우리 자신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려오셨고 그분이 가르치시길, 우리 자신을 낮춤으로써, 우리가 겸손함으로써 우리가 도달 할 수 있다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테오23:12)
 
왜 그리 됩니까? “천주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심일새니라.”(베드로 전5:5)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는 자, 교만한 자는 바보입니다. 진정 우리는 누군가요? 한낮 먼지에 불과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세기3;19) 천주님을 대면하는 지식은 심지어 가장 높이 있는 게루빔과 세라핌 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거니와, 이 또한 우리가 이런 천신 위에 도달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천주님은 분명하실 수 있으니, 왜냐하면 천주께는 능치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주께서는 전능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최고의 지복(至福) 수준으로 우리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께서 주님은 나의 “끌어올리심”이요, “엘리베이터”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팔 안에서 우리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기록되었으되, 나 지혜로운 자의 지혜를 멸하고, 슬기로운 자의 슬기를 없이 하리라. 하였음이리로다. 지자(智者)는 어디 있느냐? (유데아인의) 성서학자는 어디 있으며, 이 속세의 논객은 어디 있느냐? 천주 이 속세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내지 아니하셨는고? 대저 세속이 그 지혜로써 당신 상지(上智)를 나타내신 천주를 인식하지 못하매, 천주 어리석은 것으로 (여김을 받는) 설교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을 구원하고자 하셨느니라. 유데아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레시아인들은 지혜를 찾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전하노니, 이는 유데아인에게는 걸려 넘어짐이 되고, 외교인(外敎人)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는도다. 그러나 유데아인이나 외교인을 막론하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천주의 대능과 천주의 상지로 선전하느니라. 대저 천주의 편(便)의 어리석은 것은 사람의 것보다 지혜롭고, 천주의 편의 약한 것은 사람의 것보다 굳세니라.”(코린토 전1:19-25) 죄가 교만으로 인해 들어왔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겸손으로서, 구유 안에서 태어나시어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드리시는 겸손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위하여 세속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는 바를 천주 간선하셨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위하여 세속이 악하게 보는 바를 천주 간선하셨으며,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없게 하시기 위하여 세속이 비천하고 비열하게 보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는 바를 천주 간선하셨느니라. 너희는 저(천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니,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로 조차 오는 상지(上智)와 의화(義化)와 성화(聖化)와 구원(救援)이 되셨느니라.”(코린토 전 1;27-30) 갓 태어난 아기보다 약한 자가 누구인가요? 천신들이 목동들에게 “구세주 그리스도 너희를 위하여 오늘 다위 읍내에 탄생하시니라. ”(루까2:11) 전했듯이, “이 아기가 구세주요,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소박한 목자이며 내세울 것 없는 목수, 그리고 겸손한 배우자가 되신 바로 그 선택의 모습은 이러한 천주섭리를 분명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참으로 경이로운 것입니다. “예수 말씀하여 이르시되, <성부여, 천지의 주여, 너 박학하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미천한 자에게는 드러내셨으니, 네게 찬미하나이다. 성부여 그러하외다. 대개 이와 같이 네게 의합함이니라. 내 성부 내게 모든 것을 맡겨주셨으니, 성부 외에는 아무도 성자를 알지 못하고, 또 성자와 성자 즐겨 지시하여 주는 자 외에는 아무도 성부를 아는 자 없느니라>  <무릇 수고하는 자와 짐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나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는 내 멍에를 매며, 또 내 마음이 양선하고 겸손함을 내게 배우라. 이에 너희 영혼에 평안함을 얻으리라. 대개 내 멍에는 달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마테오 11:25-30)

소박한 영혼에게, 보잘 것없는 이들에게, 그리고 겸손한 이들에게 이러한 지극히 아름다운 신비를 드러내는 것은 성 삼위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데레사 성녀는 어린 아이 영성 안에서 모든 영적인 생활을 요약하였습니다. 가장 높은 덕행인 신덕, 망덕 그리고 애덕의 세 가지 복음상의 덕행은 참으로 천주님의 어린 아이들이 갖는 덕행이라 했습니다.

실제로 신덕은 어린 아이에게는 자연스럽습니다. 아이는 의문을 가지지 않고 아버지를 믿습니다. 어린 나이에 신앙으로 쉽게 배운 것을 그 아이가 ‘증명’ 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신앙으로 배웠지만 결코 입증할 수 없는 많은 진리도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모든 어른들은 원의 면적이 πR2임을 알지만, 몇 명의 사람들이 그걸 증명할 수 있을까요? “내가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믿기를 거부한다.”고 교만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방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해를 앞서갑니다! 그가 입증할 수 없다고 해서 배우길 거부한다면, 그는 결코 학습의 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신앙이란 천주께서 드러내신 말씀 앞에서 고개 숙이는 지성의 겸손입니다. 이것이 천주님 자녀가 가져야 할 덕행입니다.

아이는 아버지 안에서 희망과 신뢰를 갖습니다. 아이는 자기 힘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가 약하다는 것을 압니다. 아버지 품 안에 있을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지난 주에는 제가 (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바루(Kota Kinabalu)에 있었는데, 그 근처에 높이가 4000m가 넘는 거대한 산인 키나바루 산이 있고 이 산을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때때로 보듯이 아버지 어깨 위에 앉은 어린 아이는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함으로써 저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데에 두려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망덕의 덕행은 천주님의 도우심이 우리를 하늘로 인도한다는, 비록 그 목적이 분명히 우리 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천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는 우리의 신뢰로서 이루어지는 덕행입니다. 

저 망덕은 또한 유순함을 요구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반항하는 자녀는 아버지가 그 자녀를 데리고 가고자 하는 그곳에 도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지닌 반항은 멸망의 원인이 됩니다. 천주께 순명하는 것, 천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너무 어려워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말씀하시길, “천주님의 계명이란 불가능한 게 아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너의 힘으로)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은총을 구하라.” 하십니다. 기도는 실제로 천주님의 계명을 준행할 수 있는 은총을 얻습니다. 유순함은 또한 아이들이 갖는 덕행 안에 있습니다.

망덕은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신뢰를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국을 가고자 하는 바람이요, 갈망입니다. 참으로 천국은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향,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어떤 아이가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는가요? 

특히, 아이는 부모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초자연적인 생명 안에 있습니다. 자비는 주요 덕행이니, 이것은 심지어 가장 소박한 것을 변화시킵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아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그림은 그 자체로는 (솔직히) 진정한 아름다움은 없지만 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준 그 그림은 (그 그림에) 환한 큰 미소를 짓는 부모에게 주어지게 합니다. 그 웃음은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나 많은 감동을 주어 부모는 이 놀라운 그림에 대해 그 아이에게 큰 보상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작은 행동은 그 자체로는 매우 불완전하지만 천주께 사랑으로 드리는 그 행위는 큰 보상으로 변화시킵니다.

어린 아이 같은 영적 행위는 필수적으로 우리가 보잘것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겸손이라는 덕행의 실천입니다. 저 덕행이 우리를 천주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경배로 이끕니다. 그리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 이 경배를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의 위대한 인물, 천주님의 은총에 감동되어 이끌린 삼왕(동방박사)이 긴 여행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내년 1월 6일에 도착했습니다) 성서는 그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한 점을 큰 관심을 가지고 알려줍니다. “집에 들어가 영해와 그 모친 마리아를 만나 엎디어 영해께 조배하고, 그 보궤를 열어 영해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 예물을 그린 후....”(마테오2:11) 우리는 이런 세속적인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기 예수께 저런 보물을 뜻하는 우리 마음을,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기도와 고행을 드리면서 그분을 경배합니다.

“그들은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았다”함을 주목하십시오. 사람은 그분과 함께 하는 그분의 모친이신 마리아 없이 예수를 진정으로 찾을 수 없습니다. 두 분은 분리될 수 없거니와 지금은 예전보다 더 천국에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귀화하여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니라.”(마테오18:3) 어린 어린이처럼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머니가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를 아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모친을 주셨습니다: “네 어머니를 보아라.”(요한19:2)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영적인 어린이가 되는 필수적인 부분이요, 그것이 영혼구원에 매우 필요합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그래서 모든 것을 요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천주님의 아이에게는 자연스런 것입니다. 기도 자체가 겸손의 행위, 우리의 곤궁함, 영적인 가난함,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담긴 큰 미소인 어린 아이의 기도는 이로 인해 감동되시는 천주님을 진정 기쁘게 하는 것 아닌가요? (“나의 자녀들아 기도하거라, 내 아들이 감동되도록..” 하신 1871년 퐁맹(Pontmain) 성모님의 메시지)

또한 아이는 모든 것, 묵상, 천주님의 업적에서 이루어지는 경이로움을 보고자 합니다. 이 또한 천주님의 아이가 지니는 중요한 덕행입니다. 성모님과 성 요셉은 수년간 아기 예수를 묵상했습니다. 목동들, 삼왕들 역시 몇 시간 묵상으로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는 참으로 멋진 장면들이 있으니, 이 복된 시간은 우리가 묵상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고 이러한 묵상이 지복직관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신비 안에서 지금 보는 것을 다음 세상에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예수, 마리아, 그리고 요셉은 천주님의 눈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세속적인 재산, 위안, 부, 환영과 인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오히려 아주 가난하고, 위안도 전혀 없으며, 사람이 붐비는 여관에서조차 거부당하심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 가난하고 교육받지 않은 목동이나, 삼왕과 같은 이방인들이 환영하였습니다. 천주님은 천주님을 찾는 이 보잘 것없는 이들에 의해 발견되길 원하셨습니다. “너희는 야훼를 찾을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이사야55:6) 목동들과 삼왕들은 자기 길을 가야 했고 더 부자일수록 더 멀리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상이 있었으니, 그들은 천주님을 직접 찾았고, 그분이 바로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거룩하신 천신들이여,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 아이처럼 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성모님의 품 안에 계신 천주성자, 참 천주이자 참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받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