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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께 대한 경배와 예절을 다하라 - 1/실제현존(크리스마스 낮 미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25








성체께 대한 경배와 예절을 다하라-1/실제현존(크리스마스 낮 미사)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교리에 대해 공부를 계속하면서 우리는 지금 성체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바로 이 축일은 성체에 딱 들어맞습니다. 히브리 언어로 ‘베들레헴’이란 말은 ‘빵의 집’을 뜻합니다. 베드(Beth (‎בֵּ֥ית)는 집을 뜻하고, 레헴(lehem (לָֽחֶם)이란 빵을 뜻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에서 내려오신 빵(요왕:59)이십니다. 탄생하시자마자 복되신 모친은 주님을 ‘구유에 뉘시고’(루까2:7) 주님은 오셔서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먹힙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주님의 시작 생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빵의 집에 오시고, 시작 때부터 우리가 당신을 굶주려 하길 원하시듯이 그분은 구유 안에 누우십니다.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성사의 빵과 포도주의 질료(재료)로서 선택하사, 당신의 몸과 성혈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외양 속에 감추시니, 빵과 포도주는 우리 온 영혼의 양분, 이 성사의 열매를 나타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 또한 끝 날에 저를 부활케하리니,”(요왕6:55)

서기 250년경, 성 치프리아노는 우리 주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택하시어 당신의 몸과 성혈로 변화시켰음을 지적하였음이니, 왜냐하면 빵과 포도주 이 둘은 으깨진 많은 곡물로 되어서 반죽이 되고 술이 됩니다. 이는 성체가 그리스도의 수난의 열매이고 그리스도에 속한 모든 일원들은 일치의 필요성을 둘 다 아름답게 표시합니다. 밀과 포도라는 곡식은 완벽히 한 반죽과 술로 합쳐지고 이것이 변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이 되니,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몸 안에서 서로 완벽하게 일치되어야 합니다.

성 치프리아노는 가르치길, 천주님의 제정으로 인하여, 사제는 반드시 물 한 방울을 포도주에 떨어뜨려야 한다고 합니다. 성 유스티노는 이보다 일찍이 100년 전에 암시를 주었습니다. 이 물 한 방울은 우리를 의미합니다. 주님 안으로 우리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일치되어야만 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시듯이, “의자(양자)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로마8:16-17)

이 성체성사는 최후의 만찬 기간에 제정되었고 또한 성체가 우리 영혼의 음식임을 나타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우리 주님은 먼저 파스칼(유월절)의 양을 기념하시고, 그리하여 주께서 구약의 모습에서 신약의 실체로 옮겨지는, 구약의 그림자(콜로새 2:1, 헤브레야 8:5, 10:1)에서 신약의 실체로 오심을 보여주십니다.

참으로 이 성체성사는 너무 중요하여 구약에서 그림자(모습)에서 예고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희생 제물의 만나를 드리고 이 만나를 먹었으니, 만나는 많은 다른 모습, 이를 테면 천신이 엘리아에게 준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사는 단지 모습, 단지 상징에 불과했습니다. 구약의 성사들은 나타내고자 하는 실체를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바로 이러한 진리로 우리를 가르치니, 진리는 신약의 완전성에 속하는 것이고 신약의 성사는 성사가 의미하는 바로 그 실체를 담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구약의 파스칼의 양을 드리시고 빵을 집어 말씀하시니, “받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 그리고 잔을 들어 마시고 나서 종도들에게 주시고 이르시되, “너희는 받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저들에게 주며 가라사대, “너희는 다 이것을 마시라. 이는 새로 언약하는 내 피니, 많은 이를 위하여 죄 사하기로 흘릴 바니라.”(마테오26:26-28)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말씀이 있기 전에 어떤 이가 테이블에 있는 “이것이 무엇인가요?” 묻는다면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빵과 포도주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말씀이 있은 후에는, 만약 “이것이 무엇인가?” 묻게 되면, 유일한 참 대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 ‘이는 주님의 몸이요, 이것은 주님의 성혈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완전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성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성 변화(“transubstantiation”)라고 부릅니다. 즉, 빵의 본질에 대한 완전한 변화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성혈로 변합니다.

실제로 누군가가 “이게 뭐죠?” 묻고 나서 여러분이 “하얀 것이죠.” 라고 대답하면, 그 질문에 대해 진정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며, “둥근 거예요.” 라고 대답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작은 거예요.” 라고 대답해도 진짜 대답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이 얼마나 큰지, 색깔이 무엇인지 등등을 모르더라도 이것은 진정한 답변이 아닙니다. 사물의 본질은 그 질문, “이게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입니다. ‘사물의 색깔, 사물의 크기, 무게’ 등은 그 사물의 ’우유성‘(偶有性; ‘accidents’ - 사물이 본질적이거나 필연적인 원인이 없이, 일시적으로 우연히 가지게 된 성질)이라 부릅니다. 한 사물은 크기가 변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커집니다) 색깔이 변합니다.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또는 무게 등이 변하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사물의 본질과 사물의 ’우유성‘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성체 안에서 빵과 포도주의 전체적인 본질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능에 의하여 (비록 빵과 포도주의 ’우유성‘이 그대로 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의 본질로 변합니다. 이러한 ’우유성‘들은 우리의 감각으로 인해 도달될 수 있는 오직 외양적인 면에 불과합니다. 우리 주님은 천주님의 말씀이고, 모든 사물은 말씀으로 인해 조성되었고(요왕1:3), 전능하신 말씀에 있어서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루까1”37) 주님은 진리의 말씀입니다(요왕1:14, 14:6)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참이니, 진리이신 그분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천주님의 말씀은 사물을 (거짓이 아닌) 진짜로 만드십니다.

이것이 성체의 실제현존이라는 첫 번째 측면입니다. 축성 이후에 빵과 포도주의 외양 속에 숨어 있는 사실, 그곳에는 참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천주성이 함께 하는 주님의 몸과 성혈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체) 성사 안에 ‘숨어 있다’고 우리는 말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육안으로는 그분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신들은 천국에서 주님과 성인들을 보고 있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목동이나 성 요셉 심지어 복되신 동정 마리아조차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여느 다른 아기처럼 ‘비슷’하지만, (주님을 볼 수 있는) 천신들은 “지극히 높으신 곳에 계신 천주께 영광을, 땅에 사는 선한 사람들에게는 평화를” 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천신들이 목동들에게 전합니다. “오늘 그리스도 주님, 구세주께서 너희에게 태어나셨다”(루까2:11) 천신들은 아기가 구세주임을 볼 수 있었고, 또한 그 아기가 주님이신 그리스도임을 볼 수 있었으나, 목동, 성 요셉 그리고 성모님은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지금 볼 수 없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보지 않았던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복된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천국에 있는 천신들은 그리고 지금 성 요셉과 특히 성모님은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성사 안에 숨어 계신 예수는 우리 신앙에, 우리의 신앙 공로에 유익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왕20:29)

왜 교회는 예수님의 몸과 성혈과 영혼, 그리고 천주성이 그 면병 안에 계시다고 가르치나요?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몸은 그분의 성혈과 영혼과 천주성과 분리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명의 종도가 성 금요일과 부활절 사이인 성 토요일에 성체를 제헌했다면, 그리스도의 영혼이 그때에 주님의 몸에 떠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의 죽은 몸에서조차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천주성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신경(信經)에서 “그(천주성자)가 묻히시고...”라고 합니다. 또한 성체는 오직 그리스도의 몸과 천주성에 그리고 성작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성혈과 천주성만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 모든 것이 일치되고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체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즉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참 사람이자 참 천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성체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을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옛 신앙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사 안에 계신 예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성체를 경배하지 않는 한 이 몸을 누구도 먹지 않게 하라..... 그리고 우리가 경배하면 죄를 짓는 것이 아닐뿐더러, 경배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 저 경배를 드리는 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가장 가까이 다가갈 때, 즉 영성체의 순간인 것입니다. 삼왕이 “그 집에 들어가 영해와 그 모친 마리아를 만나 엎디어 영해께 조배”(마테오2:11)할 때,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주 지적하시기를, 전통미사의 전례법규가 사제에게 바로 제헌 그 안에서 경배를 명하는 데, 심지어 네 번이나 (장궤를 통하여) 경배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바로 그 말씀을 언급한 후에,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성혈로 변화됨으로써, 심지어 그 성체를 들어올리기 이전에 사제는 “반드시 장궤하고, 조배(경배)하며, 그리고 나서 서서 성체를 들어 올리고, 다시 장궤를 하고, 다시 경배를” 해야만 합니다. 성혈이 담긴 성작을 올릴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서 매번 사제가 축성된 면병을 잡고 전후로 장궤를 합니다. 전통미사에서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혀로 우리 주님을 받는 것이 요구됩니다. 현재의 새미사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없으니, 이는 참으로 비탄할 일입니다.

전례는 성사, 강복, 그리고 여러 의식에 대해서 지시사항(가르침)을 담은 책입니다. 전통 전례예식서는 아름답게 표현합니다:“종교적인 의식을 다루는데 있어서 그리고 모든 성사를 거룩한 방법으로 다룰 때는 소중하게, 그리고 진정으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데, 특히 성체성사를 관리하는데 더 그렇다. 실제로, 천주님의 교회는 이 성체성사만큼 더 가치 있는 것도, 더 거룩한 것도, 더 경탄해야 할 만한 것은 소유하고 있지 않으니, 왜냐하면 성체는 천주님의 가장 위대하고 지극히 중요한 선물,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은총과 거룩함의 바로 그 원천이자 저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톨릭교회의 신앙이고 우리가 경배해야 할 이유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의 본질로 바뀌는 이 경탄할 만한 변화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서품된 사제가 축성 기간에 행한 언어로서,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능에 의하여 사제가 그리스도가 되어, 즉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그리스도 자신의 행위로 일어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실제현존은 성체가 될 때까지도 계시고, 또한 빵과 포도주의 외양이 남아 있어도 계십니다. 빵과 포도주의 외양이 무너져 내릴 때,  - 적법하게 받아서 소화를 통해서나 또는 다른 매체, 물이나 불에 의해서 외양이 사라질 때 - 도 계십니다. 그리고 오직 그때서야 숨어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축성된 성체가 감실에 있을 적에, 예수께서 참으로 그 감실에 계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왜 감실이 교회의 주 제대 위에서, 경배 받을 합당할 정 중앙에 놓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니, 이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이 저 감실 안에 참으로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초점을 모이기 위해서입니다. 감실이 옆으로 치워져 놓이고 때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먼 장소에 있게 되는 것이 (오늘날 교회) 현대주의자들의 마음 안에 진정으로 무엇이 있는가를 표시하는, 즉 이는 예수께서 옆으로 제겨진 상태로 있는 것이요 더 이상 주님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저들의 표현인 것이니, 이는 스캔들(악한 표양)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교회에 들어가서 접객이신 천주님을 향해 경배의 표시를 하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습니다. 이는 전혀 올바른 게 아닙니다. 감실 안에 우리 주님의 현존은 붉은 등(燈)으로 표시되고, 붉은 등은 감실 옆에서 계속 타고 있으며, 이 감실 등(燈)의 표시는 “스승이 와 계시고 또 너를 부르신다.”(요왕11:28)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실제현존에 관련한 역사상의 많은 기적들이 있는데, 어떤 성체에서는 피가 흐르고, 란치아노 같은 곳에서는 성체가 실제 몸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 초기에 의학실험에서 진짜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시에나에서 축성된 성체 몇 개가 200년 이상 온전한 상태로 유지되어 왔는데 이는 빵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제가 란치아노와 시에나에 있었기에 이러한 성체들을 보았습니다. 몇몇 다른 기적에서는 어떤 도둑이 성체를 지하에 감추니 성체께서는 드러내고자 하는 빛을 발한 적도 있었고, 다른 기적에서는 성체가 남아있는 오직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만이 모든 것을 대부분 다 파괴한 불을 피하기 위하여 공중에 올려 졌습니다. 이러 저러한 모든 성체의 기적들은 이 ‘신앙의 기적’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강하게 하도록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이는 진정 믿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이는 내 몸이니라...이는 내 피니라.” 하신 바로 그 말씀에 의거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실 안에 마땅히 계신 성당에, 모든 신자들은 도착하자마자 주님께 무릎을 꿇고, 그분의 현존하심을 인정하며, 그리고 매번 신자들이 우리 주님 앞인 중앙 통로를 지나갈 때 마다 다시 무릎을 꿇는 것은 교회의 전통관습입니다. 여러분도 적절한 장궤의 예절, 바닥에 무릎이 닿는 그 예절에 최선을 다해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반쯤만 무릎 꿇고 서둘러서 행하는 것은 하지 마세요. 이는 우리 주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직 여러분이 늙게 되어서 일어나는 게 어렵거나, 그리고 몸이 불편하여 더 이상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할 때에만 적절한 예절인 장궤로 부터 면제를 받게 됩니다. 이 또한 무릎 꿇고 주님을 받는 영성체 할 때에도 해당됩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신자는 그렇게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할 수만 있다면, 훌륭한 자세의 장궤를 해야 합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죽을 때까지 훌륭한 장궤가 되는 은총을, 자기에게 주어지게 되는 그 은총을 요청하라고 하셨습니다.

1976년도에 제가 신학교에 도착(입학)했을 때, 나이 드신 바리엘 신부(Father Barielle)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다리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한쪽 다리가 완전히 불구였습니다. 정상적으로 완전히 장궤를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미사를 진행하면서 매번 축성한 후에 바닥에 무릎을 꿇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가까스로 제대에 기대면서 힘을 다했으니, 그분은 힘은 있었으나 몸이 무거웠으니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그 신부님에게는 그렇게 하는 게 자신에게도 유익했고, 연로하신 그 신부님이 그와 같은 장궤를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는 우리 모든 젊은 신학생들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귀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장궤를 할 때 완전히 무릎을 바닥에 닿게 했는가를, 진정으로 우리 주님께 가치가 있었는가를 살펴보세요.  

“복된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경배는 짧거나 길 수도 있습니다. 많은 성인들은 성사 안에 계신 우리 주님 앞에서 주님 앞에 있는 것을 기쁘게 받아드리면서, 주님께 마음을 열고 주님으로 자기 마음을 채우면서 몇 시간을, 심지어는 온 밤을 지샜습니다. 베들레헴과 나중에 나사렛의 성모님과 성 요셉처럼 그저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이것이 영생의 시작이며, 그곳이 천국에 계신 성인들이 천주 안에서 기뻐하는 곳입니다:”주님 안에서 기쁨을 느낄지어다. 그러면 너의 마음이 청하는 바를 너에게 주시리라.“(성영36:4) 성인들은 성영의 저자와 함께 주님께 말합니다:”내 살과 내 마음이 힘을 잃어도, 천주께서는 영원히 내 마음의 바위이시오, 나의 몫이시니라.“(성영:72:26,28) “주시여, 당신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되도소이다. 그들은 당신을 길이 찬미하나이다.“(성영83:5)

때때로 교회는 우리 주님께 더 큰 경배를 드리기 위해 일을 조직하여서 ‘성체행사’를 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성체는 매우 잘 꾸며진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에 놓여있고 많은 초와 향을 피워놓습니다. 어떤 다른 시대에는 교회가 훨씬 더 많은 경배를 드리기 위해 조직을 꾸리고 ‘성체행렬’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주님을 경배할 기회를 주고 성가와 현양(顯揚)으로써 주님께 증언을 합니다. 이러한 신심은 공의회 이전에는 매우 흔했으나 요즈음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성모님과 성 요셉의 가장 커다란 보물이듯이, 성체성사는 교회의 가장 큰 보물입니다. 그분들의 집은 교회의 모습이요, ‘천주님의 집이자 천국의 문’(창세기28:17)입니다. “너 (그리고 모든 사람이) 만일 천주를 알고“(요왕4:10) 그리고 감실 안에 거하시는 분은 누구이신지 알면, 우리 모두는 그곳에 모여 주님의 현존 안에서 우리가 기쁨을 취할 것입니다. 우리의 무가치함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들어오니, 그래서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조찰하게 하시고 필요한 통회를 주십니다. 우리의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들어오니, 전능하신 주님에 의해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바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오니, 왜냐하면 주님과 함께 보낸 그 짧은 시간이 모든 우리의 세속 활동보다도 영원을 위해 훨씬 더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게 더음으로 주시리라.“(마테오6:33) 그리고 우리는 복된 성사 안에서 천국의 바로 그 왕이자 모든 정의의 저자이신 분을 소유합니다.

복되신 마리아와 성 요셉이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 안에서 당신들의 신앙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현존에 대한 당신들의 사랑을 주사, 그리하여 어느 날 우리가 천국에서 성사의 베일이 없이 주님의 얼굴을 직접 뵙는 복락을 얻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