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영성체를 어떻게 받아야 하나? -거룩한 성체:3/영성체 (2017-01-1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1-17










영성체를 어떻게 받아야  하나? - 삼왕내조 후 제 2주일(2017-01-15)


거룩한 성체: 3/영성체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로서 참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계시다는 것과 미사가 교회의 가징 큰 보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체의 질료로써 빵과 포도주를 택하시어 이를 당신의 몸과 성혈로 변화시키시고, 그분의 희생제물이 우리 제대 위에서 이루어지게 하시고, 매 미사 때마다 성부께 이를 제헌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장 완벽한 희생제물인 주님의 몸과 성혈을 진정으로 먹도록, 그리고 그럼으로써 다음과 같이 가능한 한 가장 완벽하게 주님과 일치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영성체는 희생제물의 열매, 십자가의 생명의 나무열매입니다. 잘 준비는 영성체는 틀림없이 미사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성세가 영적생활의 시작,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는 성사인지라 새로운 탄생에 비유하는 것처럼, 성체는 영적생활의 목적(끝)이며 최후의 완전함을 이루는 성사이니, 이 성체는 참 천주이자 참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 안에서 존재합니다. 영성체를 하기 위하여 완전해져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영성체가 우리를 완전함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감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수단입니다.


우리는 완전함을 지향할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길,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완전하심과 같이, 그러므로 너희도 완전하라.”(마테오5:48)하십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기뻐하며 완전한 자 되도록 노력하며 서로 격려할지어다. 일심협력하여 평화를 보전하라. 이에 사랑과 평화의 천주 너희와 한가지로 계시리라.”(코린토 후13:11) 천주님의 가장 큰 계명인 제 1계명은 완전함에 관한 계명입니다. “네 온전한 마음과 네 온전한 영신과 네 온전한 힘으로 네 주 천주를 사랑하라.”(말구12:30)


완전한 사랑은 완전한 마음의 일치에 있고, 천주님과 함께합니다. 성 요한 이르길, “천주는 사랑이시니라. (그런즉) 사랑에 머무르는 자는 천주 안에 머무르며 천주 또한 저 안에 머무르시니라.”(요안1 서 4:16) 그리고 이것은 성체의 열매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게 거하고 나도 저에게 거하며.”(요왕 6:57)
 
영성체를 충분히 은총받기 위해서는 훌륭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가장 첫 번째 조건은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입니다. 영성체를 받기위해서는 은총상태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성사이기에 은총상태가 요구됩니다. 만약 은총 상태가 아니라면, 처음으로 성세를 받는다거나, 또는 성세 이후에 대죄에 빠졌다면, 그는 고해성사를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죄의 상태에서 성체를 받아서도 안 되지만, 절대로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영성체를 한다면 이는 심각한 신성모독이 됩니다. 이와 같은 신성모독은 천주님의 지극히 커다란 선물을 남용하여 그 마음이 진리와 선에 대해 장님이 되게 하고, 그래서 영혼과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저주에 이르게 합니다. 반대로, 만약 죄인이 우리 주님에 대해 충분한 신앙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면, 성체 받음을 조심스러워하고 그런 존중심이 그로 하여금 진정한 통회의 은총을 얻게 하여 훌륭한 고해로 이끌어서 그러고 난 다음 – 오직 그때서야 비로소 – 성체의 열매를 온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매 미사 때에 참으로 많은 이들이 영성체하는 것을 볼 때, 거의 대부분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참으로 경악하고도 소름끼칠 악한 공동고해라는 것을 합니다. 수년간 고해성사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성체를 받으러 다가갑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러한 신성모독에 관하여 매우 분명히 말씀하시길, “주의 몸을 분별치 않고 먹고 마시는 자는, 그 먹고 마심으로써 천주의 심판을 스스로 당하게 하는 것임이니라.”(코린토 전 11:29) 그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면병을 먹거나 주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되리라.”(코린토 전 11:27) 저 문맥에서 ‘심판’은 파문(저주)를 뜻합니다. 성서의 이러한 구절들은 새미사에서는 더 이상 읽혀지지 않습니다. 저 현대주의자들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바오로 성인의 이 서간 마지막 세 줄을 삭제하고, 26절 독서를 중지시키며, 성체성사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하심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바로 그 세 줄을 생략하였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올바른 지향’이니, 모든 이들처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영성생활에서 더 강해지기 위하여, 그리고 점점 더 우리 주님과 일치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비록 매우 유용하지만 마음으로서 그런 ‘실제‘적 의도라면 족한 것이고, 그와 같은 의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만일 여러분이 이와 같은 의향을 새롭게 갱신하지 않으면 혹시나 양심상 (꺼리낌)으로 성체를 피할까 해서입니다. 천주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습관화된 지향이 많을수록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섞이는 경우가 있지만 세속적인 동기를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요구되는 것은 성체를 영하기 위한 금식(공복)입니다. 교회의 옛 관습은 영성체 전 자정부터 금식하는 것입니다. 일의 스케줄로 인해 어떤 사람은 이른 아침 미사에 참례하는 것을 막게 되는 현 시대에서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비오 12세 교황은 저녁 미사를 허용했으며, 그리고 이 저녁 미사에서도 영성체하도록 독려하기 위하여 어떠한 딱딱한 음식과 알콜 음료에서는 ‘3시간 공심재’, 그리고 물이 아닌 다른 음료의 경우는 1시간 공심재를 정했습니다.  - 물은 금식규정을 깨트리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 (치료) 약은 공심재와는 관련 없습니다. 말씀드리건대, ‘영양제’는 약이라기보다는 음식에 해당되며, 그래서 약 모양의 캡슐에 담긴 영양제일지라도 공심재를 깨트리게 됩니다.


자주 영성체를 하라는 교령에서 성 비오 10세 교황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조건이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은총 상태에 있을 것, 올바른 지향, 그리고 공심재입니다. 그러나 더 알아야 할 것은  영성체를 준비 잘하면 할수록 받는 은총도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총의 양은 한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체성사에는 바로 은총의 저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왔도다.”(요왕1;1) 영성체를 즉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미사의 전체적인 전례의식은 영혼을 합당한 준비로 이끌게 합니다. 예수를 매우 목말라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 마음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훌륭한 준비가 되도록 교회의 기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즉각적인 준비의 본질은 신앙과 자비의 행위 안에 있습니다. 복된 성사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분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성영(聖詠)의 저자가 노래했듯이 주님은 천신들의 음식입니다:“천신들의 빵을 사람이 먹었으니,”(성영77:25) 거룩한 천신들은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로 그 천주성을 봅니다. 천신들은 이 천주님의 진리로 빛나며 이 생명으로 인해 삽니다. 그리고 천주님의 영원하신 말씀이신 이 예수는 우리의 구령(救靈)을 위해 육신(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성혈, 영혼 그리고 천주성이 결합된 그분의 바로 그 몸을,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십니다. 지혜서는 천주님의 이 관대함을 노래합니다.“주님의 백성들을 천신의 양식으로 먹여 살리셨도다. 주께서 미리 준비하신 빵들을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꾸준히 보내셨도다. 그 빵을 참으로 맛있고 누구에게나 맛있도다.”(지혜서 16:20) “나는 하늘로조차 내려온 생활한 떡이로다. 누 만일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요, 또 세인(世人)을 살리기 위하여 내가 줄 바 이 떡은 곧 내 살이니라.”(요왕 6:51-52)


영성체는 진정으로 우리의 모든 거룩한 소망과 요구를 가져오는 순간이니,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마테오:7:7)라는 것보다 더한 순간입니다. 유일한 독생성자를 주신 천주님은 주님과 함께 모든 은총을 여러분께 주실 것입니다:“당신의 친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붙여 주신 자이시니, 어찌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을 저와 함께 주시지 않으리요?”(로마8:32) 이 순간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반가운 모든 이들,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모든 이들, 교회가 필요한 모든 이와 죄인들의 회두를 청하는 시간입니다. 세속적인 것을 요청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단지 세속적인 것만을 요청해서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잘못됩니다. 우선적으로 영적인 유익, 덕행, 유혹을 이기는 승리, 신심 그리고 천주님과 우리를 진정으로 묶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청원은 영성체 전후에 이룰 수 있습니다. 


영성체의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르시길, “우선 이 성체를 경배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 몸을 먹어서는 안 된다. ....경배하면 죄를 짓는 것이 아니요, 만일 경배하지 않는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아주 초창기 때부터 신자들은 영성체 순간에 우리 주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영성체 때에 무릎을 꿇고 혀로 모시는 것이 로마식 미사전례에서 전통적으로 이를 행하였습니다. 설령 내적인 신앙과 경배를 한다 하더라도 손으로 받는 영성체는 많은 영혼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스캔들이 되고 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그리고 교회가 그분과 함께 가르친 것처럼 손으로 받는 그 사람은 그리스도께 드려야 하는 외적인 경배를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 야고보 이르시길, “천주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주시니라.”(야보고4:6) 하신 것처럼 영성체를 모시는 전통적인 방법은 은총을, 우리 주님께로 영혼을 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와 반면에, 손으로 받는 현대의 영성체 방식에서는 너무나 많은 존경심의 결핍을 드러낸 것으로서 이는 은총의 문과 영혼을 닫는 것이요, 신학자들이 말하는 은총의 장애물인 ‘obex’(빗장, 장애물)입니다.


영성체를 즉각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영성체 후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받고 난 후, 성찰과 묵상 그리고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날 가운데, 그 주간, 그리고 우리의 온 생애 가운데 참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영성체 한 후에 서둘러 교회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미사 끝나기 전에 나가서도 안 됩니다. 이는 심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적절하고도 값진 감사의 기도로 그 시간을 써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15분 정도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사 후에도, 그리고 그날 온 종일 감사의 기도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천주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습니다! 어찌 우리가 천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교도처럼 살 수 있나요? 불가능한 겁니다! 앞으로도 더더욱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주님에 가치가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처럼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내 안에 살으심이니라.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삶은, 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스스로 희생되신 천주의 아들께 대한 신앙 안에 사는 것이니라.”(갈라타2:20)  “내게 관하여서는 사는 것은 그리스도시오, 죽는 것은 이익이니라.”(필립피1:21)

영성체에 대한 가장 뛰어난 모범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참으로, 성모님의 지극히 조찰한 태중에서 9개월간 거하셨던 같은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는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사, 우리 안에 거하셨다”(요왕1:14)했을 때,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 그리고 천주성을 받은 것입니다. 성모님은 최초의 살아있는 감실이 되셨습니다. 참 신앙, 진정한 신심, 참 겸손, 그리고 진정으로 강렬한 사랑으로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받았고 태중에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성모님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에 대한 성모님의 애정을 무엇이었을까요? 성모님을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더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덕행을 성모님께 요청합시다. 성모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되게 하고 성모님이 주님께 드렸던 모든 신앙과 경배를 주님께 드리도록 합시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성체를 자주 모시는 옛 관습을 회복시켰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옛 관습이요, 특히 서방교회에서 그러했으니, 매일 미사를 참례하고 영성체를 모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참으로 성부께 우리가 요청하는 우리의 ‘매일의 초실제적인 빵’이시요, 성 마테오 이르시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마테오6:11)하시니, 이는 세속적인 빵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에서 내려온 빵’(요왕 6:59)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몸입니다. 전통적으로 신자들은 하루에 한 번만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더 성체를 받도록 허용하는 현대의 관습은 미사는 단지 식사에 불과하고, 먹지 않는다면 그는 식사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현대주의자들의 관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이 미사 때마다 성체를 받도록 하게 합니다. 그러나 미사는 본질적으로 희생제사, 신약의 제사입니다. 구약에서 어떤 희생제사에서는 그 희생제물을 먹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희생제사에서는 그렇지 못했으나 그가 참례한 신심으로 인하여 저 희생제사의 오는 온전한 은총을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영성체는 특히 삶의 끝 날에 매우 중요하니, 영원한 성체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죽어가는 이에게 주어지는 저 영성체는 ‘거룩한 노자성체’라 부르며, 우리는 그것을 요청해야 하고 그 노자성체를 받을 은총을 기구해야 합니다. 신자가 아파서 교회에 못나올 때는 사제를 오도록 청하여 사제가 성체성사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그 환자에게 주도록 해야 합니다. 영성체는 아플 때 아주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특히 우리 주님과 함께 우리의 고통을 일치시켜 달라 요청하여서 그 고통이 은총의 원천으로 변하게 할 때 그렇습니다.


영성체는 아이들이 우리 주님을 받을만하면 바로 아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아이들이 성체와 일반 음식의 차이점을 알도록 요청합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인 교리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지체 없이 교육을 잘 받는다면, 7세가 되었을 때도, 심지어 더 이른 아이에도 아이들은 예수님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례의 경우에서 보게 되면, 오늘날 이루어지는 교리교육에는 너무나 많은 퇴보가 있으니, 첫 영성체가 9살, 심지어 10살이 되기까지도 미루어지고 있습니다. 훌륭한 부모는 교리공부에 있어서 자녀들의 초기교육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주는 성체의 커다란 혜택을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실패 없이 승리로써 청소년기의 시련을 통과하도록 이 커다란 성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흔히 성체성사에서 예수님을 향한 어린 시절의 사랑은 성소(聖召)의 은총을 가져옵니다. 어린이에게 첫 영성체를 준비시키는 데에 태만한 것은 죄가 됩니다.


성인들은 성체를 사랑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있어서 그날 중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고 이를 갈망하면서 이로부터 사셨습니다. 영성체 후의 성인들의 묵상은 때때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후에도 감사의 기도를 계속 드렸던 성 도미니코 사비오(St Domini Savo)는 우리 주님에게 너무나 애착이 되어서 다른 모든 것을 완전히 망각할 정도였습니다. 성 이멜다(St Imelda)는 영성체 후에 그 사랑으로 인해 죽은 분입니다.  


복되신 동정녀와 모든 성인들이여, 우리를 도우사, 우리가 이 놀라운 성사를 준비하도록, 그리고 이로 인해 살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천국에서 얼굴을 대면하는 영원한 성체에 이르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