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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칠순절, 육순절 그리고 오순절과 십자가의 언어- 오순주일(2017-2-2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3-10








칠순절, 육순절 그리고 오순절과 십자가의 언어 - 오순주일(2017 .2. 26)


성비오10세회 성모무염시태 성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2017년 2월 26일 오순주일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미사 직후에 작은 성체강복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왜냐하면  올 성회례 수요일은 3월 1일이요, 재의 수요일로 이 날부터 사순절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천주교회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이 지은 큰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40시간, 밤새도록 성체강복을 하는데 이것은 카니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40시간 동안 할 수 없지만 조금의 시간이라도 성체강복을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재(성회례)의 수요일은 만21세부터 만 59세까지 세례를 받은 모든 건강한 사람들은 대재(大齋- 3끼의 식사 중 1끼 금함)와 소재(小齋- 육식을 금함)를 지켜야 합니다. 옛날에는 사순절 40일 동안 계속 대소재를 지켰지만 지금은 두 번 밖에 없습니다.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의 수요일에 대, 소재를 거룩히 지킵시다. 현재 교회법은 만14세부터 죽을때까지 소재( 매주 금요일 육식을 금함)를 지켜야 합니다.다.



“주여 나로 하여금 보게 하여 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사랑하올 형제여러분!
새미사에서는 칠순주일, 육순주일, 오순주일이 없습니다. 에큐메니즘을 해야 함으로 개신교에서 없기 때문에 바로 사순절로 들어갑니다. 개신교의 사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할 것이 없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기도만 하면 된다.” 고 합니다. 그러므로 개신교에서는 이 시기에 해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교의 사순절은 “이제야말로 우리가 예수님과 합하여 , 예수님을 위하여 사랑과 고통을바칠 수 있다.”고 하는 귀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워밍업 없이, 준비없이 갑자기 ‘그렇게 하라. 42Km의 마라톤을 하라’ 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 해도, 김연아 선수라도 준비 없이는 못 할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이런 우리의 처지를 잘 알기 때문에, 우리가 사순절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세 주일을 만들고, “자 준비하셔요, 칠순절입니다. 육순절입니다. 오순절입니다. 3월 1일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자, 여기 스타트 라인이 있습니다. 준비하시고 시작’ 그렇게 순차적으로 워밍업을 시켜 우리가 사순절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합니다. 세 주일동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경고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준비시킵니다.


오늘은 오순주일로 그 마지막 주일이요, 3일 후면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마지막 코치로, 어머니로서 ‘아들아, 딸아 내가 말한다. 너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해서 천주교회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지, 무엇인지, 그 핵심을 잘 이해합시다. 또한 인정합시다. 우리가 거룩함과는 너무 멀다는 것을, 그리고 결론으로 어떤 결심을 세워야 하는지 묵상합시다.


천주교회는 사순절에 출전하는 선수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이다.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 고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말씀합니다. “인자, 장차 외교인에게 압송하여 조롱함과 편태함과 침 뱉음을 받고 또 편태함을 받고 죽임을 받아 제 삼일에 부활하리라.”


우리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입니다. '그리스도 수난의 가치'입니다. 그러므로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욕과 고통을 받으시며, 우리를 위해 어떻게 부활하시는지  생각합시다. 그리고 사랑의 표징인 수난에 대해 예수님과 함께 묵상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복음에서 예언하십니다. 하지만 종도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조금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이르시는 뜻을 이해하지 못함”이기 때문입니다.


해설에 따르면 첫째, 종도들은 아직 유데아교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단지 상상으로  꿈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지상에서 영광스런 왕이 되시고, 지상에서 부를 가지며, 원수에게 복수하고 승리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상의 왕국은 고통도 슬픔도 가난도 없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냥 행복한 세상을 만드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도들은 예수님을 따르면, 아마 자신들에게 가장 높은 지위를 주실 것이고, 고통도 없고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왕이 되실 분이 왜 그렇게 고통을 받으셔야 하는지 종도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순절 직전에 십자가의 언어로써 “인자 장차 외교인에게 압송하여 조롱함과 편태함과 침 뱉음을 받고 또 편태함을 받고 죽임을 받아 제 삼일에 부활하리라.” 고 예언하셔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둘째는, 물론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다 이해합니다, 종도들은 그때 유데아적인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 받으셔야만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합니다. 왜 이해하지 못합니까? 당연히 우리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반성한다면 진짜 우리가 그럴까요? 우리도 오늘 복음의 종도들과 같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만약, 우리에게 조그만 부정의라도 있으면 화가 나서, ‘내가 어떤 나쁜 것을 했느냐? 인권위원회에 고소하겠다. 재판하겠다. 왜 천주께서 그런 것을 나에게 허락하느냐? 천주께서 어디 계시느냐?’ 조그만한 고통에도 화가 나서 실망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머리로는 고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만  실체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 형제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천주의 지혜가 아닙니다. 천주의 지혜는 우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고통을 수단으로써 쓰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유데인에게는 악표요, 이교도에게는 바보짓이지만 천주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천주의 지혜요, 천주의 힘입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씨지의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성 프란체스코의 체험담 같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성 프란체스코와 수사 레오 형제는 페르시아에서 천신들의 마리아 수도원까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춥고, 배도 고파서 매우 지치고 힘든 상태였습니다. 레오형제가 앞서가고 성 프란체스코는 뒤 따라 갑니다. 아마 성 프란체스코는 나이가 많아 같이 가기가 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 프란체스코는 앞서가는 레오 형제에게 오늘 서간경과 똑같은 말씀을 합니다. “레오 형제여! 만약에 우리 작은 형제들이 천신의 말씀을 다 이해하고, 모든 학문을 잘 알고, 성경을 잘 설명할 수 있고, 기적으로써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있고, 훌륭한 수도회라고 찬미 받는다해도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또 얼마 후 “레오 형제여! 만약에 우리가 동식물의 비밀, 우주의 비밀을 다 알고, 과학적으로 얼마나 진보해도 아무것도 아니며 참된 기쁨이 될 수 없다.” 물론, 성 프란체스코는 천주께 사랑을 가지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 프란체스코는 또 말씀합니다. “만약에 우리 작은 형제회가 기적으로써 병자를 다 고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다 주어도 참된 기쁨이 아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랑으로 몸을 다 태워도, 우리가 기적으로써 죽은 자를 소생시켜도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에 우리 형제가 세상으로 나가서 이슬람교도를 회개시키고, 러시아 공산주의를 다 회두시켜도 참된 기쁨이 아니다.”


마침내, 레오 형제가 질문합니다. “아버지, 그러면 참된 기쁨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 프란체스코가 답하시길 “ 만약 우리가 드디어 천신들의 마리아 수도원에 도착해서 수도원 문지기에게 ‘우리는 너무 춥고 배가 고픕니다. 도와 주셔요. 먹을 것을 좀 주셔요. '라고 하면 그 문지기가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며 받아 주지 않고 '가라'고 내칠 때, 그것을 견디고 오히려 천주께 감사하고 겸손되이 받아들인다면 이것이야 말로 참된 기쁨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통을 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첫째, 참된 천주교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를 긍련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여 주소서! ' 우리가 만약에 고통과 희생을 받게 될 경우, '이것이야말로 보배로운 귀한 기회다.'라고 생각하며 쉽고 즐겁게 기도와 희생을 바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견딜 수 있도록, 부정의와 욕, 고통을 다 바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사랑하면서 바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나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도움을 구합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경처럼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로 하여금 보게 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합시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 사람처럼 영적인 사실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모님이 100년 전 1917년 7월 13일 하신 말씀을 묵상합시다. 왜냐하면 이 작은 말씀 속에 오늘 복음 말씀과 서간경의 내용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말씀하시길 “죄인들을 위하여 너희 자신들을 희생으로 바쳐라. 그리고 자주 특히 어떤 희생을 바칠 때마다 이 기도를 바치도록 해라. ‘오, 예수여! 이 희생을 드림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함이요. 하자 없으신 성모님의 성심을 상해드린 것에 대한 보속이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함이니라.’”


“주여 나로 하여금 보게 하여 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