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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품성사와 사제의 의무 - 부활 후 제 4주일(2017-05-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5-15




신품성사와 사제의 의무 - 부활 후 제 4주일(2017-05-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께서 “나 지금 나를 보내신 자에게로 돌아가되“(요왕16:5)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을 성부께서 보내신 분으로 많이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마치 성부(聖父) 나를 보내심 같이 나 또한 너희를 보내노라.“(요왕20:21)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로부터 받은 같은 임무, 영혼을 구원하려는 사명을 가지고서 당신의 종도를 보냈습니다: “저 자기 백성을 그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라.“(마테오1;21) 이것이 바로 왜 주님께서 자신의 종도들을 사제와 심지어 주교로 서품하셨는지 그 이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종도들을 곧바로 사제로 삼으시고, 저들을 보내시어 주님의 구속사업의 많은 열매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품성사에 관해 연구하면서 성사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자 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첫 다섯 개의 성사(聖事)들은 교회에서 각 개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마지막 두 개(신품성사와 혼인성사)는 교회의 공동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한 사회를 이루는 데에 있어서는 권위가 필요하고, 그래서 권위가 있는 사회는 훌륭한 질서 안에 있게 됩니다. 바오로 성인은 에페소에서 모인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며, 또한 모든 무리를 위하여 조심하라. 성신이 너희를 모든 무리 중에 감목(주교)으로 세우사, 천주 당신 성혈로써 세우신 성 교회를 다스리게 하셨느니라.“(종도행전20:28) 그리고 각 개인의 주교들 위에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 형제들을 견고케“(루까22:32) 하기 위하여 베드로와 베드로의 계승자들을 특별한 권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천주께서 주신 권위, 우리 주님께서 교황, 주교, 그리고 저들의 협력자인 사제들과 저들의 조력자들인 부제와 여러 거룩한 단계의 신품(神品)에 권위를 주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 권위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무릇 어떠한 대사제(고위 성직자)를 물론하고 그들은 다 사람 중에 간택되며, 또한 천주 대전에 저들의 사정에 있어 사람들을 위하여 저들의 대표자로 선정되느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사람의 죄악을 위하여 예물과 희생을 봉헌하기 위함이니라.”(헤브레아5;1) 천주께 흠숭(欽崇)을 다하는 바로 첫 번째 계명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제의 첫 번째 역할이란 바로 천주께 흠숭지례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사제를 세움은 제물과 희생을 봉헌하기 위함이니,“(헤브레아8:3) 신약에서의 완벽한 흠숭지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부께 제헌하신 완벽한 희생제물을 제헌하는 것으로 구성되니,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매일 다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수난 당하신 전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르치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직후 바로 신품성사를 제정하셨다고 하는데, 그때에 주님은 당신께서 행하신 권능을 종도들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뜨리덴트 공의회는 이렇게 정의합니다:”만일 누가 말하길,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라는 말로써 그리스도께서 종도들을 사제로 제정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들과 다른 사제들이 주님의 몸과 성혈을 제헌하라고 주께서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파문을 받을 것인즉!”(Dz.1752) 주께서 행하신 사명을 종도들에게 주심으로써, 주께서 행하신 대로 빵을 변화시켜 주님의 몸으로, 포도주를 주님의 성혈로 변화시키는 권능을 종도들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사제는 특히 희생제사를 드리는 사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엄청난 희생제사를 관리하는 관리자이니, 희생제사는 가장 높은 흠숭지례(欽崇之禮)이며, 경배의 의무, 감사의 의무 속죄의 의무, 그리고 기도의 의무로서 인류가 천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제는 “천주의 사람“(티모테오 전 6:11)이요, 성체를 이루는 사람이니,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로 변화시키는 권능을 가진 사람이요, 이 성체를 산 자와 죽은 이를 위해 제헌하며, 신자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입니다:“사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종, 천주의 신비의 관리자로 여길지니라.“(코린토 전 4:1) 그곳으로부터 사제의 모든 권능과 의무가 흘러나옵니다.

 여기서부터 흘러나오는 첫 번째 의무란 사제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반드시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훌륭한 신자들의 성화(聖化)뿐만 아니라 탕자(蕩子)의 귀환을 위해, 그리고 모든 죄인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회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많은 기도로 양육되지 않는 사제는 흔히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 사제는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시듯이, “울리는 구리나 소리 나는 꽹과리“(코린토 전13:1)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제더러 ‘성무(聖務)’ 즉 매일 성무일도(聖務日禱)를 행하라 합니다. 성무일도는 필수적으로 일주일간 분배된 150편의 성영(聖詠, 시편)으로 구성되는데, 그래서 매주 모든 성영(psalter –역자 주: 150이라는 뜻이 담겨있음)을 하게 됩니다. 이 핵심적인 기도에 있어서 교회는 수세기에 걸쳐 찬미가, 기도문, 독서 그리고 다양한 시구(詩句) 등을 넣었으니, 이들 상당수는 성경에서 온 것입니다. 이중 몇몇 기도문과 찬미가는 교회 아주 초창기 때부터 온 것이며, 어떤 것은 나중에 성인들이나 고위성직자들에 의해 지어진 것입니다. 사제가 성무일도를 하는 것은 중대한 의무입니다. 만약 그날 하루의 ‘작은 시간’조차도 할애를 안하여 성무일도를 빼면 대죄를 범하게 됩니다. 사제는 매일 미사를 제헌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그러나 성무일도만큼은 매일 반드시 암송해야 합니다.

 성 비오10세 교황께서 성무일도의 150개 성영을 (사제로 하여금) 규칙적으로 매주 암송하게끔 복원시킨 것을 안다는 것은 유익합니다. 그 교황 이전(以前)에는 (성무일도가) 이론상으로는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전례집행문제로 인하여 매우 희귀하게 쓰였을 뿐이었습니다. 성인들의 많은 축일에는 ‘성인들에게 알맞은’ 성영이 주 중의 평소 성영보다 더 쓰였는데, 그래서 (평상시의) 성영들은 흔히 사실상 생략되었습니다. 그래서 성 비오 10세 교황은 주중에 걸쳐 모두 행하도록 이들 150개 성영들을 재분배하였고, 성인들의 축일 대부분 경우에도 주중에 성영을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매주 행하는 150개의 성영에 관한 이 위대한 원리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들은 제1 시과(時課)을 없애고, 세 개의 다른 소소한 시간 가운데 선택적으로 두 개를 하게 하였고, 조과(朝課-아침 기도)에서 성영의 숫자를 9개에서 3개로 줄여서, 그렇게 함으로써 150개의 성영 암송을 1주일에 못 끝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영이 한 달에 한번 겨우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성영 구절을 결코 행하지 않습니다. 한 주교가 말하길, “성영 구절들은 성신을 불신한다!”하였습니다. 생략된 성영들은 항상 죄, 악마 그리고 세상과 맞서 싸우는 영적인 전투를 언급합니다. 성영 구절들은 강력하기에, 그래서 현대주의자들이 성영 구절들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로 현대주의 사제들이 영적으로 약해지고 영적인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사제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들 사제직으로써 사제들은 천주님 군대에 있어서 ‘장교‘으로 제정된 것인데, 만약 장교가 약하면 전체 군대는 약해지고 그래서 우리는 신앙을 저버린 많은 이들을 보게 됩니다. 

  미사의 모범은 장엄미사인데, 이 장엄미사에서 사제는 부제, 차부제 그리고 복사로부터 조력을 받습니다. 교회는 실제 초기 때부터 일곱 단계를 걸쳐 한 명의 사제가 되도록 단계를 제정해왔는데, 네 단계의 하급신품(下級神品)과 세 단계의 상급신품(上級神品)입니다. 네 단계의 하급신품은 수문품, 강경품, 구마품, 시종품이고, 세 단계의 상급신품은 차부제, 부제, 사제입니다. 상급신품의 마지막 두 단계인 부제와 사제는 성경에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지만, 다른 신품들은 초대 교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곱 개의 신품단계질서가 구성이 되고 저 성사를 신품성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모든 하급신품과 차부제를 없앴다고 하는데 이는 분명히 옳지 않습니다. 한 명의 교황이 1700년 이상이 된 가톨릭 전통을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뜨리덴트 공의회는 – 파문으로써 - 정의합니다:“만약 누가 사제직을 별도로 떼어놓아서 가톨릭교회에는 다른 단계인 상급신품과 하급신품의 두 단계가 없고, 그저 여러 신품 단계들을 검침으로써 그 사람이 사제품으로 올라간다고 말한다면 그는 파문을 받을 것이니”(Dz 1772)


 그래서 하급신품의 존재란 신앙에 관한 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교황이 저것을 없앨 수 있을까요? 성비오10세회처럼 전통을 지키는 수도회 단체는 우리가 받은 것에 대해 충직하게 하기 위해서 저 일곱 가지의 신품을 온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종, 천주의 신비의 관리자로 여길지니라. (그런데)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실함 그것이니라.“(코린토 전 4;1-2)  

 

 사제직으로 가는 이러한 단계는 ‘교회계급 구조’를, 즉 교회 내 권위에 있어서 사제의 위계질서를 구성합니다. 권위에 관한 사제직 위계질서는 천주께서 제정한 것이니, 뜨리덴트 공의회는 이렇게 정의합니다:“만약 누가 가톨릭교회에는 천주께서 행하심으로써 제정된 것이 주교, 사제, 관리자로 구성되는 교회위계질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파문 받을지니.”(Dz1776) 주교들은 저들의 우두머리로 교황을 두고, 관리자들은 부제 및 그 아래 단계로 구성됩니다. 이것이 가톨릭교회의 핵심적인 구조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그때부터 있어 왔고, 세상 종말 때까지 있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구조에 있어서 권위는 위로부터 오는 것이지, 아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사제직의 위계질서, 사제직의 명령 계통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자들이 사제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것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너희는 너희 으뜸(장상, 고위 성직자)들에게 순종하며, 또한 저들에게 귀의(歸依)할지니라. 대저 저들은 (너희 영혼에 대하여) 셈 바칠 책임을 지는 자들로서 너희 영혼을 위하여 주선함일새니라. (원컨대 너희는) 저들로 하여금 이를 탄식으로써 하지 말고 오직 즐거움으로써 하게 할지니, 대저 (탄식으로써 하는 것은) 너희들에게 신익(神益)을 가져오지 못함일새니라.“(헤브레아13:17)
 

 사제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기에, 그는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반드시 순종해야 하고 그래서 종도직을 맡은 그때부터 사제에게 해당되는 ‘종도직 기준’은 세 가지 복음상의 권고가 요구되는데, 특히 정결의 덕행이 요구됩니다: 완벽하게 정결을 지속하여 지키는 것은 사제가 된 이후 상급신품이 적용되는 성직자일 때부터 요구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테모데오에게 이르시길, “스스로 네 자신을 무죄하게 보전할지니라.“(테모테오 전5:22)

 

 초대교회에서는 기혼자 몇몇이 사제와 주교로 간선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고 나서 완벽한 정결을 지켜나갈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힐러리 성인(St Hilary)께서 퐈티에(Poitiers)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는 수년간 결혼한 상태였고, 어린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 성인은 그 후에 완벽한 정결을 계속 지켰고, 아내는 수녀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힐러리 성인이 아리안 황제 때문에 망명 중일 때, 딸에게 아름다운 편지를 써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훌륭한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께 동정성을 봉헌함으로써 완벽한 생활 선택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사제독신은 예전에 결혼했던 성직자보다도 완벽한 정결을 지속시키는 있어서 이런 의무에 더 충직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보여주었고,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모범을 따라 서구의 성 교회는 오직 사제독신 서약 (그리고 예외적으로 홀아비들) 후보자에게만 서품을 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사제 독신 성직자 제도가 발달합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필수적인 의무란 사제독신이야말로 이를 확실히 지키는 최고의 방법, 완벽한 정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영원한 부제들’이 자기들로 하여금 완벽한 정결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서품을 받을 경우에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종도적 기준과 온 가톨릭 전통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스캔들을 범하는 성직자들의 나쁜 사례로부터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또한 충직한 사제들의 훌륭한 모범으로 인하여 매우 교화를 받습니다.
 

 성사에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제는 또한 신자들이 이 성사를 받게끔 준비시킬 권능을 가집니다. 그래서 사제는 성세성사, 고해성사, 종부성사를 줄 권능이 있습니다. 비록 누구나 비상시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성세를 관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제는 성세성사를 주관하는 보통 관리자입니다. 그러나 사제는 고해성사와 종부성사의 유일한 관리자입니다. 이러한 성사로써 사제는 죄로부터 신자의 영혼을 깨끗이 하고, 그리하여 저들이 거룩하고도 거룩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진정으로 현존하시는 성체성사를 받게 합니다. 
 

 그러나 저들에게 성사를 주기 전에, 사제들은 교육으로써 신자들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사제는 교회에서 가르치고 설교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제는 교리에 해박한 사람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건전한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어떤 교리는 신앙의 유산에 충실함을 요구합니다. :“티모테오여, 그대에게 맡긴 재보(=그리스도의 교리, 신앙의 유산)를 보전하며 속적(俗的-세속적) 무근지설(無根之說)과 허명무실(虛名無實)의 소위 <인식認識>이란 것의 반론(反論)을 피할지니라.“(티모테오 전6:20) 사제는 반드시 바오로 성인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전한 바는 나로서도 또한 받은 것이니.“(코린토 전15:3)

 

  가르치고 설교할 그런 권위를 그 누구도 자기 스스로 취할 사람은 없고, 반드시 간택을 받고 파견됨을 받아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진정으로 이르시길, “저를 믿지 않으면 어찌 저를 불러 간구하리요? 저에게 대하여 듣지 아니하였으면 어떻게 믿으리요? 설교하는 자 없으면 저에게 대하여 어떻게 들으리요? 또 파견함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설교하리요?“(로마(10:14-15) (자기들끼리 또는) 자기 스스로 임명 받는 개신교 목사들은 그러므로 성 바오로의 (말씀으로 인해) 제외됩니다. 우리 주님은 친히 종도들에게 이르시길, “너희가 나를 간선치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희를 간선하여 세움은, 너희로 하여금 가서 실과를 맺어 너희 실과를 항상 보존하기 위함이요,“(요왕15:16) 심지어 마티아가 간선되었을 때조차 이것은 베드로와 종도들의 권위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이것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사제들은 주교에 의해 간선되고, 주교들은 보통 교황에 의해 간선됩니다. 그들이 결코 자기들을 간선하지 않습니다.

 

  신품성사의 관리자는 주교인데, 주교는 신약에서 고위 사제와 같습니다. 주교는 교구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며 다른 사제를 서품할 권능과 견진성사를 줍니다. 저 성사의 핵심은 주교의 손으로 안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손을 놓고 안수하여 그에게 권위를 전달하고 자기의 계승자로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민수기 27:23) 신약에서는 우리가 새로 간선된 부제에게 손으로 안수하는 종도들을 보게 됩니다.(종도행전6:6) 또한 성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저들이 종도(와 주교)로 서품 될 때, 안수를 받습니다(종도행전 13:3) 성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용기를 줍니다:“그대에게 있는 성총을 등한히 여기지 말지니, 그 성총은 예언으로 인하여 사제들의 안수로써 그대에게 내린 바니라.“(티모테오 전4:14)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서간에서 이르길, “이런고로 내 손을 덮음으로 말미암아 그대 손 안에 있는바 천주의 성총을 치열(熾烈)케 하기를 나 그대에게 권고하노라.“(티모테오 후 1:6)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모테오에게 경고하길, “아무에게나 조급하게 안수하지 말며, 다른 사람의 죄에 참견하지도 말 것이요,“(티모테오 전5:22) 진정으로 만약 주교가 자격이 되지 않는 후보자에게 사제서품을 준다면, 그 주교는 그렇게 주는 스캔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저 안수는 매우 숭고합니다. 주교는 먼저 손으로 안수하고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나서 펼친 손을 잡고, 이때에 참석한 모든 사제는 자기 손을 서품을 받으려 하는 후보자들 위에 놓고서 펼친 손을 잡고 있는 주교들과 합류합니다. 그러면 주교는 축성 서문을 노래하니, 그 노래에는 신품성사의 형식을 구성하는 가사로 되어있습니다.

 

 서품식은 또한 많은 다른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는데, 이를테면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의 희생제사를 제헌’하는 권능, 죄를 용서하는 권능 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권능들은 안수하는 그 순간에 주어지지만, 그러나 성 교회는 이러한 추가적인 전례의식을 더함으로써 성사의 부요(富饒)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이러한 의식들은 커다란 교육이요, 참석한 후보자에게나 신자들에게 신심을 키우는 것입니다.

 

  성세 및 견진성사에 있어서 신품성사는 영혼에 어떤 특성을 부여하는데, 즉, 영원히 그곳에 남게 되는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부여하니, 천국에서는 충직한 관리자의 영광으로, 또는 지옥에서는 불충한 관리자로서의 큰 부끄러움으로 영원히 남는 표시가 됩니다. 저 특성은 사제가 성사를 유효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특히 성체성사를 관리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교회는 사제가 지녀야 할 거룩함의 필요성을 크게 주장하는데, 교회는 또한 가르치기를, 몇몇 특정한 관리자들이 보여주는 무자격함에도 불구하고 - 그가 교회 의식을 적절하게 행사한다면 행해지는 - 그 성사는 유효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훌륭한 신자들의 선익을 위해 있는 것이고 그 신자들이 천주님의 성총을 받는 확실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신자들이 알려지지 않은 관리자들의 내적인 무가치함에 의존됨이 없이 저 확실성을 가질 수 없다면, 이것은 크게 교회와 많은 이들의 영적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관리자가 교회의 전례의식을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교리를 설교한다면, 그러면 그는 신자들에게 큰 해악을 끼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흔히 양들은 선한 목자의 목소리를 더 이상 인식할 수 없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되어 흩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1960년대 초기와 1970년 초기에 새로운 전례와 함께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사제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신자들은 자기들의 기도에 의해서 저들에게 합당한 사제들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사제는 성무로써 신자들을 위해 기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사제들은 많은 이들을 위해 홀로 기도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자비를 가지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할 의무가 있고 그 사제 한 명을 위해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직자의 성화(聖化)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고, 특히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성모님께 기도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성모님은 저들을 위해 신앙의 정결함을 가져오는 은총과 천주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 그리고 영혼들의 구령을 얻게 합니다. 
 
 
거룩한 성소자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 빈센트 드 바오로(St Vincent de Paul)는 말씀하시길, 나쁜 사제를 고치기보다는 훌륭한 새로운 사제를 만드는 것이 더 쉽다고 합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성소에 대한 엄청난 위기가 지속되어왔는데, 이 위기는 특히 전례 변화의 결과 때문입니다. 만약 사제가 더 이상 희생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제는 자신의 바로 그 목적을 상실한 것이고, 희생제사의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부차적인 목적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제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회활동을 하기 위하여 사제가 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의 의무가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에 중점을 두는 것을 상실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제들에게 있어서 (사제직 수행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성소의 급격한 쇠퇴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교회의 전통을 충직하게 지키는 곳에서는 성소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훌륭하고 거룩한 사제들을 위해서 많은 열렬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교들은 ‘완전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교들은 완전함이 요구되는 의무에 거룩하게 축성(祝聖)되기 때문입니다. 낮은 단계에서 이 완전함은 사제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래서 완전함을 향하도록 엄격하게 지향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수사보다도 더 서원으로써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제들은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제들이 값있는 방법으로 저들의 행사를 실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신자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내 형제들아, 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성신으로부터 조차 오는 사랑을 인하여 너희들에게 간청하노니, 천주 대전에 너희 기구로써 나와 함께 싸우라.“(로마15:30)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발 저를 위해 그리고 성비오10세회 모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천주님의 신비를 충직하게 관리하는 자”가 되게 하고 천주님 향해서 또한 여러분의 성화를 향해서 우리의 의무에 충실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특히 고위사제의 모친이요, 모든 사제의 모친이신 성모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모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총을 얻게 하시도록, 그래서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