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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부활과 다른 사람의 부활- 예수승천 후 주일(2017-05-2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6-08





예수님의 부활과 다른 사람의 부활- 예수승천 후 주일(2017-05-28)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성모님께서 파티마에 오셔서 세 명의 목동들에게 매일 묵주기도를 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성모님은  6번 발현하셨는데 나타나실 때 마다 항상 매일 묵주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묵주기도 하는 것이 성모님께 왜 그렇게 중요한지 여쭤 봐야겠습니다.


제 1이유는 성모님은 우리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어머니로서 ‘아이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어머니로서 우리가 완전한 곳에 있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완전하게 있다'는 것은 즉 우리가 천당까지 가는 것,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묵주기도는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교황 레오 13세께서 묵주기도에  관한 많은 회칙을 쓰셨는데, “묵주기도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하셨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는 사람은 물음으로서 구원 받은 신비를 항상 생각합니다. 그 신비는 결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묵주기도를 계속함으로써 더욱더 신비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 승천의 시기는 묵주기도에서 영광의 신비를 묵상합시다. 오늘은 영광의 신비에서  가장 중요한 점에 대해서 묵상합시다. 고통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묵상합니다. 그러나 영광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구원을 예수께서 우리에게 증거하신 것을 묵상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죄의 사함과 영원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들은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셨습니다. 단지 우리가 십자가만 본다면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신 것만 보기 때문에 '어디에 승리가 있는가?' 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당신의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주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증거를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승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증거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입니다. 종도행전을 보면 종도들이 항상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상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증인들을 선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모든 세계에서 당신께서 부활하신 것의 증거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을까요? 성경을  본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 몇몇 부활한 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성서에는 엘리야가 어린이를 부활시켰습니다. 엘리야 제자 엘리사도 부활했습니다. 신약성서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서 야이로의 딸을 부활시키고 나임에 사는 과부의 아들도 부활시키고 라자로도 부활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은  다른 사람의 부활을 본다면 부활이라는 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도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를 가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은 다른 사람의 부활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적인 도구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라자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라자로야, 일어나라."고 묘지 앞에서 명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큰 차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천주님은 인간을 쓰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부활한 다른 사람들은 그 후에 다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부활했지만 그들은 살고 있었던 똑같은 시간의 생활로 부활한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부활했지만 다시 죽었습니다. 라자로도 죽어서 4일 동안에 묘지에 있었고 부활했지만 또 죽었습니다. 성인 성녀가 하신 기적을 기록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여러 성인 성녀가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이 외에 부활한 사람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했지만  이 땅의 똑같은 생활로 부활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생활이 아닌 다른 생활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생활과 다른 사후의 세상과는  어떤 틈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여기 생활하고 있다가 죽은 사람이 사후 세상으로 가는데 부활할 때는 이 세상으로 다시 오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으로 오시지 않고 바로 새로운 생활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 바오로가 말씀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제1인자”라고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더 좋은 생활을 주신다는 것을 증거 하십니다. 그 다른 생활은 영광된, 복된 생활입니다. 이 생활은 시간 속에 있지만 영광된 생활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세상은 변화되지만 영광된 생활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 생활은 가는 도중이지만 영광된 생명은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영광된 생활을 당신의 다른 몸을 보이시면서 증거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된 몸을 가지시고 그 몸은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고, 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고, 승천처럼 하늘로 올리실 수도 있습니다. 종도들은 처음에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체가 없으면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의심을 없애기 위하여, 당신의 참된 몸을 증거 하기 위하여 티베리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요리도 하시고,  드시기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육체를 가지고 우리와 같이 먹을 수 있지만, 영광된 몸이기 때문에 특별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삶의 상태에 있는 몸입니다. 영원한 삶에 속하며, 하늘에 속하고 있는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영광된 몸이요. 부활 후에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몸을 가지시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셔야 합니다.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당신께서 참으로 영광된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거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일과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항상 미사에 참여하고 그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런 영원한 하늘의 삶을 원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이 지상을 생활을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일한 그런 영관된 생명을 줄 수 있는 예수께 애착합니다. 영광된 부활,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조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입니다. 그런 완전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영광의 신비 속에서 묵주기도를 하면서 더욱더 신비속으로 깊이 들어갑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광된 삶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대로 그 삶을 주시기를 희망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로빈슨 폴 신부
호주 성십자가 신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