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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신에 대한 이해- 성신강림 후 8부내 하계의 재일 토요일 (2017-06-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6-10



성신에 대한 이해 - 성신강림 후 8부내 하계의 재일 토요일 (2017-06-10)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 삼위에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신이라는 삼 위격이 있는데, 성부 천주이시오, 성자 천주이시며, 성신 또한 참 천주이십니다. 이 세 분의 천주위격은 한 천주이시지만, 세 분의 천주가 아닙니다. 아리안주의(Arianism)라는 이단이 있었는데, 이 이단은 성자의 천주성을 부인하였고 (그 결과로 인하여 또한 성신의 천주성을 부인하게 되니),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4세기 말엽에는 성신께서 천주이심을 부인하는 막케도니우스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을 딴 막케도니안(Macedonian) 이단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신을 구별하여 성신께서 천주이심을 부인하는 몇 이단이 있으니, 여호와 증인이 그러하며 이 여호와 증인은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주이심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성경과 교회는 성신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는지 생각해봅시다.

창세기 첫 장에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천주님을 보게 됩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더라.”(창세기1:3) 그 빛은 조성되었지만, 그 빛은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조성되었고”(요왕1:3) 그러나 우리가 창조하시는 말씀을 발견하는 곳인 창세기 같은 첫 장에서, 우리는 또한 천주님의 영(성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분은 “수면 위로 이동하시는”(창세기1:2)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물은 조성되었으나, 이 물은 생명을 주시는 성신이 아니라, 물 안에서 창조된 그 생명에 의해서입니다.


욥은 이르길, “성신은 하늘을 단장시키고”(욥26:13) 그리고 나중에는 “천주님의 영(성신)이 나를 지우셨고, 전능자의 입김이 내게 생명을 주셨도다.”(욥33:4) 성영의 작가는 또한 그 영을 창조주로 두 번 부릅니다: “하늘은 주님의 말씀으로 조성되고, 또 그의 모든 권능(군대)는 그이의 입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도다.”(성영32:6)  “당신께서 당신의 얼 (모든 생명)을 보내시면, 저들이 창조되오며, 또 당신이 땅의 겉모양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성영103:30) 그래서 천주님의 영(성신)은 창조주요, 그러므로 천주이심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구약에서는 성신께서 뚜렷한 위격이시라는 것이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신약에서는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도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마테오28:19) 성세를 주라고 명령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이 구절은 가장 중요하고, 성신의 위격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참으로 성부 한 위시고, 성자 한 위이시며, 그러므로 그 구절의 나란히 나오는 (병렬구조) 것으로 보아 성신 또한 한 위이신 것은 분명합니다.

더욱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성신에 대하여 많은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이르시길, “저 진리의 성신이 오시면 모든 진리를 너희게 가르쳐 주시리니, 대저 자작(自作)으로 말하시지 않으시고 오직 무엇이든지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장래의 일을 너희게 보하실(알릴) 것이요,”(요왕16:13)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것은 어느 사람에게 적합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이러한 말씀은 성신께서는 성자와 구별되는 한 위격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성신께 관하여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천주의 성전(聖殿)이요, 천주성신이 너희 안에 거처하심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3;16)  “너희 육신은 천주께로부터 받은 너희 안에 거하시는 성신의 성전이며,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6:19) 성전은 오직 천주께 흠숭을 드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고, 성전 안에서 희생제물은 천주께 드려지는 것이고, 그래서 만약 우리가 성신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면 그것은 성신께서 천주이심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돌로 만들어진 성전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고, 천주님에 의해 조성된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성신을 흠숭하기 위하여 교회에 의해 세우진 것이기도 하며, 성신을 흠숭하기 위하여 (인간의 조성자이신) 천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니케아 신경(Nicaean Creed)에서 노래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simul adoratur et conglorificatur” – 성신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흠숭 받으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성경에서 보면,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시고, 성부와 성자께서는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차례 성신을 ‘천주(성부)께서 보내신 분‘이라 하십니다. 주님은 가파나르나움(Capharnaum)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주(께서) 보내신 자를 너희가 믿으면 이것이 곧 천주의 일이니라.”(요왕 6;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천주의 아들이라 하였다 하여, 성부 축성하사 세상에 보내신 나더러 설독한다하느냐? 나 만일 성부의 행적을 행치 아니하면 너희가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나 만일 행하여도 너희가 또 나를 믿기 싫거든, 그 행적이나 믿어 하여금, 성부 내게 계시고 내가 성부께 있는 줄을 너희가 알고 또 믿을지어다.”(요왕10:36-38) 그 누구도 자기가 자기 자신을 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부께서 성자를 보냈다는 바로 그 사실은 성부의 위격과 성자의 위격이 구별됨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성부께서 성신을 보내시고, 성자께서 성신을 보내시게 됨을 봅니다. 네 번이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신을 보내심을 예언하셨습니다:“내가 성부께 구하매, 성부 너희게 다른 바라글리도를 주사 하여금, 너희와 한가지로 영원히 머물게 하시리니, 이는 진리의 성신이시라.”(요왕14:16-17) “성부 내 이름을 위하여 보내실 바라글리도 성신이 너희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이요, 또 내가 너희게 말한바 모든 것을 너희게 깨우쳐주시리라.”(요왕14:26) “성부께서 발하신 바라글리도 진리의 성신을 내가 성부께로조차 너희게 보내리니, 저 이미 오시면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왕15:26) “나 너희게 실상으로 이르노니, 내가 가는 것이 너희게 유익한지라, 대저 나 가지 아니하면 바라글리도 너희게 오시지 않을 것이요, 가면 나 저를 너희게 보내리라.”(요왕16:7)

네 구절을 병렬로 나란히 놓은 것은 유익한데, 왜냐하면 이 네 구절은 성신을 보내심에 있어서 성부, 성자의 완벽한 동등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성부 홀로 “너희게 다른 바라글리도를 주시고”, 둘째로, 성부는 성자의 이름으로 보내십니다. “성부 내 이름을 위하여”, 세 째로, 성부로부터 성자는 “내가 성부께로 조차 너희게 보내리니,” 그리고 네째로, 성자 홀로 “나 저(성신)를 너희게 보내리라.” 하십니다.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 분명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는 가르치길, 성신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신다.”고 합니다. 동방정교회는 절반을 부인하는데, 그러나 이 가르침은 복음에 반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 주님께서 “성부 너희게 다른 바라글리도를 주사” 하실 때, 성부께서 성신을 보내신다는 사실은 나중에 나오는 몇 가지 구절을 말씀하시는 “나 너희게 그분을 보내시리라.”것처럼 성자께서 성신을 보내신다는 사실에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 “성부로부터 발하신 성신”(요왕15:26)이라 하셨을 때, 성신께서 성부로부터 발하신다는 사실은 그분이 또한 성자로부터 발하신다는 것 사실에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짤막하게 나중에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은... 나를 현양하시리니, 대저 내 것을 받아 너희게 보하심이니라(보여주시리라). 무엇이든지 성부 가지신 바는 다 내 것이니, 이로 인하여 나 이르되,  <내 것을 받아 너희게 보하시리라> 하였노라.”(요왕16:13-15)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거 참 복잡하네요.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가요.” 예. 참으로 이러한 진리들은 천주성에서 이루어지는 수준이요, 성 삼위 위격 사이에서의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진리를 드러내셨으니,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천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천주님을 더 잘 알려는 갈증을 가지게 되고,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성 삼위 위격에 대한 친밀한 지식으로 더 깊이 더 많이 알게끔 이끌립니다.

더욱이, 만약 우리가 성총 상태에 있다면, 성신은 우리 영혼에 계신 천주이신 손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니, 우리 주님 이르시길, “이는 진리의 성신이라. 세속이 능히 받지 못함은 그 성신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연고로되, 너희는 성신을 알 것이니, 장차 성신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한 너희 곳에 계실 연고니라.”(요왕14:17) 우리가 위에서 본 바대로 바오로 성인은, “너희는, 너희가 천주의 성전이요, 천주 성신이 너희 안에 거하심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3:16) 만약에 왕이나 황제께서 우리 집에 오시면, 우리 집에 오시는 왕의 방문을 맞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분명히 가능한 한 쾌적하게 집안의 모든 것을 깨끗이 하고, 정리하며, 아름답게 꾸미고, 완전하게 (물건이) 설치되도록 합니다. 단지 일개 왕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천주이시요, 천주님의 영이시며,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영혼에 있는 모든 것이 깨끗하고, 거룩하며, 천주께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어야 하고, 우리 영혼에 계시는 천주이신 손님께 집중을 하여 그분께 온갖 흠숭과 사랑의 순명을 드려야 하니, 이는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신은 우리에게 있어서 바라글리도 즉, 옹호자요, 위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신은 특히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영혼 안에 천주자비를 부어주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에게 베퍼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입되었느니라.”(로마5:5) 자비가 영적 생명의 핵심이기에, 우리 영혼에 자비를 부음으로써 성신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신은 ‘진리의 영’이시니, 왜냐하면 성신께서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사랑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진리를 알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랑하지 않았기에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생활 안에서 진리를 실천할 때에, 진리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이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 요한은 말씀하십니다:“우리들이 듣고 또한 너희들에게 전하는 보고는 이것이니, 곧 천주께서는 빛이시며, 그 안에는 조그만 한 어두움도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말로는 저와 더불어 합체가 되었다고 하되, (실제로는) 어두움 속에 거닐고 있다 한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이며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니라.”(요안 1서1:5-6)  “말로는 스스로 저를 인식하였다 하면서 저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을 말하는 자이며, 그 안에 진리가 있지 아니하니라.”(요안 1서2:4) 바오로 성인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은 (말로만) 천주를 아노라 단언하나, 행실로는 이를 부인하니, (참으로) 가증한 자들이며, 불순한 자들이며, 모든 선업을 행함에 적당치 못한 자들이니라.”(티토1:16)

성신께서 우리더러 사랑하게끔 해주시는 진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영원한 진리이고, 우리 주님과 종도들의 시작 때부터 가르쳐진 진리이니, 우리 주님 이르시길, “성부 내 이름을 위하여 보내실 바라글리도 성신이 너희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요, 또 내가 너희게 말한 바 모든 것을 너희게 깨우쳐 주시리라.”(요왕14:26) 그리고 바오로 성인 말씀하십니다. “만일 누가 너희들에게 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한다든가, 혹 너희는 (전에) 받지 않은 다른 신을 받으며, 혹은 (전에) 받아들이지 않은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맹목으로 그를 승인하는 것이니라.”(코린토 후11:4]
 
거룩한 모후 교회는 가르치길, 성신은 특히 성신칠은(聖神七恩)을 통하여 우리를 돕는다고 합니다: 슬기(지혜), 통달, 지식, 의견, 강용(굳셈), 효경, 그리고 주님을 두려워함입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에 관한 잘 알려진 예언에서 이 성신칠은을 베풀어 놓았습니다. “이샤이의 밑둥치에서 새싹이 돋아나리니, 그의 위에 야훼의 얼이, 슬기와 깨달음의 얼이, 의견과 굳셈의 얼이, 야훼의 지식과 두려움의 얼이 내려앉으시리라. 또 야훼를 두려워함으로 가득 찰 것이요, 그는 자기의 눈에 보이는 바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은 바대로 분간하지 않으리라. 도리어 그는 빈약한 자들을 의리로써 판단하고, 지방의 세민(細民)들을 위하여 공정한 판단을 내리리라.”(아사야11;1-5) 이샤이는 다윗의 아버지이고 바빌론 포수(捕手포로) 당시에 왕위를 빼앗긴 이후 이샤이의 뿌리는 그의 후손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나무가 아니라, 살아있는 뿌리였습니다. 저 뿌리로부터 나오는 줄기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초자연적인 생활, 우리 본성의 능력 위에 있는 생명이기에, 이 성신칠은들은 필요하니, 그러므로 우리를 강하게 하고 끌어올리는 특별한 도움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천주님을) 두려워하는 선물은 우리로 하여금 유혹을 이기게끔 많은 도움을 줍니다. “주를 두려워함은 지혜의 시작이라”(성영110:10)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님을 두려워함은 그들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게 하고, 천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드리는 출발점이 되는 결정요소인데, 왜냐하면 “천주는 조롱 받지 않으시는”(갈라타6:7)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세인들처럼 “목정이가 억세고 마음과 귀가 무딘 자들이고, 항상 성신께 거역”(종도행전7:51) 사람들이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나요? 그러므로 우리는 성신께 저항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성신께 순종함으로써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합니다. “천주의 성신께 격려되는 이는 다 천주의 자녀인 연고니라.”(로마8:14) 성신에 이끌리어 천주님의 계명에 순명해야 하니, 왜냐하면 “천주의 계명을 준수하는 자는 천주 안에 머무르며, 천주 또한 저 안에 머무르시니라. 우리 안에 머무르심을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성신으로 인하여 인식하느니라.”(요안 1서 3;24)

효경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도와 줍니다: 기도란 항상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한참 위에 계시는 주님께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분심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십니다:“성신도 우리의 잔약(孱弱)함을 도우시리니, 대저 우리는 경우를 따라 어떠한 모양으로 기구할 것인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에 성신은 친히 형언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시느리라.”(로마8;26) 그리고 “어느 때를 막론하고 너희는 온갖 간구함과 절원(切願)함으로 성신 안에 항상 간구할지어다. 이 기구(祈求)를 위하여 너희는 깨어있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항구(恒久)히 기구할지니라.”(에페소 6:18)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신의 도움을 받는 기도의 생활입니다. 이 말은 성령 운동하는 이들처럼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 운동하는 이들은 항상 자기들이 성령에 감동받은 것처럼 행세하고, 온갖 종류의 기도를 만들어내니, 이 기도들은 자기들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고, 진리의 영(성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런가요?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대로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니, 진리는 이단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요, 요즈음의 모든 성령운동들은 개신교에서 시작된 것이고, 아직도 개신교인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에큐메니즘운동에서 그러하니, 절대 안 됩니다! 가톨릭 기도는 성인들의 기도 모범에 있습니다. 성인들은 성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특히 성신께서는 모든 교부들에게 최고로 행하신 바처럼 우리에게 천주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받은 성신은 다시 무서워해야 할 노예 지위의 신이 아니고, 오직 의자(義子)의 성신이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압바, 곧 아버지]라 부르게 하는 도다.“(로마8:15) “이리하여 이제 너희는 천주의 자녀들이매, 천주께서는 [압바, 아버자]라 부르짖으시는 당신 아들의 신을 우리 마음에 보내시느니라.”(갈라타4:6)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천주경을 기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성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친(요왕19:27)으로 주신 성모님께 기도하길 사랑합니다.

굳셈, 즉, 강용(剛勇)의 영은 죄와 맞서는 싸움에서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길, “천국을 빼앗기로 싸우니, 강포한 자 천국을 빼앗느니라.”(마테오11:12) 그들의 이웃에 대하여 폭력을 쓰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폭력을 쓰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이르시길, “너희는 근신하고 깨어 있을지어다. 대저 이는 너희 원수 마귀가 마치 포효(咆哮)하는 사자와 같이 잡아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님이니라. 너희는 신앙을 가져 저를 대적할지니, ”(베드로 전 5;8-9)

의견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영의 분별(신중함)”을 하게 도와줍니다. “육체의 원욕은 죽음에 이르게 하되, 영신의 원욕은 (우리를) 생명과 평화에 이르게 하리라. 그 연고는, 육체의 원욕은 천주와 적대하느니, 이는 천주의 계명에 복종치 아니하고 또 할 수도 없음이니라. 육체적으로 사는 자들은 천주의 뜻에 흡합(洽合)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천주의 성신이 참으로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는 육체적으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영신적으로 사느니라.. 만약 너희가 육체에 따라 살면 너희는 죽을 것이로되, 성신으로써 육체의 충동을 죽이면 살리라. ”(로마8:6—9, 13)

지식의 영은 천주님의 작업에서, 창조에서, 천주섭리라는 방법 등에서 천주님의 손길을 보게끔 우리에게 주십니다. 분별의 영은 신앙의 진리에 대한, 성 삼위, 성 육신, 구원과 같은 신비의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베니 크레토(Veni Creator)에서 우리는 노래합니다: “성신을 통하여, 성부를 알게 하시고, 또한 성자를 알게 하시어, 그대 두 분의 영을 알게 하소서!” 그래서 성신은 성 삼위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하게끔 도와줍니다. 성 육신은 성신께 공로가 되는 천주님의 작업입니다. 종도신경에서 우리는 이르길, 그리스도는 “성신으로 인하여 강잉하사,”하고, 니케아 신경(信經)은 “성신으로 인하여 사람이 되사” 합니다. 그리고 다시, 구원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서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바오로 성인은 성신의 역할을 지적합니다: “영원하신 성신의 힘으로 말미암아 당신 자신을 무구(無垢)한 희생으로 천주께 제헌하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야 얼마나 더 우리로 하여금 생활하신 천주께 섬기도록 죽은 업적에서 우리 양심을 조촐케 하리요?”(헤브레야9:14)

지혜(슬기)의 영은 천주께서 사물을 보시는 것처럼 모든 이러한 신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사물을 보게끔 주십니다. 토마스 성인은 설명하길, 지혜는 친밀한 천주 사랑으로부터 오고, 이것은 어떤 확실한 ‘선천적인’ 것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천주님과 ‘한 마음’이 됩니다. 바오로 성인은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주께 애착되는 자는 (주와 더불어) 한 정신이 되느니라.”(코린토 전6:17)

영보첨례 날에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성신께서 임하신 티 없으신 마리아여, 항상 성신께 충직하셨던 당신처럼 우리에게 성신을 깊이 아는 지식과 큰 사랑을 주시어, 그분께 완벽한 순명을 하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