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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 성신강림 후 제10주일(2017-08-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8-13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 성신강림 후 제 10주일(2017-08-13)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또 자기를 낮추는 이는 들어 높임을 받으리라.“(루까18:14) 오늘 복음경의 이 결론은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행하신, 그리고 종도들이 많은 방법으로써 참으로 많이 반복된 진리이며 우리의 성화를 위해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바리세인에 의해 초대를 받아서 많은 손님들이 상석 고른 것을 목격하셨을 때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너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거든 상좌(上座)에 앉지 말라. 두리건대 너보다 더 존귀한 자 주인에게 청함을 받았으면, 너와 저를 청한 주인이 나와 네게 이르되 <이 사람에게 자리를 사양하라>하면, 그때에 너 비로소 부끄러이 말좌(末座)를 잡으리니, 오직 너 청함을 받거든 가서 말좌에 앉으라. 곧 너를 청한 자 나아와 네게 이르되, <벗은 상좌로 오시오>하면, 그때에 한가지로 상 받고 앉은 자들 앞에 네게 영광이 있으리니, 대저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짐이라.”(루까14:8-11)

종도들에게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어느 날 우리 주님은 어린 아이를 택하사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나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귀화(회개)하여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테오18:3) 왜 그런가요? 우리 주님께서 친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아이와 같이 스스로 낮추면 이런 자가 천국에서 높은 자 될 것이요.“(마테오18:4)

 성모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권세 있는 자를 좌(자리)에서 내치시고, 비천(卑賤)한 자를 들어 올리셨도다.”(루까1:52) 그리고  야고버 성인은 쓰시길, “천주께서는 거만한 자를 배척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시느니라.“(야고버4:6) 또한 베드로 성인은 상세히 쓰시길, “젊은 자들아, 너희도 이와 마찬가지로 장로들에게 순종할지니라. (그리고) 서로 교제할 때는 누구나 다 겸손함의 의복을 입을지어다. 대저 천주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심일새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천주의 강의(剛毅; 굳세고 강하여 굽힘이 없음)하신 팔 밑에 스스로 너희를 낮출지니, 이에 정한 때가 이르러 저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 전 5:5-6) 이미 구약에서는 성영의 저자 이르시길, “실상 당신은 겸비(謙卑)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거만한 눈들은 낮추시나이다.“(성영17:28)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씀하시길,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은 같은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이니, 천주께서는 교만한 자를 배척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신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이 구약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 선민들이 교만한 반란으로 인해 천주께 불충했을 때 그들은 적들의 손에 놓이게 되고, 또한 그때서야 비로소 저들이 놀랍게도 (천주께) 무릎을 꿇고 자비를 청하게 됨을 여러분은 반복하여 보게 됩니다. 심지어 니느웨( Niniveh)의 이교도조차 저들이 죄를 회개하고 요나 (Jonah)의 예언 당시에 보속을 행했을 때 자비를 얻습니다.

왜 그런가요? 왜냐하면 천주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능가하시는 무한하신 천주이기 때문입니다. 성영의 저자는 노래합니다:“드높이 앉으시어, 하늘과 땅으로 눈을 내려 뜨시는 우리 천주이신 주님과 같은 이는 누구인고?“(성영112:5-6) 천주께서 위에서 내려다 본 사람들의 교만이란 그저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자신을 큰 사람으로 생각하는 개미의 오만과도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위대하신 천주님은 미소한 것들을 사랑하십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는 드높으시고 우러러 뵈울 이, 영원히 사시고 거룩한 이름 가지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이로다. <나는 드높고 거룩한 자로 살고 있으나 또한 겸손한 자들의 넋을 활기 있게 하고, 겸비를 달게 받는 자들의 마음을 생기(生氣) 있게 하기 위하여, 뉘우치는 자와 넋이 겸손(謙遜)한 자와 함께 있노라>”(이사야57:15)

천주께서는 진리이시니 거짓을 배척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만은 커다란 거짓입니다. 교만은 우리가 천주님을 의존해야 할 것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를 의존합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우리의 존재를 받았습니다. 천주님은 우리 행동의 모든 선함을 포함하여 모든 선의 제 1원인이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천주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바리세인들에 대해서 들어보세요. 바리세인은 천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서 천주님께 고맙다고 생각조차 안 합니다. 자신들에 의해서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이는 진실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자기 아래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해서만 오직 천주께 고마움을 표하니 이 또한 진실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겸손은 진리로 살아갑니다: 겸손은 우리가 천주께 세 겹으로 의존함을 인정하며, 그래서 천주님께서 성총을 부으심에 대해서 그 영혼을 엽니다. “우리에게 베퍼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입되었느니라.“(로마5:5)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천주께 의존하니, 왜냐하면 천주님은 모든 존재의 제 1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주께서 우리의 존재에 있어서 그 보존을 중단하신다면 우리는 무(無)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도 우리는 천주께 의존합니다. 왜냐하면 천주님은 제 1의 운행자(運行者)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건강과 힘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작은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를 인정하는데 있어서 마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건강은 천주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의존은 심지어 훨씬 더 완전합니다. 이는 성총의 질서 안에서 있습니다. 모든 성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나는 포도나무줄기요, 너희는 그 가지라. 내게 머무는 자는 나 또한 저에게 머무르매 많은 실과를 맺으니, 대저 너희가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함일새니라.“(요왕15:5)

더욱이,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상처 입은 자연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과 그리고 우리 개인의 죄로 인한 겸손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완전히 확신하는 것입니다. 만약 천주께서 사람의 죄에 따른 (합당한 벌을) 그에게 돌려주신다면, 그는 가장 낮은 지옥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 위에 자기 자신을 두는 (교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그가 천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나 많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는 천주께서 다른 이에게도 더 많이 주실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만약 천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가지고 계시면 다른 이에게도 자비를 가지고 계십니다. 설령 오늘날 우리 이웃이 죄 안에 있다 하더라도, 내일은 그가 위대한 성인이 될지 모릅니다. 스테파노 성인이 돌에 맞고도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한 것을 기억하세요. 성 스테파노는 겸손한 분이었고 박해자들 위에다 자기 자신을 두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저들을 위해) 기도하였는데, 박해자들 가운데 나중에 성 바오로가 된 사울은 아마도 성 스테파노보다 더 위대한 성인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성인 그 자신은 그가 “천주의 교회를 박해하였음”을 결코 잊지 못하고 그리하여 이르길, (자신은) “종도라 부름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이며, 종도 중에 가장 미소한 자라” (코린토 전15:9)고 말합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천주님의 선물에 대해 질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소박함을 가지고 그가 받은 것에 대해 고마움을 갖습니다. 겸손 그 자체가 선물임을 주목하세요. 왜냐하면 겸손한 이들은 이에 대해 고마워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감사의 태도로 인하여 천주님으로부터 온 선물은 영광과 사랑으로서 천주께 다시 돌아갑니다. 성경은 진정으로 이르길,”네가 위대해질수록 모든 사물 안에서 너 자신을 더 겸손하게 하라. 그러면 너 야훼 앞에서 은총을 찾게 될지니, 왜냐하면 천주의 권능 홀로 위대하고 그가 겸손한 자에 의해 드높여지도다"(전도서. 3:20-21) 그리고 천주님은 이러한 감사의 태도에 대해 훨씬 더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천주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증가시키고 천주께 영광을 돌리는 축복의 순환을 가집니다.

겸손은 참된 신자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분위기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우리를 훈계하시니: “이러므로 너희는 천주의 간택하신 자와 거룩하고 사랑하옵는 자들로서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과 관용과 겸손과 양순과 인내를 입을지어다.“(콜로새3:12) 사랑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이고 경건과 기도에 필요합니다. 모든 덕행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사랑에 대해 쓰시길: “사랑은 관인하고 어질도다… 거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하지 아니하고, 사익을 도모하지 아니하며, 노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즐기지 아니하고…“(코린토 전13:4-5) 우리 주님은 친히 자선(慈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 옳은 일을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사람 앞에서 행할까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대전(大殿)에 상을 받지 못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시사(施舍)할 때에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이는 겉 꾸미는 자들이 회당과 길거리에서 이렇게 하여 써 사람에게 존경함을 받으려 함이니, 나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저들은 제 상급을 받았느니라. 너는 시사할 때에 네 오른 손으로 하는 것을 네 왼손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여 써 네 시사(施舍)함을 은밀하게 할지니, 은밀한 데서 보시는 네 성부 네게 갚으시리라.“(마테오6:1-4)

기도엔 겸손이 요구됩니다: “천주시여 통회의 정신이 나의 제사이오니, 부서지고 겸비하여진 마음은, 천주시여 당신이 업신여기지 않으시이다.“(성영50:19) “주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자를 가까이 하시고, 넋이 꺽인 자들을 구원하시는도다.“(성영33:19)  그래서 유딧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은 지극히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께 애원하였다. 금식과 기도로써 저들의 영혼을 낮추었다.“(유딧4:8)  그리고 천주님은 저들의 기도를 인정하셨습니다. “빈궁한 자들을 향하여 당신을 돌리시고, 그들의 기구(祈求)를 물리치지 않으시도다.“(성영101:18) 그래서 겸손한 기도는 천주님으로부터 용서를 얻습니다. “ 저들이 겸손하기에 저들로부터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저들은 완전히 멸망치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유다에게 조차 선업이 보였기에“(2 Chr. 12:12).

전통미사전례가 겸손에 대한 아름다운 실제적 가르침이라는 점을 주목하세요.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欽崇)하고,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이 전통미사전례가 성체에 계신 주님의 실제현존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게끔 우리 영혼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서서 주님을 손으로 받는 (새미사의) 영성체는 겸손의 표시가 전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은총에 대한 장애물을 놓는 것이며 이것은 분명히 “대저 누구든지 자기를 들어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또 자기를 낮추는 이는 들어 높임을 받으리라.“(루까18:14)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덕행은 참으로 중요하니, 천주님의 섭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경우를 흔히 정렬해 주심은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재정(정당화)을 배우기 위하여는 당신께서 나를 낯추시는 것이 내게 좋으나이다… 주님이시여, 나는 당신의 결정(決定)이 의로움을 아오니, 당신은 의당(宜當)히 나를 괴롭히셨나이다.“(성영118:71,75)  진정으로 “교만한 자에게는 책망이 있게 되나, 겸손한 곳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12:2) “거만한 자들과 어울려 전리품(戰利品)을 나누는 것보다 마음을 낮추어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낫다.“(잠언16:19)

불행하게도, 교만의 폐해는 무섭습니다. 현대세계에서, 특히 서방세계의 교계, 가톨릭 문명을 거부하는 세계에서 이를 보게 됩니다. 저들은 천주님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척합니다. 저들은 천주님의 계명을 거부합니다. 저들은 천주님의 계명과는 반대되는 일을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합니다. 낙태할 권리, 다른 혐오스런 온갖 종류의 권리, (천주님의) 계시를 거부할 권리, 그리고 온갖 종류의 우화를 믿습니다.  천주께 저들의 마음과 영신을 내려놓는다는 바로 그 생각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혐오스런 것이 되고 있습니다. 악마의 반란의 외침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입술 위에 있습니다:”나는 섬기지 않겠다.”(예레미야2:20)

그리고 이와 같은 교만에 대한 벌은 오늘날 모두에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바오로 성인은 이교도 로마 세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그들은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 일컬으면서 어리석은 자 되었으니, 그러므로 천주 저들을 그 마음의 육욕대로 음행하기를 버려두사 써 저들이 서로 그 몸을 더럽게 하며, 참되신 천주를 거짓 우상으로 바꾸어 조물주 대신으로 조물을 공경하여 흠숭하였느니라.“(로마1:22,24-25)  오늘날 저들의 신은 돈이고 성공입니다. 황금 송아지는 옛 우상이지만 오늘날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계속 이르시길, “이러므로 천주 저들을 망측한 정욕에 내버려두셨느니, 대저 저들의 부녀자들은 자연적 교접을 반자연적 교접으로 전도시켰으며, 동양(同樣)으로 남자들도 그와 같이 여자와 자연적 교접을 버리고 야욕으로 서로 타며(연소), 남자와 남자가 망측한 짓을 하여 그 혼미에 마땅한 벌을 자기 몸에 받느니라. 저들이 천주를 알아 승복하기를 거절하였으니, 천주 저들을 그 타락된 주의, 사상에 맡겨두시매 저들은 합당치 않은 일을 하기에 이르렀느니라. 그리하여 저들은 각가지 불의, 악의, (음행), 간린, 악심으로 차고, 질투, 살해욕, 투쟁욕, 교활, 간계가 가득한 자들이며, 밀고자, 비방자, 천주를 미워하는 자, 모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긍(自矜)하는 자, 악을 발명하는 자, 부모에게 복종치 아니하는 자, 어리석은 자, 충실치 못하고 무정하고 무자비한 자들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천주의 법률을 저들은 알면서도 이를 행할 뿐 아니라, 또한 행하는 자들에게 찬동하느니라.“(로마1:26-32) 바오로 성인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위해 이것을 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의 결과, 천주님을 거역하는 교오(驕傲)한 반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리리 겸손을 사랑하고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도록 합시다. 하루에 세 번씩 삼종기도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세 개의 겸손”을 기립니다. 첫째, 천신의 겸손이니, 이 천신은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연약한 인간 앞에서 낮추고 신심과 존경으로 성모님께 하례(賀禮)합니다.

그리고서 성모님의 겸손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 이후 모든 이 중에서 가장 겸손하셨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지적하길, 영보고지에서의 성모님의 겸손을 지적합니다: 성모님은 메시아의 모친, 천주님의 모친이 되도록 막 간택되었다. 특히 모든 이들 가운데 고결함과 또한 성모님이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작은 노예 소녀로서 드리신다! “주의 종이 여기 대령하오니, 네 말씀같이 내게 이루어지이다.“(루까1:38) “이미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이로 인하여 이제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로다.“(루까1:48)  분명히 성모님은 가장 겸손한 동정녀이시고 모든 성인들과 모든 천신들 위에 높이 들어올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레에 기념하고자 하는 성모님의 몽소승천은 겸손의 증거이니,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를 들어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또 자기를 낮추는 이는 들어 높임을 받으리라.“(루까18:14)

그리고 세 번째 겸손은 바로 천주성자의 겸손입니다. 이분은 전능하신 분이요, 바오로 성인께서 쓰시듯이 “천주의 형체 안에“ 계신 자(필립피2:6)이시요, “자신을 낮추사, 종의 형태를 취하시고 사람과 같은 자“(필립피2:7)이시니, 이것이 성육신이요 우리가 삼종기도에서 기리며 노래하길,  “그리고 말씀이 사람이 되사 우리 안에 거처하셨도다.“(요왕1:14) 이는 엄청난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전능자이시며 가장 미소한, 주님의 거룩한 모친의 지극히 조촐하신 태중의 아주 작은 태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훨씬 더 나갔습니다. “너희는 내 멍에를 매며, 또 내 마음이 양선하고 겸손함을 내게 배우라. 이에 너희 영혼에 평안함을 얻으리라.“(마테오11:29) 말씀하신 분이고 자신의 멍에를 먼저 매신 분입니다:“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며, 더구나 십자가 상에 죽기까지라도 순명하심으로써 (자신을 낮추셨는니라)” (필립피2;8) 이는 참으로 겸손의 최정점이요, 천주께서 보이신 겸손입니다!

그러나 그리고서 보상이 옵니다:“이러므로 천주 저를 높이시며 또 모든 이름 위에 초월한 이름을 저에게 주사 써, 천상과 지상과 지하의 모든 이로 하여금 예수의 성명(聖名) 앞에 다 무릎을 꿇게 하시며, 또한 모든 혀(인류)로 하여금 성부이신 천주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참) 주이심을 고백하게 하셨느니라.“(필립피2:9-11)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통하여 이러한 겸손의 은총을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여서 구원에 참으로 필요한 이 거룩한 덕행을 모든 기회에서 실천하도록 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