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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버크 추기경님, 성비오10세회는 종교분열이 아닙니다.(2017-10-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0-09



버크 추기경님, 성비오10세회는 종교분열이 아닙니다 (2017-10-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은 성비오10세회에 관한 버크 추기경의 최근 선언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버크 추기경은 2017년 7월 15일 오레곤에서 담론 이후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였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변 중 하나는 “성비오10세회는 고(故) 르페브르 대주교가 로마의 허락 없이 로마의 주교를 성성(1) 했기 때문에 종교분열에 해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성비오10세회 사제들에게 고해성사에 대한 관할권과 또한 혼배성사에 관한 관힐권을 부여한 점을 언급하면서, 추기경 자신의 추론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고 교황의 이러한 두 가지 조치를 “이상한”것으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버크 추기경은 사람들에게 이르길, “적당한 거리 이내에 경건한 미사”(2)가 없다 하더라도 성비오10세회에서 행하는 전통미사를 피하라고 충고합니다.

이런 추기경, 특히 교회법을 이해할만한 자질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추기경이 우리 성비오10세회의 합법적인 사례를 진정으로 연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사실입니다. 그 추기경은 자신의 단순한 추론이 얼마 못 가 무너질 것임을 쉽게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특히, 교회법에서 교황의 허가 없이 주교를 성성하는 것이 교회의 일치(3)를 거스르는 범죄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 행위가 종교분열은 아닌 것이지만 – 정당성이 없지만 – 성사의 관리(4)를 거스르는 범죄에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교회법의 두 개의 다른 분야입니다. 그러므로 추기경의 추론은 거짓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대주교가 허락 없이 주교들을 성성했기 때문에 그는 종교분열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반대할 것입니다: 이런 주교성성은 교황의 치교권을 실제적으로 거부하는 것이고, 따라서 종교분열이라고 말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주교성성을 하는 그 강론에서 교황 수위권(首位權)에 대한 (교황을 인정하는)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공을 드렸고 또한 이들 네 명의 주교들에게 어떠한 치교권도 주지 않았다고 능청 떨지 않았습니다. 대주교께서는 주교들에게 그저 선한 사제들을 서품할 권한을 주도록 성성하였고, 그리하여 그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전통 가톨릭 교리, 가톨릭 전례와 성사를 주도록 함으로써 그 신자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 주교성성은 (신앙에 있어서) “생존 작전” 이었습니다. 성비오10세회는 미사 전문에서 교황 및 그 지역 주교에 대한 (안녕을 비는) 경문(經文)을 드렸고 또한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는) 교회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종교분열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교성성하고 전통미사를 하면) 자동 파문이라는 벌이 있어요… 그리고 파문 받은 자는 종교분열하고 있는 거예요….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합니다. 교회법 자체는 분명히 말하길, 만약 사람이 엄청난 불편함(5)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6)를 취하는 경우에는 (역자 주: 불난 집에서 아기를 구하기 위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행위처럼 대주교께서는 신앙과 영혼 구령이 더 시급한 것으로 봄) 자동파문이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1983년의 교회법조차 사람들이 필요한 조치가 있다고 할 경우, 설령 중대한 오류가 있더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그저 주관적으로 행한 이들에 대해서 그 행위에 대한 자동파문으로부터 면책되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주교성성은 불가피한 필요조치의 사안에 해당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런 의문의 여지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법 1382항의 자동파문이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교황은 (교회재판에서)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었고 대주교에게 파문을 주려는 결정할 수 있지만 그와 같은 교회재판은 결코 없었습니다. (파문하기 위해서는 교회재판이 있어야 하는데) 르페브르 대주교에게는 적절한 교회법정에서 자기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절차상의 결핍이 있는 가운데) 파문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자동파문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이고, 대주교에 대한 적절한 교회재판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적으로는 파문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대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발적으로 쓴 에클레시아 데이(Ecclesia Dei) 에서 르페브르 대주교가 파문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변칙적인 것입니다 – 예, 존경하는 버크 추기경님, 이것은 실제 비정상입니다! 에클레시아 데이라는 저 문서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로운 벌을 명하거나 타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성된 4명의 주교들이 “교회법에 의하여 예상되는 파문이라는 엄중한 벌을 초래하였다”(7)라고만 단순히 적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적용된 교회법, 만약 교회법을 정확하게 적용한다면, 그 결론이란 르페브르 대주교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파문된 것이 아닙니다. 그 교황 자신이 공표했던 바로 그 교회법을 무시하면서도 교황은 반대되는 결론을 취했습니다!

더욱이,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고 나서 계속 말하길, 자기가 왜 르페브르는 잘못되었나 라고 생각한 세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 교황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순명하지 않았고 전통(聖傳)에 대한 불완전하고도 모순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였는데, 전통(聖傳)의 살아있는 특성을 무시하고 있기에 불완전하며, 전통과 치교권을 반대하는 것이기에 모순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비난은 그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르페브르 대주교는 결코 교회법에 의거한 적절한 교회재판에서 이러한 비난에 대해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르치길, 순명이란 도덕에 관한 덕행이고, 따라서 모든 도덕적 덕행처럼 결핍과 과잉 사이의 적절한 규준에 있다고 합니다. 결핍에 의하여 순명을 거스르는 악이 불순명인데, 이 불순명은 합법적인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지나침에 의한 순명을 거스르는 악은 굴종(맹종)이라 부릅니다. 즉, 불법적인 명령을 그저 추종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월함과 열등 사이에 불일치가 있을 때, 열등한 것이 합법적인 명령을 저항하기 때문에 그 잘못은 열등한 쪽에 있는 것이니, 그것을 불순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순명이 항상 똑같은 사례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는 데, 종도들이 산헤드린으로 부터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지 말라고 명령을 받았을 적에, “베드로와 종도들은 이르길, 우리는 사람보다는 천주께 순명해야만 한다”(8)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떄때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천주님을 거스르는 일을 명령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저항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은 불순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및 굴종(맹종)으로 인한 악을 피함으로써 순명의 덕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르페브로 대주교는 무엇을 하였나요? 전통적인 교리, 전통적인 미사, 전통적인 도덕률 그리고 신자들에게 이러한 보물들을 전달하고 계속 이어 나가게 할 사제들을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잘못이었나요? 그 누구도 감히 잘못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그러면서도 저들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신학교를 닫도록 원했고 성비오10세회를 억압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분명히 신학교를 문 닫고 신학생들을 흩어버리라고 대주교께 명령하였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굴종이라는 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모든 변화에 혼란스러워하는 많은 신자들을 보았고, 전통으로 전해져 온 이러한 보물이 필요한 신자들을 보았으며, 이러한 것을 얻기 위하여 자기에게 의탁하고자 하는 이들을 보았는데, 그 신자들에게 그 보물들을 전해줄 사제들을 양성하여 제공한 것입니다. 대주교님의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악마적인 방향감각의 상실은 더 증가하게 되었고, 특히 1986년 10월에 있었던 아씨시에서의 에큐메니칼한 여러 종교와의 회합은 그로 하여금 신자들에게 신앙을 전할 사제들을 서품할 주교들을 성성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라칭거 추기경을 통하여) 대주교는 교황께 주교성성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였지만 그러나 저들은 분명히 나쁜 신앙의 모습으로 차일 치일 계속 (약속했던 주교성성 날짜인) 연장하였습니다. 로마 측은 대주교가 잘못된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1988년 5월 5일자 의정서에는 대주교께서 요청하신 원리를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대주교가 먼저 죽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해지도록 계속하여 날짜를 연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 대주교는 네 명의 주교를 성성함으로써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미래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불순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잉 및 굴종에 의한 악에 저항하는 (천주님 먼저 생각하는) 순명의 덕행인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는 항상 대주교께서 행하신 것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였고, 그분 덕분에 전통미사와 교리가 20세기 끝까지 보존되어 왔음을, 모든 이들이 전통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였을 때 미래 세대는 점점 더 이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몇몇 반대자들은 이르길, 오늘날 적절한 교회법상의 지위를 가지고 전통미사를 드리는 다른 단체도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 지금은 그렇지만 1988년에는 그들이 어디에 있었나요? 대주교는 혼자였고, 전통미사를 보존했었던 극소수의 개개인 사제들은 점차 나이가 들게 되었고, 많은 이들은 이미 죽었으며, 주교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거부되었습니다. 저들은 불순명한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전통미사를 지켰다고 하여서 박해를 받았지만 저들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진정한 순명을 지닌 영웅들, 먼저 천주께 순명하길 택한 영웅이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번째 비난은 대주교가 전통의 살아있는 특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전통에 대한 불완전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엇이 전통의 생명인지에 대하여 커다란 애매성이 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께서는 항상 전통의 진정한 생명을 받아드렸으니, 이 생명이란 교회의 진정한 생명, 그리스도 생명 안에서의 참여, 영원한 생명의 시작 그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진리에 대해 묵상하는 생명, 즉,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께 사랑스런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나서 불변의 진리를 전하는 전교 작업을 통한 저 묵상의 열매를 이웃에게 주는 것(9) 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진정한 전교자였습니다. 그분은 항상 저 전교정신을 파괴하는 에큐메니즘을 저항하였습니다. 만약 모든 종교가 다 옳다고 한다면, (가톨릭교회로의) 회개가 필요 없습니다. 전교하는 일, 즉, 영원한 생명에 대한 충직한 전달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살아있는 전통(聖傳)입니다.

그러나 현대주의자들은 전통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통이란 하나의 과정이지 내용은 아닌 것입니다. 현대주의 신학자인 어브리 둘스 신부(Fr. Avery Dulles)는 전통에 대한 르페브르 대주교님의 관념을 비난하면서 전통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념을 드러냈습니다: ”이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갈등을 일으키는 평가는 전통에 대한 다른 관념을 보여준다. 전통이란 과정이지 내용이 아닌 것이다. - 살아있으며 창의적이고 공동체에 기반된 과정이다.  ‘현대주의자 영향력’이란 것으로 르페브르 대주교가 내쫓은 것은, 그러므로 옛 것과 귀중한 유산이라는 발견으로서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 - 현 시대의 전통주의들 안에서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객관주의자 자세를 보여주는 권위주의자들의 관념은 우리 시대에서 널리 비판 받고 있다.”(10) 대니일루, 드 뤼벡, 콩가, 봉 발타사르 그리고 심지어 라칭거 처럼 이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련된 다른 현대주의자 신학자들이 추기경이 된 것 같이 역시 어브리 둘스 신부도 나중에 추기경이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에 대한 두 개의 갈등을 일으키는 관념이 있습니다: 반대로, 여러분들은 과정에 근거한 살아 있고, 창의적인 그런 공동체를 가지고 있나요? 무슨 과정인가요? 내용이 텅 빈 상태로 변화하는 개인의 종교적 경험적을 전승하라고요? 객관적인 진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시시각각 변하는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을요? 이는 진정으로 성비오10세 교황께서 그분의 칙서 파첸디(Pascendi )에서 견책하신 현대주의자들의 관념입니다. 이 현대주의자 관념은 진화하는 전통이라는 관념, 즉 교리 등도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는 생각입니다. 성비오10세 교황께서는 모든 사제와 주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맹서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나는 정통 교부들을 통하여 종도로부터 온 신앙의 교리를 항상 같은 뜻과 해석으로 우리에게까지 전승된 것을 충실하게 받아드린다. 그리하여 나는 성교회가 최초로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것, 한 의미가 다른 의미로 거치면서 교리상의 진화 요소가 있는 이단적인 발명품을 거부한다….”(11)

그와는 반대로, 여러분들은 교황과 주교들에 의해 충실하게 전달된 신앙의 유산으로서 전통이라는 진정한 가톨릭 관념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이것이 바로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가지고 계셨던 관념입니다. 생명으로 가득 찬 이 진정한 전통적인 관념은 많은 성소자들과 전통 성당에서 보게 되는 많은 자녀들을 가진 젊은 가톨릭 가정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산(多産)은 전통이라는 생명이 가장 지극히 드러나는 증거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차 바티칸 공의회 와중에서의 변혁은 참으로 많은 피임과 성소자들의 감소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은 특히, 객관적 존재, 불변의 존재이신 천주님의 진리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비추어 우리 눈 앞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전통에 대한 불완전한 관념이 있음은 분명한 것입니다!

마지막 비난은 “전통에 대한 모순적인 관념, 이것은 로마의 주교 그리고 주교들의 몸체가 가지고 있는 성교회의 보편적인 치교권이다”(12)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 교회의 치교권이란 본질적으로 신앙의 유산에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교황 비오 9세와 1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말했습니다: ”성신께서는 그분의 계시에 의해 교황들이 새로운 교리를 발견하도록 베드로의 계승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신의 조력으로 인하여 종도들을 통한 전승된 계시와 신앙의 유산을 신성하게 보호하고 충실하게 이를 전하려 하는 것이다.”(13)

이전의 교황들이 전한 계속적인 가르침에 대한 르페브르 대주교의 충직성은 교황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고 교황의 권위를 가장 잘 보증하는 것입니다. 어브리 둘스 신부 (Fr. Avery Dulles)가 “권위주의자” 관념을 가지고 있는 전통주의에 대한 “객관주의자” 관념을 연계시키고, “전통적인” 관념으로서 양쪽을 거부했던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경멸적인 결말이 없이, 전통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은 이것이 갖는 객관성, 이 목적을 위해 우리 주님으로부터 온 권위를 받은 이에 의해 충실하게 전승된 신앙의 유산을 주장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전통이라는 불변의 객관성을 주장하는 것은 전통이라는 “권위주의자” 관념을 보호하는 것이고, 그래서 교황의 권위를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황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하여 권위를 받은 것이고, 권위의 관념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거부당한 것이지, 르페브르 대주교에 의하여 거부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권위가 어떠한 새로운 현대적인 “신자들의 학문”을 찬성하는 것이라면, 그러면 권위는 그 권위 자체를 파괴합니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현대주의자 관념으로서 성 비오10세 교황께서 파첸디(Pascendi)에서 정확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만약 권위가 신앙의 유산을 지키는 것이라면, 이는 “종도들과 함께 완전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불변이 되며, 그래서 전통 안에서의 권위에 대한 이런 관념을 르페브르 대주교가 온전하게 받아드리게 됩니다. 

만약에 르페브르 대주교와 오늘날 로마 주교 및 주교들의 몸체(교황) 사이의 가르침에 있어서 반대되는 것이 있다면, 그 가르침들은 더 이상 저들의 전임자들이 가르쳤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반 현대주의 맹서인 실라부스(교서요목) 및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왕권 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 로마 당국자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가르치려 하,고 반대로 된 권위로서 새로운 가르침을 강요하려 합니다: ”새로운 계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유산을 열성적으로 그리고 충직하게 드러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버크 추기경의 두비아(Dubia-의문, 의심)는 그 추기경으로 하여금 권위를 파괴하는 이런 혁신을 찬동하는 저들의 권위를 사용하는 교황들의 가능성을 생각나게끔 해줍니다.

교회의 현재 위기는 권위의 위기에서 옵니다. 권위를 가진 이들이 새로운 교리를 양성합니다. 교황에 의해 도입되거나 찬동된 모든 혁신이 교황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경향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만약 어제는 여자 복사가 금지되었고 오늘은 허용되고 있다 한다면, 만약 어제는 재혼한 이혼녀들에게 영성체가 금지되었는데, 오늘은 허용된다 한다면, 오늘날 여성 사제가 금지되었으니 내일은 여성 사제가 허용될 것 아닌가요? 일단 교리에서 변화의 원리가 받아 들여지면 끝이 없는 것이 되고, 또한 어떠한 교리적 권위는 견뎌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르페브르 대주교에 대항하는 단계별적인 이러한 세 가지 비판은 정당화되지 못합니다. 만약 비난에 대한 이유들이 거짓이거나 무가치 한 것이면 그런 비난은 공허한 것입니다.

몇몇 (교황청 내) 보수주의자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사적 판단으로 독자 행동하는 자들로서 보고, 마치 우리가 개신교인듯이 비난하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버크 추기경은 그런 말을 하지 않지만, 그런 비난은 진리로부터 멀어집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판단을 따르지 않으니, 우리는 (전통) 성 교회의 판단에 애착하길 원합니다. 성 교회가 확립한 판단에서 우리가 떠나는 걸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바오로 성인의 말씀에 충직하게 순명합니다: “우리라든가 혹은 하늘로부터 내린 천신이라도 우리에게 너희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 저주를 받을지로다. 우리는 전에도 말함과 같이 이제 다시 이르노니, 너희가 (내게서)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로다.“(갈라타1:8-9) (가톨릭) 교회로부터 “우리가 받았던 것”을 지키는 것이니, 우리는 개신교인이 아니요, 그저 순수한 가톨릭인일 뿐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것을 도입하였고 현대주의자들은 자기 마음에 따라 혁신을 도입하였지만, 우리 성비오 10세회는 둘 다 모두를 거부하고 있으며 수세기 동안 전승되어져 온 것, 가톹릭교회가 가르친 것만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가톨릭인의 자세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 및 성비오10세회에 대한 버크 추기경의 잘못된 판단의 뿌리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니, 거기에는 교황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던지 간에 다 옳다는, 이런 것은 새미사를 드리는 몇몇 보수주의 성직자들 사이에 흔히 있는 추론입니다. 이런 생각은 요한 바오로 2세 및 베네딕토 16세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저들 보수주의자 성직자들은 그들의 눈을 떠야 하고 이런 생각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불법이라고 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없겠지만, 우리 성비오10세회의 고해성사와 혼배성사 둘 다 유효하다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것을 인식한 이후에도 불구하고, 버크 추기경은 우리의 성사가 불법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추기경은 그저 이것을 “비정상”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말은 오늘날 교회의 위기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거나, 또는 그 지역의 레위인이나 사제가 부상 당한 이를 돌보지 않은 이후에, 그 환자를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를 보고 불법적으로 행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습니다. 매우 많은 사례에 있어서, 만약 성비오10세회가 부상 당한 영혼들을 돌보지 않았다면, 저 영혼들은 전통 미사와 교리를 완전히 박탈당했을 것 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먼저 신자들을 돌보고 난 후에야 비로서 지역 주교들이 FSP(성 베드로회) 혹은 ICKSP(14) 같은 단체에 특전을 주고 오라고하여 몇몇 공동체를 위해서 미사 드리라 요청하였으니, 우리가 먼저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그 단체들에게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합법성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합법성처럼 이미 세워진 것이고, 저들이 늦게 오고 나서 우리의 합법성이 뺏길 수는 것 입니다.

저들은 우리가 적절한 교회법상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함을 비판하는데, 그러나 왜 그러면 교회법상의 지위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 건가요? 우리는 초창기부터 교회법상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불법적으로 그걸 빼앗긴 상태입니다. 수십 년간 우리는 그걸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항상 이를 거부해왔거나, 또는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받아 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교리, 우리가 주는 성사, 우리가 촉구하는 도덕률들은 옛부터 있어 온 순수한 가톨릭 교리, 가톨릭 전례, 그리고 가톨릭 도덕률이기 때문에, 만약 교회당국의 권위가 있는 자들이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아니하고 그저 교회법상의 지위를 주기만 한다면 모든 일이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저들은 우리에게 교회법상의 지위를 주지 않나요? 우리가 저 지위를 변화시킬 수단을 가지지 못하고 저들은 이를 고칠 위치를 가지고 있을 적에 왜 저들은 우리에게 적절한 교회법상의 위치가 없다고 비난합니까? 부랑자로 취급 당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사 때마다 교황 및 지역 주교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지만, 그러나 저들은 자기들이 할 수있는 것을 하고 있나요?

버크 추기경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성비오10세회는 제대로 된 교회법정에서 우리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얻은 적이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정의조차 우리에게 주지 않으면서 왜 우리을 견책만 하는 겁니까?

기도합시다. 특히 로사리오 성월(聖月)인 이 달에 성 교회의 모친이신 하자 없으신 동정녀를 통하여 기도합시다. 교회와 교황 그리고 주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좋으신 주님께서 저들에게 자기들의 의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계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유산을 열심히 그리고 충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은총을 달라는 기도를 합시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 성비오10세회에 대한 적절한 교회법성의 위치를 주고, 그 문제를 당장 해결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세 때에 요청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로부터 무엇을 원합니까?” “신앙을 원합니다.” “신앙이 여러분께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교회당국의 권위자들에게 종도들에 의해 가르쳐진 가톨릭 신앙을, 그 신앙의 유산을 요청하는 바이니,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참으로 원하시는 성모여, 교회당국의 권위자들을 도우사 저들이 혼란을 흩어 없애 버리는 분명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가르치게 하시어, 우리 시대의 악마적인 방향 감각의 상실을 없애게 하시고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께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


[1]Cardinal Raymond Burke, at the Sacred Liturgy Conference that was held in Medford, OR on 15 July 2017.

[2] Ibid.

[3] The crimes against Faith and the Unity of the Church are in part 4, title 11 of the 1917 CIC and inbook 6, part 2, title 1 of the 1983 NC. Here and after, “CIC” = Codex Iuris Canonici published by Benedict XV in 1917; “NC” = New Code published by John Paul II in 1983.

[4] CIC, part 4, title 16, can. 2370/ NC, book 6, part 2, title 3, can 1382.

[5]CIC, can.2205 §2/ NC, can. 1324, §3, referring to §1,8° and can 1323, 4°,5°.

[6] NC: can. 1323, 7°.

[7]Moto proprio Ecclesia Dei, 2nd July 1988.

[8]Acts 5:29.

[9]Contemplare et contemplata aliis tradere, St Thomas Aquinas: this became the motto of the Dominicans

[10]Dulles, Avery, The Reshaping of Catholicism: Current Challenges in the Theology of Church,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88, p. 78.

[11]Anti-modernist oath, required on Sept. 1st, 1910 by St. Pius X from all those who receive major orders and ecclesiastical responsibilities.

[12]Moto proprio Ecclesia Dei, 2nd July 1988.

[13] Council Vatican I, dogmatic constitution Pastor Aeternus, chap. 4; 18th July 1870. Dz. 1836.

[14]Fraternity of St Peter, or Institute of Christ the King Sovereign Priest.